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9

추억을 쌓아 이룬 집

이할매와 안토니의 신길동 빌라
서울의 집을 보여주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꿈처럼’ 아름다운 집보다는 생활감이 잔뜩 묻은 집, 사는 사람이 선명하게 보이는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과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실과 취향이 어떻게 어긋나고 맞물리는지, 한정된 자원 안에서 무얼 취하고 단념하는지, 왜 이 브랜드가 여기 놓였는지 듣습니다. 누군가의 방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속의 삶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뮤지션 RM은 그의 곡 ‘seoul’에서 노래합니다. “빌딩과 차들만 가득해도 이젠 여기가 나의 집”이라고,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말이면 I love you Seoul”이라고요. 어쨌든 서울을 집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홈 서울 홈(home seoul home) 취재를 위해 네 번째로 찾은 곳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이할매*와 안토니가 사는 쓰리룸이다. 둘은 2021년 결혼했다. 이할매와 안토니가 이 집에 산 지는 2년쯤. 요리사로 일하는 안토니가 쉬는 날, 이들의 집을 찾았다. 두 사람은 전기방석을 깔아 둔 안쪽 벤치를 내주었다. 몸에 훈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city_halmum @antoaa_

* 본명은 아니다. 이렇게 불리는 게 편안하다고 한다.
현관 신발장 뒤편의 벽. 추억이 잔뜩! ⓒ heyPOP

두 사람이 사는 집은 처음이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이할매 1985년생 이할매다. 오랫동안 요리와 술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다가, 지금은 외국계 회사의 서울지사 비즈니스 솔루션팀에서 일한다. 가게를 운영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서 계획을 단단하게 세우는 중이다.

안토니 1998년생 안토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으로 온 후 어학당에 다니면서 한국말을 배웠다. 그 후엔 돈을 벌려고 프랑스 식당에서 일했고, 지금은 내추럴 와인을 파는 바 ‘피이알(PER)’에서 요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이할매 틴더에서 만났다. 2019년에 안토니가 혼자 한국 여행을 왔었다. 그때 안토니가 신촌에 머물렀는데, 당시 내가 서대문구 홍제동에 살고 있었거든. 틴더는 위치 기반으로 사용자를 보여주기 때문에 서로를 보게 됐고 만났다.

안토니 원래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한국에 공부하러 오기 전에 여행부터 해보려고 왔었다.

이할매 안토니가 프랑스로 돌아간 후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왔다. 자연스럽게 연애했다. 안토니는 돌아온 후 한국어 공부도 하고 한국어능력시험 6급도 땄다. 안토니가 서울이 아니라 부산이나 제주를 여행했다면 우린 못 만났겠지. 우연히 가까이 있어서 만났다고 생각하면 신기하다.

안토니(좌)와 이할매(우) 둘은 집에서 자주 칵테일을 만들어 마신다. 에디터도 기꺼이 잔을 받았다. ⓒ heyPOP

프랑스로 돌아갔다가 금세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기억이 좋았나 보다.

안토니 그렇기도 했고 한국말도 배우고 싶었다. (웃음)

이할매 2주 만나고 헤어질 때 너 얼굴 빨개지면서 약간 섭섭한 티 났어. 우리 공연도 많이 보고 재밌었어. 뭔가 네가 섭섭해 보여서 섭섭한가 보구나, 혼자 생각했어. (웃음)

안토니 그래, 그래서 다시 왔어.

이할매 그렇게 아름답게 말하거라. (웃음)

안토니가 한국에 처음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뭐였나.

안토니 프랑스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근데 그 전공에 관심이 없어서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다른 언어가 궁금했는데, 그냥 한국어를 택했다. 일본어보다는 배우기가 쉬워 보였다. 옛날에 일본에도 가 봤다. 일본도 좋았지만 한국에 오니 마음이 좀 더 편했다.

현관으로 들어오면 오른편에 거실이 있다. 꽃무늬 커튼이 쳐진 쪽은 침실. 거실 벽에 붙어 있는 나무 벤치엔 전기방석을 깔았다. 겨울엔 이불을 덮고 저 위에서 시간을 자주 보낸다고. 두 사람은 이 벤치를 ‘코타츠’라고 부른다. ⓒ heyPOP

이곳이 두 사람의 첫 집인가?

이할매 함께 산 첫 번째 집은 홍제동 집이다.

이전엔 어떤 집을 거쳐 왔나?

안토니 엄마와 파리의 일반 아파트에서 살았다. 프랑스의 아파트와 한국의 아파트는 의미가 좀 다르다. 오래되고 낮은 빌딩이 대부분이다. 한국에 공부하러 온 초반엔 고시원에서 지냈다. 프랑스에는 고시원 같은 주거 형태가 없기 때문에 신기한 경험이었다. 부엌은 공유했지만 화장실은 작게 딸려 있어서 괜찮았다. 돈이 많지 않아도 어딘가에 살 수는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파리의 집은 모두 너무 비싸다.

현관에서 왼편에 손님 방과 옷방이 있다. 바로 보이는 쪽엔 주방, 주방 옆에 다용도실이 있다. ⓒ heyPOP

그러다가 이할매의 홍제동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구나.

안토니 홍제동 집은 정말 좋았다. 넓었으니까.

이할매 그 집은 내가 일 년 정도 뒤져서 찾은 집이다. 일단 산에 있다. 그 동네가 개발이 된다고 해서 월세 60 정도에 들어갔다. 30평이 넘는 아파트였다. 단지는 아니고 산 근처에 나 홀로 서 있는 아파트.

일 년 동안 정말 많은 집을 보았을 거다. 그 집의 어떤 점에 끌렸나.

이할매 서울인데 ‘쁘띠 산 조망권’ 집이었다. 산이 보이는데 개발 예정지라서 가격이 저렴했다. 홍제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 물론 거의 기어서 올라가야 하긴 했지만. 경사가 심해서 차 사고가 잦은 길이었다. 우리는 둘 다 면허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걸어 다녔다. 아파트 뒤편이 홍제천이랑 연결되어서 또 좋았다. 아카시아 피면 아카시아 향기가 집으로 흘러 들어오고. 지금 집이랑 정반대다.

홍제동 집 침실에서 보이던 풍경. 사진 제공: 이할매
홍제동 집 침실에서 보이던 풍경. 사진 제공: 이할매

이할매가 거쳐 온 집도 궁금하다.

이할매 이십 대 초반부터 오랫동안 경리단에서 살았다. 경리단에서 세 번 정도 이사했는데, 정말 별별 집을 다 봤다. 독립한 후 첫 집이 기억난다. 그 집은 ‘눈물의 집’이라고 불렀다. 비만 오면 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집이었거든. 문을 닫든 열든 바깥 공기가 다 스며들어서 너무 추웠다.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집 온도가 10도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근데 그 집에서조차 월세를 올리겠다고 해서 쫓기다시피 나왔다.

독립하면서 서울에 온 건가?

이할매 아, 이게 중요한 핵심이었는데 잊고 있었다. 나는 서울 토박이다. 종로에서 태어났다. 가족과 살다가 졸업하고 일하게 되면서 독립했다. 서울을 떠나서 사는 느낌을 잘 모른다. 평생 이 도시에 살아왔으니 계속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좀 있다. 안토니도 파리 토박이다.

이탈리아의 진(gin)과 라임으로 김렛을 만들어 주었다. ⓒ heyPOP
ⓒ heyPOP

홍제동과 멀리 떨어진 신길동에 집을 구했다. 전혀 다른 동네로 이사한 이유가 있나?

이할매 부모님이 이 근처에 사신다. 엄마랑 가깝게 살면 엄마를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동네로 왔다. 독립하고 바쁘게 사느라 부모님을 거의 못 만났다. 신경도 못 써드렸고. 홍제동 집은 정말로 가파른 산에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찾아오실 때마다 힘들어하셨다. 늘 무언가 잔뜩 준비한 걸 힘들게 지고 오시는 모습을 보면 너무 미안했다. 산에 살면 부모님을 만나기 어렵겠다는 걸 알았다. 이 집에선 걸어서 부모님 댁에 갈 수 있다. 자주 만나서 시간을 보낸다. 엄마 음식도 많이 먹는다. (웃음)

아라홈그라운드의 곶감말이 ⓒ hey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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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처음 봤을 땐 어떤 느낌이었나.

이할매 도로랑 맞닿아 있어서 정말 시끄럽긴 한데, 탁 트인 창으로 도로를 바라보니 싫지 않았다. 이상하게 끌렸다.

안토니 도로랑 가까워서 좀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근처 공사도 계속하고 있었거든. 온라인 수업을 듣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공사 소리가 너무 커서 수업도 잘 못 들었다.

다용도실 창으로도 탁 트인 풍경이 보인다고. 앞이 도로여서 시야가 막히지 않는다. 나뭇가지를 빨래 거는 봉으로 쓴다. ⓒ heyPOP

이할매 정말 시끄럽긴 해서 하루는 자다 깨서 울었다. 슈퍼카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깨니 스트레스도 받고 서러웠다. 홍제동에 살 때는 산에서 나는 새 소리 듣다가… 물론 거기서도 매미 소리에 괴로웠지만. 그런데 이건 살아 보니까 알게 된 거고, 이사할 당시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홍제동 집 주인 아들이 그 집에 들어오게 되어서 급하게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원래 일 년 동안 발품을 팔아서 맘에 꼭 드는 집을 찾아야 하는 사람인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예산과 집 컨디션이 맞아떨어지는 집이 이곳이었다. 이 동네도 개발 예정지라서 가격이 높지 않았다.

안토니 홍제동 집 매미 소리도 장난 아니었다. 이곳의 차 소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할매 둘 중 뭐가 나아? 난 차라리 매미 소리.

안토니 선택하고 싶지 않아. (웃음)

옷방에서 보이는 시야. 주방이다. ⓒ heyPOP
다용도실 쪽에서 본 시야. 현관이 보인다. 그 옆 문이 열린 공간이 화장실. ⓒ heyPOP

파리는 조용한가?

안토니 내가 살던 동네는 차가 다닐 수 없는 지역이었다. 그냥 저녁에 술 취한 사람들의 소리 정도? 쓰레기통이랑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 (웃음) 술 취해서 쓰레기통이랑 싸우고 소리 지르고. 근데 서울처럼 시끄럽지는 않았다.

이 집은 어떻게 꾸미고 싶었나.

이할매 귀엽게! 홍제동 집과 비교해서 크기 자체가 너무 좁아져 버리니까 우선 많은 짐을 처분해야 했다. 이렇게 된 김에 귀엽고 간단하게 살자 싶었다. 스트레스는 안 받았다. 이사도 트럭 한 대로 했다. 가게를 운영했다 보니 업소용 테이블, 조명, 냉장고처럼 대형 제품이 많았다. 다 팔았다.

그럼 지금 집에 있는 물건은 굳이 남긴 것들이겠다. 그중 더 소중한 물건이 있나?

안토니 오븐. 오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다. 원래 홍제동 집에 있던 오븐은 너무 커서 새로 사긴 했는데 잘 쓰지 않는다. (웃음)

오븐. 아래에는 감자와 또 나뭇가지가! ⓒ heyPOP

이할매 ‘잔 걸이’라고 해야 하나…? 잔을 거는 걸이가 있는 코너가 소중하다. 잔 걸이는 원래 두 쪽이 한 쌍이었다. 가게에서 쓰던 물건이고 내가 직접 만든 거다. 한쪽은 팔았지만 다 팔고 싶진 않았다. 나는 사람에게 휴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술도 한잔하고 차도 마시면서 휴식하는 시간이 내겐 아주 중요하다. 거실에 앉아서 저 코너를 바라보며 쉰다.

이할매가 직접 만든 잔 걸이. 아래엔 술잔이, 위에는 찻잔이. ⓒ heyPOP
잔과 술 코너. 성탄절은 지났지만, 집이 어두운 편이라 트리의 전구를 조명처럼 사용한다고. ⓒ heyPOP

안토니 가방도 있잖아.

이할매메르카도mercado’라고 내가 되게 집착하는 가방 브랜드가 있다. (웃음) 가방의 무덤을 보여주겠다. (이할매는 곧 한 무더기의 가방을 가지고 왔다.)

메르카도 가방들. 특히 오른쪽 사진 속 복실복실한 가방을 메고 나가면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다니는 기분’이 든다고. ⓒ heyPOP

메르카도의 가방을 이렇게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할매 보는 순간 그냥 나 같았다. 색감도 정말 좋았다. 잘 팔리는 색깔만 안전하게 쓰는 게 아니라 디자이너 본인이 원하는 색을 다 쓰는 것 같아서 그 점도 너무 좋다. 유행을 따르지 않아서 더 좋다. 세팅 사진을 봤는데, 이 가방에 와인을 꽂은 사진이었다. 아, 이것마저 내 취향이다! 했다. (웃음) 소량 생산이라 한 시간 안에 품절되기 때문에 잘 보고 있다가 다 구매했다. 근데 이제 좀 그만 사야 할 것 같다.

와인 한 병이 쏙 들어가는 가방(좌) 벼르다가 구매한 백팩(우) ⓒ heyPOP

방이 세 개다. 각각의 방을 어떻게 쓰고 있나?

안토니 방 하나는 운동 방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

이할매 나도 잠자는 방은 하나 두고 서재나 운동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재를 만들자니 이사하면서 책을 다 팔아 버려서 소용이 없더라. 지금은 침실, 옷방, 손님 방이 되었다. 아버지와 우리 집에서 막걸리 마신 날엔 아버지께서 손님 방에서 주무시고 간다.

손님 방. 손님 방에도 화장실이 딸려 있다. ⓒ heyPOP
옷방. 이 방 창의 시야도 탁 트여 있다. 답답하지는 않지만 창이 큰 만큼 춥고 차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린다는 단점이 있다. ⓒ heyPOP

방문을 열어 두고 그 자리에 커튼을 달았네.

이할매 문을 닫으면 답답하잖아. 통풍이 잘 되는 집이기도 하고. 커튼을 달면 공간 분리도 되고 트여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 heyPOP

여기저기 사진이나 편지도 많이 붙어 있다. 추억을 꺼내 둔 느낌이다.

이할매 그러려고 노력했다. 이런 게 없으면 뭐랄까, 집이 삭막하게 느껴진다. 추억이 담긴 물건을 붙여 두고 자주 보면서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집에 추억이 없는 물건은 거의 없다. 현관에서 주방이 바로 보이지 않게 해주는 커튼은 좋아하는 빈티지 가게 사장님이 주신 거다. 그 위에 붙인 장식은 앞서 말한 가방 브랜드 패키지에 들어 있는 상표 같은 건데, 버릴 수 없어서 하나씩 다 붙여 놨다. (웃음)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인테리어는 ‘집 꾸미기’라기보다는 ‘황망함을 감추기’에 가까운 듯하다. (웃음)

선물받은 천을 달아 주방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 위에 붙은 색색의 종이는 메르카도의 상품 태그(tag)다. ⓒ heyPOP

종종 불안한가?

이할매 나이를 생각하고 살진 않지만 가끔 두려워지는 순간이 온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내 타이밍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이 나이에 이만큼 했는데, 나도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데, 싶은 거지.

안토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아도 돼.

이할매 안토니는 정말 흔들림이 없고 단단하다.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준다.

침실 ⓒ heyPOP
침대 옆 선반 꼭대기에서 띠로리소프트의 귀여운 인형 발견! ⓒ heyPOP

세월이 느껴지는 물건이 많다. 내가 앉아 있는 이 나무 벤치나, 술 장 옆에 놓인 램프 같은.

이할매 유명한 브랜드의 의자랑 테이블을 보면 예쁘긴 하지만 내가 사기엔 너무 비싸다. 또 나는 오래된 물건이 좋다. 골동품을 파는 상점에 가서 누군가 1930년대에 썼던 물건을 사고 그런다. 누군가 아꼈을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 물건을 아끼게 되어가는 느낌도 좋다. 근데 워낙 오래된 물건을 오래 쓰다 보니, 메르카도 가방 말고는 새 물건을 거의 사지 않는다. 토스터, 원두 그라인더, 에스프레소 머신, 전자레인지까지 다 10년 넘게 쓰고 있는 것 같네.

골동품 상점에서 산 종. 오래된 종을 모으는 게 취미였는데, ‘옛 시대의 종이라면 하인을 부를 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후론 욕심이 줄었다고. ⓒ heyPOP
10년 넘게 사용 중인 토스터와 그라인더, 에스프레소 머신. 그 밑의 테이블도 아주 오래 쓰고 있다. ⓒ heyPOP

안토니는 어떤 물건을 좋아하나?

안토니 나는 물건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침대, 컴퓨터 정도만 있으면 된다. 파리에서도 내 물건은 많지 않았다. 물건이 많으면 귀찮고 불편하다.

이할매 안토니의 짐은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갈 정도다. 옷도 계절별로 몇 벌을 두고 빨아서 돌려 입는다.

수납장으로도 쓸 수 있는 침대다. 예전에 침대로 썼지만 지금은 수납장으로만 쓴다. 뚜껑을 여니 안토니의 한국어 교재 등 짐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위에 놓인 체스는 안토니의 것. 체스 등 게임을 좋아한다고. ⓒ heyPOP

파리 사람은 다 패션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나 보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나를 망쳤다. (웃음) 파리 토박이와 서울 토박이가 만났다면 둘이 함께 살 도시를 고를 때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서울이었나.

안토니 서울이 그냥 좋다. 아직까지는 살기도 편하다. 편의시설도 많고 밤늦게 다닐 때 비교적 안전한 느낌이다.

이할매 안토니가 서울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도 서울을 떠나 사는 게 아직까진 상상이 잘 안된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안토니는 서울에서 바로 일을 구했지만, 내가 파리에서 일을 구하려면 훨씬 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할 거다.

사진 좌측 행거에 걸린 것이 안토니 옷의 전부다. ⓒ heyPOP

안토니와 함께하면서 이할매의 서울도 좀 달라졌나?

이할매 안토니가 서울을 좋아하니까 나도 이 도시가 좀 더 좋아졌다. 소소한 부분을 신기해하는 안토니의 모습을 보면 나도 그 부분을 다시 보게 된다고 할까? 내게는 너무 익숙해서 잘 느끼지 못했던 것들 말이다. 우리가 만난 도시라는 의미가 생기니 서울이 더 각별해졌다. 물론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이기에 느끼지 못한 불합리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를테면 오늘 은행에서 안토니가 겪은 일처럼.

안토니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카드를 만들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 그 이유는 그저 ‘외국인이라서’였다. 약관에도 그런 조항은 없었는데 말이다. 단지 외국인이라서 안 된다는 말을 쉽게 하니까, 그걸 들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할매 외국인은 후불교통카드 기능을 넣을 수 있는 카드 종류가 정해져 있다더라. 카드 약관엔 쓰여 있지 않다. 그 종류에 해당하는 카드를 평소 잘 쓰지 않는다면, 용도별로 카드를 여러 개 써야 하는 셈이다. ‘외국인이라서 안 돼’라는 말은 차별적이라고 느꼈다.

ⓒ heyPOP

두 사람에게 이 집은 어떤 의미인가?

이할매 살뜰하게 밥벌이해서 우리의 다음 챕터로 넘어갈 준비를 하는 곳?

안토니 나 역시 트랜지션(transition)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좋긴 하지만 죽을 때까지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이할매 너무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웃음) 지금 이 집엔 전세로 살고 있는데, 신혼부부 지원을 받아서 주택공사가 80%, 우리가 나머지를 부담한다. 월세일 때보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월세는 늘 마음속 무거운 짐이었다. 이 시기에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 할 것 같다.

ⓒ heyPOP

다음 챕터를 상상해 본다면, 그땐 어떤 집에 살기를 바라나?

안토니 난 그저 저번 홍제동 집 같은 집이면 좋겠다. 베란다가 크고 산도 있고. 베란다가 두 개였는데, 두 쪽의 창을 모두 열면 신선한 산 공기가 집안을 막 흘렀다. 봄과 여름엔 정말 최고였다.

이할매 나도 비슷하다. 지금 사는 여의도처럼 도시적인 곳보다는 자연과 좀 가까운? 돈에 제약이 없다면 계단이 있는 이층 주택에 살고 싶다. 넓은 건식 화장실에 창문도 큼지막하게 있고 욕조도 있고 식물도 무성한 그런 집. 화장실이 그렇게 넓어지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는 거겠지? (웃음)

안토니 주방도 좀 컸으면 좋겠어. 같이 요리할 자리가 없어.

이할매 그러네. 한 번도 주방이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한 사람이 요리를 다 하거나, 한 명이 프렙을 다 해 놓고 나오면 다른 사람이 요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 공간 확보가 안 되니까.

주방에 놓인 여러 절구들. 이할매의 어머니는 ‘믹서로 가는 것보다 절구로 빻아야 훨씬 맛있다’고 하신다. 이할매도 그 말을 믿는다. ⓒ heyPOP
인덕션 밑의 받침대는 이할매의 아버지가 나무로 뚝딱 만들어 주신 것. 이할매는 가스레인지보다 인덕션을 좋아한다. ⓒ heyPOP

주방이 더 넓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은 이 시리즈로 만난 모든 인터뷰이가 말했다. 주방이 좁다는 건 많은 가능성을 졸아들게 하는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이할매 우리 언니가 요즘 경매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수업에서 들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건물을 지을 때, 구상하고 시공하고 설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여서 주방의 쓰임을 잘 몰랐다는 거다. 최대한 넓어 보이게, 보기에만 좋게 만들려다 보니 주방이 실제로 어떻게 쓰일지는 신경을 덜 썼다는 거다. 실사용자의 설계가 아니니까 수전도 엉뚱한 데 달려 있고 동선도 어색하고. 이 집에서도 안토니와 종종 그런 얘길 했다. 이 집 역시 주방을 안 써본 사람이 설계했을 거라고.

인터뷰는 칵테일로 시작해 막걸리로 끝났다. 주종에 어울리는 잔으로 마셔야 한다는 두 사람. 그래서 가져온 막걸리 잔이 귀엽다. ⓒ heyPOP

주민으로서 느끼는 이 동네의 좋은 점은?

이할매 샛강생태공원이 가깝다. 걷기도 좋고 자연도 아름답다. 한강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면 갑자기 울컥하기도 한다. (웃음) 평생 서울에 살아와서인지 빌딩 불빛조차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안토니도 한강을 좋아해서 둘이 곧잘 들렀다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근데 안토니는 센강보다는 안 예쁘다고 했다. (웃음) 또 우리가 사는 쪽은 개발 예정지라서 잘 찾으면 싼 집이 있다. 돈을 모으려는 젊은이들이 몇 년 살기에 나쁘지 않을 거다.

안토니 윤중로 벚꽃이 정말 예쁘다. 한강공원에서 운동도 할 수 있고. 또 근처에 진짜 빵을 파는 빵집이 있다. ‘폴앤폴리나’라는 곳이다. 빵이 비싸서 자주는 못 가지만 진짜 빵을 먹고 싶을 땐 그 빵집이 있다는 게 좋다.

ⓒ heyPOP

지역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평수 16평 빌라 쓰리룸

거주 형태 전세 2억 3천만 원(LH 신혼부부 전세임대 이용, 주택공사 80% 부담. 임대료 2%(약 30만 원)를 매월 주택공사에 납부)

글·사진 김유영 기자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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