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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23-01-10

“나는 여전히 자유낙하 중이다”

키키 스미스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

기간 2022.12.15 - 2023.03.12
장소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61)

한때 우리의 일부였지만 이후 분리배출되는 침, 땀, 정액, 생리 혈 등의 분비물은 혐오와 더불어 공포의 대상이다. 독일 출생의 미국 작가인 키키 스미스(Kiki Smith)는 경계를 벗어나는 유동적인 대상에 대한 감정을 우리의 분비물에 비유해 작품으로써 드러내 보여 충격을 선사했다. 작가는 왜 이런 작품을 제작하는가? 작품 이면에 내재된 사유와 시선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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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스미스 ⓒ Chris Sanders

미술에 파장을 일으킨 아브젝트 미학

1980년대, 90년대에 일부의 현대 미술가들은 ‘아브젝시옹(abjection)’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키키 스미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개념은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이자 문학 이론가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공포의 권력: 아브젝시옹에 대한 에세이(Pouvoirs de l’horreur: Essai sur l’abjection)』에서 나왔다. ‘아브젝시옹’은 프랑스어로 ‘비천한 것’을 뜻한다. 불결하고 혐오스럽다고 여겨지는 콧물, 배설물, 피, 땀, 고름, 정액, 생리 혈 등의 분비물이 이에 해당한다. 살아있던 신체가 죽어 시체가 됐을 때, 몸 안에 있었던 분비물이 몸 밖으로 유출됐을 때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

황홀, 2001, 청동, 170.8 × 157.5 × 66.7 cm ⓒ 리차드-맥스 트렘블레이. 작가 및 페이스갤러리 제공.

아브젝시옹은 안과 밖의 구별이 확실하지 않은 ‘자리에서 벗어난 것’이며, 주체의 일부였지만 분리돼 경계가 불명확한 고정되지 않은 ‘과정’이다.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옹이 분명하지 않고, 경계에 있기 때문에 불안을 야기한다고 했다. 주체는 자신의 질서와 안정성을 해치는 아브젝시옹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브젝시옹 개념의 핵심은 우리가 그것을 불결하고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간주해 밖으로 밀어 내보낸다는 데 있다. 크리스테바는 아브젝시옹의 양상을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도 발견했고 그 범주를 확장시켰다. 아브젝시옹은 주류 사회에서 부적절하다고 간주돼 추방된 소수자, 집단까지 포함한다. 그는 아브젝시옹이 완전히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닌 계속 생성되고 주변에 머물며 타자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봤다.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 전경 ⓒ 김윤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예술과 실천: 신체가 권력을 갖는 법

아브젝트 아트는 특정한 미술 운동을 뜻한다기보다는 비천한 물질(abject material)을 사용한 작품 혹은 저속한 주제나 부적절하다고 간주되는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지칭한다. 이는 지배적인 주류 문화에 대항하기 위한 실천에서 출발했다. 미술의 영역에서 신체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지속돼 왔지만, 1980년대에 정체성, 젠더, 동성애, 에이즈, 낙태권 투쟁, 페미니즘 등의 이슈와 결부되며 활발하게 논의됐다. 

아브젝트 아트의 경향을 조명한 최초의 전시는 1993년에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처음 공개된 <아브젝트 아트: 미국 미술의 혐오와 욕망(abject art: repulsion and desire in american art)>이다. 여기에는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인 신디 셔먼(Cindy Sherman), 매튜 바니(Matthew Barney), 로버트 고버(Robert Gober), 낸 골딘(Nan Goldin) 등과 더불어 키키 스미스가 참여했다. 이들은 절단된 시체를 연상시키는 조각, 머리카락, 정액, 생리 혈, 토사물 등의 분비물을 연출하거나 실제 작품의 재료로 활용함으로써 비평가들에게 역겹다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은 단순히 시각적인 불편함과 충격을 제공하는 것 너머에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것과 더불어 인식 전환과 실천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 전경 ⓒ 김윤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하늘, 2012, 면 자카드 타피스트리, 287 × 190.5 cm. 매그놀리아에디션 직조.

미술의 영역에서 키키 스미스를 둘러싼 지배적인 키워드는 ‘아브젝트 아트’다. 작가는 1970~80년대에 인체 장기를 묘사한 작품으로 인지도를 알리기 시작했다. 임신중절, 가정폭력, 에이즈 등 신체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그는 90년대에 이르러 인물의 인체 전신상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배설하고 있는 신체 형상 조각, 생리 혈을 늘어뜨린 채 바닥을 기어가는 신체 조각 등 파격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 작품들은 아브젝트 아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르러 키키 스미스의 작업은 파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형상에서 벗어나 서정적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그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 신화, 문학에서 도상을 취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동물과 자연, 우주 등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차원의 존재를 소재로 삼으며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과 체험을 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 들어온 것이 크고 작은 모든 생명이었던 것이다.

꿈, 1992, 에치젠 코조 키즈키 종이에 에칭, 59.6 × 125.1 cm. 작가 및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 전경 ⓒ 김윤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주제로 이뤄져 있다. 이보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키키 스미스의 작업이 약 10년 주기로 구분이 되나 전시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지는 않았으며, 그렇다고 특정 수식어를 통해 작가의 작업을 구분 지으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소 느슨한 얼개로 작가의 작품에서 관측되는 구조적 특성에 기반해 전시를 구성했다고 했다. 이는 작가의 궤적을 단일한 역사나 수식어에 한정하지 않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제(머리카락), 1990, 석판, 91.5 × 91.5 cm. 작가 및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전시의 첫 번째 주제는 ‘이야기의 조건: 너머의 내러티브’. 역사, 종교, 설화, 동화, 신화 등 다양한 배경에서 비롯된 작업의 모티프들이 한 화면에서 만나 어떤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키키 스미스는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를 취하는 것이 아닌 해체와 직조를 통한 비선형적인 서사를 구축해 왔다. 스미스가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과 함께 작가 특유의 조형 문법을 살피는 것이 해당 구획의 핵심이다. 

 

두 번째 주제는 ‘배회하는 자아’다. 조각과 사진, 판화, 태피스트리, 드로잉,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그이지만, 작품 세계를 확장하는 데 큰 계기가 된 것은 판화와 사진 매체를 활용하면서부터다. 키키 스미스는 1990년대 이후 판화와 사진을 접했고 자신의 작품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그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드러내 보이지 않고, 의도적으로 배제해 왔지만 사진과 판화를 통해 수행적인 태도로 자신을 등장시켰다. 이 구획에서는 작가의 드러남과 자아탐구 그리고 반복성이 어떠한 형태로 제시돼 있는지 살필 수 있다.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 전경 ⓒ 김윤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마지막은 ‘자유낙하: 생동하는 에너지’다. 2000년대 이후 키키 스미스의 작업 주제는 상이한 형태로 전환됐다. 그 양상은 매우 복잡다단하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작업을 관통하는 근원이 존재한다. 바로, 생동하는 에너지다. 중력의 간섭 없이 화면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한 도상들, 불명확한 요소들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야기 등 모두 상하좌우 생동하는 에너지로 귀결된다. 전시는 작품을 관통하는 생동 에너지에 주목할 수 있도록 관람 동선도 곡선형의 순환적 구조로 구성했다.

푸른 소녀, 1998, 실리콘 청동, 인물_ 91.4 × 49.5 × 55.9 cm ⓒ 엘런 페이지 윌슨. 작가 및 페이스갤러리 제공.

이진숙 미술사가는 키키 스미스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떨어짐을 받아들인다는 것, 상승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신/몸, 상승/하강, 초월/타락이라는 이원론적 프레임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불멸의 정신을 추구하는 대신 유한하고 취약한 몸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낙하를 받아들이는 것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전시 도록, 열화당, p. 32)

 

키키 스미스의 작업을 마주한 일부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작업이 불쾌함과 혐오함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은 아름다움과 심미감을 줘야 한다는 이분법적 잣대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잣대는 예술에 대한 지배적인 판단 기준에 의거해 우리가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다. 작가의 작업을 이해하는 일은 경계에 있어 명확한 구분이 어려운 것, 주류 사회에서 이탈된 문화와 집단, 내가 아닌 타자를 이해하는 일과 함께한다. 수치스럽고 혐오스럽다고 여겨지는 대상들, 단일한 집단과 언어에 포함되지 못한 타자들까지도 모두 수용하고 끌어안는 일. 우리를 지배하는 혐오감과 수치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는 예술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예술은 선언하는 것이다.” 전시는 오는 3월 12일까지.

하도경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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