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서울 홈(home seoul home) 취재를 위해 일곱 번째로 찾은 곳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 1991년생 김승주가 사는 빌라다. 의정부와 서울을 오가며 살던 그가 은평구에 정착한 지는 4년째. 인터뷰 날은 그의 휴일이었다. 집을 찾았을 때 김승주는 노트북으로 한창 작업 중이었다. 그가 노트북을 닫았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universe_of_seungju
— 귀한 휴일에 초대해 줘서 고맙다. 자신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은평구에 사는 1991년생 김승주다. 영화 연출팀으로 일하고 있다.
— 영화 연출팀은 무슨 일을 하나?
어떤 파트냐에 따라 다르다. 미술 소품이나 CG나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인원도 있고, 배우 스케줄 관리를 담당하는 인원도 있다. 나의 경우 영화에 따라 여러 일을 했는데, 지금 참여 중인 영화에서는 VFX(Visual Effects, 시각효과)를 담당하고 있다. CG, 특수효과 등을 다룬다.
— 요즘 하루 일과는.
지금은 촬영을 준비하는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 단계다. 7시에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저녁을 먹는 내가 있다. 저녁 먹고 10시에서 11시쯤 퇴근한다. 매번 이렇게 과하게 일하진 않는데, 이번 영화에서 내가 맡은 파트가 중요한 데다 처음 참여하는 영역이라 알아보고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
— 언제 서울에 왔나.
서울 동대문구에서 태어나서 8살쯤까지 살다가 의정부로 이사했다. 의정부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내 고향은 의정부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서울에 있는 곳으로 왔지만 일 년 정도는 통학을 했다. 군대 제대 후 자취를 시작했다.
— 자취를 시작한 집 이야기를 들려 달라.
논현동의 고시텔이었다. 전역하자마자 한 상업 영화의 막내로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사무실이 강남구 신사동이었다. 의정부에서 신사동까지 출퇴근을 하려니 정말 힘들었다. 출퇴근할 때마다 지치고 짜증이 났다. 한 달 정도를 그렇게 보내다가 회사 근처 고시텔에 방을 얻었다. 고시텔에 들어갈 때는 보증금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 그렇게 얻은 방은 어땠나.
고시텔 중에서는 컨디션이 괜찮은 편이었다. 아주 좁았지만 창문도 있고 화장실도 있었다. 물론 창문을 열면 바로 옆 건물 벽이긴 했다. 처음엔 서울에 잘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고 뿌듯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방이 너무 좁다는 게 답답해졌다. 수납할 공간이 없어서 세제를 책상 위에 올려놨었다. 언젠가 실수로 세제를 쳤는데 그게 침대로 다 쏟아졌다.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세제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텐데 너무 좁으니까 침대로 쏟아진 거다. 그때 갑자기 정말 서러웠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지.
— 그래서 다음 집으로 옮기게 된 건가?
타이밍이 좋았다. 자취를 하던 동생이 입대하면서 그 방이 비었다. 심지어 동생과 나는 같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학교 근처의 방이기도 했다.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그 집으로 들어갔다.
— 동생이 살던 집은 어떤 집이었나.
학교 근처 반지하 원룸이었다. 우리 학교 근처에는 술집이 밀집한 거리가 있는데, 술집이 바글바글한 골목 사이사이에 집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내 방이었다. 근데 그 거리의 골목마다 특색이 있거든? 어느 골목은 취한 사람들이 싸우는 골목으로 유명하고, 어느 골목은 노상 방뇨하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하다. 우리 집은 싸움 골목에 있었다. (웃음)
— 싸우는 소리를 엄청나게 들었겠네?
무지하게 들었지. 술 먹던 사람들이 희한하게 우리 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와서 싸우는 거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잤다. 매일 경찰서에 신고하는 게 일상이었다.
— 동생이 살던 곳이라면, 동생이 꾸며 뒀던 모습 그대로 살았나?
아니, 도배부터 다시 했다. 알고 보니 동생은 그 집을 친구들과 아지트처럼 썼던 것 같더라고. 친구들이 매일 와서 술 마시고 놀았나 보더라. 친구들이 벽지에다가 방명록을 빼곡하게 써놨더라. 누구누구 왔다 감, 놀다 감, 따위의 낙서들로 한쪽 벽면이 새카맸다. 도배를 새로 하고 식탁이랑 의자를 들였다. 매트리스는 어디서 얻어 왔다. 그러고 나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 식탁과 의자부터 들인 이유가 궁금하다.
난 집 안에는 늘 앉아 있을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식 생활을 해야 그나마 좀 덜 게을러진다고 해야 할까? 의자가 있어도 게으른 성격이 고쳐지지 않는데, 의자마저 없다면 얼마나 더 게을러지겠나.
— 그 후 이 집으로 이사한 건가?
그 집에서 이 년 정도 살다가 동생이 전역하면서 동생과 함께 투룸으로 들어갔다. 이전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직접 짐을 옮긴 기억이 난다. 새로 옮긴 투룸도 반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이전 집보다는 좀 덜 내려가지만 반지하이긴 했다. 이삿날 엄마가 “그래도 몇 계단 올라왔으니 다음번엔 1층 이상으로 가라”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 투룸의 구조는 어땠나. 동생과 당신이 공유하는 공간이 있었나?
방 두 개에 주방과 화장실이 있고 거실은 없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은 주방과 화장실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불편했다. 동생이랑 별로 안 친하거든. 친하지 않으니까 불만이 생겨도 시원하게 말하지 않고 지냈다. 친하지 않은 동생과 산다는 건 타인보다 어려운 사람과 동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어떤 점이 특히 불편했는지 말해줄 수 있나.
동생과 나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당시 동생은 완벽한 외향인이었고 나는 내향적이었다. 성격이 다른 데다 설거지 주기처럼 사소한 생활 습관도 다 달랐다. 근데 아무리 달라도 친했다면 얘기하면서 맞춰 나갈 수 있었겠지. (웃음) 일 년 같이 살다가 그냥 내가 본가로 돌아갔다. 마지막 학기는 의정부에서 통학하면서 다녔다. 그때쯤 자취 생활에 좀 지치기도 했던 것 같다.
— 그리고 다시 나와서 이 집에 살게 됐구나.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첫 영화를 시작하면서 나왔다. 다시 나오게 된 것도 통근이 너무 힘들어서였다. (웃음) 참여하게 된 영화 사무실이 마곡나루역에 있었는데, 의정부에서 마곡나루까지 편도로 두 시간이 걸리더라. 하루 네 시간을 출퇴근에 쓰려니 정말 괴로웠다.
—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하겠다고 그때 마음을 먹었다면, 그전까지는 내심 진로에 대해 고민했던 건가?
영화 일을 오래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다른 일에 도전해 보려고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우기도 했다.
—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는데도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구나. 그 이유를 들려줄 수 있나.
일과가 들쑥날쑥해진다는 게 싫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동안에만 수입이 생긴다는 사실도 겁났다. 촬영에 들어가면 낯선 지역도 가고 해외도 가고 급작스레 일정이 잡히거나 변경되는 경우도 잦은데, 오래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도 다녀 보고 다른 공부도 잠깐 해보다가 문득 내가 뭔가를 회피하고 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달리 먹었다.
—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회피하고 있었다는 생각일까?
진짜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는… 익숙한 일인 데다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인데, 그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또 예전에는 영화 하면 돈 못 번다, 굶어 죽는다, 이런 얘기가 많았잖아. 그런데 요즘은 꽤 달라졌다. 급여 수준도 올라가고 노동 시간도 정착이 되어가고 있거든.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가 새로운 작품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이 일을 좀 더 해 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다.
— 그 후 은평구 대조동에 집을 구한 이유는.
나는 한 장소에 고정적으로 출퇴근하지 않는다. 프로젝트마다 다른 영화사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영화사가 많은 지역이 상암이나 홍대, 강남이다. 은평구라면 모두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겠더라. 3호선 타면 신사역까지 30분밖에 안 걸리고, 상암이나 홍대도 가깝거든. 은평구 중에서도 동네를 좁혀야 했는데, 3호선과 6호선이 모두 지나는 곳으로 찾다 보니 연신내역 아니면 불광역 근처였다. 연신내보단 불광이 더 편안하다고 느꼈다.
— 불광의 어떤 점이 편안했나?
연신내는 젊은 사람이 많고 번화가도 커서 그런지 학교 앞 술집 골목에 살던 때가 자꾸 떠오르더라고. 불광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어르신들이 많이 사시고 꽤 큰 시장도 있다.
— 불광의 여러 집 중에서도 왜 이 집이었을까.
제일 먼저 고려한 게 전망이었다. 반지하에 이골이 나서인지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이 집에 들어섰더니 해가 얼마나 잘 들던지, 이 집이구나 싶었다.
—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는 어떤 상태였는지 듣고 싶다.
신축 빌라였고 내가 첫 입주자였기에 무척 깨끗했다. 그 말인즉슨 텅 빈 집이었다. 가구와 가전을 하나하나 다 들여야 했다. 우선 리클라이너 브랜드 ‘레이지보이(La-Z-Boy)’의 1인용 소파부터 샀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 조이랑 챈들러가 누워서 텔레비전을 볼 때 쓰는 소파 브랜드인데, 언제나 이 브랜드의 소파를 갖고 싶었다. 사회 초년생이 겁이 없었지. 이제 돈 버니까 이 정도는 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12개월 할부로 레이지보이부터 냉장고, 세탁기까지 비싼 물건들을 샀다. 그리고 지옥이 펼쳐졌다. (웃음)
—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하는 삶이 시작됐구나. (웃음)
숨만 쉬어도 매달 60만 원은 기본으로 나갔다. 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거의 텀을 두지 않고 일했다.
— 그렇게 산 레이지보이에 만족하나?
정말 유용하게 쓰고 있다. 더운 날 앉아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주말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잠들기도 하고. 리클라이너라 편안한 각도로 조절할 수 있어서 저기서 자는 날도 있다.
— 고시텔, 원룸, 동생과 투룸에 살았으니 처음으로 ‘혼자 살지만 공간이 분리된 집’에 살게 된 셈이다. 이 집의 공간을 어떻게 구획하려 했나.
매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짊어지고 다닌 짐이 책이다. 내가 가진 짐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책이었기에 거실에 둘 수밖에 없었다. 거실은 책장과 레이지보이의 1인용 소파로 채웠다. 그리고 두 개의 방은 각각 침실, 옷방이자 세탁방이 됐다.
— 책을 좋아하나 보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아빠가 종로의 아주 큰 서점에 데려간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다. 서점에 무수히 쌓인 책을 보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를 맡는 일이 어린 마음에도 좋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책을 아끼고 서점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근데 이 집에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책이 많아진 후로는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책을 선물하고 있다.
— 다른 방에는 무엇을 두었나?
단출하다. 침실에는 침대만 있었는데 최근 텔레비전을 들였다. 옷방에는 행거와 옷, 세탁기를 뒀다.
— 이 집에서 특히 아끼는 물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 질문을 받을 것 같아서 미리 생각해 봤는데,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레이지보이 소파? 물건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는 듯하다. 그냥 돈 쓰는 걸 좋아하는 건가 싶다. (웃음)
— 돈 쓰는 거 좋지. (웃음) 어디에 쓰는데?
옷도 사고 신발도 사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술도 마시고. 나한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 알고 난 후로는 대단히 비싸거나 독특한 스타일의 옷을 사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자잘하게 살 게 왜 이리 많은지. (웃음) 다만 쇼핑할 때 크게 고민하진 않는다. 생필품의 경우 내가 항상 쓰는 것이 정해져 있거든. 이를테면 치약은 콜게이트, 샴푸는 라우쉬와 TS, 바디워시는 러쉬, 이런 식으로. 특정 브랜드에서 나오는 특정 제품만 쓴다. 내게 어울리는 옷 스타일을 점차 찾아왔듯이, 내게 맞는 샴푸나 치약도 찾게 된 거지. 그런 걸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편하다.
— 그런 물건들로 채워진 집은 누가 뭐래도 나의 집이지. 이 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음…. 우선 나는 이 집이 너무 좋다. 여러 지역으로 촬영 다닐 일이 많은데, 그럴 때는 모텔이나 여관 같은 숙소에서 장기 숙박을 한다. 촬영 일정에 따라 다르지만 한두 달 이상 집 밖에서 머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집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내 방, 내 침대가 너무너무 그립다. 내가 진짜 마음 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은 내 집이니까.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보는 게 제일 행복하다. 다들 비슷하지 않나?
— 냉장고에 영화 〈파워 오브 도그〉 포스터가 붙어 있네. 집 곳곳에서 영화에 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파워 오브 도그〉를 인상적으로 봤는데, 마침 함께 작업한 감독님이 포스터를 선물해 주셨다. 나는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영화 전공을 선택했거든.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된 게,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입학 초반엔 좀 혼란스러웠지만 친구들과 영화를 한두 편 만들다 보니까 만드는 일도 나름대로 재미있더라. 난 스스로 극히 내향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일을 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마다 모르던 이를 알게 되고, 함께 하나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일의 기쁨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마냥 편하거나 즐겁다까지는 아니어도 이제 불편하지는 않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좋은 관계를 또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게 좋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간다는 게 점점 재미있어진다.
— 일하면서 외국에도 자주 간다면, 그곳에서 종종 서울을 생각하나?
그럼, 여행 가서도 생각한다. 나는 한식을 3일 이상 못 먹으면 몸에 염증이 나는 기분이다. (웃음) 그만큼 한식을 좋아한다. 우선 음식 때문에 해외에서는 절대 못 살겠다고 생각한다. 또 서울처럼 다이내믹한 도시를 아직 못 봤다. 특히 나이트라이프는 서울만큼 지독한 곳이 없다. (웃음)
— 서울의 밤을 야무지게 즐기고 있구나. (웃음)
노는 걸 좋아한다. 친구들과 함께 술 마시고 춤추면서 놀면 즐겁다.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곳에서 놀면 재미있는데, 그 복판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런 곳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게 좋다.
— 의정부가 고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잖아. 그렇다면 스스로 ‘나의 도시’라고 부를 만한 곳은 서울일까?
내 마음의 고향은 서울이다. 누적된 경험 때문일까? 서울에 살면서 본 것들,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면 내가 이미 이 도시에 너무나 녹아 들어 있다고 느낀다.
— 서울에서 너무나 모든 일이 일어났구나. 그 모든 일이 일어났으므로 서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당신은 더 좋아하게 된 쪽이네.
서울의 어디를 가도 아, 여기는 친구들이랑 놀러 왔던 곳, 여기는 언제 뭐를 했던 곳이다, 하는 생각들이 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억이 서울에 있다.
— 동네를 자랑하며 끝낼까.
이 동네는 조용하다.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느낌이라 좋다. CGV도 있고 백화점도 있다. 신세계백화점이나 현대백화점이 아니라 NC백화점이라서 좀 아쉬운 것 같다가도, 다른 백화점이 아니라 NC백화점이라서 생기는 맛이 또 있다.
지역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
평수 9평대 빌라
시리즈 [home seoul home]
01. ‘보면 흐뭇한 것’이 놓인 서교동 원룸, 93년생 김성연의 집
02. 어디서 본 것이 많아도 나의 집, 91년생 신민정의 투룸
03. 곧 사라져버릴 나의 북아현동 집, 90년생 김고은의 투룸
04. 추억을 쌓아 이룬 집, 이할매와 안토니의 신길동 빌라
05. 펼쳐질 내일을 꿈꾸게 하는 집, 01년생 박시원의 도림동 원룸
06. 고요하고 편리한 나의 섬, 88년생 박상영의 성동구 집
▶ 07. 결국 돌아오고야 말 안식처, 91년생 김승주의 대조동 집
글·사진 김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