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3

당신의 곁에 와인 한 잔을, 탭샵바 ①

: file no.1 : 탭샵바에서 보낸 하루
탭샵바 도산대로점

Briefing

탭샵바

2022년 12월 서울 동대문에 첫 매장을 연 탭샵바. 이 브랜드의 정체는 ‘탭샵바(TAP SHOP BAR)’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탭샵바는 여러 탭(TAP)으로 다양한 와인을 맛보고, 원하는 와인을 구매(SHOP)하거나 홀로 혹은 함께 바(BAR)에 앉아 와인과 요리를 즐기는 공간을 지향한다. 서울 동대문점을 시작으로 지난해 6월 청계천점, 10월 도산대로점을 오픈하며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도산대로점 홀의 모습. 우측 노란색 PVC 장막 뒤에는 단체석이 있다.

탭샵바의 캐치프레이즈는 ‘WINE IS SECOND AMERICANO(와인은 두 번째 아메리카노)’. 와인이 일상 속 커피 한 잔처럼 편안한 음료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은 문장이자, 한국의 술 문화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싶다는 나기정 탭샵바 대표의 원대한 꿈을 드러내는 문장이기도 하다. “오늘 마시고 죽자 하고 고주망태가 되는 술 문화가 아니라, 카페에서 커피 마시듯 가볍게 한 잔 마시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와인이라는 매력적인 술을 대중화하고 싶다는 꿈을 오래 품어 왔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탭샵바가 동대문, 청계천, 도산대로라는 도심 입지를 선택한 까닭을 알게 된다.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 실제로 나기정 대표는 ‘와인 대중화’라는 꿈을 20여 년간 품어 왔다. 탭샵바는 그가 와인주막차차, 와인도깨비, 부라타랩 등에 이어 론칭한 새로운 브랜드다. “20년 동안 브랜드 여덟 개를 오픈하고 삼십 군데가 넘는 매장을 닫아 봤어요.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겠어요. 탭샵바는 제가 끝내 도달한 결론입니다.”

자신 있게 말하는 나기정 대표의 탭샵바는 어떻게 문화를 만들어 나가게 될까? 콘셉트부터 인테리어, 브랜딩과 디자인, 비즈니스 모델까지, 바깥의 날씨를 고스란히 머금는 도산대로점에 종일 머무르며 보고 들은 탭샵바의 면면을 세 편에 걸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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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탭 구성

탭샵바를 알기 위해, 이 브랜드가 설계한 탭과 샵, 바에 이르는 모든 시스템을 경험했다. 도산대로점에는 80여 종의 와인 및 기타 주류를 맛볼 수 있는 탭 디스펜서가 준비돼 있다. 창을 등지고 기다랗게 늘어선 수십 개의 탭 앞으로 다가섰다. 탭 디스펜서는 다양한 기준으로 나뉘어 있다.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등 포도의 품종,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칠레 등 산지, 포트&쉐리나 스위트 와인처럼 특성까지 여러 기준으로 분류돼 있어 맛보고 싶은 와인의 카테고리부터 생각하게 됐다.

늘어선 탭 디스펜서 ​

탭샵바의 탭이 현재의 기준으로 분류되기까지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나기정 대표에 따르면, 초기 탭 디스펜서는 와인 애호가들이 이름만 들어도 설렐 고급 와인들을 여럿 갖추고 있었다고. “제가 이미 와인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 사람들이 한 잔씩 마신다면 당연히 평소 접하기 어려운 프리미엄 와인을 고를 거라 생각했어요. 버건디, 보르도 같은 기준으로 탭을 나눠두고요. 매니악했죠.” 그가 야심 차게 탭에 들여놓은 고급 와인들이 품질 유지 기한 내 팔리지 않아 고스란히 손실이 되자, 나 대표는 빠르게 선택을 되돌아보고 다시 판단한다.

“‘일상의 공간’이라는 탭샵바의 기본 콘셉트와 이제 막 와인을 접하는 20~30대라는 주요 타깃을 한 번 더 떠올렸어요. 쉽고 접근성 높은 기준을 세우고 탭 그룹을 재분류했죠. 탭샵바는 사계절 내내 굴을 내놓기 때문에, 굴과 어울리는 샤블리(Chablis)만은 포기하지 못했지만요.” (웃음) 그 결과 와인 초심자라고 하더라도, 이곳의 수많은 탭 앞에서 막막해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한결 익숙하고 친근해진 분류 기준이 탭 시스템의 진입장벽을 낮춘 것이다.

디스펜서의 디스플레이를 보고 해당 디스펜서에 어떤 종류의 와인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낮이니까 산뜻한 소비뇽 블랑에 도전해 볼까?’ ‘칠레 와인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던데, 칠레 와인을 선택할까?’ 행복한 고민이 이어졌다. 마침내 발길이 멈춘 곳은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생산된 샤블리 디스펜서 앞. 마트나 와인 숍에서 와인을 고를 때, 샤블리는 평균 가격대가 다소 높게 느껴져 선뜻 구매하지 못했던 종류다. 그러나 이곳의 탭은 한 잔(80ml) 혹은 테이스팅(30ml) 중 원하는 양을 골라 맛볼 수 있도록 시스템화되어 있다. 잔 단위로 판매하므로 한 잔 가격은 비교적 부담이 없고, 덕분에 평소 궁금했던 스타일의 와인에 도전해 볼 만했다.

펜로즈 삼각형 모양의 탭샵바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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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디자인된 사용자 경험

원하는 카테고리의 디스펜서를 정했다면, 해당 디스펜서 안에 비치된 와인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차례. 정면의 디스플레이를 터치하면 디스펜서 안의 와인 정보가 표시된다. 생산 국가와 와이너리 명부터 포도 품종, 향과 풍미, 당도와 바디, 산도와 탄닌 등의 정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한 잔을 마실 것인지 한 모금만 음미할 것인지 생각하고, 전자라면 한 잔(A Glass) 버튼을, 후자라면 테이스팅(Tasting) 버튼을 누른다. QR 코드로 결제하고 몇 초 후 탭에서 정확한 양의 와인이 흘러나왔다.

디스플레이를 터치하면, 세부 와인 정보가 나타난다.(좌) 휴대폰 웹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선불 금액을 충전한 후, QR코드를 디스펜서에 찍으면 결제된다.(우)

펍이나 바에 적용된 탭 시스템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주류업계가 탭을 사용해 온 세월이 꽤 긴 데다 최근 몇 년 사이 셀프 탭 시스템을 갖춘 수제맥주 펍이 서울 번화가 중심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탭샵바의 탭 시스템을 경험하면서는 이전까지의 탭 사용 경험과 사뭇 다른 감상을 받았다. 터치하면 부드럽게 표시되었다가 서서히 디졸브(dissolve)되는 디스플레이의 변화 속도라든지 와인 토출구의 우아한 곡선, 토출구에서 와인이 흘러나오는 모양이나 템포까지 정교하게 디자인한 것임이 느껴졌기 때문.

알맞은 속도로 흘러나오는 와인

이는 나기정 대표와 협력해 탭샵바 브랜딩과 디렉팅, 설계와 디자인을 담당한 브랜딩 프로덕션 쓰쿠루(TSUKURU)가 구현했다. “디스펜서는 당연히 기계이지만, 기계라는 사실이 너무도 드러나는 요소들, 이를테면 토출구의 구멍 같은 부분을 전부 디자인해서 바꿨습니다.” 박수철 쓰쿠루 대표가 설명했다. “디스플레이에 화면이 표시되고 사라지는 전 과정의 레벨 역시 탭샵바가 전하려는 경험에 맞춰 새로 설계했고요. 사실 탭이나 디스펜서는 존재한 지 오래된 시스템이잖아요.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사람들이 세련되고 편안하다고 느낄지 깊이 고민했죠.”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토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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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지점을 다르고 같게 하는 것

샤블리 한 잔을 든 채 공간을 둘러봤다. 도산대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빌딩 3층에 자리 잡은 도산대로점에서는 아늑한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주요 소재로 붉은 벽돌을 사용했기 때문. 탭샵바는 전 지점의 인테리어 콘셉트를 각기 다르게 조성하고 있다. 1호점인 동대문점에는 콘크리트와 스틸, 2호점 청계천점에는 목재, 3호점인 도산대로점에는 적벽돌과 PVC가 주요 소재로 쓰였다. 지점마다 분위기를 달리해, 한 지점에서 만족한 고객이 다른 지점에도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것.

적벽돌을 주요 소재로 사용한 도산대로점

“청계천점에 만족한 분이 도산대로점은 어떨까? 하고 궁금해한다면 좋겠어요. 여러 지점을 투어하듯 즐기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라죠.” 인테리어 콘셉트를 구상한 박수철 쓰쿠루 대표의 설명이다. 모든 매장의 분위기가 다르다면, ‘탭샵바’라는 브랜드 정체성은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레드와 블루, 옐로우라는 세 가지 메인 컬러를 전 매장에 같은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탭 영역에는 빨강, 샵 영역에는 파랑, 바 영역에는 노랑이라는 공식을 전 매장에 적용하죠.” 설명을 듣고 나니 공간이 다르게 보였다. 홀과 룸을 나누는 PVC 커튼의 색이 노란색인 건 그 구역이 바 영역이기 때문이고, 구매 가능한 와인들을 진열한 와인 수납장이 파란색인 건 샵의 영역이기 때문인 셈이다. 이 공식이 탭샵바의 모든 지점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탭의 빨강, 샵의 진열장은 파랑
바 영역의 퇴식구는 노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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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물러도 좋은 공간

저녁이 가까워지니 많은 사람들로 공간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주점이라면 으레 소란스러워 목소리를 키워야 하기 마련. 그런데 이곳에서 이어지는 대화는 꾸준히 편안했다. 까닭을 물으니 천장 전체에 흡음 페인트를 시공했다는 박수철 쓰쿠루 대표의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대화가 되는 공간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무척 높다고 느껴요. 너무 많은 공간이 쉽게 시끄러워지죠. 대화할 때 목에 힘을 잔뜩 줘야 하고요. 탭샵바는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길 바랐어요. 바로 눈에 띄는 요소가 아닌데도 흡음 페인트 시공을 고집한 이유예요.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야말로 결국 힘이 있지 않을까요?”

흡음 페인트로 시공한 천장. 덕분에 소리가 울리지 않아 대화할 때 목청을 키울 필요가 없다.

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레 그곳의 크고 작은 요소를 경험하게 된다. 도산대로점에서 오전과 오후를 보내며 탭 리스트부터 와인 진열장을 살피다 보니, 탭과 바 영역이 샵 영역과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설계되었음을 알게 됐다. 탭으로 한 잔 마신 와인이 마음에 들었다면, 해당 와인을 샵에서 보틀로 구매할 수 있다. 또 샵에서 먼저 보틀을 구매한 후 추가 요금 없이 바에서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와인 업계에서 오래 일해 온 나기정 대표의 경험과 유통망 덕분에, 보틀 가격 역시 아웃렛 가격과 엇비슷하게 책정할 수 있었다고.

샵에서 구매할 수 있는 와인 일부

와인을 대중화하겠다는 나기정 탭샵바 대표의 오랜 꿈. 그 꿈에 공감해 고객 접점의 브랜딩과 디자인 요소를 전담한 쓰쿠루라는 파트너. 이들은 커피 마시듯 와인을 마실 수 있고, 카페 들르듯 들를 수 있는 탭샵바를 기획했지만, 훨씬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탭샵바 시스템을 전 세계가 다 쓰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믿음이 있고요.” 나기정 탭샵바 대표는 어떤 비전을 그리고 있을까? 그의 인터뷰가 2편에서 이어진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김유영 기자

사진 표기식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탭샵바, 쓰쿠루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당신의 곁에 와인 한 잔을, 탭샵바

▶ : file no.1 : 탭샵바에서 보낸 하루

      : file no.2 : 와인으로 꾸는 꿈

      : file no.3 : 하나쯤 비틀어 빚은 공간

프로젝트
[Post-It] 탭샵바
장소
탭샵바 도산대로점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50, 3층
시간
11:00 ~ 24:00
기획자/디렉터
기획자/디렉터 나기정(탭샵바 대표), 박수철(브랜딩 프로덕션 TSUKURU 대표) 크리에이터 설계 및 디자인 | 박수철, 이현준(쓰쿠루TSUKURU) 시공 및 협력 | 임도제, 권순상(디스림Thislim)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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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곁에 와인 한 잔을, 탭샵바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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