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파스닙스
공간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삶에 맞게 채워진다는 얘기가 있다. 살면서 점차 뚜렷해지는 자신의 취향과 요구에 맞게 공간을 완성해 나간다는 의미다. 유수진 파스닙스·델픽·마녹 대표는 지난 5월 개인의 취향이 점차 변하고 견고해진다는 점을 고려해 ‘언제든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을 선보이는 라이프스타일숍 ‘파스닙스’를 론칭했다. 어떤 인테리어에, 어떤 소품과 함께해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제품들 위주로 선별했다고.
사실 유수진 대표는 공간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현대미술을 전공한 그는 2020년부터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뮤지엄 헤드’와 프리미엄 티 브랜드 ‘델픽’의 쇼룸을 운영해 오며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고, 국내 공예 작가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리빙 큐레이터로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파스닙스를 선보이는 바탕이 됐다. 델픽과 뮤지엄헤드와 이웃하는 위치로, 통창 안으로 햇살이 넉넉히 드는 건물에 둥지를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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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픽에서 뻗어나간 북촌 유니버스
유수진 대표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전공하며 예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런던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런던에서 전시 공간 기획 경험을 바탕으로 뮤지엄 헤드를 기획하던 중 ‘델픽’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델픽은 전시 공간에 카페를 마련하는 아이디어로 출발했지만, 차 문화와 브랜딩을 결합하여 차 도구와 리빙 제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의 관심사가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으로 확장하는 발단이 된 셈.
파스닙스는 만듦새가 견고하면서도 오래 사용해도 질리지 않을 미감의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튀지 않는 걸 좋아하는 유수진 대표의 취향이 반영됐다고. 그는 “20대 유학 생활 중 여러 공간에서 거주하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취향이 견고해졌다고 생각해요.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제 취향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이젠 직관적으로 ‘이거다’ 딱 느껴요. 덕분에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시간과 비용도 효율적으로 운용하게 됐고요. 파스닙스가 큐레이션 하는 물건을 사용해 보면서 소비자들도 자기만의 취향을 찾아나가길 바라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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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근본, 파스닙스
‘파스닙스(Parsnips)’라는 이름에도 공간의 근본에 집중하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당근과 유사한 미나릿과 식물인 ‘파스닙(parsnip)’은 뿌리채소의 일종으로, 새하얀 뿌리에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서 로마 시대부터 식용이나 약재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삶을 이루는 근간이 된 ‘뿌리’에서 영감을 받아 파스닙스라는 이름을 택하게 된 것. 겉으로 보이는 부분보다 자신의 삶 속에 깃든 사소한 취향을 알아채고 내면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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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숍과 리빙숍을 결합한 곳
유수진 대표는 제품 선택 시 가격보다 품질과 디자인을 우선시한다고. 그는 독특하고 가치 있는 아이템을 찾고자 하며, 고가가 아니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좋은 제품들이 많다고 강조한다. 공간은 스테디셀러인 아르떼미데 조명 등을 비롯해 주목할 만한 신진 작가의 작품, 은둔 고수의 솜씨가 담긴 작업 등으로 다채롭게 채웠다.
파스닙스는 가구, 조명, 패브릭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선보이는 총 2층 규모의 공간이다. 1층은 아기자기한 소품을 다루는 선물숍, 2층은 조금 더 큼직한 리빙 제품을 다룬다. 파스닙스의 1층 공간 중심에는 고재로 만든 행잉 테이블이 있는데, 거치대 없이 바닥을 탁 튼 덕에 시원한 공간감을 준다.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햇살이 따사롭게 스미는 2층 쇼룸의 통창을 마주하게 된다. 쇼룸은 방문객들 사이에서 이미 ‘북촌 한옥 뷰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특히 여름철에는 건물 외관이 더욱 근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건물 외벽에 흐르는 능소화가 붉게 물들어 건물을 한층 더 화사하게 만들기 때문. 옥상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늘어진 능소화 덩굴은 1층과 2층을 묶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연 요소와의 조화는 파스닙스의 인상을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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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진 대표가 실제로 사용하는 파스닙스 제품 3
1. 오키브의 쉘 박스
최근 파스닙스에 입점한 오키드 보석함은 이탈리아 가죽 공방에서 천연 염색과 수작업으로 제작된 제품이다. 이 제품을 만드는 공방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곳으로, 1964년부터 두 세대에 걸쳐 50년 이상 전통을 이어왔다. 이곳에서는 천연 송아지 베지터블 레더를 사용하여 액세서리 보관함, 카드 지갑, 동전 지갑 등 다양한 가죽 제품을 제작한다. 가죽은 물로 조심스럽게 적신 후 나무 몰드에 덧대어 성형하고, 말린 후 염색과 폴리싱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제품마다 독특한 질감과 형태를 보이게 된다. 또한 천연 소가죽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에이징되며, 빈티지한 멋이 더해져 더욱 가치 있는 아이템으로 변모한다.
2. 아르떼미데 티지오
조명이 주는 힘은 굉장히 크다. 공간을 전환할 때 공간 조명이 반 이상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에 설립된 이탈리아의 오랜 조명 제조회사인 아르떼미데는 산업 중심보다 사람을 향한 휴머니즘이 깃든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에 가까운 빛을 재현하며 사람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추구한다. 티지오는 아르떼미데 컬렉션의 마스터피스이자 이탈리아 디자인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3. 드 비저리의 쿠르셀 사이드 테이블
프랑스의 하이엔드 가구 드 비저리의 사이드 테이블은 최상급 소가죽과 메탈 등의 마감재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풀 그레인 가죽과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의 매치가 돋보인다. 마드리드 라운드 체어, 마드리드 오토만과도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세트 구성을 보여준다.
파스닙스
장소 파스닙스
주소 서울 종로구 계동길 84-3
운영 시간 11:00~20:00(월-일)
기획 파스닙스
공간 디자인 히든잼(고건하 건축가)
시공사 히든잼
면적 148㎡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김세음 객원 기자
사진 강현욱
자료 제공 및 협조 파스닙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북촌 한옥 곁에 자리 잡은 라이프스타일숍, 파스닙스
: file no.1 : 취향을 찾는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