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8

어른들의 취향 발견 아지트, 서점 그래픽 ①

: file no.1 : 어릴 적, 만화책에 빠졌던 당신을 위한 공간
©강민구

Briefing

서점 그래픽

2023년.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에디터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건 슬램덩크다. 어렸을 때, 만화책방으로 뛰어가 1순위로 빌려봤던 만화인 슬램덩크가 2023년에 다시 유행할 줄이야. 감회가 새롭다고 하면 할미 감성일까?

 

사실, 에디터는 만화로 인생을 배웠다. <리얼(슬램덩크 작가의 또 다른 농구 만화다)>을 보면서 좌절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고, <리니지>를 보면서 운명의 가혹함을 느꼈으며, <데스노트>를 보고 선과 악을 고민했다. 만화 조기 교육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이제는 웹툰부터 그래픽 노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잡식러가 되었다. 만화의 거대한 세계관과 심오한 철학을 느낄 때마다 만화책을 저평가하는 말들에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만화가 얼마나 대단한데!

 

에디터와 동일한 주장을 하는 공간이 있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깊숙한 곳에 위치한 서점 그래픽이다. 소라처럼 생긴 독특한 외관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던 이곳은 무제한으로 만화책을 읽을 수 있고 고가의 아트북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평일에도 대기해야 하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게다가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전시까지 즐길 수 있다니. 시간만 허락한다면 하루 종일 있고 싶은 곳이다.

©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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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구겐하임

소라처럼 생긴 하얀색 외관을 가진 서점 그래픽은 ‘경리단길 구겐하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특별한 건물을 설계한 건 오온건축사사무소의 김종유 소장이다. 김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외장재의 독특한 질감은 종이의 결을 표현한 것으로, 두툼한 종이 사전 단면에서 영감받았다고 밝혔다. 만화책을 포함하여 ‘책’으로 이루어진 공간임을 제일 먼저 마주하는 외관에서부터 전달하게 디자인한 것이다.

 

서점 그래픽이 처음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독특한 형태는 물론, 문과 창문도 안 보이고 간판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건물을 돌아가야 보이는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야 한다. 어둡고 좁은 길을 지나면 어느 순간 확 트인 공간이 등장한다. 1층부터 3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내부 공간,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 각 층의 선반마다 빼곡히 꽂힌 책들. 서점 그래픽에 들어선 순간의 첫인상을 비유하자면 비밀의 도서관을 찾은 느낌이다. 이처럼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 확 트인 공간을 마주하는 시퀀스는 ‘숨은 아지트’와 같은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이다.

서점과 책방의 교집합인 서점 그래픽은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중요한 공간이다. 그래서 공간 설계에서 집중했던 포인트는 사람들의 독서 자세였다. 사람마다 책을 읽을 때, 편한 자세가 다르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독서 자세를 9가지로 분류하여 가구의 높이와 형태를 정했다. 그래서 그래픽에는 정말 다양한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다. 서점 그래픽의 매니저가 준 팁에 따르면, 조용하고 개인적인 공간을 원한다면 1층 계단 아래 좌석이 좋다고 한다. 구석진 곳이라 숨어서 책을 읽기 안성맞춤이다. 만약 정자세로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2층 탁자 좌석을 추천한다. 한편, 2층 구석에는 널찍한 소파가 있어 옛날 만화방처럼 누워서 볼 수 있다. 만약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싶다면 스피커가 빵빵한 3층이 좋다.

 

한편, 서점 그래픽에서는 창문을 보기 힘들다. 다른 건물처럼 외벽에 창문을 만들지 않는 대신, 천장에 창을 내어 자연광이 공간 전체에 부드럽게 퍼질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창이 없어도 밝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창을 최소한으로 만든 이유는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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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그래픽 사용설명서

어른들의 놀이터인 서점 그래픽은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 퇴근하고 잠깐 들려 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소리다. 이용 시간도 넉넉한데 가격도 착하다. 1만 5천 원만 내면 하루 종일 무제한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저녁에 오면 입장료가 더 저렴해진다. 여기에 더 놀라운 소식은 음료가 무제한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이다. 3층에 있는 바(Bar)에는 커피, 탄산음료, 물, 우유, 주스 등 다양한 음료가 구비되어 있어 책을 읽다가 목이 마르면 자유롭게 꺼내서 마실 수 있다.

 

서점 그래픽의 매력 중 하나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놀이터에서 술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술 종류도 다양하다. 맥주, 하이볼, 와인, 위스키까지. 취향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는데 맛도 좋다. 서점 그래픽은 음료, 술도 더 좋은 것을 찾아서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가격보다는 고객에게 더 좋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서울 이태원에 있는 공간인데 이용 시간에 제약이 없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서점 그래픽이 이러한 운영 방식을 고집하는 건 고객이 아닌 팬을 만들기 위해서고, 그래픽이 곧 론칭할 앱에 그래픽 팬들을 성공적으로 유입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이 편안하고 즐겁게 이 공간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객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고자 한다. 그래서 고객 중심의 다양한 서비스가 있다. 책을 읽다가 배고프면 중간에 나가서 밥을 먹고 들어와서 다시 이용해도 된다. 이때, 건물 밖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수 없다면 그건 무제한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자유롭게 나가서 밥을 먹을 수 있되, 나가기 전에 직원에게 말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외에도 쿠폰을 3개 모으면 1번 이용이 공짜이거나, 오래 기다리는 고객들을 위하여 주변 맛집 & 카페 지도를 제공하는 등 귀여운 혜택들로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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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하는 모든 만화책

서점 그래픽에는 그래픽 노블을 시작으로 순정, SF, 공포, 일상, 역사 등 다양한 주제의 만화책이 진열되어 있다. 보통 만화방에서는 가나다순으로 만화책을 배치한 것과 달리 서점 그래픽에서는 장르별로 구분했다. 마니아적인 장르도 오는 사람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장르를 세세하게 구분하고 1층의 잘 보이는 곳에 진열했다.

 

층마다 배치된 장르도 다른데, 1층은 그래픽 직원들이 추천하는 도서와 아트북이 중점으로 꽂혀 있다. 1층에서 주목할 점은 만화를 예술의 경지로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데즈카 오사무에 대한 존경이 느껴지는 동시에 서점 그래픽이 만화라는 장르를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그래픽 매장에만 4천 권이 넘는 만화책과 아트북이 진열되어 있다. <주술회전>과 같이 최근 인기가 높은 만화는 물론, 고전처럼 여겨지는 만화책까지도 보유하고 있다. 매장에 비치된 만화책은 수시로 업데이트가 되고, 창고의 보관한 만화책과 교환되기도 한다. 이 선택은 오롯이 그래픽 내 직원들의 몫이다.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책들을 계속 넣었다, 빼었다, 해요. 때로는 선반을 옮길 때도 있어요. 1층에 있던 책이 어느 날 2층에 있을 수도 있어요.” 이처럼 진열한 책을 자주 바꾸는 이유 역시 사람들에게 더욱더 다양한 만화와 그 장르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위치만 바꿔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책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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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라는 브랜드

그래픽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점 그래픽은 만화책을 포함한 모든 시각 예술을 다루는 공간이다. 그래서 다른 만화책방에는 없는 다양한 아트북이 자리 잡고 있다. 패션, 사진, 건축 등 아트북 역시 장르가 다양해서 시각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특히 작가, 디자이너)에게는 행복한 공간이 된다.

 

그래픽은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자기 이야기를 캐릭터로 전달한다. 그래픽의 마스코트, ‘만두’가 바로 그것이다. 한때는 만두의 정체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두더지와 오리너구리로 나뉘었는데, 그래픽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두더지’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만두라는 이름도 ‘만화 두더지’를 줄여서 지은 것이다.

귀여움이 강하다는 건 확실하지만, 왜 캐릭터를 내세워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을까? “만화를 다루는 곳으로써 우리를 대변할 시각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만화스러움과 귀여움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우리만의 마스코트를 만들자고 결정했죠.”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만두는 확실히 그래픽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다면 왜 두더지였을까? “서점 그래픽의 초창기 슬로건이 ‘디그 딥(Dig deep)’이었는데, 두더지가 땅을 깊게 파고들잖아요. 그처럼 그래픽도 고객들이 만화를 깊게 팔 수 있는 공간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두더지로 선택했어요.”

 

만두에서 시작한 귀여움은 그래픽의 다양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만두의 친구 중에는 부엉이와 오리너구리가 있는데, 부엉이는 저녁 7시 이후에 입장하는 고객에게 찍어주는 쿠폰 도장에서, 오리너구리도 입장 쿠폰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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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책방이 아닌 복합문화공간

서점 그래픽은 단순히 만화책과 아트북을 보는 공간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서 더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서점 그래픽을 다녀온 후기를 찾아보면, 의외로 플레이리스트가 좋았다는 평이 많다. 그래픽에는 하루 종일 음악이 흐르는데, 특히 3층에는 음향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음질이 풍부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다. 더 좋은 음악 감상을 위해 3층은 스피커의 위치까지 세심하게 계산되어 있다. 좌석과 가까운 스피커는 위로 향하게 하여 소리가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닿지 않게끔 조절했다. 반대 스피커는 아래로 향하게 하여 소리가 널리 울리도록 했다. 팝, 재즈, 록 등 장르 구분 없이 흘러나오는 플레이리스트의 뿌리는 서점 그래픽의 대표다. 물론 직원들도 플레이리스트를 추가하면서 공간 분위기를 조성한다. 플레이리스트도 진열된 책처럼, 공간에 안 어울린다 싶으면 의논해서 빼 버린다. 만약 공간에 어울리는 좋은 노래가 있으면 추가도 된다.

서점 그래픽은 시각 문화, 음악, 술, 미각 등 여러 문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을 꿈꾼다. 그의 정점은 전시다. 그래픽은 작년부터 직접 선정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여 방문객들이 만화책은 물론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는 경험을 전달했다. 그래픽의 전시는 단순히 보기만 하는 전시가 아니다. 작품과 고객이 서로 공감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보다 예술이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점 그래픽의 이러한 행보는 앞으로의 그래픽을 기대하게 만들고, 계속 방문하게 만드는 매력점이다.

허영은 객원 기자

사진 이명수 (아프로_이 스튜디오)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서점 그래픽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어른들의 취향 발견 아지트, 서점 그래픽

▶ : file no.1 : 어릴 적, 만화책에 빠졌던 당신을 위한 공간

      : file no.2 : 취향 좋은 어른들이 모이는 아지트

      : file no.3 : 우리 같이 놀아요

프로젝트
[Post-It] 서점 그래픽
장소
그래픽
주소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39길 33 그래픽
크리에이터
건축 | 오온건축사사무소, 캐릭터 디자인 | 서점 그래픽 디자인 팀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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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취향 발견 아지트, 서점 그래픽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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