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1

‘라이프세터’들의 새로운 놀이터, TTRS ②

: file no.2 :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가이드

“Match Your Piece, Meet Your Taste(당신만의 조각을 찾아보세요, 당신만의 취향을 만나보세요)”. 29CM의 프리미엄 리빙 셀렉트숍 ‘TTRS’에서 볼 수 있는 문구다. 이곳에는 무려 119개의 브랜드가 함께 한다. 한정된 공간,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 나의 취향을 충족하는 제품을 만날 수 있는 건 바로 공간 경험을 효과적으로 디자인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29CM 공간경험팀이다. 지난 11월, TTRS에서 공간경험팀을 이끄는 남현수 팀장을 만났다.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이 오프라인 공간으로 확장을 시도하는 이유는 물론, 셀렉트숍으로서 TTRS만의 차별점을 물었다.

interview with 29CM 공간경험팀 남현수 팀장

그는 29CM오프라인 공간 경험을 총괄한다. 뉴욕의 디자인 스튜디오 베이스 디자인(Base Design), 신세계 이마트 디자이너, 타다 그리고 쏘카의 디자인 총괄을 지냈다. 지난 2022년부터 29CM의 다양한 공간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이구갤러리, 이구성수, 티티알에스의 공간 구성과 운영을 담당한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 TTRS의 뛰어난 접근성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더군요. 이곳 부지를 선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부지에 얽힌 전사(前史)가 꽤 있어요. 사무기기 업체인 신도리코의 창에서 카페 어니언 성수의 창고와 오피스 공간을 거쳐 무신사의 한정판 스니커즈 플랫폼인 솔드아웃이 TTRS 이전에 자리했었죠. 올해 초 29CM는 온라인 서비스 내 ‘프리미엄 리빙’을 주력 카테고리로 삼으면서 이를 위한 오프라인 매장의 필요성에 대해 전사(全社)가 공감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프리미엄 리빙 내 상품군의 가격대가 대부분 고가이다 보니 고객 입장에서는 직접 제품을 경험해 보고 구매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한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북촌과 서촌을 중심으로 살펴봤어요. 고즈넉한 분위기에 큰 규모를 갖춘 공간을 찾고 있었죠. 그러던 중 마침 당시 무신사 솔드아웃이 사용하지 않는 1층 공간을 활용해 보면 어떻겠냐는 내부 의견이 있었고, 일종의 유휴공간을 극대화해 사용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흥미로운 건 성수동을 선택했다는 점이에요. 국내에서 팝업 행사의 성지로 손꼽히는 성수동은 20대 연령의 고객층 비율이 높은 곳이잖아요. 말씀처럼 가격대가 있는 제품군을 다루는 공간이라면 고객의 구매력을 고려할 때 마냥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거든요.
맞아요. 프리미엄 리빙 셀렉트숍을 운영한다면 성수동보다는 압구정이나 청담동에 자리 잡는 것이 옳을지도 몰라요. 실제로 프리미엄 리빙 브랜드를 다루는 매장들도 그곳에 자리하고요. 하지만 저희는 구매에 앞서 ‘프리미엄’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을 먼저 허물고 싶었어요.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고자 하는 30대를 타깃으로 말이죠. 가격에 대한 부담을 떠나서 브랜드와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를 한 번 제대로 경험해 본다면 분명 미래의 확실한 고객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오히려 성수동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더욱이 최근 성수동에는 디올(Dior), 자크뮈스(JACQUEMUS), 몽블랑(Montblanc), 포르쉐(Porsche) 등 하이앤드 브랜드들이 팝업을 열기 시작했고, 3040 연령대의 구매력 있는 고객들도 성수동을 찾기 시작했죠. 이러한 흐름에도 TTRS의 시작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TTRS가 타깃 하는 고객층은 20대이기보다는 3040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TTRS를 찾는 고객층의 연령대의 추이를 보면 3040이 높은 편이고, 20대 고객들은 TTRS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자리한 29CM의 또 다른 오프라인 공간 ‘이구성수’의 주요 고객층으로 자리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구성수’는 성수동 내 중심지라고 불리는 연무장길에서 멀지 않기에 트렌드에 한층 더 민감한 20대 고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편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TTRS를 찾는 고객들은 연령 상관없이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체감하기에 길다는 점이에요. 공간을 대충 훑어보고 나가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충족하는 제품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TTRS만의 차별점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프리미엄뿐만 아니라 리빙 제품을 다루는 셀렉트숍은 사실 서울만 해도 이미 다양하잖아요.
대게 우리가 알고 있는 리빙 셀렉트숍은 개인 사업자의 확고한 취향과 철학 아래 운영되곤 하는데요. 이와 다르게 TTRS는 상품을 온라인에 등록 후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29CM가 운영하다 보니 가격대는 물론이고, 국내부터 해외 브랜드까지 카테고리의 범주가 방대해요. 이 자체로도 다른 셀렉트숍과는 분명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이렇게 많은 제품군을 ‘TTRS’라는 한 그릇 안에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는가 인 거죠. 고객이 느끼기에 너무 어려워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마냥 단순해서도 안되죠.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잘 잡고 유지하는 것이 저희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차별점은 바로 오프라인 경험이 온라인 플랫폼 정착으로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TTRS을 찾는 랜덤 고객들을 29CM라는 온라인 플랫폼에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을지 늘 최우선으로 고민하죠. 이를 위해 공간 곳곳에 제품과 함께 QR코드를 마련했어요. QR코드를 통해 29CM가 제작한 남다른 깊이의 브랜드 이야기를 PT, SHOWCASE, 이구 디자인 뮤지엄 등 29CM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접하고, 브랜드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를 마련한 뒤 구매까지 이를 수 있도록 선순환 구조를 유도하는 것이죠.

29맨션 ⓒ29CM
이구갤러리 ⓒ29CM

-앞에도 이구성수가 잠깐 언급되었지만, 29맨션부터 이구갤러리, 이구성수 그리고 TTRS까지. 최근 29CM가 오프라인 공간을 주목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3년 전, 29CM가 무신사와 합쳐지면서 외적 볼륨과 성장이 가파르게 진행됐습니다. GMV*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감도 높은 셀렉트숍을 지향하는 29CM 고유의 브랜드 철학과 유니크함은 이전보다 많은 유저의 유입과 증가하는 상품 거래량이라는 배경 속에서 그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온라인에서 벗어나 오프라인으로 나와 29CM가 지닌 큐레이션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니즈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 단순히 멋지고 세련된 걸 추구하기 보다 ’29CM’라는 브랜드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췄습니다.

 


*GMV(Gross Merchandise Volume):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주어진 기간 동안 이룬 총매출액을 뜻한다. 즉, 총 상품 판매량을 일컫는 용어.

—지금까지 29CM가 공개해 온 오프라인 공간의 면면을 살펴보면 팝업부터 쇼룸, 숍인숍 등 공간의 성격도 단계별로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브랜드가 그리는 청사진 안에서 TTRS는 어느 단계의 위치인 건가요?
서울과 대구의 이구갤러리는 온라인 문법에 맞춰서 공간을 오픈했다고 생각해요. 마케팅 영역에서 말하는 ‘A/B 테스트’처럼 두 가지 안을 비교해 보고, 보다 성공적인 결과에 가까운 것을 취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었죠. 반면, TTRS는 오프라인 공간을 오픈하기 위한 계획에 충실히 임해서 진행된 케이스입니다. 브랜드가 가진 전체 계획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자리한다고 봅니다.

—공간 이야기를 해볼까요? 구멍이 뚫린 파사드가 눈길을 끕니다. 이곳이 어떤 공간이라는 힌트가 없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사실 처음에 이 공간을 마주하고서는 엄청 막막했어요. 이전에는 원래 운영되었던 브랜드 특성 색상을 살려 외관이 검은색으로 칠해져있었거든요. 처음에 공간 사전 답사를 할 때 보니까 고객들이 성수역에서 나와 TTRS 바로 옆에 자리한 어니언 성수까지는 발걸음을 하는데 그 이상으로 넘어오는 비율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마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밝은 인상을 주는 것이었어요. 검은색 페인트로 뒤덮인 외관을 지우고, 작은 화단을 심었죠.

TTRS 외관 파사드 모습 ⓒ29CM

또, TTRS 건물 앞까지 올 수 있게 구멍이 뚫린 파사드를 디자인해 호기심을 유발했고, 멀리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TTRS 로고가 담긴 빌보드도 설치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건 “그럼에도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다.”였어요. 고객들이 TTRS를 보물 상자처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보물 상자는 겉모습이 화려하진 않잖아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투박한 상자를 열었을 때, 내가 원하는 물건을 한가득 마주하는 기쁨의 순간을 TTRS에서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29CM에 합류하기 이전에는 주로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에서 활동하셨어요. 오프라인 공간을 준비할 때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파사드에 구멍 하나 뚫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법률 검토와 허가를 받는 일 등 어떻게 보면 이전에는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임했습니다.

 


—한편 TTRS 공간을 기획할 때 참고한 공간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베를린의 편집숍 ‘부 스토어(Voo Store)’, 그리고 영국 런던의 ‘도버 스트리트 마켓(Dover Street Market)’. 개인적으로는 빈티지, 팝업, 명품 등 다양한 브랜드가 자유롭게 어우러진 부 스토어의 디스플레이 방식과 공간을 이동하는 동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TTRS 입구에서 만날 수 있는 젤라또 가게 '당도' ⓒ29CM

—마찬가지로 TTRS에서도 물리적인 벽은 없지만 브랜드 별 공간 구획과 동선이 잘 짜여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하는 조명 존과 선물존에 고객을 최대한 이르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어요. 그러기 위해선 공간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입구에 무엇이 들어와야 하는지부터 고민되더라고요. 부담 없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곧바로 리빙 브랜드가 보이기보다는 F&B 브랜드를 통해 분위기를 이완시키면 어떨까 싶었어요. 대신 카페는 피해야 했죠. 성수동 곳곳에는 이미 카페가 빼곡하니까요. 커피 대신 젤라또를 선택했습니다. 망원동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젤라또 가게인 ‘당도’를 섭외했죠. 그다음으로 가장 쉽게 터치할 수 있는 제품군인 프래그런스를 시작으로 ‘키친앤다이닝’, ‘패션’, ‘플랜트’, ‘가구’, ‘팝업’, ‘조명’, ‘선물’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공간을 구획했습니다.

—앤데믹을 기점으로 물리적 공간 경험이 화두잖아요. 공간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서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경험은 영속하는 공간 위에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공간경험팀 이전까지는 브랜딩 업무를 맡았는데요. 공간에도 브랜딩 관점에서 접근을 취하게 된 이유에요. 단순히 인테리어나 VM(Visual Merchandising)을 통해 매장을 예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바로 ‘살아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에만 잘 가꾸고서 끝나버리면 그 공간에 새로이 기대할 게 없어요. 고객들과 함께 계속 호흡하려면 그들이 재방문했을 때 지난번 방문과는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경험은 그렇게 영속하는 공간 위에 쌓입니다. 방문객이 매번 새롭게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공간 경험이며, 공간 기획자 그리고 디자이너가 할 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TTRS에서는 29CM가 지속해서 제작하는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것이 이곳을 즐길 수 있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TPO

29CM 공간경험팀 남현수 팀장이 영감을 얻는 공간

커머스 업계가 워낙 흐름이 빠르다 보니 일부러 상업적인 공간은 피하는 편이에요. 대신 조용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갤러리와 미술관을 즐겨 찾죠. 무엇보다 아티스트와 큐레이터에 따라서 공간이 가변적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작품은 물론 공간 곳곳을 천천히 경험하고, 동선도 유심히 살펴보는 편입니다. 최근에는 리움 미술관을 다녀왔어요. 13년 만의 개인전이라고 하는 김범 작가의 전시 <바위가 되는 법>을 봤는데, 해학적인 작품들이 인상적이더군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미술관을 즐겨 찾는데요. 일본 나오시마, 테시마 미술관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공간이에요. 두 곳 모두 섬 전체가 미술관인데요. 나오시마에서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아티스트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들을 마주하며 감동을 받았고, 테시마에서는 프리츠커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니시지와 류에와 아티스트 나이토 레이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미술관을 경험하면서 큰 영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미술관 공간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었거든요. 기회가 닿으면 또 가보고 싶네요.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라이프세터’들의 새로운 놀이터 ,TTRS

▶ : file no.1 : 성수동에 상륙한 프리미엄 리빙 셀렉트숍

▶ : file no.2 : 더 나은 선택을 위한 가이드

▶ : file no.3 : 오프라인 공간에 진심인 커머스 플랫폼

이정훈 기자

사진 임상현, 김수민 어시스턴트 (아토 스튜디오)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29CM

프로젝트
TTRS
장소
TTRS (오픈 시기: 2023년 10월 21일)
주소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9길 12 1층
시간
11:00 - 20:00 (화요일 - 토요일 / 월요일 휴무)
기획자/디렉터
29CM 공간경험팀
크리에이터
브리콜랩 & 조미연 실장(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리모트(공간 브랜딩)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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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팝업 · 전시가 열린 공간

서울 성동구 티티알에스 (TTRS)

복합문화공간, 숍, 카페, 팝업/대관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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