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3

[Space Developer] 5. 10년간 부산을 지켜온 F&B 브랜드가 바라본 부산 상권 특징은?

한승훈 훈혁키친 대표
공간 기획의 시대. 지역의 맥락과 문화를 살피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헤이팝이 '스페이스 디벨로퍼' 시리즈를 통해 창의적인 공간 기획자들을 소개합니다.
한승훈 훈혁키친 대표.

스페이스 디벨로퍼 시리즈로 만난 다섯 번째 인물은 한승훈 훈혁키친 대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한승훈 대표는  공동대표인 손민혁 그리고 함께하는 팀원들과 10년 동안 15개의 직영 매장을 차렸다. 돼지고기 전문점 ‘고하순(고기로 하나가 되는 순간)’, 한식 기반의 술집 ‘댕강’, 야키토리와 닭구이 전문점 ‘조장’ 등 부산 서면과 전포동을 중심으로 매장을 순차적으로 공개한 뒤, 현재는 광안리 해수욕장 부근의 민락동에 새롭게 발을 내디뎠다.

훈혁키친의 매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로드맵.

훈혁키친이 유명해진 이유는 단연코 맛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들의 젊은 날’이라는 슬로건 아래, 구성원들과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진정성을 소중히 여기며 오랜 시간 손님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쌓아온 덕분이다. 부산의 상권이 침체하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훈혁키친은 작년 3월, 민락동에 3층 규모의 건물을 새로이 공개했다.  왜 훈혁키친은 그들의 시작부터 흥행하기까지 자리했던 서면이 아닌 민락동을 택했을까? 70여 명의 식구들과 부산 F&B 트렌드를 이끌며 나아가는 훈혁키친에 그들이 매장을 운영하는 방식과 부산 지역 상권의 특색 등을 물었다.

Interview with 한승훈 훈혁키친 대표

후미진 골목, 작은 선술집부터

 

2015년 '훈훈한 혁이네'의 매장 내부.

훈혁키친*의 첫 매장은 부산진구 서면에 자리했던 ‘훈훈한 혁이네’죠. 9평 남짓의 공간이었지만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고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인 공동창업자 혁이(손민혁 공동 대표)가 운영하던 포장마차를 매장으로 확장한 것이 일본식 선술집 형태의 가게 ‘훈훈한 혁이네’예요. 훈혁키친의 메뉴 중 10년째 사랑받고 있는 타르타르 새우, 붕장어 타다끼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죠. ‘훈훈한 혁이네’는 서면 골목 중에서도 번화가가 아닌 후미진 골목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당시 서면에 야장 문화가 크게 유행했던 터라 감사하게도 늘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훈혁키친은 한승훈, 손민혁 공동 대표가 함께 창업한 F&B 브랜드다.
'훈혁키친 광안' 의 외관. 1층에는 미국식 레스토랑 '로위'가, 2층과 3층에는 돼지고기 전문점 '고하순'이 자리했다.

작년에는 3층 규모의 ‘훈혁키친 광안’이 완공되었죠. 훈혁키친의 공간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에요.

일본의 건축물을 좋아합니다. 영상업에 종사하며 다큐멘터리를 공부할 때 보았던 〈말하는 건축가〉, 〈이타미 준의 바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영향을 많이 준 것 같아요. 외식 잡지는 구독하지 않아도 건축 잡지는 정기적으로 구독해서 읽을 정도예요. 무엇보다 현재 하는 일을 좋은 흐름으로 오래 이어가려면 본인만의 해소처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일에도 도움이 된다면 일석이조고요.

 

‘훈혁키친 광안’은 기획하기 전부터 어떤 형태의 건물을 짓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이 머릿속에 명확하게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완벽하게 제 취향이 반영된 건물이네요. (웃음) 이번 달에만 큰 대나무 10그루와 담쟁이, 능소화 나무를 추가로 심었습니다. 세월의 흐름 속 건축물과 식물이 자연스레 어우러지길 기대하고 있어요.

'훈혁키친 광안' 1층에 자리한 '로위'의 내부 전경.

그동안 주로 활동했던 서면이 아닌 민락동을 선택한 점이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이곳의 상권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셨던 걸까요?

여전히 서면과 광안리는 부산에서 가장 뜨거운 상권이에요. 다만 서면은 전포동으로 상권이 많이 확장됐어요. 정확히 말하면 본래 전포역 밑으로 형성된 ‘전포카페거리’가 아닌 전포역 위쪽으로 새로운 상권이 생겼습니다. 젊고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만 권리금, 월세 등 비용적인 부분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던 대표님들이 근처에 위치한 다른 지역을 찾으면서 새 상권이 형성된 것 같아요.

'고하순' 광안점의 매장 내부.
'고하순' 광안점에는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쬐며 식사가 가능한 테라스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서면에서 전포동으로 상권이 옮겨간 것과 같이 광안리에서도 패턴은 유사하게 발생할 거라 생각했어요. 다수의 관광객이 유입되는 광안리와 가깝게 위치한 민락동으로 상권이 확장될 거라 믿었습니다. ‘훈혁키친 광안’이 위치한 곳은 횟집이 즐비한 민락수변공원과 분위기가 다른 곳입니다. 광안리 해변과 근접한 곳에 대형 프렌차이즈 매장이 많다면 이곳은 개인의 취향이 묻은 식당들이 많아요.

 

 

전포동에 비해 아직 덜 발달한 상권이잖아요. 유동 인구나 연령대가 어떻게 다른 것 같나요?

전포동은 연령대가 낮은 분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 같아요. 그에 반해 민락동은 연령대가 꽤  광범위합니다. 민락동에 위치한 ‘고하순’의 방문객 중에는 40대가 넘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거주 지역의 특성이 더 짙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물론 2030세대도 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요.

15개의 직영 매장, 70여 명의 직원과 함께 나아가는 법

 

산속을 거닐다 마주친 산장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서면 중심가에 차린 ‘산장 1988’은 훈혁키친을 주목받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곳입니다.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과 대비되는 허름한 산장의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산장 1988’의 탄생 비화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실제로 등산 중 우연히 어떤 산장을 마주친 적이 있어요.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을 발견했을 때의 벅차오름과 설렘. 그때의 감정을 재현해 내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서면의 북적이는 거리를 거닐다 들어선 좁은 골목에서 신비로움과 설렘을 느꼈으면 했어요.

8년 전 처음 '산장1988'을 시작할 때 심었던 담쟁이들이 무성히 자라나 산장의 팻말을 덮었다.
'산장1988'의 '산장 전골'.

요즘엔 컨셉츄얼한 매장을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위기 좋은 가게’는 너무 많기에 그 맛을 보존하는 것이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훈혁키친은 음식의 맛을 어떻게 유지하고 확장하나요?

 ‘산장 1988’의 대표 메뉴인 ‘산장 전골’에는 닭고기, 돼지고기, 대구 곤 등 익숙하지만 다양한 재료가 들어갑니다. 곱창 전골처럼 한 가지 재료를 사용하는 메뉴보다 좀 더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어요. ‘산장 전골’을 판매한 지는 햇수로 벌써 7년입니다.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메뉴죠. 그럼에도 ‘지금이 정말 최선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집니다. 최근에도 더 좋은 맛의 육수를 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어요. 테스트를 거칠수록 이전보다 훨씬 좋은 맛이 나는 것 같아요.

'조장'의 매장 내부
'조장'의 닭구이 메뉴. 닭다리 연골, 닭 굴, 닭 안창살, 닭 완자 등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부위들을 맛볼 수 있다.

야키토리와 닭구이 메뉴를 다루는 ‘조장’의 경우에는 보편적인 닭구이보다 더 깊이 있는 맛을 구현하기 위해 닭 요리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쉐프님을 일정 기간 영입했습니다. 가게가 자리를 잡고, 음식의 맛이 안정기를 찾을 때까지요.

 

 

메뉴를 개발할 때 특히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보다는 익숙함 속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 음식을 택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산장 1988’이나 ‘조장’의 메뉴처럼?

인스타그램에 #humansofhoonhyuk 를 검색하면 훈혁키친 구성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훈혁키친의 슬로건은 ‘우리들의 젊은 날’이에요. SNS에는 음식 사진 보다 구성원들의 모습이 더욱 많이 담겨있죠. 이것 또한 브랜딩의 일환일까요. 이들과의 신뢰를 두텁게 하는 것이 훈혁키친에 어떤 효과를 불러올 것 같나요?

저희는 약 10년간 #humansofhoonhyuk 이라는 해시태그로 식구들의 모습을 SNS에 아카이빙하고 있어요. 함께하는 구성원들의 모습이 부각될수록 그들 스스로도 강한 소속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비스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지 않음에도 직원들이 에너지가 넘치고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요.

훈혁키친 X 수수하지만 굉장해 컬래버레이션 팝업.

얼마 전 돈가츠로 유명한 ‘수수하지만 굉장해’와 F&B 팝업을 열었더라고요. 추후 팝업스토어를 다시 한번 운영할 수 있다면 어떤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해 보고 싶나요?

두 브랜드의 팬덤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팝업이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수수하지만 굉장해’와 F&B팝업을 열었습니다. 타 브랜드와 함께할 기회가 생긴다면 식기류를 다루는 브랜드와 협업해 보고 싶어요. 타지역의 특산물을 훈혁키친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지역과의 컬래버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훈혁키친이 바라보는 부산은?

 

그간 부산에서 요식업을 하며 느낀 부산 상권만의 특징을 들어보고 싶어요.

훈혁키친에는 다른 지역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직원들이 많은데요. “왜 부산에 왔어?”라고 물어보면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요.”라고 답하더라고요. 서울이 도전을 위해, 제주도가 여유와 휴양을 위해 찾는 곳이라면 부산은 둘의 중간 어디쯤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부산의 바다는 고요하기보다 화려한 바다에 속해요.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바다처럼요.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되면서 국내 여행지로 부산에 많은 관광객이 몰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 관광 도시의 성격이 강해진 것 같아요. 요즘엔 부산이 커피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더라고요.

 

 

지역마다 그 특징이 다를 수도 있을까요?

의외로 서면은 관광객보다 근처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자주 찾는 것 같아요. 해운대나 광안리는 관광을 목적으로 타지에서 많이 찾습니다. 동래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로컬 중심의 지역인 것 같아요. 작은 상권이지만 거주하시는 분들이 동네 상권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있어요. 동래에 위치한 ‘산장 1988’의 매출이 서면 본점보다 유지가 잘 되더라고요.

'조장'의 외부 전경.
'로위' 매장 내부 전경.

부산의 상권이 현재보다 더 살아나려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까요?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부산에는 본사 형태의 큰 기업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자리를 찾는 청년층이 다른 도시로 유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아요. 관광업이 아니더라도 도시가 성장할 수 있는 자생적인 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강점은 관광업입니다. 관광 도시로서 성장해야 한다면 깊이 있는 로컬 브랜드가 많아져야 해요. 대전을 떠올리면 성심당이 생각나는 것처럼, 부산도 지역을 떠올릴 때 함께 연상되는 브랜드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모모스 커피’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훈혁키친 광안'을 일러스트로 그려낸 모습.

앞으로도 훈혁키친은 부산을 중점으로 움직일 계획인가요?

훈혁키친도 부산을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큰 이변이 없다면 부산에서 쭉 활동하고 싶습니다. 이전에는 서면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카테고리의 매장을 수평적으로 넓혀왔지만 앞으로는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소수의 매장을 다른 지역에서 선보일 수 있도록 수직적으로 확장하려고 해요. 좁고 깊게요. 음식의 퀄리티, 서비스, 마음가짐 등 모든 면에서 시간이 지나도 뚜렷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브랜드가 되고 싶은 건 물론이고요.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훈혁키친

이신영
누군가의 최애였던 소품을 모으는 수집가. 콘텐츠와 디자인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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