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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2-06-02

무릉도원을 닮은 카페 ‘선유도원’

고성호 건축가의 철학이 담긴 부산의 새로운 카페

장소선유도원 (부산시 금정구 상현로 64)

“신선이 거닐고 놀던 장소는 어땠을까?” 고성호 건축가는 상상 속의 존재인 신선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며 이에 대한 답을 하나의 건축물로 표현했다. 건축물의 이름 역시 신선이 놀고 거니는 무릉도원이라는 뜻을 담은 선유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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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화

건축가가 신선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한 이유는 건축물이 지어진 부산의 선동 상현마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역명의 어원에 신선이 살던 동네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 더 나아가 고성호 건축가는 지역성, 장소성, 시대성, 지속가능성 등 좋은 건축물이 되기 위한 요소들을 공간에 하나하나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 때문에 선유도원은 카페라는 상업 공간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카페 이상의 의미를 가진 동시대의 유의미한 건축물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지금 부산을 찾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든 고성호 건축가를 만나 선유도원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Interview with 고성호

PDM partners 대표 건축가
© 강도화

고성호 건축가님이 지향하는 건축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고성호입니다. 저는 언제나 지역성, 장소성, 시대성, 머무는 사람의 경험치를 높이는 공간,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기반한 건축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역성과 장소성은 말 그대로 건축물이 지어지는 지역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기초로 모든 작업을 시작함을 의미하죠. 시대성은 건축물에 동시대적 흐름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뜻해요. 우리가 600년이 지난 건물들을 보며 그 시대를 상상하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건축물들이 그 시대에 대한 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재료 등 건축 요소를 살펴보며 건축주의 사회적 지위, 습관, 그리고 취향도 발견할 수 있고요. 그 때문에 건축물은 반드시 시대성을 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치를 높이는 공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르 코르뷔지에(Le Corbuiser) 건축적 산책이라는 말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결국 공간을 얼마나 다채롭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죠.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이를 얼마나 잘 향유할 수 있도록 디자인할 것인가, 그 공간은 어떻게 새롭거나 다른 공간 경험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거든요. 최근 경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건축 공간의 공간적 경험 또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 강도화

선유도원에는 앞서 소개해 주신 방향성이 어떻게 담겨 있나요?

선유도원이 있는 선동(仙洞) 상현마을은 신선 선(仙)자를 사용해요. 신선이 살던 동네라는 뜻이 지역명에 담겨 있죠. 선유도원을 마주 보고 있는 저수지인 회동수원지에 안개가 피어오르면 저수지를 둘러싼 산들과 조화를 이루며 정말 신선이 사는 동네처럼 느껴져요. 저희는 이 지역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설계를 시작했어요. ‘신선이라는 상상 속의 존재가 놀던 장소는 어땠을까?’라는 물음을 이어갔죠. 신선은 책을 엎어 놓은 것 같은 공간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풍경을 모두 끌어안고 살았을 것이다. 신선들은 복숭아를 즐겨 먹었다는 설에서 영감을 얻어 박태기나무도 심었고요. 이 나무의 꽃이 복숭아꽃하고 정말 닮았거든요. 초기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너무 1차원적이고 복숭아나무는 벌레도 많아 결국 박태기나무로 결정했어요. (웃음) 이런 이야기들을 건축 요소에 녹여 풍경을 담는 형태의 박공지붕 건축물로 표현했습니다. 공간 이름도 신선이 놀고 거니는 무릉도원이라는 뜻을 담아 선유도원이라 지었고요. 그리고 이로우 작가는 공간이 가진 이야기를 일러스트로 그려주었어요. 이를 제품 패키지나 포스터 디자인에 활용해 공간의 정체성을 강화했죠.

© 강도화

개인적으로 3개의 건물이 외부에선 분리되어 보이지만 내부를 거닐면 위, 아래 그리고 안, 밖으로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각각의 동은 서재와 동재 그리고 동천으로 이름 붙였어요. 해남 보길도에 가보면 고산 윤선도가 신선의 삶을 동경하며 만든 유적들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요. 세연정이라는 정자와 군무를 추는 동대와 서대라는 거대한 넓적바위, 돌로 지은 석실 등 신선의 삶을 꿈꾼 원림에서 선유도원의 모티브를 얻었죠. 그래서 그 동대와 서대를 여기는 집이니까 동재와 서재라고 부르기로 했죠. 그리고 동천석실이라는 윤선도가 책을 읽고자 산 위에 지은 석실이 하나 있어요. 그래서 동재와 서재 외에 남은 또 하나의 건물에는 동천이라고 이름 지었고요. 저희는 고산 윤선도로부터 400년 시간을 훌쩍 넘어 새로운 시대의 신선 같은 삶을 표현하고자 했죠.

© 강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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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 서재, 그리고 동천은 각각 어떤 특징이 있나요?

선유도원을 둘러싼 산세와 회동수원지의 풍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건축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한다기보다는 건축물들이 어떻게 하면 주변의 풍경을 잘 끌어안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경치를 건축으로 빌려오는 문제죠. 과거의 집을 보면 먼저 툇마루가 있고, 그다음 마당, 마지막으로 담이 있었는데요. 그 담을 경계로 해서 풍경을 나눌 수 있었죠. 담 안쪽은 근경, 그리고 담 바깥은 중경과 원경으로요. 마찬가지로 선유도원의 서재, 동재, 동천에서 경험할 수 있는 풍경이 다릅니다. 지형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 근경을 위한 서재를 지었어요. 동천은 의미 자체가 하늘 동네라는 뜻인데요. 자연스럽게 지형이 가장 높은 곳에 회동수원지와 주변의 마을도 다 보이는 원경을 위한 공간 동천을 지었죠. 고산 윤선도의 동천석실도 보길도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거든요. 마지막으로 서재와 동천의 사이, 중경의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 동재입니다. 결국 선유도원은 차경의 건축, 풍경의 건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서로 다른 풍경은 더욱 다채로운 건축 경험을 선사하죠.

© 강도화

5개의 크고 작은 정원에서 볼 수 있듯이 조경에도 많은 신경을 쓰신 것 같아요.

저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라고 해서 건축물을 계획할 때 조경, 정원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랜드(Land)에 땅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잖아요. 그 말인즉슨 건축은 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로 끝내는 게 아닌 대지로부터 출발하는 건축을 지향하는 거죠. 저는 건축물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짓는 인공 구조물이지만 이를 사용하는 건 결국 사람이죠. 건축물을 어떻게 하면 기존의 자연 혹은 새로 조성한 자연과 잘 희석해서 사회의 일부가 되게 만들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원과 조경에도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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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건축 이면에는 여러 어려움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선동 상현마을은 사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4, 50년째 개발이 제한된 지역입니다. 선유도원을 시작으로 오래된 법을 개정해 침체된 지역을 활성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희가 부산 칠암리에 지었던 칠암사계는 지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어요. 칠암사계로 인해 침체됐던 어촌 마을에 사람들이 모이자 고향을 떠났던 아이들도 다시 돌아와 아버지의 횟집을 시대에 맞게 리뉴얼 하고 있죠. 지역의 분위기가 참 많이 밝아졌어요. 건축이 가진 대표적인 순기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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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로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화두가 있다면요?

대부분의 건축주는 건축물 자체에 대해 소유 의식이 되게 강해요. 하지만 저는 누군가의 사적 소유인 건축물이라도 지어지는 순간 어느 정도 공적 소유가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건축물은 사람들이 보거나 이용하게 되므로 공공재로서의 가능성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 건축물이 공공재로서 어떻게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선유도원은 상업 공간인 만큼 플라스틱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 친환경적인 소재를 최대한 활용해 건축물을 만드는 것과 같은 환경에 대한 고려부터 이미 존재하던 주변 지역의 풍경을 해치지 않고 지역과 어우러질 수 있는 건축, 수원지의 풍경이 건축물로 인해 단절되지 않고 공유되기 위한 노력과 지역 활성화에 대한 고민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포함하죠. 최근 건축가는 물론, 건축주들 사이에서도 건축물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참 다행이죠. 예전에는 단순히 내 소유 또는 빨리 짓고 높이 짓는 것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공공재로서 기능하는 건축물을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 물론 여전히 확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난개발도 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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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또 어떤 건축물들을 선보일 계획이신지 귀띔해주실 수 있나요?

선유도원 프로젝트 이전에 베이커리 갤러리 칠암사계를 바다가 마주한 곳에 지었습니다. 선유도원은 수원지 주변에 지었고요. 어떻게 보면 호수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래서 이번에는 산을 무대로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산꼭대기에 있는 목장에 쉼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죠. 아마 내년이면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산의 송정 바닷가에 캐주얼 다이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지역의 식자재를 이용한 퓨전 음식을 선보이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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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해서 독창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펼치시고 있죠. 그 영감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영감의 대상이 될 것 같아요. 그중 대표적으로 자연 현상의 원리에 대해 탐구하며 영감을 얻고는 해요. ‘저 나무는 왜 저렇게 서 있을까. 저 땅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왜 이 나무가 저기에서는 잘 자라는데 다른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할까.’ 이런 고민이 깊어지다 보면 건축물을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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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님의 시선에서 추천할 만한 여행지가 있을까요?

경주의 양동마을을 꼭 가보면 좋을 것 같네요. 제가 계속 말씀드린 건축의 지역성, 장소성 그리고 시대성까지 좋은 건축이 되기 위한 스토리를 모두 담고 있는 곳이죠.

© 강도화

마지막으로 선유도원을 찾은 분들이 이곳에서 어떤 기억을 안고 돌아가길 바라세요?

안식의 장소, 영혼이 치유되는 장소,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라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장소의 온전함을 느끼려면 평일의 오전 시간에 방문하시길 권해드려요.

이건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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