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5

취향으로 읽는 빈티지 가구

세월을 복원하는 숍, 오드플랫
가치 소비의 확산으로 국내 빈티지 가구 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으며 미드 센추리 모던 디자이너로 대표되는 찰스&레이 임스(Charles&Ray Eames)의 디자인 경향을 일컫는 ‘임스 룩(Eames Look)’은 인테리어 공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임스 제품을 애정하는 이들이 늘면서 임스 체어를 보관하고 수리하던 8평 남짓한 박지우 대표의 작업실은 ‘오드플랫(ODDFLAT)’이라는 이름을 달고 빈티지 가구 애호가들의 발길을 끌기 시작했다. 보기 드문 희귀 컬러부터 우수한 컨디션까지, 오드플랫의 심미안으로 건져낸 오래된 의자들은 속속 새로운 공간을 찾아갔다. 취미 삼아 모으던 빈티지 가구가 비즈니스가 되기까지, 또 국내에 처음 임스 리스토어 문화를 소개한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드플랫을 지탱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오드플랫 본점 전경 ⓒODDFLAT

빈티지 가구를 다루는 여러 숍들 중 유독 오드플랫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 건 언젠가 스치듯 접한 문장이 기억에 주욱 남아서다. “오드플랫 비즈니스 중심은 ‘수입 및 유통’이 아닌 ‘지속 가능성’ 그리고 소비자와의 깊이 있는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다.” 수익 창출 이전에 소비자와의 관계를 촘촘히 다져가는 일. 더 많은 이들이 가구가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숍 그 이상의 역할을 부단히 고민하는 오드플랫, 박지우 대표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Interview with 박지우

오드플랫 대표

ⓒODDFLAT

ㅡ 오드플랫의 시작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상업적 공간이었던 건 아니다. 취미 삼아 모으던 가구들이 집을 빼곡히 채울 만큼 여럿이 되니 가구를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겠더라. 집 바로 앞에 마련한 작은 창고 겸 작업실을 빈티지 임스 체어를 비롯해 수집해온 가구들로 채웠다. 그즈음 국내 빈티지 가구 시장이 커지며 공간을 찾는 이들이 늘자 자연스레 숍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ㅡ 집이 가구로 가득 찰 정도였다니, 수집욕이 엄청났던 것 같은데. 가구에 매료된 이유가 있을까?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서 가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있지만 패션을 정말 좋아한다. 오드플랫을 찾는 이들에게서도 비슷한 결을 느끼곤 하는데, 대게 패션을 좋아하는 경우 높은 확률로 가구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본인의 취향에 몰두하고 또 이를 공유하는 행위를 즐긴다면 가구 역시 패션만큼이나 흥미로운 카테고리여서가 아닐까.

ⓒODDFLAT

ㅡ 수집한 컬렉션을 보니 빈티지 가구들로 가득하다.

원체 오래된 것에 애정을 가지는 편이다. 올드카부터 빈티지 오디오, 필름 카메라 등 가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긴 세월을 지나 내게 온 것들이다. 깨끗한 새 상품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너무 반짝이는 것은 마음에 잘 와닿지 않는달까.

 

 

ㅡ 영감 또는 영향을 준 디자이너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역시 임스 부부일까?

그렇다. 아마 가구를 좋아하는 이들 중 대다수가 임스를 언급할 것 같은데.(웃음) 내 취향은 패션과 음악, 가구 등 여러 카테고리에 걸쳐 미국에 근간을 두고 있다. 아웃도어 패션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 때문인지 설계가 잘 이루어진 합리적인 디자인에 꽂히는 면도 있고. 장식 요소가 돋보이는 가구들도 물론 멋스럽지만, 임스의 디자인은 체계와 논리를 갖추고 있어 자연스럽게 끌렸다. 같은 이유로 조지 넬슨(George Nelson)도 꼽고 싶다.

ⓒODDFLAT

ㅡ 빈티지 가구를 복원하는 작업과 더불어 직접 복원 파츠까지 제작하고 있다. 리스토어 서비스를 안정화하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오래된 것을 수집하다 보니 고장 난 부분을 고치고 복원하는 일에 익숙하다. 직장인일 적에는 일주일 휴가를 내고 주차장에 틀어박혀 차만 수리하기도 했으니까. 또 바잉해온 가구에 자잘한 문제가 있는 경우 복원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고 파츠 역시 별다른 대안이 없어 스스로 제작하게 되었을 뿐이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전문성을 갖추는 계기가 된 동시에 오드플랫의 특장점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우리가 여타 숍들과 같은 걸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고민하는데 아직까지 빈티지 가구를 전문적으로 복원하는 곳은 드물어 보인다. 오드플랫이 오늘도 리스토어 작업을 하는 이유다.

 

 

ㅡ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무상 품질보증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변경했다. 빈티지 가구의 품질을 보증하는 정책, 운영자 입장에서 괜찮은 건가?(웃음)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리한 뒤에는 다시 고장 나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 만약 같은 부분이 다시 고장 난다 해도 쉽게 수리가 가능하고. 구매한지 2년 안에 문제가 생기는 가구를 판매한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드플랫이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책임감의 일환이자 소비자의 불안감을 덜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오드플랫 알트 전경 ⓒODDFLAT

ㅡ 지난 4월, 오드플랫의 새로운 공간인 오드플랫 알트(ODDFLAT_ALT)를 오픈했다. 기존 쇼룸과 확연히 다른 무드던데. 프린트 공장이었던 곳에 자리잡게 된 이유가 있을까?

기존 오드플랫 쇼룸은 임스 체어만 전시해도 공간이 가득 차버리는 한계가 있었다. 비교적 넓은 면적을 원하기도 했고, 머릿속에 항상 그리던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덜 세련되고 덜 다듬어지고 덜 정형화된 곳. 빈티지 가구에 매겨지는 가격이라는 장벽과 브랜드, 디자이너에 관한 방대한 스토리로 인해 빈티지 가구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가구를 캐주얼하게 풀어내보고 싶었다. 미국만 하더라도 가구를 진열해 두고 가볍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거든. 빈티지 가구 숍이 다수 생겨나고 운영 중인 때에 ‘오드플랫이란 숍이 왜 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오드플랫 알트를 통해 차근히 풀어가고자 한다.

ⓒODDFLAT

ㅡ 오드플랫 알트 오픈과 동시에 첫 전시 <취향 발현>을 함께 선보였는데.

오드플랫 알트의 목적성이 반영된 전시를 열어 공간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짚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그리고 사회적 이유로 대부분 비슷한 주거 형태에 살고 있지만, 그 안의 우리들은 각자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첫 전시의 주제로 ‘개인의 취향’을 택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전시는 ‘Part A: 사적 고백’과 ‘Part B: HOUSE BY KIMGANGMIN’ 두 개 섹션으로 나누어 A는 오드플랫이, B는 김강민 작가가 꾸려봤다.

디자이너 미상의 캐비닛. 전시 기간 중 출입문 부근에 자리해 관람객을 맞았다. ⓒODDFLAT

ㅡ ‘Part A: 사적 고백’에서는 각 가구에 대한 ‘사적 고백’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홀로 출장을 떠나는 편이어서 가구를 바잉 할 때마다의 감상과 스토리가 있다. 예로 전시 기간동안 오드플랫 알트 출입문 부근에 자리해 있던 디자이너 미상의 캐비닛은 판매할 생각이 없다는 딜러를 졸라 바잉한 가구다. 나 역시 앞으로 팔 생각이 없는 피스고. 이와 같은 사적인 생각의 흐름은 곧 오드플랫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식이지만, 모두에게 동의를 구할 수는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담고 있기도 하다.

정말 멋진 것은 딜러도 팔 생각이 없다. 전리품처럼 집에 고이 모셔 두거나 쇼룸에 두고 자랑만 할 뿐이다.

나는 이 캐비닛을 보며 기회만 노렸다. 그리고 출장길에 오르자마자 캐비닛을 보고 싶다고 가장 먼저 연락을 했다.

전시 <취향 발현>, ‘사적 고백’ 中

전시 의 ‘Part B’를 장식한 김강민 작가의 작품 ⓒODDFLAT

ㅡ 공간 중앙의 ‘Part B’는 김강민 작가와 함께 했다. 첫 전시인 만큼 함께 할 인물을 고르며 고심이 많았을 것 같은데.

편집숍 ‘Someone Life’의 오너이자 의류 브랜드 ‘Darenimo’의 디자이너, 그리고 리메이크 프로젝트 ‘999 Project’의 아티스트이기도 한 김강민 작가와는 알고 지내던 사이다. 쇼룸 오픈과 별개로 약 1년간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와중에 알트를 오픈하게 되면서 공간의 목적성에 잘 맞겠다고 판단해 전시로 다뤄보자고 제안했다. 김강민 작가도 상업성을 얼마간 배제한 창작활동을 원하던 시기여서 서로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ㅡ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영감을 많이 받았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까지 봐온 전시나 여타 빈티지 가구 숍의 행보와는 또 다른 모습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은데, 새로운 자극이 됐다는 의견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특히 아주 오래전부터 빈티지 가구를 수집해온 컬렉터가 이번 전시를 신선하다고 평해주어 더없이 기뻤다.

ⓒODDFLAT

ㅡ 수많은 가구 중에서도 각별한 가구가 있는지 궁금하다.

매번 바뀌는데 어쩌지. 한 가구에 큰 애정을 느끼다가도 시간이 흘러서는 “놔줄 때가 됐지” 한다. 꼭 사용해 봐야 할 것 같아 집에 들인 가구를 판매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직접 써 보면 나와 맞는 가구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어서다. 그래도 집을 구성하는 가구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었던 이전에 비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다방면으로 가구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보니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작년 론칭한 오드플랫 옥션. 경매 시작 전 제품의 리테일가를 표기해 합리적인 가격에 낙찰 가능하도록 했다고. ⓒODDFLAT

ㅡ ‘오드플랫 옥션’이라는 이벤트를 론칭했던데.

혹시 그 옥션에 참여해 봤는지? 열기가 대단했다.(웃음) 내가 여러 옥션을 통해서도 가구를 바잉하고 있으니 직접 경매를 진행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판매가라는 건 판매자 입장에서 정한 금액이고, 소비자는 구매를 원할 경우 그 가격에 살 수밖에 없다. “왜 빈티지 가구의 가격은 숍이 정해야만 하나”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비딩해서 만들어지는 가격이 적정 판매가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소비자가 직접 가격 형성을 주도하는 시장을 만들어 본 거다. 소비자는 예산을 정한 뒤 그 예산 안에서 자유롭게 경매에 응찰하면 된다.

오드플랫 옥션의 첫 번째 컬렉션은 시작가 1만 원에 경매가 이뤄지는 ‘디자인 클래식, Eames 컬렉션’이었고, 두 번째 컬렉션은 론칭 기념으로 제안한 ‘My next lounge chair’였다. 온라인 시스템 상에서 빠르게 업데이트 되는 응찰가를 보고 있자니 흥미진진하더라. 현재 옥션은 중단 상태이지만 언젠가 다시 오픈할 예정이다. 오드플랫만의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포함되는 일이니까.

ⓒODDFLAT

ㅡ 빈티지 가구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정답은 없다. 단지, 오랜 기간 가구를 소비하고 수집하며 느낀 바로는 의도적으로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것을 시도해 봤으면 한다. 전시 <취향 발현> 서문에서도 이야기했듯 우리는 언젠가부터 다수의 공감에 익숙해진 것 같다. SNS 속 세상도 흥미롭지만 밖에 나가 곳곳을 둘러보며 내 취향을 가늠케 하는 여러 경험들을 쌓아 보기를 권한다. 분명 가구에도 개성을 반영한다면 곁에 두는 재미가 커질 거다. 더 나아가 개인의 집이, 개인이 택한 가구가 서로에게 영감이 될 거라 믿는다.

 

 

ㅡ 앞으로 예정된 계획을 들려달라.

오드플랫 본점에서는 임스 체어를 중심으로 삶에 꼭 필요한 에센셜 가구와 리빙 아이템을 소개하려 한다. 반면 오드플랫 알트는 정말 계획이 없다.(웃음) 빈티지 가구는 판매되면 없어지고 마는, 생명력이 있는 상품이지 않나. 꾸준한 어떤 모습으로 보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별난 취향과 감성의 것들을 콜렉팅 하겠다는 큰 목적 아래 운영할 예정이다. 또 요즘은 한국 고가구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 전시를 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아무래도 소규모 사업체는 운영하는 주체가 공간을 대표할 수밖에 없으니 오드플랫과 오드플랫 알트는 곧 나와 같을 테다. 별스러운 나를 꼭 닮은 두 공간이 여러분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김가인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오드플랫

장소
오드플랫 본점, 오드플랫 알트
주소
서울 성동구 광나루로 166 1F,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5길 8 다미빌딩 4F
김가인
사소한 일에서 얻는 평온을 위안 삼아 오늘도 감각하기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취향으로 읽는 빈티지 가구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