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건물인 미래빌딩이 로우클래식의 사옥으로 재탄생하며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의상 제작을 위한 총체적인 체계를 갖춘 것은 물론, 전시부터 다양한 이벤트를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까지 품고 있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히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로우클래식과 이들의 구상을 선명히 하는 데 기여한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나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Interview with
이명신 로우클래식 대표 · 박진선 로우클래식 이사
이혜인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 브랜드 론칭 후 14년 만에 첫 사옥을 마련했어요. 신축이 아닌 오래된 건물의 리모델링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명신·박진선(이하 명신·진선)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사실 이미 점 찍어둔 건물이었어요. 저희가 브랜드 창업 후 줄곧 신당동 일대에서 근무해 왔는데요. 7년 전쯤 우연히 이 건물을 발견했는데 한눈에 반해 건물에 잠입했어요. 그러다 관리인분과 마주쳤는데 넉살 좋게 내부 안내를 받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감사하게도 건물 곳곳을 탐방시켜 줬어요. 미로 같은 구조에 안뜰부터 천창 등 건물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죠. 몇 년 후 매물이 나왔고, 여러 업체에서 비딩이 붙었는데 로우클래식 역시 그중 하나였어요. 사실 수지타산만 고려하면 건물을 허물고 빌라를 분양하면 남는 장사거든요. 실제로 대부분 이런 목적으로 접근했고 저희보다 조건도 훨씬 좋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소유주를 찾아가 건물의 활용 목적과 운영 계획 등을 찬찬히 설명해 드리며 간청했어요. 그분이 미래를 이끌 청년 사업가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신념이 있었는지 저희에게 기회를 주더라고요. 대의를 품고 했던 행동은 아니지만 미래빌딩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리모델링하는 결과를 낳았죠.
― 건물 매입 후 1년 이상 비워두며 리모델링 적임자를 찾아 나섰다고 들었어요. 결국 공간 디렉팅은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와 함께했고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명신·진선 오래된 건물이지만 대대적으로 손보지 말고 본연의 매력을 충실히 살리고 싶었어요. 이를 구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죠. 저희는 10년을 내다보고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기에 무엇이든 신중히 결단을 내리고 싶었거든요. 우연히 읽은 인터뷰를 통해 이혜인 디자이너의 철학과 작업 방식에 좋은 인상을 받았고, 이후 프리즈 행사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어요. 자연스럽게 미래빌딩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되면서 협업이 시작됐죠.
이혜인(이하 혜인) 대화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같이 일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만큼 합이 잘 맞았던 클라이언트이자 파트너예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있는 그대로의 멋을 더 아름답게 발현시켜달라는 요구였어요. 새로 고치거나 부수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다고요. 9월에 착수해 12월 말까지 사무 공간이라도 먼저 마무리하는 빠듯한 마감 일정이었는데도 선뜻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기존의 바닥과 벽, 마감을 크게 바꾸지 않고 기본적인 공사를 하면 되겠다는 그림이 그려졌거든요.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와 지향점을 이야기할 때 목표가 맞아떨어지기 쉽지 않은데 의사 결정 과정이 굉장히 순탄해서 추진력 있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 오래된 공간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만큼 기존의 골조에서 살릴 부분과 바꿀 부분을 선택하는 데 깊이 고심하셨을 것 같아요. 박공지붕과 천창도 기존의 것을 유지했다고요.
혜인 항상 공간을 다룰 때 기존의 상태를 최우선으로 존중해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근데 미래빌딩 프로젝트의 경우 그게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의 본질에 더욱 집중했죠. 작업에 착수했을 때 전기 등 건물 내 모든 게 철거되어 골조만 남은 상황이었는데요. 15년간 이 업을 해오며 쌓아온 감각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남길 것과 바꿀 것에 대한 판단이 빠르게 선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파사드는 절대 건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불가피하게 작업이 필요한 경우 이질적인 무언가를 들여놓기보다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연결되게끔 하려고 노력했어요. 가령 외벽 페인트가 벗겨진 경우 오래된 세월의 질감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조색을 여러 차례 했고요. 내부의 철제 난간도 낙후되고 부식된 것들만 교체했죠. 내부에 창이 유독 많은데 이게 전부 사이즈가 달라요. 그래서 담당 업체 쪽에서 실측을 다섯 차례 이상 했을 정도로 세심하게 맞춰 짠 거예요. 큰 창만 50여 개랍니다.
― 미래 빌딩 간판을 유지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어요. 깃발 형태의 로우클래식 사이니지도 시선을 끕니다.
명신·진선 외관에서 이곳이 로우클래식 사옥임을 강조하기보다 우회해서 살펴볼 수 있도록 했어요. 건물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냈을 때보다, 방문객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 의외성에 더 재미를 느끼는 것 같거든요.
혜인 미래빌딩 간판처럼 오래된 흔적이 남긴 미감은 절대 흉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 지하부터 3층까지 층별 공간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명신·진선 지하에는 칸틴(Canteen)과 정원이 있고요. 1층과 2층은 스토어와 작업실, 그리고 테라스로 이어집니다. 3층은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미래 프로젝트’라고 명명했어요. 앞서 잠시 언급했던 라운지에 대해서 덧붙여 설명하자면 사실 직원들이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거든요. 브랜드가 몸집이 커지고 구성원들 간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얼굴을 대면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 1층을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만들고 2층에 매장을 두자고 얘기했는데, 직원들이 알고보니 전부 내향형인 거예요. 매번 라운지에 저희만 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구성원들 동선을 관찰해 1층에 사무 공간과 영업 공간을 분리했고, 층별로 배치를 손보게 된 거예요. 미래빌딩 오픈 직후의 모습과 현재 모습이 현저히 차이가 있어요.
― 상공간과 오피스가 결합된 형태의 사옥입니다. 공간 설계 시 염두에 둔 점이 있다면요?
명신·진선 사무 공간을 먼저 완성한 후 리테일 공간을 완성하는 식으로 층별로 갖춰 나갔어요. 공간 오픈 후에도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해 동선을 계속 바꾸었죠. 오픈 후 공사를 쉬었던 적이 거의 없어요.
혜인 클라이언트의 파편적인 아이디어를 하나로 응집시키는 게 제 역할인데요. 샛길로 빠지면 다시 본 궤적으로 끌어와야 하는 거죠. 그래서 큰 그림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거듭 확인하며 최선의 선택이 있을지 고심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로 다른 성격을 띠는 공간을 묶어 놓는다고 해서 꼭 어색하지만은 않아요. 또 이 프로젝트는 계속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해 바꿔 나가는 부분도 있어서 아쉬운 점을 바로 개진할 수 있었고요. 예를 들어 1층에 휴게 공간인 라운지를 뒀는데, 생각보다 직원 활용도가 낮고 매장 이용객 동선에 혼동을 줄 수 있어서 이걸 빠르게 캐치한 후 2층으로 옮겼는데요. 덕분에 플로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고요.
― 공간 콘셉트를 1960년대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세웠습니다.
명신·진선 미래빌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1960년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도 과거 사람들이 생각한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잖아요. 그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가구였던 게 이제는 공산품이 된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고요.
혜인 개념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공간 디테일에서도 콘셉트를 엿볼 수 있어요. 전 층을 관통하는 지점에 키네틱 작품을 연출하고, 우물처럼 바닥이 움푹 파인 지점엔 라이팅을 넣어 미래적인 느낌을 연출하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거듭 리모델링을 거치며 현재는 로우클래식이라는 브랜드 정체성과 자연스럽게 융합됐다고 생각해요.
― 3층에 사용하지 않을 때는 비워두는 다목적 공간을 마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꽤 넓은 곳을 유휴 상태로 두게 될 때도 있는 건데 매출을 고려하면 브랜드 입장에서 아쉽진 않은지 궁금해요.
혜인 그저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목적으로 활용하니 되려 공간 활용도가 높다고 볼 수도 있거든요. 사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라 정말 목적이 있고, 브랜드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어디에 가치를 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명신·진선 애초에 매출만을 목표로 한 공간도 아닌 데다, 요즘 임대료 자체가 값비싸서 상상한 걸 언제나 실현할 수 있는 넓은 장소가 있다는 게 든든해요.
― 미래빌딩으로 사무실 이전 후 구성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걸 실감한다고요.
명신·진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브랜드 옷을 구성원들이 잘 안 입어서 고민이었어요. 간혹 그런 시기가 있거든요.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한 사람이 누구보다 그 옷에 애정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미래빌딩으로 일터를 옮긴 후 거짓말처럼 상황이 바뀌었죠. 슬리퍼 신고 출근하던 직원들이 약속한 것처럼 갑자기 향수를 뿌리고 근사하게 갖춰 입기 시작했어요. 브랜드와 공간 자체에 좀 더 주인 의식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시즌이 오픈되면 직원들이 매장에 모여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곤 해요. 이곳에 오고 나서 브랜드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음을 체감해요. 게다가 저희가 주말에 팝업 스토어 같은 행사를 열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있어요. 주말에 누가 직장가고 싶겠어요? 절대 강요 안 해요. 가끔 직원들이 저희보다 브랜드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 큰 기쁨을 느껴요.
혜인 정말이에요. 이 브랜드 샘플 세일 때 와보면 직원들이 다 쓸어가요(웃음).
― 이혜인 대표님께서 한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로우클래식 사옥 작업을 언급했어요. 창업 후 주에 5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을 정도로 많은 작업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수많은 프로젝트 가운데 이 프로젝트를 꼽은 이유가 궁금해요. 어떤 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혜인 앞서 말씀드린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특별한 건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라는 것? (웃음)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프로젝트예요. 사실 다른 프로젝트는 시작점과 맺음이 분명한 편인데 오픈 후에 다시 방문하는 걸 두려워하는 편이거든요. 매출이 일어나는 상공간의 경우 시간이 흐르면 처음 기획 의도와 많이 변하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짧은 기간에 효과적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곳이니까요. 본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는 경우 작업자 입장에서 아쉽긴 하죠. 근데 이 프로젝트는 그런 고민할 틈도 없이 계속 현재진행형이라 신기해요. 조금 더 좋은 선택이 없을지 끊임없이 클라이언트와 고민하는 경험이 흔치 않잖아요. 또 끝내버렸으면 아쉬웠을 수도 있는 작업을 다시 매만져 개진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고요. 10년이 지나고, 또 20년이 흘렀을 때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는 공간이에요.
― 이곳을 기점으로 브랜드가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기대되는데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를 들려주세요.
명신·진선 저희는 수치와 목표를 토대로 최소 1년여 기간을 내다보고 브랜드를 운영해요.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집행하기 위해서도 있고요. 그게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브랜드가 항상 상황이 좋을 리는 만무하거든요. 특히 경쟁이 치열한 여성복 시장은 더욱 그렇고요. 돌이켜봤을 때 저희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상황과 환경이 변화하면서 점차 나아지기도 하더라고요. 브랜드도 바이오리듬이 있거든요. 미래빌딩으로 이전하고 나서 신나고 즐거운 일이 가득 벌어지고 있는데 그 기운을 직원들도 느끼리라 믿어요. 구성원들과 지금처럼 즐겁게 오래도록 일하는 게 목표랍니다.
TPO
로우클래식이 생각하는 미래빌딩 내 영감의 원천
정원이 핵심이에요. 저희는 작업실에 꼭 푸르른 자연이 어우러지길 바랐거든요. 이 얘길 빼놓을 수 없는데, 공사하며 땅을 파니까 물이 콸콸 터졌었거든요. 당황할 법도 한데 저희는 ‘약수동이 약수터의 약수였다’라며 웃고 넘겼죠. 먼 미래를 내다보고 브랜드를 운영하면 조급해하지 않게 돼요. 혜인님이 꾸린 정원을 저희가 천천히 가꾸고 있어요. 최근에 덩쿨도 심었는데 나중에 외벽 모습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돼요.
이혜인 대표의 새로운 도전이 담긴 공간
2층 매장에 제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공간 콘셉트에 맞게 미래적이면서도 빈티지한 느낌을 내고자 에메랄드빛 유리와 매트한 금속을 접목해 제작했습니다. 두 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큼직한 사이즈로 묵직한 무게감을 가집니다. 그동안 의자 디자인은 빌트인 된 집기나 구조물과는 다르게 산업 디자이너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감히 다룰 생각을 못 했거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공간 전반의 디렉팅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는 의자까지 만들게 되어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3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김세음 객원 기자
사진 강현욱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로우클래식,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미래와 조우한 클래식, 로우클래식 미래빌딩
: file no.1 : 로우클래식의 변곡점이자 신당동의 구심점
: file no.2 : 브랜드 기류를 뒤흔든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