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스토어’를 주제로 다룬 올해 2월 호 월간 〈디자인〉. 해당 호에서는 그간 열린 팝업 스토어 중 짚고 넘어갈 만한 사례를 추려 기획력, 화제성, 심미성, 완성도 등을 기준으로 평가했다. 이 기획에서, 코오롱스포츠의 50주년을 기념하는 팝업 전시 〈코오롱스포츠 50: 에버그린 에너지〉, 29CM가 브랜드 캠페인을 공간으로 풀어낸 팝업 스토어 ‘이구맨션’, 나이키의 전용 앱 론칭 기념 팝업 스토어 〈SNKRS 뉴스스탠드〉 등은 여러 기준에서 골고루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위 사례에 모두 참여한 에이전시가 텔레포트다.
텔레포트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이자 캠페인 브랜드로, 오프라인 이벤트의 기획과 운영은 물론 비주얼 디렉팅과 아티스트와의 협업 등 다채로운 일을 진행하고 있다. 텔레포트의 작업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정체성과 타깃에 대한 정확하고 깊은 이해와 신선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김종화 텔레포트 대표*에게 텔레포트가 작업하는 방식에 관해 물었다.
* 텔레포트는 변우경, 김종화, 이승준, 김지언 4인의 공동 창립자가 공동 대표로 운영한다.
Interview with 김종화 텔레포트 대표
— 텔레포트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이자 캠페인 브랜드라고 알려져 있다. 텔레포트가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텔레포트는 고객사의 의뢰를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시에 독립적인 콘텐츠를 위한 영상, 이미지, 오브젝트, 인스톨레이션 등을 기획하고 제작한다. 현재는 주로 기업의 프로젝트를 대행하는 에이전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텔레포트의 목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업과의 협업뿐 아니라 브랜드로서 독립적인 크리에이티브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작지만 발전 가능성이 큰 팀으로서 다양한 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비주얼 디렉팅부터 실물 오브제 제작, 오프라인 행사 기획과 운영, 음악가들과의 협업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진행하는 일의 범위가 궁금하다.
텔레포트는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작업의 규모와 상황에 따라, 우리의 크리에이티브와 기획에 적합한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프로덕션(제작)을 직접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 콘셉트와 크리에이티브를 핵심으로 생각하며, 그 핵심을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개인적으로는 각 프로젝트에 맞는 내러티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작업한 파트너 중 패션, 음악 관련 브랜드나 인물이 특히 두드러진다. 이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진행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텔레포트를 창립한 파운더 모두 디자인과 패션을 전공했다. 또한 텔레포트 이전의 삶, 즉 경력 및 관심사에서 비롯한 배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패션과 음악, 미술과 연관이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들을 의뢰받게 되었다. 작은 브랜드의 비주얼 디렉팅을 시작으로 브랜드의 캠페인을 진행하는 현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 여러 범주에 걸쳐 있는 일을 진행한다면, 텔레포트 팀은 어떻게 움직이나? 텔레포트라는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들려 달라.
작업 성격에 따라 팀과 파트너가 협력한다. 팀의 업무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프로젝트의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프로젝트 하나에 보통 2~4명 정도 인원으로 움직인다. 기획자와 디자이너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운영까지 함께한다. 팀별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더라도, 콘셉트와 크리에이티브의 완성도를 위해 초반 기획 단계에서는 모든 인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 텔레포트가 만든 오프라인 행사들은 감각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콘텐츠로 채워졌다. ‘나이키X카시나 원앙’, ‘광주요 “본질”’ 등 여러 사례가 떠오른다. 오프라인 이벤트, 특히 ‘팝업’이라는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공간을 만들어내는 ‘팝업’ 그리고 ‘브랜딩’의 핵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텔레포트라는 하나의 브랜드에서 만들어지는 프로젝트라고 해도, 기획자마다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규칙이나 방법을 정해 두지는 않는다. 콘텐츠를 기획할 때는 브랜드에서 정한 캠페인이나 제품, 서비스의 핵심 콘셉트 및 내용에 따라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시점의 트렌드도 생각해야 한다. 패션, 미술, 음악, 기술 등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트렌드를 체크하는 일은 중요하다. 또 브랜드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제품 혹은 서비스에 대해 깊은 인터뷰를 진행한다. 제품의 탄생 배경부터 역사, 타깃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 오프라인 콘텐츠의 경우 ‘공간’이라는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있는 작업을 하면서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장 지양하는 것은 공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콘셉트와 내러티브가 충분히 정리되면, 자연스럽게 상당히 많은 것을 넣을 수 있다. 그러면 콘셉트와 정확히 부합하면서도 트렌디한 콘텐츠가 완성된다.
— 기획부터 운영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텔레포트가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작업의 핵심을 만드는 일 외에도 파트너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기획이 있다고 해도 함께 실행하는 파트너들이 부재하다면 크리에이티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단순 하청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고, 기획 단계부터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파트너들과 충분히 커뮤니케이션하면 더욱 좋은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 ‘2022 에어맥스데이’ ‘지드래곤 권도 1’ 등의 행사들은 특히나 팬층이 두터운 브랜드들과 함께한 작업이다. 웬만한 전문가만큼이나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있고, 애정도 깊은 팬층을 가진 브랜드의 행사를 기획할 때 특히 유의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제너럴한 대중보다는 마니아층 만족에 중점을 두나? 산책하다 유입되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팝업과는 분명히 다른 접근이 필요할 듯하다.
실제로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 작업의 경우 브랜드, 특히 제품의 역사 및 배경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해당 브랜드를 진심으로 좋아하거나, 그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더 좋겠다. 하지만 프로젝트 브랜드에 마니아들이 많다고 해도, 보다 대중적인 팬층도 함께 고려해 너무 마니아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마니아가 존재하기에, 브랜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개발해 나가야 한다. 두 조건이 충족되면 마니아와 대중 모두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모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객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시각적, 경험적으로 신선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패션뿐 아니라 예술, 기술, 게임 등 여러 장르를 리서치하고 있다.
— 비단 오프라인 기획뿐 아니라, 텔레포트의 작업물은 감각적이고, 소위 말해 힙한 무드를 자아낸다. 이러한 결과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
다채로운 장르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가면서, 서로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요소를 어떻게 엮을 수 있을지, 혹은 전시 및 경험 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시도한다는 점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 현재 팝업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궁금하다. 팝업의 경향이나 트렌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
나 역시 브랜드 마케팅의 트랜드에 대해서 많이 공부해야 하므로 전문적인 답변을 드리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다만 지금까지 팝업을 기획하고 제작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사실 팝업스토어는 2008년에서 2012년 사이, 메인 패션쇼를 열기 어려운 독립 브랜드를 중심으로 시작된 문화로 기억한다. 지금은 여러 팝업을 맛집 투어하듯 도는 모습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이 당시 팝업 스토어에는 사람들이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2012년에서 2019년까지 팝업 스토어는 현재처럼 수많은 브랜드가 진행하는 이벤트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22년부터 본격적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면서, 팝업에 대한 브랜드의 수요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고 느낀다. 제한됐던 야외 활동에 대한 소비자의 보상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고, SNS 마케팅 광고가 포화 상태에 이름으로써 브랜드가 대면 마케팅(BTL)에 무게를 두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까지 서울은 성수동을 중심으로 하는 팝업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2025년까지도 팝업스토어는 브랜딩의 중요한 마케팅 채널로 소비되리라고 예측한다.
— 팝업 역시 포화 상태에 가까워진 듯 보인다. 우려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팝업스토어를 브랜드 콘텐츠를 소구하는 창구로 다루기보다, 한철 트렌드처럼 다룬다면 팝업 자체가 식상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우려가 있다. 브랜드에서는 팝업을 위한 팝업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캠페인과 제품의 특징을 고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를 중요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팝업을 비롯한 오프라인 행사들은 특정 기간이 지나면 끝이 난다. 필연적으로 사라진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팝업스토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방금 언급한 팝업의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성격 때문에 생기는 의미가 있다. 소비자들이 시간을 내어 방문하려고 노력한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팝업스토어는 브랜드가 바로 그 시점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제품과 그 시점의 트렌드가 효과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물이 된다.
— 팝업이 트렌드가 되면서 짚어볼 만한 문제도 생겼다. 대표적으로는 철거되어야 할 폐기물이 많아진다는 점이 있다.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어떻게 노력하고 있나?
12년이 넘도록 팝업스토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부분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팝업이라는 이벤트의 특성상 모든 브랜드는 팝업을 통해 늘 새로운 비주얼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제작물 대부분이 폐기되는 이유이다. 미미한 노력이지만, 재사용할 수 있는 제작물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리셉션 테이블 등의 제작물은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재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 텔레포트는 ‘도피’라는 자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외부 클라이언트와 바쁘게 협업하는 와중에도 자체 캠페인을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에이전시의 역할을 하는 텔레포트가 현재의 모습이라면, 자체 프로젝트는 미래를 위한 다양한 시도로 봐주면 좋겠다.
— 도피는 어떤 의미를 담은 캠페인인가?
텔레포트의 창업 초반부터 브랜드라는 개념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텔레포트의 창업자 4인이 모여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대화를 통해서 네 명 모두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나 환경을 마주했을 때 도피한 경험이 있음을 알았다. ‘도피’란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한숨 쉬어가면서 조금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고정관념이나 상식에 압박을 느낄 것이다. 도망치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도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 메시지를 담은 모자 형태의 달력과 퍼즐, 보드게임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물을 만들고 있다.
— 현재 텔레포트는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나.
에이전시 프로젝트 및 자체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모든 프로젝트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주어진 하루에 집중하고 있다. 또 회사 규모를 확장하기보다는 최적화된 인원으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 앞으로 텔레포트로 이루고 싶은 바람을 들려 달라.
브랜딩, 제품, 서비스, F&B 비즈니스 등 어떤 분야의 일을 하든, 크리에이티브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분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일이라도 고객사 혹은 대중에게 크리에이티브하고 신선한 작업물을 만드는 집단으로 인식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한다.
글 김유영 기자
사진 제공 텔레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