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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home seoul home] 8. ‘당신 근처’에서 빛나는 것을 모아다가

91년생 이연화의 대조동 집
서울의 집을 보여주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꿈처럼’ 아름다운 집보다는 생활감이 잔뜩 묻은 집, 사는 사람이 선명하게 보이는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과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실과 취향이 어떻게 어긋나고 맞물리는지, 한정된 자원 안에서 무얼 취하고 단념하는지, 왜 이 브랜드가 여기 놓였는지 듣습니다. 누군가의 방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속의 삶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뮤지션 RM은 그의 곡 ‘seoul’에서 노래합니다. “빌딩과 차들만 가득해도 이젠 여기가 나의 집”이라고,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말이면 I love you Seoul”이라고요. 어쨌든 서울을 집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홈 서울 홈(home seoul home) 취재를 위해 여덟 번째로 찾은 곳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 1991년생 이연화가 사는 다세대 주택이다. 청주에 살던 그는 2016년 서울에 왔다. 공기가 불쑥 차가워진 날 이연화의 집을 찾았다. 귤과 생강차가 놓인 자개상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yhgh0000

현관으로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자리한 공간. 거실 역할을 하는 공간을 이렇게 꾸며 두었다. ⓒ designpress

반갑게 맞아줘서 고맙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은평구 대조동에 사는 91년생 이연화다. 지난 편에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다. 프리랜서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박물관을 기반으로 한 문화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을 한다. 활동할 때 사용하는 닉네임은 ‘파랑~’이다.

하루를 보통 어떻게 보내나.

강박 아닌 강박인데, 늦게 일어나면 제대로 살지 않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여섯 시 반쯤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 일정이 있으면 일정을 소화하고, 일정이 없는 날엔 책을 읽거나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한다. 혼자 집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불안해지기 쉬워서 독서 모임이나 루틴 모임에 참여할 때도 있다.

큰방에서 마주 앉았다. ⓒ designpress

서울에 산 지는 얼마나 됐나?

2016년에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왔다. 본가인 청주에서 부모님과 살며 직장 생활을 하다가 2년 정도 지나니 더 견딜 수가 없어서… 도피하듯 대학원을 선택했다. 당시 나는 회사에서 서류 정산 업무를 담당했는데, 그 일이 너무 맞지 않아서 무지하게 괴로웠거든. 대학원에서는 늘 관심이 있었던 박물관 교육을 전공했다.

서울에서의 첫 집에 대해 들려 달라.

쌍둥이 동생이 있다. 동생은 일을 하느라 먼저 서울에 와 있었기에 둘이 함께 살았다. 옥탑방 투룸에서 4년 정도 살았고 동생이 이직하면서 목동으로 이사했다. 동생의 결혼을 계기로 처음 완전히 혼자 살게 됐다.

광각으로 찍은 큰 방. 사진 우측 하단 방향, 보이지 않는 쪽에 매트리스가 있다. ⓒ designpress

목동에 살다가 은평구 대조동으로 왔다. 아예 다른 동네를 선택했네?

나는 종종 동생을 엄마와 아빠에 이은 세 번째 양육자라고 표현한다. 그 정도로 동생에게 깊이 의지했다. 이사를 기점으로 완전히 독립하자고 결심했다. 목동과 가까운 동네로 가면,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분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목동과 멀리 떨어진 동네로 가자고 생각했지. 마침 친구들이 은평구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은평구엔 이런 것도 있다, 저런 것도 있다… 자랑을 많이 했다. 근데 그 자랑이 직접적으로 내게 유효했다기보다는 그런 얘기를 들려주는 친구들이 이 동네에 산다는 사실이 유효했다. 스스로 삶의 요소를 구성한다면, 내게 친구들은 늘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니까. 은평구를 서울의 고향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다.

은평구의 수많은 집 중에서도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내 자금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집 중에 비교적 넓었다. 또 대출을 받아야 했기에 건축대장을 확인했을 때 문제가 없는 집이어야 했는데 그 조건도 충족했다. 내가 하는 일로 대출을 감당해야 하니까 너무 큰 금액을 대출받기도 부담스러웠다. 엄청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출을 받고, 그 금액으로 가능한 집 중 마음에 든 곳을 선택한 거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방이 큰 편인데, 탁 트인 느낌이 왠지 좋았다.

천으로 덮어 둔 것은 종이.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쓴다. ⓒ designpress
파란색 수채 물감만 사용하므로 붓에도 파란 물이 들었다. ⓒ designpress
이연화의 그림과 글씨들 ⓒ designpress
이연화의 그림과 글씨들 ⓒ designpress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상태는 어땠나?

관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주인이 관리하기를 포기한 집처럼 보였다. 장미 시트지와 연두색 벽지가 기억난다. 그것만은 참기가 힘들어서 벽지만 하얀색으로 바꿨다.

홀로 독립한 후 첫 집이다. 어떻게 해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동생과 같이 살 때는 보통 동생의 취향이나 의견을 따르곤 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이나 취향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선 이사할 때 그대로 들고 온 침대와 큰 책상만 두고, 살면서 천천히 채워 나갔다. 일 년 반 정도 살고 나니 집의 꼴을 갖추기는 했는데 그전까지는 누가 봐도 ‘아, 이사한 지 얼마 안 됐구나’ 하는 집이었다.

큰방 안쪽에서 바라본 문쪽. 광각으로 찍었다. ⓒ designpress
큰방 문을 열고 바라본 모습. 천 뒤에는 주방이 있다. ⓒ designpress
소박한 느낌의 천 행주는 잘 쓰지 않아 장식이 되어버렸다고. ⓒ designpress

천천히 하나씩 채워 나가다 보니 어떤 공간이 되던가?

집을 채우는 동시에 프리랜서로서 나의 삶과 미래도 생각해야 했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그러려면 내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가를 고민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건을 하나씩 들였다. 물건 하나하나가 너무 좋아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어서 들인 것은 아니다. 아직 내게 엄청난 안목이나 감식안이 있지도 않다. 쓸 수 있는 에너지와 비용도 한정돼 있지. 현재 내게 주어진 조건을 고려해서, 나 보기에도 좋고 타인에게 보여줄 때도 괜찮은 수준의 물건을 들였다. 지금 이 집은 그런 물건들이 있는 공간이다.

당근으로 구한 함. 붉은 옻칠이 되어 있다. 자물쇠를 여는 디테일이 독특하다. ⓒ designpress

많은 이들이 그런 조건에 맞춰서 집에 둘 물건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집 풍경이 인터넷에서 쉽게 만나는 자취 집의 이미지와 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의 고가구나 수석, 자개상 등이 놓여 있어서다. 전통적인 것에 관심이 있고, 당신이 하는 일 역시 이와 관련하기 때문인가?

나도 디자인 가구가 등장하는 잡지를 즐겨 본다. 잡지에서 스웨덴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가구, 60년대 유럽에서 만들어진 조명 같은 걸 보면 좋다.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그걸 내내 바라면서 산다는 건, 현재의 내가 계속 무언가를 유예하면서 사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지금 내 수준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맥락에서 자연스러운 것을 선택한 것뿐이다. 또 주변에서 구한 오래된 물건이 끌고 오는 정보가 흥미롭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 병풍에는 도자기 모양 자수가 놓여 있다. 폭마다 수 놓인 도자기의 이름도 쓰여 있지. 알아보니 이런 형태의 병풍은 1970~80년대 혼수품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 집에 들인 물건들이 대단한 값어치를 가진 고미술품인 것은 아니다. 그저 이런 물건에 담긴 이야기가 재미있고 파고들다 보면 공부가 된다. 반대로 공부를 하다가 어떤 물건이 갖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고. 뭔가 갖고 싶어지면 오늘의집이나 쿠팡보다 당근에 먼저 검색해 보는 습관이 들었다. (웃음)

큰 방의 병풍. 원래 8첩인데 2첩만 보이게 접어 두었다. 각 도자기 이름이 한자로 쓰여 있다. 바탕이 단순해서 더 좋았다고 한다. ⓒ designpress

오래된 물건을 큐레이션 해 파는 숍이나 전문 상점도 있다. 당근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은평구를 고향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이사를 왔다고 했잖아, 동네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당근 거래를 하다 보면 물건을 찾으러 오고 가느라 자연스럽게 동네를 살피게 된다. 또 사람을 아주 피상적으로 만나는 것이긴 해도 어쩔 수 없이 에피소드가 쌓이거든. 나는 그것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물건을 어떤 사람이 썼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도, 짤막하게나마 얽힌 이야기를 듣는 일도 좋다. 또 지역이 은평구라서 오래된 물건이 더 잘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내가 공부를 더 깊게 하고, 돈도 더 많이 번다면 고미술품이나 고급 고가구 상점에서 좀 더 미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살 수도 있겠지. 그게 다음 스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런 물건들을 사서 들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병풍이나 고가구를 파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었나?

이사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이나 부모님의 짐을 정리하려는 분들이 많다. 당근 거래할 때는 아주 꼼꼼하게 따져보고 구매할 순 없어서 ‘후회하지는 않을 정도’의 질과 가격이면 그냥 산다.

현관에서 들어서서 정면에 보이는 모습. 살구색 천으로 가린 곳이 옷방이다. ⓒ designpress
위 사진 속 둥그런 조명이 올려져 있는 장식장 역시 당근으로 구한 것. 장식장 윗면을 뒤집으면 재미난 이야기가 쓰여 있다. ⓒ designpress

이 집의 공간은 어떻게 나눴나?

처음에는 지금 옷방으로 쓰고 있는 작은 방을 침실로 썼다.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필요했거든. 그래서 큰 방을 손님이 드나드는 방으로 쓰고 작은 방을 침실로 사용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거실에 옷과 짐을 보관했다. 긴 봉을 달아 천으로 가려 두곤 했다.

옷방 쪽에서 바라본 현관 쪽. 좌측 문이 화장실이다. 화장실에 수건과 휴지를 두고 싶지 않아서 문에 거치대를 달았다. ⓒ designpress

사랑방이 필요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내겐 늘 공적 공간이 필요하다. 사적 공간은 잠을 잘 수 있고 조그만 책상 하나만 둘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사람을 모으고 여러 일을 벌이는 것이 내겐 중요하거든. 이 집에 살게 된 후 2년 정도는 정말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일례로 내가 ‘반갑잔치’라 이름 붙인 서른 살 생일 파티만 다섯 번을 했다. 각각 다른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렇게 외향적이지도 않고 파티형 인간도 아닌데,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지금 책상으로 쓰는 커다란 테이블을 방 가운데 뒀었다. 테이블이 커서 여섯 명은 둘러앉을 수 있다.

왜 그런 잔치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30대가 되는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서른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 게 아닐까? 나 역시 서른이 인생의 특별한 길목처럼 느껴져서 어떻게든 기념하고 싶었다. 기념하고 싶다면 기념일로 만들면 되지? 생각하곤 백일잔치와 돌잔치를 떠올렸다. 이 잔치들은 정말 ‘축하한다’라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행사이지 않나. 사실 백일이나 돌을 맞은 당사자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웃음) 그런 잔치를 서른에도 하고 싶었다. 환갑의 반이니까 반갑잔치라고 이름 지었다. 어릴 땐 서른쯤 되면 무언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서른이 되어 보니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 이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조금씩 감이 잡히는 정도랄까. 이런 상태 그대로를 축복하고 축복받고 싶었다.

어떤 발상이 떠오르면 구체화하고, 그에 알맞은 해결책이나 행사를 기획하는 편인 듯하다. 정리하고 묶고 풀어내는 일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러면 사랑방으로 쓰던 큰 방을 침실이자 생활 공간으로 바꾸고, 침실로 쓰던 작은 방을 옷방이자 창고로 바꾼 이유는 뭔가? 일상이 바뀌어서?

사람을 모으고 이런저런 일을 벌이는 것도 혼자서 하려니 쉽지 않더라. 2년을 하니까 소진이 됐다. 공적인 일을 벌일 공간은 다시 도모해 보기로 하고, 이전보다 편안한 생활을 위해서 구조를 바꿨다. 큰 방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작업도 한다.

옷방 입구 ⓒ designpress
수납 랙을 가린 천은 전통 혼례에 쓰이는 것이다. ⓒ designpress

책상을 제외하고는 좌식 가구로 방을 채웠다. 좌식 생활을 선호하나.

집이 넓지 않으니 낮은 가구로 채우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또 겨울엔 외풍이 있어 춥더라고. 좌식이 좀 더 따뜻하다. 책상에서 작업하다가 자개상에서 작업하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한다.

당근에서 구한 물건들 사이에 놓인 도잠의 소반이 눈에 띈다.

이 집에도 기준점이 되는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도잠의 가구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가고자 하는 길과 방향이 닮은 브랜드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들어도 무겁지 않고, 전통적인 디자인을 가졌으면서도 재료가 너무 부담스럽지 않다. 도잠의 탁상을 산 이후로 이 집에 물건을 들일 때마다 웬만하면 나 혼자 들 수 있는 가구들을 고르게 되더라.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수납함이자 탁상으로 사용하는 도잠의 OLIDA 소반. 뒤에 놓인 작은 의자는 반갑잔치 때 사용했던 의자. 두 가구의 높이가 딱 맞는다. ⓒ designpress
자개상에서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 designpress

원래 짐을 두었던 거실은 이제 그저 ‘보는 공간’이 됐다. 병풍은 물론 수석, 옻칠한 가구 등 당신이 모은 물건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바라보는 공간이 당신에게는 필요했나.

그렇다. 거기 둔 물건들은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삶과 일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삶을 더 풍부하게 하는 텍스트가 되어 주기도 하거든. 그런 물건들에 공간을 할애하는 게 아깝지 않다. 이미지에 갇힌 삶을 살지는 말자고 늘 다짐한다. 당근에서 구한 물건이 이 공간에도 많은데, 그 물건들은 실사용자가 존재한 것들이고, 누군가의 애정을 받았을 테고, 구체적인 사연이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이 이 공간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생활과 닿아 있는 대상으로 말미암아 사유를 시작하는 것 같네. 좀 더 나의 일상과 가까운 이야기에서 생각을 시작해 나아가는 편인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할 때,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에서 모티프를 얻는 것 같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위인전보다 SNS를 더 열심히 본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올리는 생각이나 이미지가 내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이라고 생각하거든. 또 영화나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지만 제작기 영상이나 배우 인터뷰 기사, 코멘터리 영상은 매우 좋아한다. 하나의 작업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과정을 거쳤고, 그 모든 게 어떻게 결합해서 결과가 만들어졌는지 알아가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

병풍 뒤로 보이는 장식장 역시 붉은 옻칠이 되어 있다. 이연화는 물건을 하나씩 들이면서 자신이 붉은 옻칠을 한 물건을 예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 designpress

이 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일과 삶의 배경이 되는 곳. 내 이야기가 단단해지는 터. 너무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 곳, 그래서 떠나게 된다면 좀 홀가분할 것 같기도 한 곳.

당신에겐 이 집이 프로젝트를 떠올리고 실행하는 공간이기도 했으니까. 마냥 안식처는 아니었구나.

속이 시끄러워서 집에 머무르기 힘들 때도 있었다.

금속 공예가 소을 크래프트(@soeul_craft)의 공방에서 사 온 작품 ⓒ designpress
클래스를 들으며 직접 만든 의자 ⓒ designpress

물건을 하나하나 들일 때도, 공간을 구획할 때도 휴식보다는 당신의 미래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먼저 고려했으니 그럴 만하다. 스스로 일구고 만들어 나가는 이 삶이 마음에 드나?

생각보다 속도는 너무 안 나지만 재미있다. 가면 갈수록 덜 외롭다. 물론 돈을 버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 (웃음) 그래서 하기 싫은 외주 일도 성실하게 하고 있다.

살고 싶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해내는 거지?

그렇다. 하지만 그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나’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의 나’를 더 근사하게 보이게 해준다는 것도 안다. 사람들을 모으고 이야기를 만들 때, 내가 기관들과 협업했다는 사실이 도움이 되거든.

사람이 궁금하고, 그들을 모아 뭔가 해보고 싶고,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마침내 실행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누워 있을 때 가장 행복하기는 한데… 그러는 동시에 누워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청주에서 직장을 다닐 때 월급은 적지만 정직원이었고 호봉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고, 야근도 거의 없었다. 일도 할 만했고 출퇴근길이 고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토록 괴롭고 고통스럽지? 번민했다. 결국 깨달은 게 나는 번거롭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몸이 편해서 행복할 수 있었다면 직장 생활을 할 때 행복했어야 했다. 바깥에서 일을 벌이며 번거롭게 살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쉴 수 있는 침대만 하나 있다면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거실 쪽에서 바라본 현관과 주방 쪽. 신발장 옆 동그란 함은 당근에서 구한 화문석 함. 잡동사니를 넣어 두었다. ⓒ designpress
집에 왔던 사람들이 자취를 남길 수 있도록 방명록을 만들었다. ⓒ designpress

서울은 당신에게 어떤 도시인가?

매력적인 도시다. 뭔가 해보고 싶다면 바로 시도하고 실행할 수 있는 곳이잖아.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문화예술 쪽 인프라는 너무나 서울에 집중돼 있어서… 서울에 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나는 대전의 대학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여러 전시를 일상적으로 접하긴 어려웠다. 방학 때 서울에 와서 궁금했던 전시를 보고는 했지. 어찌 보면 문화예술계와 완전히 유리된 방식으로 공부만 한 셈이다. 작가를 만나기는 더욱 힘든 환경이었고. 그러다 보니 예술이라는 세계를 막연히 신비화하고 무서워했던 것 같다. 서울에 와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는 작가나 평론가도 있고… 그러는 동안 내가 신비화하고 두려워했던 세계가 무너지는 걸 느꼈다. 무너지는 걸 깨닫는 순간 편안했다. 좀 더 기반을 만든 후에는 이 도시를 떠난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은 얘기다. 나도 어릴 적 동경하던 많은 것이 서울에 있었다. 그 환상이 현실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차츰 알게 되면서 어떤 허무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이게 뭐라고, 싶으면서도 거기 너무나 닿아 보고 싶던 내가 분명히 존재했기에.

비슷한 맥락으로 아주 예전부터 싫어하는 홍보문구가 ‘놓치면 안 되는 전시’라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놓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또 모든 콘텐츠는 각자의 맥락에 맞춰서 선택하게 되는 것 아닌가. 내 인생의 맥락에서 이 전시가 중요하지 않다면 안 가는 거다.

ⓒ designpress

동네를 자랑해 본다면.

건축가 김수근이 지은 불광동 성당이 아주 멋있다. 들어서면 시공간이 달라지는 기분이다. 언젠가 이 집이 사라진대도 그 성당은 남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지금 이 시절을 기억하는 매개는 불광동 성당이 될 것이다. 또 은평구엔 멋진 구민이 많다. 일례로 살림의원이라고,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있다. 이 의원은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위해 재택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많은 것이 숫자로 계산되는 시대에 재택의료 서비스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그렇지만 이곳에선 가능하다. 조합원들이 그걸 지지하니까.

처음 마음먹은 대로 은평구가 서울의 고향처럼 느껴지나?

아직 단언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화는 이 집에서 발화되고 누적돼 왔으니까… 이 집이 있는 동네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현관 ⓒ designpress

지역 서울 은평구 대조동

평수 11평대 다세대주택 투룸

보증금 1억 3천만 원

글·사진 김유영 기자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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