공간 설명
필로소피 라운지의 출발은 현현 하덕현 대표의 사적인 기억이다. 서울로 상경해 동생과 오래 살았던 그는 독립을 하면서 처음 ‘거실’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침대도 옷장도 싱크대도 없는, 말 그대로 뚜렷한 목적과 기능이 없는 공간이었다. 가족과 한집에서 살 때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나만의 여유 공간이 생긴 셈인데, 하덕현 대표는 여길 성급하게 채우기보다 그대로 비워 둔 채 이름을 붙여주는 쪽을 택한다. 필로소피 라운지. 좋은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멍하니 상념에 잠겼다. 빛과 음악을 위한 조명과 스피커를 들였다. 이따금 누군가를 초대해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렇게 거실은 사색과 대화가 흐르는 일상의 귀중한 장소가 되었다.
여러모로 호텔 라운지 바가 연상되는 공간이다. 넓은 면적과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마감, 벽을 따라 두른 소파와 각 좌석을 분리해 주는 불투명 유리 파티션, 낮고 부드러운 조도에 쾌적한 화장실까지. 문을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라운지 바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여유로운 스케일과 탁 트인 시야를 설계함과 동시에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신경 썼다. 직원이든 다른 손님이든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편하게 대화하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위스키 바와 달리 여기엔 바 테이블이 없다. 현란한 스킬과 능숙한 스몰 토크를 겸비한 바텐더도 보이지 않는다. 바텐더의 퍼포먼스를 감상하거나 바를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혼자만의 시간 혹은 일행과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필로소피 라운지가 기대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도의 응대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직원은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 역시 손님의 편안함과 직원의 효율성 모두를 세심하게 궁리한 결과다. ‘혼자 온 손님이니까 말 걸어 줘야 할까?’, ‘이쯤에서 술 한 잔 더 시켜야 하려나?’ 따위의 사소한 고민이 들지 않는 바에서는 모두가 부담 없이 머무를 수 있을 테니까.
브라운과 그린 올리브의 우아하고 차분한 색 조합은 대리석 계단의 단차를 기준으로 나뉜 두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가구는 현현의 다른 매장들을 작업하며 합을 맞춰본 적 있는 ‘피쉬팜’에서 제작을 맡았다. 중앙에 놓인 둥근 형태의 등받이 의자 1종을 제외하고는 전부 이번에 새로 만든 것. 그중에서도 벽에 붙인 푹신한 소파는 라운지 바라는 콘셉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요소다. 차분한 느낌의 목재와 낮은 조도가 매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구성하는 가운데, 지나치게 고급스럽고 묵직한 이미지만 남기는 걸 피하고자 소파 시트에 넣은 그린 올리브색이 공간에 포인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