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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한국의 랄프 로렌을 꿈꾸며, 앤유니페어 ②

: file no.2 : 어릴 적 운동화가 심어준 꿈
강재영 대표는 앤유니페어를 포함한 총 7개의 숍을 운영하고 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영화 <킹스맨> 속 배우 콜린 퍼스의 대사처럼 앤유니페어의 강재영 대표는 멋진 옷이 멋진 인생을 개척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일을 지속해 나간다. 본인의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르는 순간부터 정돈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순간까지 자신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다는 그의 철학에 이내 수긍하게 되었다. 수트를 입었을 때와 잠옷을 입었을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경험을 한 이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 클래식한 구두 전문점 유니페어에서 시작해 스타일의 경계를 넘나드는 앤유니페어를 선보이기까지,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궁금해졌다.

Interview with 강재영 앤유니페어 대표

— 2008년 클래식 구두 가게 ‘유니페어’로 시작해 약 16년 동안 패션 브랜드를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대표님이 패션에 매료된 최초의 순간을 떠올려볼까요?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화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농구를 좋아해서 자연스레 농구화에 관심이 생겼죠. 아버지와 함께 이태원에 있는 보세 가게에서 산 가죽 농구화가 저의 첫 농구화였습니다. 신발에 대한 애착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네요. 시간이 흘러 중학교 1학년 때, 마이클 조던이 신던 ‘에어 조던’을 선물로 받게 된 게 또 하나의 신호탄이 되어 스니커헤드(운동화 컬렉터)처럼 운동화를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 그렇게도 좋아한 운동화가 아닌 클래식한 구두 매장을 선보였습니다. ‘유니페어’의 문을 열게 된 과정은 어떠했나요?

사실 나이키에서 일하고 싶어 면접을 두 번이나 봤는데, 개인 사업을 할 운명이었던 건지 결국은 탈락하게 되었죠. 그 시기에 형은 ‘탐스(TOMS) 슈즈’를 국내에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신발을 참 좋아하는 형제였거든요. 당시에는 직장인이라면 꼭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수트를 제대로 갖추는 건 저의 로망이기도 했고요. 사회 초년생이었던 형의 수트에 걸맞은 구두를 구하기 위해 도쿄로 여행을 갑니다. 그곳에서 둘러보았던 매장 중 하나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의 ‘유니페어’가 탄생했어요. 유럽이 연상되는 클래식한 인테리어와 고급 구두들이 여러 켤레 놓인 공간이었죠. 당시에는 그런 고급 제화 전문 편집숍이 국내에 없어 희소가치가 높다는 사업적 판단도 있었고요.

앤유니페어로 올라서는 입구의 원형 계단

— 유니페어는 오늘 촬영한 ‘&unipair’(이하 ‘앤유니페어’)와 카페 ’gml’ 이외에도 ‘트레이딩플로어(TRADINGFLOOR)’, ‘드레익스 도산(Drake’s Dosan)’ 등 총 7개의 숍을 아우릅니다. 매장별로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앞서 언급했다시피, 남성 제화 및 액세서리 셀렉트 숍인 ‘유니페어’로 처음 패션 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대략 2015년부터 거래를 해오던 영국 타이 브랜드 ‘드레익스(Drake’s)’가 토탈 남성복 브랜드로 확장하면서 유니페어에서도 드레익스의 셔츠를 주문 제작하는 행사를 진행한 적 있어요.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이틀 동안 약 100장 이상의 주문이 들어오면서 모두가 놀랐죠. 그래서 도산공원 부근의 작은 공간에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남성복인 드레익스 매장을 시작했습니다. ‘파라부트(Paraboot)’는 유니페어에서 판매하던 프랑스 신발 브랜드인데 한남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어서 단독 매장을 운영 중이고요. ‘트레이딩플로어’는 유니페어의 아울렛 매장입니다. 유니페어에서 구매한 중고 의류나 구두를 위탁 판하는 곳으로, 정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반응이 뜨겁죠. 품절되어 구매하지 못했던 제품을 발견하는 재미도 찾을 수 있는 장소이고요. ‘조스 개러지(Joe’s Garage)’는 아메리칸 캐주얼, 소위 ‘아메카지’라고 칭하는 스타일을 소개하는 숍인데요. 업무상 정장을 입는 유니페어의 고객이 휴일에는 편한 복장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 올해 2월에 한남동에 새로 문을 연 앤유니페어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앤유니페어는 편집숍이라는 개념 속에서 다양한 범주의 영역이 뒤섞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의류 혹은 신발뿐만 아니라, 가구나 소품으로 확장될 수도 있겠죠. 앤유니페어 건물의 3층에 자리한 카페 ‘gml’도 같은 의미로 앤유니페어의 정체성이 담긴 공간입니다.

가구를 활용한 자유로운 디스플레이
앤유니페어 외관 사이로 보이는 창이 마치 눈동자처럼 보인다

— 앤유니페어 건물을 처음 봤을 때를 회상해 보면,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펼쳐졌나요?

처음에는 4, 5층까지 다 저희가 사용하고 싶었어요.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바나 레스토랑 같은 식음료 매장이 들어서면 멋지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gml이 자리한 건물 3층에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테라스를 마주하니 해당 층에는 무조건 우리의 카페를 운영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더군요. 경복궁역 근처에서 ‘내자상회’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서 카페를 바로 운영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거든요.

 

— 공간 디자인의 변화도 눈에 띕니다. 한동안 유럽 빈티지 스타일을 추구하던 유니페어가 앤유니페어를 통해 현대적이고 조형적인 공간을 선보였는데요. 이러한 변화를 주게 된 이유가 있었을까요?

개인적으로 유럽의 고전적인 건축 양식을 세세히 보는 걸 즐깁니다. 오랜 건축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세월의 흔적과 장인 정신이 녹아 있기 때문이죠. 기존 유니페어에는 저의 이러한 성향이 반영되었다면, 이번에 새로 선보인 앤유니페어는 마치 도화지 같길 바랐습니다. 앤유니페어는 기존의 클래식을 넘어 전혀 다른 스타일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숍으로 성장해 나갈 예정이니까요. 만약 공간이 더 크고 직각의 형태였다면, 지금보다 공간을 더 비웠을 거예요. 마치 갤러리처럼 말이죠.

 

— 공간 디자인을 인테리어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과 진행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앤유니페어를 기획한 초창기부터 미니멀하고 자재를 잘 활용한 인테리어 콘셉트를 떠올렸습니다. 때마침, 더퍼스트펭귄에서 작업한 성수동 ‘도큐먼트’ 오프닝 행사에 가서 매장을 보고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홈페이지에서 프로젝트들을 찾아보니 지금까지 유니페어에서 선보였던 인테리어와는 결이 다른 현대적인 디자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유럽의 화려한 장식을 선호하는 저와 이분들이 만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반투명 유리로 감싼 조명은 바리솔 조명과는 다른 은은함으로 공간을 비춘다
옷걸이까지도 나무로 제작한 앤유니페어

—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가 패션 회사가 아닌 ‘네슬레코리아’라고요.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카페 gml 개업에 끼친 영향이 있나요?

입사할 때만 해도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어요. 면접을 보러 가서 커피를 거절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입사하자 프리미엄 커피 라인을 론칭하라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회사 선배들이 소개해 준 압구정의 ‘허형만 커피’ 등등 직접 찾아다니며 커피를 배웠죠. 이후로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옛날 스타일의 다크 로스팅 커피나 스폐셜티 커피 등 다양한 커피를 접했어요.

 

— gml에서 취급하는 원두는 국내뿐 아니라, 네덜란드와 같은 해외에서 직접 골라 수입하기에 더욱 의미가 크죠. 커피를 구하기 위해 해외 출장도 자주 다녔겠어요.

사실 gml 준비를 위한 출장은 딱 한 번 갔습니다. 이전에 다녀왔던 출장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다수 접한 경험이 기반이 되었죠. 머릿속의 gml 콘셉트를 명확하게 정리하기 위해 일본 도쿄로 커피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긴자의 역사 깊은 카페 ‘드 람브르’와 커피 오마카세를 맛볼 수 있는 ‘마메야 카케루’처럼 다양한 카페에 들렀어요. 도쿄에서의 경험과 지난 출장 경험이 어우러져 gml의 콘셉트와 디테일들이 한 번에 술술 풀리더라고요. 여러모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로고 디자인에도 반영된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가구 디자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gml의 원두를 소개하는 안내문

— 여과지를 통해 걸러진 원액을 마시는 필터 커피를 내놓습니다.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 중에서도 이 방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원두가 가진 성격을 고스란히 느끼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터 커피를 가장 선호합니다. 다만, 물의 유속이나 바리스타의 습관에 따라 커피의 맛이 좌우되지 않도록, 손으로 드립을 내리는 핸드 드립은 하지 않고 있어요. gml에서는 침전식 드리퍼를 사용해 모든 사람이 커피를 내려도 비슷한 맛이 나오게끔 바리스타 팀에서 수많은 테스팅을 통해 세팅해 두었죠.

침전식 드리퍼를 사용해 커피를 내리는 gml
gml의 유니폼은 유니페어에서 소개하는 브랜드인 드레익스의 초어자켓이다

— gml 스태프들의 유니폼은 모두 유니페어에서 소개하는 브랜드 드레익스의 초어자켓이더군요. 어떤 마음으로 이 옷을 제작했나요?

유니폼의 힘을 믿습니다. 뉴욕 ‘잇푸도(Ippudo)’라는 라멘집에서 ‘엔지니어드 가먼츠’라는 패션 브랜드와 함께 컬래버레이션해서 남색 유니폼을 만든 것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마침, 드레익스의 초어자켓은 일할 때 입는 옷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어요. 자세히 보시면, 자켓 후면에 ‘그램 퍼 밀리리터’라는 의미가 담긴 ‘g’와 ‘ml’의 자수 방식을 각각 다르게 새겨 넣었죠. 또한, ‘g’는 고딕체로 정직한 느낌을 주고 ‘ml’는 흘러가는 서체를 사용해 직각과 곡선이라는 가구 디자인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요.

곡선과 직선 그리고 원목 자재의 결이 돋보이는 gml의 가구

— 앤유니페어를 통해 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좋은 옷, 좋은 구두를 고르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색다른 서비스와 경험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패션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과 태도에도 영향을 끼치길 바라요. 인생의 아주 구체적인 부분까지 멋있게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죠.

인생을 위한 좋은 재료라는 gml의 의미

— 패션 산업에 종사하면서 어떤 때 가장 행복한가요?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 저희 제품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죠. 사업가 고객분에게서 유니페어에서 구매한 브리프케이스와 구두를 중요한 계약이 있을 때마다 신고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치 행운의 상징처럼요. 그 구두가 오래되고 낡았어도 소중하게 다뤄 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좋은 가치를 함께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 ‘앤유니페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든 지금,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요?

강남의 유니페어 본점 고객분들께 기존 유니페어의 분위기와는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하고 싶어요. 그러한 공간을 하나하나 퍼즐처럼 맞추어 가고자 새로운 계획을 하고 있어요. 남성 고객을 주 고객층으로 한 F&B 공간처럼 이색적이지만 일관된 유니페어 세계관을 구축하는 게 꿈이랍니다.

강재영 앤유니페어 대표
TPO

강재영 대표가 추구하는 삶이 담긴 앤유니페어의 공간

앤유니페어 카운터 뒤의 선반

앤유니페어 카운터 뒤의 선반에 제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점이 드러납니다. 휴양지에서 안식년을 갖는 상상을 해요. 상징적으로 두 번째 선반에 꽂힌 아말피 해안에 대한 책이 있죠. 옆에는 앤유니페어의 오픈 행사 때 기념으로 제작했던 레고와 함께 언제나 멋있다고 여기는 레인지 로버 SUV의 미니카가 놓여 있습니다. 도자기는 언제나 존경하는 랄프로렌의 제품이에요. ‘한국의 랄프로렌’이라는 목표를 잊지 않기 위해 곳곳에 두었죠. 사업을 전개하는 방식이나 방향성은 랄프로렌과 다르지만, 최종적으로는 그가 구축했던 왕국의 모습과 점점 흡사해지고 싶어요. 클래식한 패션으로 시작해 같은 스타일의 레스토랑, 호텔 등으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늘 꿈꿔요.

*3편에서 계속됩니다. 

성채은 기자 

사진 표기식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앤유니페어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한국의 랄프 로렌을 꿈꾸며, 앤유니페어

     : file no.1 : 단단한 뿌리가 있는 새로움

▶ : file no.2 : 어릴 적 운동화가 심어준 꿈

     : file no.3 : 앤유니페어가 편집한 세계관

프로젝트
[Post-It] 앤유니페어
장소
앤유니페어, 지엠엘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27가길 22
시간
월-토 11:00 - 20:00 | 일 12:00 - 20:00
크리에이터
앤유니페어 디렉터 | 강재영, 강원식(유니페어), 최재영(T-FP)
앤유니페어 공간 | 김지수, 이의훈, 윤시우(T-FP)
gml 디렉터 | 강재영, 강원식(유니페어), 최재영(T-FP)
gml 공간 | 김지수, 이의훈, 윤시우, 박재홍(T-FP)
gml 브랜드 | 최슬기(T-FP)
조경 | 그린그라피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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