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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시네마를 운영하는 ‘스페이스독’의 이한재 대표는 서울 연희동 토박이이자 시네필이다. 연희동에 복합문화공간을 기획해야 한다고 했을 때, 영화관이 떠오른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Interview with
이한재 스페이스독 대표
─ 연희동이라는 동네는 라이카시네마에도 남다른 의미를 지닐 것 같아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연희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동네’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에 가장 부합되는 지역이라는 게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요? 연희동 토박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지만, 스페이스독을 기획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왜 연희동을 계속 찾아오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다른 시각으로 보니까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동네다운 동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층 빌딩 없고, 골목길을 걸어 다니면 구경하기 좋은 작은 상점과 개성 있는 공간들이 몰려 있고, 산책하기에도 좋고요. 최근에는 콘텐츠적으로 매력적인 곳도 많이 생겼죠. 이런 분위기를 가진 동네가 많이 사라져서 오히려 희소성이 생겼고, 이를 그리워하고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더 찾아오는 것 같아요. 인프라는 크게 변하지 않는데 그 안의 조그마한 콘텐츠는 계속 변하는. 이런 매력들이 결합해서 연희동만의 색채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 동네가 매력적이어도 조금 우려되는 점도 있었을 텐데요.
연희동에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공간이 꽤 있지만 라이카시네마가 있는 골목은 중심 상권이 아니어서 유동 인구도 적으니 당연히 리스크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젊은 층 사이에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가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공간을 찾아가는 문화가 조성되고 있다는 생각에 일단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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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문화공간을 만들자고 하면 갤러리를 먼저 생각하는데 왜 영화관이었나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문화공간으로서 실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려면 어떤 공간이 있어야 할까?’였어요. 제가 영화를 좋아해서 마음이 끌린 이유도 있지만 일단 연희동에 없으면서 장벽이 높지 않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 장르를 고민하다가 영화를 떠올리게 되었죠. 저희보다 먼저 예술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던 에무시네마의 대표님께 조언을 얻으면서 더 확신했던 것 같아요.
─ 많은 장르 중에 예술영화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아니면 배급을 잘 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저희 스스로도 굳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보단 복합문화공간 내 영화관이라는 특성에 맞는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비해 독립예술영화의 팬층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지만 흥미롭고 경험하고 싶은 곳이 있으면 불편하고 생소하더라도 찾아가는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더욱 특정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해야 사람들이 찾아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니아라면 상황에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만족하잖아요. 영화도 그런 마니아층이 공고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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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을 짓겠다고 했을 때, 참고하거나 목표로 삼은 영화관이 있었나요?
롤모델은 없었어요. 롤모델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우리만의 영화관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최적화를 이루는 것에 신경을 더 썼던 것 같아요. 물론 제가 공간 기획이나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기획을 맡았을 땐 막연했죠. 그래서 다양한 곳을 찾아보고 미국, 일본, 독일 등 해외 영화관을 직접 탐방하면서 우리 영화관에 녹여낼 요소가 있는지 찾아보고 고민했어요.
─ 준비하면서 라이카시네마가 어떤 극장이 되길 바랐나요?
예술영화관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 혹은 예술영화관은 멀티플렉스관보다 낙후되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세련되고 편안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멋진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시설이 좋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게 상영관에 엄청 신경 썼죠. 제공하는 서비스와 콘텐츠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영화관의 본질은 ‘영화를 보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상영관에 충실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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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처럼 영화관의 본질적인 공간은 상영관이죠! 그렇다면 상영관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쾌적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는데, 특히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좌석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어느 자리에서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좌석 수를 억지로 늘리지 않았어요. 좌석을 많이 배치하면 매출엔 좋겠지만 저희는 상영관 크기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늘려도 지금의 2배 이상은 되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관객의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좋은 환경과 편안한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한 번 더 찾아오는 원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또 영화 보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우러나오게 만드는 환경은 극장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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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영화관을 찾는 관객 중에서도 라이카시네마를 찾는 관객은 어떤 분들일까요?
다른 예술영화관과 비교했을 때, 젊은 층이 많이 오세요. 아무래도 주변에 대학이 많다 보니까 대학생이 많이 오는데 비중이 제일 높은 건 20대 여성이에요. 영화에 관심과 애정이 깊은 분들도 오시지만, 연희동 주민이나 부담스럽지 않게 예술영화를 즐기고 싶은 분들도 오세요.
─ 상영 영화의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은 어떻게 맞추시나요? 이는 프로그램 구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영화관을 4년 정도 운영하다 보니까 예측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측에 도움 되는 데이터나 통계가 있지만 이젠 그 숫자에 기대지 않고 극장 운영 실정에 맞게 프로그래밍을 한 후, 관객 추이를 보면서 상황에 맞게 조금씩 변경하고 있어요. 최근 화제인 〈서브스턴스〉만 봐도 대중적인 영화가 아닌데 누적 관객 수가 33만이 넘을 정도로 잘 되고 있고, 작년에 개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봤거든요. 개인의 취향이 더 세분되면서 대중성이 성공의 기준이 되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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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비에 굿즈인 모자가 진열된 걸 봤어요. 왜 모자였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굿즈로 나오는 여러 가지 물건 중에서도 모자는 일상에서 가볍고 편하게 사용하기 좋아서 선택한 아이템이에요. 처음부터 너무 특이하거나, 실사용률이 떨어지는 굿즈를 제작하면 구매자도 곤란할 것 같아서 부담 없이 사용할 아이템을 찾다가 모자를 선택했죠. 모자는 연희동 내 쇼룸이 있는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서 만들었는데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연희동의 아티스트나 브랜드 혹은 문화예술과 관련된 공간과 협업해서 굿즈를 기획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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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 많이 줄었어요. OTT의 영향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부터 영화를 꼭 영화관에서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서 예술영화관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일단 존재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할 텐데요. 하하.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에요. 일단 영화관에 가서 시간에 맞는 영화를 보는 문화는 거의 사라졌고, 특정 영화를 개봉 시기에 맞춰 보러 가는 경우가 많아졌죠. 그 외의 영화는 집에서 OTT로 편하게 볼 수 있고요. 이 두 범위에 속하지 않는, 극장에서 볼 수밖에 없는 예술영화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올 거예요. 그러니 예술영화관은 예술영화를 꾸준히 잘 선보이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영화처럼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모여서 2시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비슷한 정서적 경험을 하는 콘텐츠는 많지 않죠. 사람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극장에 와서 영화를 보는 이유가 분명히 있고, 그 특별한 경험을 계속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도 있기 때문에 예술영화관은 변함없이 그 경험을 전달하는 곳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그 안에서 라이카시네마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시나요?
이전에는 ‘나만 아는 밴드’, ‘나만 아는 맛집’처럼 ‘나만 알고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인상이 드는 곳이었으면 했거든요. 지금은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붐비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라이카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즐기는 동안은 온전히 영화에 집중하면서 다른 생각을 이해하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저희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경험적 가치를 일관되게 전하는 공간이 되어야겠죠. 지금 오셨던 관객들이 몇 년 후에 왔을 때도 ‘라이카시네마에서 영화를 봐서 좋다, 편하다’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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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러 멀리서 시간을 내서 오는 관객들도 있으니까요. 그게 예술영화 관객의 숙명인 것 같아요.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멀리서 오신 분들이 힘들게 온 보람이 있다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동네 주민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또 가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공간이었으면 하고요. 집 앞에 멋진 공간이 생기면 마치 내 삶의 인프라도 좋아지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연희동 주민들에게는 편안한데 분위기도 괜찮은 공간이었으면 해요. 간단하게 딱 한 마디로 정의하면 ‘영화 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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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O
이한재 대표가 영감을 얻은 공간
우리 집을 꼽아도 될까요? 지금 사는 집에 18년 정도 살았는데 그 시간만큼 많은 추억이 서려 있거든요. 학교와 가까워서 술 마시다가 차가 끊기거나 술에 취해서 집에 가기 힘든 친구들이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잤어요.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장면을 마주한 공간이 되었는데, 이런 점이 영화의 속성과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에서 한 공간을 보여줘도 어떤 씬이냐에 따라 연출, 연기가 다 다르잖아요. 제 방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공간인데 오랫동안 굉장히 다채로운 장면이 펼쳐졌고 많은 이야기가 생겨났어요. 또, 일상과 비슷한 영화일수록 우리 마음에 다가온다는 점에서 제 일상을 가장 많이 보낸 집이 영화와 같다고 생각해요.
이한재 대표의 기억에 남은 영화관
라이카시네마 자료 조사를 하면서 해외 영화관을 다녔는데요. 두 군데가 기억나요. 하나는 미국의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 시네마(Alamo Drafthouse Cinema)’라는 영화관 체인으로 영화를 보면서 음식과 음료를 편하게 먹는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에요. 영화 상영 중에도 음식과 음료를 서빙하는데 아무도 그것이 방해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 상영 전에 프리쇼(Pre-show) 개념으로 단편 영화나 자체 제작 영화를 보여줄 때도 있어요. 두 번째 공간은 영국 런던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er)’라는 복합문화공간인데요. 영화관, 카페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조성된 걸 보고 영화를 즐기기 위한 최적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요소들을 결합하면 좋을지를 발견한 곳이에요.
라이카시네마
장소 라이카시네마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 8길 18, 스페이스독 1층
기획 이화유니폼(서기분 대표), 스페이스독(이한재 대표)
운영 스페이스독
건축 에이아키반 건축사
인테리어 코브스튜디오, 공간지훈(리모델링)
브랜딩 코브스튜디오
조경 슬로우파마씨
*3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허영은 객원 기자
사진 강현욱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스페이스독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가장 영화 같은 시간, 라이카시네마
: file no.2 : 작지만 큰 울림이 있는 영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