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8

어른들의 취향 발견 아지트, 서점 그래픽 ②

: file no.2 : 취향 좋은 어른들이 모이는 아지트

“만화와 술, 음악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최적의 환경에서 어른들의 취향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정다운 매니저의 말처럼, 서점 그래픽은 어른들이 자기 취향을 다듬고 키워 나가는 공간을 지향한다. 그렇기에 그래픽은 작은 것 하나도 고심하고, 제일 좋은 것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서점 그래픽을 단순히 만화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 이태원의 핫플레이스로 기억되기엔 아까운 이유다. 과연 그래픽은 어떤 생각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려고 했을까? 정다운 매니저에게 서점 그래픽이 추구하는 방향에 관해 물어보고 들어봤다. 

Interview 

정다운 매니저

‘어른들의 놀이터’인 서점 그래픽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어른만을 위한 공간은 어떤 의미로는 한정되어 있어요. 많을 것 같지만, 사실 지금 유행하는 많은 공간은 20대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죠. 또, 10대도 올 수 있는 공간도 많아서 전 세대가 섞여 있어요. 오롯이 성인이 자기만의 취향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은 없는 셈이죠. 어른들만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에 그래픽을 기획했어요. 대신, 최적의 환경에서 최고 수준으로 어른들이 좋은 취향을 만들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경험의 공간으로 구상했죠.

왜 이태원의 깊은 골목길에 자리 잡았나요?

동네 안쪽으로 숨고, 간판을 두지 않을 이유는 ‘아지트’라는 느낌을 풍기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이태원이라는 지역은 취향이 확실하고 개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로, 각자 자기만의 트렌드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동네에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면 사람들이 자주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생각이 적중했죠. 마니아가 몰래 찾아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분명히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거란 확신도 있었고요. 만약 다른 독립서점과 비슷한 콘텐츠를 제공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에겐 전혀 다른 콘텐츠와 큐레이팅 능력이 있으니까 무조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최대한 깊게 들어왔어요.

어른을 위한 공간인데 만화에 포커스를 맞춘 이유는요? 만화책은 애들이 보는 책이라는 편견이 있잖아요.

 

만화는 지금도 엄청나게 소비되고 있어요. 다만, 옛날에는 만화책이었다면 지금은 웹툰으로 매체가 바뀌었을 뿐이에요. 오히려 전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만화의 인기는 꾸준히 올라가서 미래에는 만화를 즐기는 사람의 수가 더 늘어날 거예요. 하지만 인기에 비해 만화를 기반으로 한 복합문화공간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게다가 성인이 만화 본다고 하면 왜 아이들이 보는 책을 읽느냐고 꾸중을 듣죠. 하지만 그래픽에서는 마음껏 만화를 향유할 수 있고, 술과 음악까지 더해서 즐길 수 있죠.

만화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만화책이라고 하면 깊이가 얕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만화책 중에는 글 책만큼의 세계관과 철학을 내포한 책이 많아요. 게다가 어려운 지식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힘도 있죠. 그래서 만화책을 통해서 지식과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어요.

그래픽은 그래픽 노블이 주가 되긴 하지만, 순정, SF, 공포, 일상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구비되어 있어요. 장르를 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직원들이 100% 담당해서 만화책을 큐레이션해요. ‘취향 좋은 어른들의 공간’이 되기 위해선 먼저 저희 직원들의 취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질린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책을 읽어요. 독서량도 많고요. 그리고 각자 읽은 만화책과 책을 공유하는데, 나와 다른 또 다른 취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더라고요. 최대한 많은 만화책을 경험해야 고객에게 추천을 해주고, 큐레이션도 잘할 수 있으니까요.

큐레이션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직원들끼리 읽은 만화책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진열 여부를 결정해요. 만약 재미있게 읽어서 배치했던 만화책이 이후 재미없게 느껴지면 과감하게 빼요.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재미없어서 빼놨는데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으면 다시 선반에 진열해 두죠.

그래픽에는 만화만 있지 않아요. 아트북까지 구비한 이유가 있을까요?

시각과 관련된 모든 책을 다루고 싶었어요. 그리고 만화책에 대한 인식이 바꿨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어요. 저희는 그래픽 노블과 같은 만화책이 대중적으로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았으면 해요. 실제로 만화 중에는 작품성이 높아 예술의 경지까지 오른 책이 많아요.

그래픽이 지향하는 방향이 만화의 대중화가 아니라 예술 문화의 향유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앞으로 예술이 우리 삶에 더 필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각박한 세상 속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빈곤해지고 있어요. 만화책과 같은 예술 관련 책들이 이러한 빈 부분을 채워줄 거예요. 그래서 아트북을 큐레이션 할 때, 고민을 많이 해요. 아트북을 선별하려면 아티스트는 당연하고, 트렌드와 예술 관련 정보도 많이 알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예술에 관해서도 열심히 공부해요.

이렇게 책이 많은데 검색 시스템을 따로 두지 않고, 매니저의 추천을 통해서 책을 찾아야 해요. 효율성 측면에서는 좋지 않은 운영 방식이지만, 그래픽은 고객과의 대면을 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느꼈어요.

그래픽이 숨은 아지트처럼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래서 들어오는 입구도 좁고 복잡하게 했고요. 책도 도서 검색을 통해서 쉽게 찾아서 보는 방법보단, 공간을 슬슬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만화책을 고르는 방법을 지향해요. 표지와 제목이 맘에 들어서 읽거나, 우연히 눈에 들어와서 읽거나. 이는 그래픽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말하신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는 등, 만화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이 되기 위해 도서 검색대 대신 직원에게 책을 물어보거나, 좋은 만화책을 추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매니저의 추천이라고 하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오는 ‘월간 그래픽’을 빼놓을 수 없죠. 각 매니저가 선정한 만화책을 소개하는 콘텐츠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시작은 ‘함께 의논해서 선정한 만화책을 소개해 보자’였어요. 그런데 매장에서 고객에게 매니저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직원들의 취향을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원이 추천한 책이 내 취향과 맞으면, 그 직원이 추천한 책을 다 읽어보면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월간 그래픽’을 시작했죠. 월간 그래픽은 100% 직원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해요. 매장 1층에 월간 그래픽 코너를 따로 두었는데, 추천 도서를 보고 있으면 직원의 취향이 고스란히 보여요.

일정한 비용을 내면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게 한 운영 방식도 독특해요.

저희는 고객이 아닌 한 명의 팬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요. 사실, 저희가 지금 앱 하나를 개발 중이에요. 곧 론칭을 앞두고 있는데 앱의 성공을 위해 지금껏 많은 걸 쌓아온 것 같아요. 이제는 그래픽의 팬이자 만화 팬들이 이 앱에서도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요.

고객의 주요 연령층은 어떻게 되나요?

처음에는 30~40대로 예상했어요. 그런데 문을 열고 보니 20대가 훨씬 더 많았어요. 처음에는 데이트코스로 온다고 생각해서 조금 아쉬웠어요. 그런 공간을 생각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노력하자고 생각했죠. 그런데 고객분들을 지켜보니까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책을 골라서 엄청 집중해서 책만 읽으시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는다고 하는데, 책을 집중해서 읽는 걸 보고 뭔가를 읽는다는 행위, 시각적으로 좋은 자극을 받는 행위가 우리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에 뿌듯했어요.

어른들의 놀이터다 보니까 19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는데, 혹 어린이 고객이 온 적도 있나요?

네. 성인만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님이 많아요. 여기까지 오신 발걸음이 감사하지만, 그래픽에서는 술도 팔고 19세 이상만 볼 수 있는 책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설명하죠. 감사하게도 모두 이해해 주셨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실망하는 게 눈에 보여요. 이 만화들을 어릴 때부터 접하면 좋은 영양분이 된다는 걸 알기에 저희도 아쉽죠. 그래서 착석은 안 되고 공간만 한 바퀴 둘러볼 수 있게 안내하고, 어린 친구에게 책을 선물하죠. 나중에 커서 꼭 오라고요. 덕분에 부모님들도 저희를 좋게 봐주셔서 나중에 두 분만 따로 오는 경우도 있어요.

미래의 잠재고객을 키우는 거네요. 그러고 보니 그래픽에서는 술도 팔아요. 이 점에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만화책과 술은 찰떡궁합이라는 걸 자부할 수 있어요.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붕 뜨는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 만화 속의 엄청난 세계가 펼쳐지면 감정적으로 더 쉽게 공감하고 몰입하게 돼요. 덕분에 만화 내용이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지죠.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고, 만화 속 세계에 들어온 것 같거든요.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고객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은 걱정되지 않았어요?

과음에 대한 걱정도 당연히 있었죠. 그런데 지금까지 만취해서 다른 고객에게 피해를 주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고객은 한 명도 없었어요. 이상하게 술을 드실수록 더 책을 많이 읽으시더라고요. 술을 주문하면 저희가 직접 자리로 가져다드리는데, 저희가 와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책을 손에서 안 놓으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은근히 뿌듯해요.

만화책과 아트북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작년부터 전시를 열고,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걸 보면서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의 타깃은 서점, 만화방이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복합문화공간을 추구했기 때문에 항상 그런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만화책뿐만 아니라 희귀하거나 가격이 높아 보기 힘든 아트북을 마음껏 볼 수 있게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그를 이어 작가들의 그림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고요. 특히 저희 고객 중에는 작가, 디자이너도 많거든요. 그분들은 영감과 레퍼런스를 얻기 위해서 온다는 걸 알고서 언젠가 전시를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작년에 할 수 있었죠.

전시를 기획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요?

그래픽의 시선으로 작가와 작품을 큐레이팅하고, 작품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콰야 작가 전시에서는 관객이 콰야 작가 그림을 바탕으로 자기의 그림을 그리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매우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픽에서 열리는 전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작품과 공간이 함께 주인공이 된다는 점이요. 작품만 보고 훌쩍 가는 공간이 아니잖아요. 오래 머물면서 책을 읽었다가, 그림을 감상했다가. 책을 가지러 갈 때, 잠깐 멈춰서 그림을 볼 수 있죠. 어떤 고객분은 술을 들고 마시면서 그림을 감상하시더라고요. 이처럼 작지만, 자유로운 경험 자체가 좋은 영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점점 체험하는 전시가 중요해질 거예요. 그래서 그래픽에서 열리는 전시는 최소한 하나는 고객이 작품에 공감하고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기획하려고 해요.

전시 작가는 어떻게 선정하나요?

매니저들이 논의해서 정해요. 작가가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고, 저희가 요청하는 경우도 있죠. 작품이 좋다고 느껴지면 먼저 인터뷰를 하는데, 인터뷰에서도 좋다고 느껴지면 바로 전시를 진행해요. 전시 진행이 결정되면, 대관료와 작품 설치 비용 모두 저희가 부담해요. 작품이 판매되면 그에 대한 인센티브도 받지 않고 작품 판매비 전부가 작가에게 돌아가게끔 운영해요. 그리고 늘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전시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해요.

TPO

정다운 매니저에게 만화처럼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는 공간

두 군데가 생각나요. 하나는 환기미술관이고요. 다른 하나는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이에요. 김환기 작가는 천재라고 생각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예요. 김환기 작가 자체 서사도, 아내이신 김향안 작가와의 서사도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환기미술관은 김향안 작가가 직접 만드신 곳인데 공간도 멋있지만, 그 안에 전시된 김환기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김환기 작가의 편지와 책을 읽어보면 요즘 감성으로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영감받아요.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밑에서 배우고 일했던 김중업 건축가의 집이에요. 실제로 살던 집이라서 그분의 건축론을 그대로 반영한 공간이에요. 이곳을 알기 전까지 건축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빛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이 공간을 보고 아름답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면서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당시 제가 봤던 모든 것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었던 공간이고, 제 취향을 완전히 변화시킨 곳이기도 해요. 말 그대로 취향의 대격변을 경험한 곳이죠.

 허영은 객원 기자

사진 이명수 (아프로_이 스튜디오)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서점 그래픽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어른들의 취향 발견 아지트, 서점 그래픽

      : file no.1 : 어릴 적, 만화책에 빠졌던 당신을 위한 공간

▶ : file no.2 : 취향 좋은 어른들이 모이는 아지트

      : file no.3 : 우리 같이 놀아요

프로젝트
[Post-It] 서점 그래픽
장소
그래픽
주소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39길 33 그래픽
크리에이터
건축 | 오온건축사사무소, 캐릭터 디자인 | 서점 그래픽 디자인 팀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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