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efing
틸라
‘뜨는 동네’의 필요 요건은 무엇일까. 교통 접근성이나 공원, 강변과 같은 자연 요소가 주요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더불어 독창적인 콘텐츠와 경험을 전하는 크리에이터가 지속적으로 모여들 때, 로컬과 글로벌을 동시에 사로잡는 매력적인 동네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 상수동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지역으로 여겨진다. 홍대, 합정 등 마포구의 핵심 상권과 인접한 데다 한강 공원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영국 테이트모던을 벤치마킹한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가 2025년 공사를 마칠 예정이고, 2028년에는 서부선 경전철이 개통된다. 이처럼 지리적ㆍ환경적 여건이 탄탄하게 갖춰진 가운데, 최근 상수동의 골목 상권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상수동의 상권은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급속히 발전했다. 홍대 상권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영향을 받아 젊은 예술가 집단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고유한 문화를 만들었고, 카페 거리와 공연장, 클럽 등이 자리 잡으며 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동네로 변모했다. COVID-19를 기점으로 상권이 위축되는 듯했지만,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 추세다. 요즘 상수동의 상권이 활기를 띠며 재조명되는 현상의 중심에는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 서울과 이를 품은 건물, 틸라(THIL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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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라의 존재감을 알린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 서울
빈브라더스는 마포구 토정로에 2014년 이들의 첫 매장인 합정점을 열며 국내 스페셜티 커피 열풍을 견인했다. 당인리 발전소 주위로 카페 거리를 형성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올해 3월 토정로길에 자리한 틸라에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 서울을 선보였다. 오픈 직후 밤섬과 여의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한강뷰’ 카페로 SNS상에서 입소문을 타고 단기간에 명소로 떠올랐고, 주말에는 대기 없이 입장이 어려울 만큼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 서울은 ‘바리스타의 집에 초대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를 상상하며 만든 공간이다. 여러 층에 걸쳐 거실, 서재, 부엌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 깊이 있는 커피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커피 스튜디오부터 다양하고 희소성 있는 커피를 경험하는 시즈널 커피 바, 편안히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는 라운지 공간, 서울의 전경을 파노라마로 조망하는 루프톱 등이 있다.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 서울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커피를 제공하는 쇼룸의 차원을 넘어 입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운영되는 문화 공간이어서다. “진지하되 흥미롭게 다양한 커피 경험을 스펙트럼처럼 펼쳐 보이는 공간”이라고 밝힌 빈브라더스 성훈식 디렉터의 말처럼, 이곳은 원두의 특별함뿐만 아니라 공간과 사운드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통해 공감각적인 경험을 고도화한다. 이를 실현할 수 있었던 배경은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가 입점한 틸라의 정체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같은 건물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와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와 오랜 기간 파트너 관계를 맺고, 긴밀히 협업해 쌓아 올린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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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문화의 물결
틸라는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문화 생태계를 표방하는 플랫폼으로, 다양한 층위의 목적성을 가진 재미난 건물이다. 현재 이곳에는 사운드아티스트 콜렉티브 위사(WeSA), (주)삶것건축사사무소,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틸라 전체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는 양수인 소장이 맡았다.
층별로 설명을 덧붙이자면, 위사가 지하 3층의 공연장인 사운드 지하와 지상 2층을 오피스, 아카데미 목적의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지하 1층의 틸라 그라운드는 빈브라더스의 크리에이티브 팀 다각도가 운영하며 전시 및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1층은 로비이자 이벤트 스페이스로서 오픈 초기부터 지난 11월 말까지는 리스닝 프로젝트 사운드 짐나지움을 운영한 바 있다. 3층엔 (주)삶것건축사사무소의 오피스를 두었다. 4층부터 루프톱까지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의 카페와 오피스, 각종 행사 공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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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라의 시작점
각각 WeSA, (주)삶것건축사사무소, 빈브라더스를 이끄는 세 사람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운명처럼 관계가 이어졌다. 우선 빈브라더스가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팀 ‘다각도’에서 인천의 문화예술공간인 코스모 40을 기획하며 양수인 소장에게 처음 건축 설계를 맡겼다. 그렇게 완성된 공간 코스모 40에서 태싯(Tacit) 그룹의 전시를 열게 되면서 오디오 비주얼 아티스트 ‘가재발’로 활동하고 있는 디렉터와도 인연을 맺게 된 것. 이후 다각도가 기획한 다양한 문화 예술 기획 프로그램에 가재발 디렉터가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고, 세 사람은 때때로 만남을 지속하며 자연스레 서로의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WeSA의 새로운 예술 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가재발 디렉터가 양수인 소장과 함께 틸라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으며,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성훈식 디렉터에게 일부 공간 운영 및 프로그램 기획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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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음악을 향유하는 사운드룸
빈브라더스 커피하우스 서울을 목적으로 틸라에 발걸음했다가도, 나머지 공간을 둘러보며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 틸라 내 공간과 이색적인 콘텐츠는 보면 볼수록 흥미를 유발한다. 먼저, 틸라를 도보로 방문했다면 거칠 수밖에 없는 로비의 존재. 오픈 직후부터 지난 11월 말까지 틸라의 로비에는 다각도가 기획한 컨시어지 커피바와 사운드 짐나지움이 존재했다. ‘고독한 청취가를 위한 체조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사운드 짐나지움은 음악과 소리를 청취하는 공간이다.
어떤 음악과 접속되는 순간, 머리카락이 찌릿하게 서거나 발바닥이 절로 굴렀던 경험이 있는가? 이처럼 사운드 짐나지움은 청취하는 행위가 온몸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신체운동에 가깝다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사운드가 가득 찬 공간에서 온몸의 감각을 동원한 3차원적 듣기를 표방하며, 최적의 사운드와 조명 시스템을 제공한다. 공기의 진동과 파동이 몸과 만나 소리가 되는 경험은 가만히 공기 속에 앉아 듣기에 몰입하는 것만으로도 그 어떤 신체 활동만큼이나 격렬한 것임을 알게 한다. 최적의 사운드와 조명 시스템을 갖춘 공간에서 빈백에 기대 편안히 휴식하거나, 컨시어지 커피바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술을 곁들일 수도 있다. WeSA 가재발 디렉터,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사운드 아티스트 윤지영이 선별한 플레이리스트와 토크 프로그램, 전자 음악 DJ 디구루가 선곡한 엘피를 감상하는 리스닝 세션 등을 운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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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음악 생태계의 개척자, WeSA
가재발 디렉터가 설립한 위사는 ‘We are Sound Artists’의 약어로, 미디어에 기반한 모든 장르의 혁신 예술을 지원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콜렉티브이다. 오디오비주얼, 실험음악, 융합예술, 사운드아트 등 장르의 경계를 실험하고 예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자 음악의 시장을 활성화하고 생태계를 개척하기 위해 2014년부터 매해 전자 음악 축제인 ‘WeSA 페스티벌’과 아트 코딩과 오디오비주얼 툴을 강의하는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또한 작가들에게 영감과 집중의 기회를 제공하는 제주 선흘 레지던시, 음반, 서적, NFT 등을 발매하는 스튜디오도 운영 중이다. 이들은 틸라를 거점으로 어떤 활동을 펼쳐왔고, 또 이곳에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가재발 디렉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 with
가재발 WeSA 디렉터
─ 어떤 목적으로 틸라를 만들게 되었나요?
사운드를 위한 예술 공간을 오랜 시간 갈망하고 있었어요. 위사가 다루는 음악이 생소하고 유니크한 장르이다 보니, 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었거든요. 좋은 사운드를 만드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면 그 의도된 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기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MP3나 이어폰처럼 보편적인 디바이스와 도구로는 한계가 있지요. 사운드를 들을 때, 그 텍스처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주파수부터 가장 높은 주파수까지 모든 스펙트럼을 잘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스피커와 방의 환경이 모두 좋아야 해요. 사운드 환경에 초점을 둔 공간을 직접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양수인 소장님을 만나게 되어서 함께 틸라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함께 1년 넘게 100여 개의 부지를 검토하다 지금의 자리를 찾았어요.
─ 양질의 사운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해요.
우선 설계 단계에서부터 양수인 소장님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공간 내에서 소리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음향 조치를 적용했어요. ‘룸 어쿠스틱 트리트먼트’라고도 하죠.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음향 원리에 따라 벽면에 흡음 처리를 하고, 스피커와 청취 위치에 관한 부분도 고려해 최상의 청취 환경을 구축하고자 했죠.
─ 위사가 실험하고자 하는 예술적 목표나 철학이 공간에 어떻게 구현되었나요?
사운드의 즐거움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1층 로비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어떤 공간에 머물든 공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사운드가 뒷받침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저와 양수인 소장, 성훈식 디렉터가 모일 때마다 틸라 전체의 사운드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자는 이야기를 수없이 해왔어요. 그래서 지하 3층 공연장인 ‘사운드 지하’부터 꼭대기 층, 엘리베이터까지 한 번에 같은 음악을 틀 수 있게 구조적으로 연결을 했죠. 틸라가 사운드를 기반으로 마치 살아있는 건물처럼 느껴졌으면 했거든요. 로비, 사운드 짐나지움부터 커피하우스 매장까지 울려 퍼지는 음향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현재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청취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계속 연구 중입니다.
─ 위사의 정체성이 로컬과 인디 문화 등 서브컬처가 발달한 상수동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역적 맥락은 어떻게 고려했는지도 듣고 싶어요.
상수동 근처에 저의 첫 작업실이 있었어요. 예술적 인프라가 훌륭하면서 로컬 기반의 숍이 많이 들어선 동네라 좋았죠. 그 당시에 작업실 근처를 거닐다가 커피숍이 하나 생겨서 들어가 보니, 빈브라더스 합정점이더라고요. 이후로 굉장히 자주 왕래했어요. 고향처럼 여기던 동네인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운이 좋게 틸라를 발견해 다시 상수동으로 오게 되었어요. 아직 1년이 채 안 되었지만 지리적인 부분이나 환경에 매우 만족합니다. 인도와 차도가 완벽히 구별되어 있어 쾌적하면서 큰길임에도 유동 인구가 아주 많지는 않아요. 그래서 대체적으로 조용한 편이죠.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지금 와서 살펴보니 저희가 하는 음악 장르와 닮아 있는 동네라고 느껴져요. 편리하지만 개성이 있다는 점에서요.
─ 틸라 그라운드와 사운드 지하에서는 어떤 이벤트가 열렸었나요? 개인적으로 뜻깊거나, 대중의 반응이 좋아서 기억에 남는 공연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틸라의 두 공간에서는 위사 아티스트의 공연과 전시를 열었어요. 지난 11월에는 디지털 세로토닌이 3D LED 월을 활용한 오디오-비주얼 설치 작품 전시 〈Terminal〉이 틸라 그라운드에서 진행되었고, 최태현과 민성식으로 구성된 즉흥 전자 음악 듀오 THSS의 공연이 지하에서 열렸었죠.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은 이벤트는 틸라 오픈 직후에 열었던 제10회 위사 페스티벌이에요. 인테리어 공사가 미처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준비했던 이벤트였는데, 대중의 반응이 뜨겁고 폭발적이었어요.
─ 그렇다면 다른 음악 장르와는 다르게 전자 음악이 지닌 매력이 뭘까요?
형식의 자유를 지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사와 박자 같은 요소가 아닌, 사운드의 텍스처를 중시하기 때문에 위사 페스티벌의 주제로 삼은 것도 ‘사운드 이즈 더 뉴 뮤직’이거든요. 사운드가 어떻게 보면 음악보다 훨씬 큰 개념이고, 그 자체로 새로운 음악의 한 장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 이 공간에서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사운드를 최적으로 구현한 지하에서 몸을 움직이며 클러빙을 즐기고, 그다음에 그라운드에 올라와서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휴식하며 음악을 즐기는 경험을 전하고 싶어요. 느긋하게 사운드를 경험하고 로비에서 술도 가볍게 마시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 위사의 미래는 어떻게 그리고 계시는지요.
서울을 사운드의 중심 도시로 만들고 싶어요. 각 지역마다 대표하는 특산물이 있듯이, 누구나 서울하면 사운드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어요. 전자음악은 1950년대에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태동해서 유럽권을 중심으로 발달을 해왔는데요.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후발 주자라고 할 순 있지만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생각해요. 서울은 테크놀로지도 뛰어나고, 무엇보다 새롭고 다양한 것을 추구하는 창작자로 들끓기 때문이에요. 에너지가 폭발하기 전에 응축되어 있는 그런 느낌이 있죠. 저희처럼 전자음악에 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끈질기게 계속해 나가다 보면 그걸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틸라
장소 틸라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9길 2
설계 삶것건축사사무소(양수인)
대지면적 617.49m2
건축면적 307.21m2
연면적 1,838.76m2
규모 지상 7층, 지하 2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석재, 테라코트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수성페인트
설계기간 2021. 1. ~ 8.
입주연도 2024. 3.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길보경 객원 기자
사진 김시진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주)삶것건축사사무소, WeSA, 빈브라더스, 다각도(사운드 짐나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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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e no.1 : 상수동에 움튼 예술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