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군산에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있다. 약 210억 원의 민간 자본과 7년을 들여 조성한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이다. 재즈클럽과 바, 식당, 호텔 등이 모인 ‘놀이터’로, 2025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민간 주도 프로젝트 중 최초다. 물론 처음부터 이 규모를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재즈클럽 하나에서 출발했지만,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인접 건물을 매입하면서 프로젝트도 커졌다. 지난해 주요 공간이 문을 열었고, 올해 4월 호텔 인그리드까지 문을 열며 전체 모습을 갖췄다. 프로젝트를 이끈 송성진 대표를 만났다.
Interview with 송성진 대표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은 ‘공유인 유한회사’에서 출발했다. 송성진 대표를 비롯해 변호사, 교수, 의사, 사업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6명이 뜻을 모았다. 처음에는 세 사람이 27억 원을 모아서 시작했지만, 부지를 넓히고 계획을 확장하면서 210억 원의 자본이 투입됐다.
공유인 바깥에도 프로젝트와 느슨하게 연결된 이들이 있다. 송 대표가 지인들에게 “군산에 내려와 각자의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며 형성된 ‘프렌즈 그룹’이다. 대표적으로 미러볼뮤직 창립자 이창희 대표와 델리스파이스 김민규가 함께한 스테이 엘까미노가 있다. 김광철 대표의 그래픽숍, 서울가먼트클럽, 군산 신도시에서 자리를 옮긴 멜로우아웃 바버샵도 자리한다.
― 프로젝트가 완성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변화를 체감하나요?
리터닝 군산 프로젝트로 이 동네를 찾는 로컬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비어 있던 공간이 하나둘 채워진 게 더 의미가 깊어요. 공간 하나가 생긴다고 도시가 붐빌까요? 도시가 만들어지는 건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 모여들죠. 이곳에 새로 정착한 사람들이 다시 친구를 불러들이면서, 동네가 채워지고 있거든요. 이 관계를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일종의 연민이었어요. 어릴 때 뛰어놀던 동네가 쇠락한 모습을 보고 짠한 마음이 들었던거죠. 도시재생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소멸해가는 걸 생기가 있게 되살려놓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 완공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시작하고 계속 계획이 수정됐어요. 매입한 건물에는 100년 된 대들보가 있었는데, 옆 건물과 연결돼 있었어요. 이걸 보존하려다 보니 옆집까지 매입해야 했죠. 또 이 부지를 내려다보는 3층짜리 여관이 있었는데, 앞으로 어떤 시설이 들어올지 알 수 없더라고요. 그 건물을 매입해 새로 지은 게 호텔 인그리드예요.
오래된 목재를 보존하려니 공사 기간도 길어졌고요. 일반적인 공사처럼 철거할 수 없었어요. 일일이 해체하고 번호를 매겨 전북 장수에 있는 도편수의 작업장으로 보낸 뒤, 손을 보고 다시 군산으로 가져오는 방식으로 진행했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시간이 3년이 4년으로 늘어났죠. 프로젝트 전체로는 7년이 걸렸고요. 이 외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이 멤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공유인 멤버 중 누구도 투자금을 회수하고 팔고 나가겠다는 엑시트를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좋은 놀이터를 만들어 사람들이 잘 즐기면, 그만한 보람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죠. 그 마음에 공감한 사람들이었기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감사할 뿐이죠.
― 비즈니스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견디려면 비즈니스 감각은 필요해요.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도 엄밀히 말하면 비즈니스죠. 다만 저는 그 비율을 51대 49로 봐요. 비즈니스가 51이라면, 나머지 49는 우리가 타협하면서 잃어버린 가치들이죠. 당장 엄청난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그 균형이 오히려 시간을 견디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서울 서초동에서 레스토랑 ‘더바오포’를 10년간 운영했고, 군산으로 내려와 은파호숫가에 연 레스토랑도 올해로 16년 차예요.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 같아요. 균형을 유지할 때 오히려 오래 운영할 수 있다는걸요. 스스로 밸런스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군산에 재즈클럽을 연 이유
‘군산에는 3대가 없다’는 말이 있다. 1899년 개항 이후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라 토박이 문화가 옅고, 낯선 사람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는 의미다. 일제강점기에는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한 격자형 시가지가 조성됐고,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국 대중문화가 유입됐다. 식민 수탈의 역사와 미국 대중문화가 차례로 도시에 흔적을 남겼다.
― 소도시에 재즈 클럽을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오랫동안 꿈꿔왔는데, 고향인 군산에 돌아온 뒤 마음에 드는 공간을 발견했어요. 마음속으로 정해둔 조건에 딱 맞더라고요.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고 길의 코너였죠.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어요. 250평 규모의 부지에 재즈클럽과 칵테일 바, 레스토랑이 들어선 작은 놀이터를 생각했어요.
일본은 소도시에 가도 매일 연주가 열리는 라이브 클럽이 있거든요. 로컬에서도 음악을 듣는 일이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삶의 일부인 거죠. 반면 우리나라는 대도시에 편중돼 있어요. 얼마 전에는 부산에서도 오랫동안 운영하던 재즈클럽이 문을 닫았고요. 재즈클럽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시설이 그렇죠.
머디를 찾는 분들 중 절반은 군산 로컬 분들이고, 절반은 여행객이에요. 공연을 보고 돌아가실 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죠. 군산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다는 의미예요. 그게 꼭 재즈클럽이 아니어도요. 재즈라는 장르가 대중적으로 쉬운 음악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을 선보이는 클럽을 만들고 싶었어요.
중요한 건 로컬에서도 고유한 문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내가 사는 곳에도 문화가 존재하는구나’라고 느낄 때 그곳에 머물고 싶거든요. 맛집이 있다고, 혹은 멋진 건물이 있다고 그곳에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봐요.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도시를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죠.
― 완성된 ‘놀이터’를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여행 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으면 했어요. 골목을 돌아다니다 바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곳의 사람과 문화를 경험하는 거죠. 요즘 그런 분위기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탈리아어로 ‘소음’을 뜻하는 ‘일 키아소(il chiasso)’라는 말이 있어요. 그 단어로 식당 이름을 짓기도 했는데요. 사람들이 대화하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면 그 말이 떠올라요. 이곳이 그런 좋은 소음이 들리는 놀이터가 되면 좋겠어요. 요즘 사람들은 동네라는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동네는 골목을 돌아다니면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잘못까지도 감싸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죠. 김현철의 노래 〈동네〉에 나오는 그런 감각이요.
이곳의 삶을 궁금해하는 여행객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머물면서 도시의 정취와 분위기,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는 거죠. 낮과 밤의 군산 거리를 걸어보고, 불이 켜진 가게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보면 좋겠어요. 역사적인 장소들도 좋지만, 군산은 면적에 비해 좋은 바가 많거든요.
― 바요? 군산에 왜 좋은 바가 많나요?
바를 하는 친구들과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군산 애들이 좀 까졌잖아요”라고요(웃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런 거예요. 과거 항구도시로 번성했던 시기를 겪었고, 이후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는 바 문화가 발달했던 거죠. 어릴 때부터 그런 풍경을 경험했으니 자연스럽게 좋은 바가 많지 않겠냐고요. 실제로 미군 클럽에서 일했거나 미군 부대 근처에서 자란 분들이 많거든요.
바에 가면 자연스럽게 느낄 텐데요. 군산 분들이 오지랖도 넓어요. 바텐더와 얘기하고 있으면 갑자기 옆자리 손님이 대화에 들어올 거예요. 대도시에는 익명성이 있잖아요. 여기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동네예요. 저는 이런 성향도 역사의 영향이 있다고 봐요. 이방인들이 이곳을 고향처럼 여기며 살아온 도시잖아요. 3대 이상 뿌리내린 사람도 거의 없고요. 새로 온 사람을 봤을 때 경계하는 마음보다는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 같아요.
― 낯선 다정함이네요. 끝으로 꿈꾸는 목표가 있을까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하나예요. 프로젝트 리터닝 군산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로컬의 좋은 놀이터가 됐구나’ 싶을 만큼 자연스러운 배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을 돌아보면 결국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이곳에서 맺은 관계와 보낸 시간도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10년, 20년 이어지고 나면 알게 되겠죠. 사람들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힘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글 김지오 기자
자료제공 및 취재협조 리터닝 군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