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윤현상재 EXP: 8Seasons 프로젝트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이 높아졌다. 덕분에 국내 리빙 시장은 2023년, 약 18조 원까지 성장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전, 집을 스스로 꾸미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빠르게 파악한 기업이 있다. 바로 윤현상재다.
1996년에 설립한 윤현상재는 타일을 중심으로 한 건축 마감재 유통회사다. 건축가,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만 인지도가 높았던 윤현상재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건 친근한 SNS 활동과 ‘보물창고’라는 마켓 덕분이다. 이 두 가지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건 윤현상재의 내부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스페이스 비이(Space B-E)’다. 스페이스 비이는 전시, 마켓, 강연 등 자기만의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기획하는 스튜디오로, 2011년부터 자신들의 기조를 꾸준히 유지한 덕택에 윤현상재는 건축, 공예, 디자인, 순수미술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건축자재 회사로 인식되며 차별성을 지니게 되었다.
12년간의 꾸준함이 쌓여 이제 사람들은 윤현상재와 스페이스 비이의 행보에 기대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낸다. 과연 다음에는 무엇을 보여줄까? 궁금하던 찰나, 서울 논현동에 30년이 넘은 4층 건물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EXP: 8Seasons’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는 이름처럼 8개의 계절 동안만 진행된다. 훅훅 바뀌는 것이 많아 오히려 지속성을 외치는 시대에서 2년이라는 기간을 정해버린 프로젝트라니.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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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 진행합니다
프로젝트명 ‘EXP: 8Seasons’ 에는 프로젝트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유통기한을 의미하는 EXP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이번 프로젝트가 한정된 기간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시간상으로는 2년, 그리고 계절로서는 8개의 시즌 동안만 윤현상재의 새 프로젝트는 진행된다.
2년이라는 시간은 프로젝트가 열리는 장소 –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문영빌딩이 앞으로 존재할 기간과 연결된다. EXP: 8Seasons가 진행되는 문영빌딩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해 철거되어 윤현상재의 새로운 공간을 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경기 침체 등 사회 상황이 달라지면서 생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하여 앞으로 만들 새로운 공간을 더 알차게 채우자고 마음을 먹고서 공사 시작 시점을 2년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을 방치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그래서 정해진 기간동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EXP: 8Seasons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는 8시즌 동안 스페이스 비이가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프로젝트로, 5월에 첫 번째 시즌이 시작했다. 9월을 앞둔 지금은 두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이다.
한계라는 속성은 EXP: 8Seasons 프로젝트를 특별하게 만든다. “유통기한이라는 단어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하루, 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계기가 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주어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언가를 빨리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프로젝트를 기획한 윤현상재 최주연 부사장은 아쉬운 마음보다는 윤현상재와 스페이스 비이의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실험무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카페와 머티리얼 라이브러리, 전시와 팝업은 앞으로 윤현상재가 보여줄 콘텐츠의 초석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간과 프로젝트는 2년이라는 숫자에 갇히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를 위한 하나의 실험무대이자, 무한한 연속성을 가진 프로젝트이자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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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공간
EXP: 8Seasons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문영빌딩은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이뤄져 있다. 지하 1층에는 기업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윤현상재가 다루는 브랜드의 자재를 볼 수 있는 쇼룸으로 구성했다.
1층에는 카페 겸 커뮤니티 공간 ‘마더 오프라인(MOTHER Offline)’이 있다. F&B는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업방침에 따라 윤현상재는 협업할 커피 브랜드를 찾았고, 한남동 카페 ‘마더 오프라인’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마더(Mother)와 손을 잡았다. 윤현상재가 디자인한 간결한 공간에 마더가 큐레이션 한 음악이 잔잔하게 깔린 카페는 대기부터가 다르다. “우리와 마더가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점에 끌렸어요. 우리는 시각에 집중한 곳이라면, 마더는 뮤직비디오와 같이 음악이 중점이 되는 영상을 디자인하는 스튜디오로서 청각에 집중하는 곳이었거든요.”
2층은 건축가와 디자이너,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 다양한 재료를 탐구할 수 있는 ‘머티리얼 라이브러리(Material Library)’가 있다. 이곳은 ‘It’s all about materials’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세상의 수많은 재료를 영감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윤현상재의 가치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책 대신 자재와 재료들이 진열된 서가가 늘어선 이곳은 나무, 콘크리트, 유리, 종이 등 다양한 재료를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다. 또한 스페이스 비이가 그동안의 경험과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기획한 전시와 세미나가 열려 재료의 무한한 가능성도 경험할 수 있다.
3, 4층은 시즌별로 스페이스 비이가 기획한 전시, 마켓, 팝업, 세미나가 열리는 이벤트 공간이다. 스페이스 비이가 예리한 눈으로 선별한 작가와 브랜드의 전시도 만날 수 있다. 참여 작가와 브랜드는 방 하나를 맡아 기획부터 전시 디자인까지 맡아서 진행하기에 자신이 가진 이야기를 공간적으로 펼칠 기회를 가진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빌딩에서 열리는 작은 페어라고 할 수 있어요. 윤현상재가 무료로 제공한 공간에서 작가와 브랜드가 콘셉트에 맞게 공간을 꾸미고 작품(제품)을 보여주는 형식이죠.”
‘EXP: 8Seasons’ 층별 구성
옥상 | 루프탑
4층 | 이벤트 공간
3층 | 이벤트 공간
2층 | YOUNHYUN Material Library
1층 | Café_MOTHER Offline
지하 1층 | YOUNHYUN Display Show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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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재료, 절제된 물성
시각적으로 화려한 디자인은 시선을 끌지만, 균형이 잡히고 분위기가 느껴지는 디자인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윤현상재는 후자다. 분위기가 공간을 압도하여 보는 것이 아닌, 느끼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EXP: 8Seasons 프로젝트가 열리는 문영빌딩도 화려하게 리모델링하는 것보다 최소한의 재료로 그곳만의 물성을 느낄 방법을 택했다. 윤현상재가 선택한 최소 재료는 타일이다. 타일은 빌딩 내부의 콘크리트와 어우러져 차가운 물성으로 통일된 공간을 선보인다.
EXP: 8Seasons는 공간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프로젝트이기에 프로그램이 잘 보이는 효과에 집중하며 공간을 디자인했다. 제일 신경 쓴 곳은 건물 파사드다. 문영빌딩은 좌우로 길게 뻗은 형태에 경사까지 있어서 건물 앞에 계단이 길게 형성된다. 윤현상재는 이 계단을 타일로 감싸 새롭지만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타일은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즌까지 남아있었던 약국에도 적용되었다. 약국은 직사각형의 구조로 1층 내부에 길게 개입했는데, 이 박스 형태를 타일로 감싸 공간에 흡수하는 동시에 디자인 포인트가 되도록 했다. 비워질 약국은 앞으로 팝업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최소한이되 원초적인 디자인은 공간 전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약국의 박스가 직사각형인 것처럼, 1층 카페는 원형 테이블, 사각형 테이블과 의자처럼 가장 기초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하면서 기하학적 특징이 도드라지는 가구는 최경덕 작가의 작품이다. 카운터와 같은 부분은 사각형 위에 최소한의 재료인 타일을 덮어 양감을 강조했다.
한편, 윤현상재는 보조 재료로 나무를 선택했다. 가구를 목재로 제작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제일 큰 이유는 타일과 콘크리트의 차가운 물성을 나무의 따뜻한 물성으로 중화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 이유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2년 후의 처분 과정까지도 고려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개입은 EXP: 8Seasons 프로젝트 공간 디자인의 중요 포인트다. 최대한 공간이 풍겼던 기존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손을 대지 않았다. 파사드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 보단 정면 윈도우를 개방하여 건물 앞을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간이 생겼음을 인지하도록 했다. 또, 카페 내 좌석 일부는 건물의 턱을 의자로 활용하여 공간 구조가 가구가 되도록 했다.
이처럼 EXP: 8Seasons는 유지할 부분과 새로 고쳐야 할 부분 간의 균형을 맞춘 프로젝트였다. 균형을 위해 제일 공을 들인 부분은 천장이다. 천장이 노출되면서 배관, 전기 등 정리해야 할 선이 많아졌다. 때문에 프레임부터 배관까지 많은 부분을 다시 짜서 설치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공간 구조와 뼈대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짧은 공사 기간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기사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윤현상재 EXP: 8Seasons
▶ : file no.1 : 공간의 원초적인 분위기에 집중하다
글 허영은 객원 필자
사진 임상현, 김수민 어시스턴트 (아토 스튜디오)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윤현상재 & Space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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