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8

수수께끼같이 이상하고 재미있는 가구들

비더비 X 길종상가 기획전 <사물의 가정>
전시 전경 Ⓒ이윤호

빨강, 파랑, 초록색의 커튼으로 장식된 세 개의 공간. 바퀴가 달린 화분, 스쿠터를 닮은 옷걸이, 치즈를 닮은 선반, 비누 다리를 가진 테이블 등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가구들로 꾸며져 있다. 이름 모를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가구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위치한 비더비 커뮤니케이션 라운지에 이상한 동화 속 세계가 불시착했다. 아니, 빨강, 초록, 파란색의 커튼이 드리워진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연극 무대 같기도 하다.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한 가지는 정확하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구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

생활 예술품을 디자인하는 '라이프앤콜렉트'의 패브릭 소재 조명과 시계는 커다란 괘종시계와 함께 전시했다. Ⓒ이윤호

비더비(B the B)는 서울의 뷰티, 패션, 라이프스타일을 콘텐츠로 전달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브랜드의 단독 전시가 진행되는 브랜드 라운지, 뷰티 테크를 체험할 수 있는 뷰티 테크 라운지,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전시가 열리는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로 구성되어 있다. 커뮤니케이션 라운지에서는 서울의 브랜드가 아티스트의 눈을 거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한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는 3개의 라운지 중 제일 흥미로운 곳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시에 따라 분위기가 180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10월 초에 끝난 전시 <서울의 멋: 반짝이는 좌대와 사물의 조각들>에서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는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과 조명으로 인해 눈부실 정도로 화려하고 미래지향적인 공간이 되었다. 반짝거림은 권오상 작가의 사진 조각을 더 눈에 띄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서울의 화려한 풍경을 떠오르게 했다.

VT 코스메틱의 대표 제품과 유니크한 그린 선반. Ⓒ이윤호
런드리유의 모공 브러시로 거대한 시계의 바늘이 된 테이블, 조명 브랜드 루미르의 '루미르B'전구는 스탠드 조명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윤호

반짝 빛났던 커뮤니케이션 라운지가 10월 13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알록달록한 동화 세계로 변할 예정이다. 라운지는 빨강, 초록, 파랑 – RGB 컬러로 가득하고, 이상하고 오묘한 가구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를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바꾼 주인공은 바로 가구, 공간, 전시 등 다양한 디자인 활동을 펼치는 길종상가의 박길종 작가다.

 

박길종 작가는 ‘길종상가’라는 가상의 상가를 만들어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길종상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가는 ‘가공소’로, 이곳에서는 고객 맞춤형 가구를 제작하거나 공간과 전시를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우리가 마주친 길종상가의 작품은 대부분 가공소에서 펼친 작업일 가능성이 높다. 그중 가장 친숙한 작품으론 서울 청담동의 에르메스 매장 쇼윈도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에르메스의 시즌 콘셉트와 제품에서 영감받은 이야기를 한 장면으로 풀어내는 쇼윈도 작업은 이번 <사물의 가정> 전시와 닮았다.

재미있는 놀이 구조물과 함께 매칭한 키즈 브랜드 젤리멜로. Ⓒ이윤호

박길종 작가는 쇼윈도를 한 편의 동화처럼 만든 것처럼, 전시 <사물의 가정>에서도 비더비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를 상상이 가득한 집(가정)으로 만들었다. 이 상상의 집은 빨강, 초록, 파란색 커튼으로 나눠진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박길종 작가가 10개의 브랜드를 보고 만든 가구들이 서 있다.

알록달록 재미있는 공간을 연출한 길종상가. 거실처럼 꾸린 전시 공간에는 머지의 빈백 소파를 올려둔 '손잡이 소파'와 비누 브랜드 한아조의 테라조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윤호

작가에게 영감이 된 브랜드는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등 분야도 다양하다. 패브릭 소재로 아름다운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는 라이프앤콜렉트, 청결함으로 나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클린 뷰티 브랜드 런드리유, 사려 깊은 디자인은 물론 빛 부족 문제까지 해결하려는 조명 브랜드 루미르, 평범한 머그잔 형태를 재치 있는 제품으로 변신시키는 머지, 높은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피부 문제를 해결하는 VT 코스메틱, 폐도자기를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선보이는 아누, 자연과 과학에서 건강한 아름다움을 찾는 뷰티 브랜드 유니크미, 상상력과 포근한 감성을 지닌 키즈 패션 브랜드 젤리멜로, 특별한 소수를 위해 디자인하는 패션 브랜드 프루아, 아름답고 건강한 수제 비누를 만드는 한아조. 이렇게 10개의 서울 브랜드가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흔들거리는 장난감처럼 생긴 젤리멜로의 '지그재그 스쿠터' Ⓒ이윤호

박길종 작가는 브랜드마다 하나 이상의 가구를 디자인 및 제작했다. 언제나 자기만의 눈으로 재해석한 가구를 선보였던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가구들도 범상치 않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전시에 참여한 브랜드 제품의 특성에 따라 가구 형태가 정해졌고, 때로는 브랜드 제품이 가구의 일부가 되었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가구의 형태와 살짝 다르지만,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가구마다 브랜드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수수께끼 같은 가구들로 가득 한 전시장이 한 편의 동화처럼 느껴진다.

한아조의 테라조 비누에서 모티프를 얻은 테이블. Ⓒ이윤호

전시에 참여한 브랜드 중에서는 최근 눈에 띄거나 자주 거론된 브랜드가 많다. 이는 까다로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특징이 뚜렷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전시된 가구들을 보면 직관적으로 브랜드가 매칭된다. 대표적인 예로 <테라조 테이블>을 들 수 있다. 한아조의 테라조 비누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가구(작품)는 한아조 비누를 모래에 파묻힌 형태로 테이블 상판을 디자인했다. 모래 사이로 보이는 색색의 비누는 테라조를 떠올리게 한다. 한아조의 테라조 비누를 아는 사람이라면 상판만 봐도 한아조의 비누를 연결 지어 생각할 것이다.

머지의 빈백 소파를 철제 프레임에 올려놓은 '손잡이 쇼파' Ⓒ이윤호

한편, 제품의 형태는 가구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 머지의 빈백 소파를 철제 프레임에 올려놓은 <손잡이 소파>는 소파치고는 특이하게 손잡이가 달렸다는 특징을 살리기 위해 손잡이가 툭 튀어나올 수 있도록 철제 프레임에 구멍을 뚫었다. 박길종 작가는 제품을 기존과 다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루미르의 천장형 조명은 철제 스탠드에 꽂혀 플로어 스탠드 조명인 <다이아 촛대>가 되었다. 라이프앤콜렉트의 탁상형 시계는 스탠드에 매달려 괘종시계로 변했다. 이처럼 작가는 사물을 살짝 비틀어, 또 다른 쓰임과 가치를 부여한다.

런드리유의 모공 브러시를 모티브로 제작한 거대한 시곗바늘 테이블. Ⓒ이윤호

브랜드 제품은 가구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VT 코스메틱의 대표 제품인 리들샷은 특이한 선반의 기둥이 되고, 런드리유의 모공 브러시는 거대한 시계의 바늘이 된다. 작가는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미한다. “모공 브러시를 사용해 시간을 돌려 젊어지는 느낌!”이라고 적힌 작가의 메모는 왜 모공 브러시가 시곗바늘이 되어야 했는지를 알려준다.

패션 브랜드 프루아의 대표 제품인 아일랜드 가방의 모양에서 모티브를 얻은 치즈 모양 선반. Ⓒ이윤호

이 밖에 프루아 가방에 달린 액세서리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치즈 모양의 선반 <조약돌과 치즈>, 흔들거리는 장난감처럼 생긴 젤리멜로의 <지그재그 스쿠터>는 길종상가의 위트를 엿볼 수 있는 가구(작품)이다.

작가의 초기 드로잉과 전시에 사용된 브랜드 제품을 인쇄한 RGB 색상의 스티커가 전시된 방. Ⓒ이윤호

작가의 상상으로 가득한 집을 돌아보고 나면 작가의 초기 드로잉과 전시에 사용된 브랜드 제품을 인쇄한 RGB 색상의 스티커가 전시된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유롭게 가져가서 다이어리, 스마트폰 케이스, 노트북 케이스 등 원하는 곳에 붙이면 된다. 종류도 다양해서 제일 마음에 든 스티커를 골라도 되고, 전시를 보면서 자기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던 가구와 제품의 스티커를 골라도 좋다. 이상하고 신기한 집, 전시 <사물의 가정>은 상상에 따라 매일 보던 사물의 역할과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한다. 뻔한 기성품이라도 우리가 어떤 이야기와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좁은 빈백 의자가 누군가에겐 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공간이 되고, 작은 조명이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따뜻한 불빛이 되며, 가방과 옷 한 벌이 나를 대변하는 명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훈을 전달하는 전시 <사물의 가정>은 이상하지만 아름답고, 재미있지만 생각이 깊어지는 동화다.

허영은 객원 필자

진행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어반플레이

프로젝트
<사물의 가정>
장소
B the B 커뮤니케이션 라운지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 281 DDP 마켓
일자
2023.10.13 - 2023.12.12
시간
12:00 - 20:00
(월요일 휴무,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운영 및 화요일 대체 휴무)
주최
서울특별시
주관
서울경제진흥원
참여작가
박길종(길종상가)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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