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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00년 된 관사에서 즐기는 차 한 잔, 소제예찬1927 ①

: file no.1 : 풍류와 낭만이 있는 티룸

Briefing

대전역에서 도보로 10분. 오래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가 있다. 회색빛의 단층 건물들 중 몇몇은 비어 있고, 몇몇은 기존 모습을 간직한 채로 카페, 레스토랑, 편집숍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소제동이라 불리는 이 동네는 1920년대부터 지어진 관사가 모여 있는 관사촌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가 담겨 있다. 일제 지배에 의해 철도 건설이 시작되었고, 일본은 대전을 물류기지이자 컨트롤타워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철도근로자들을 위한 집이 필요했고, 1927년 솔랑산을 깎아 소제호를 메웠고 1940년대에 걸쳐 일본 철도 관료, 기술자, 노동자가 모인 철도 관사촌이 형성되었다. 

약 100년이 지난 지금, 쓸쓸하게 남아있던 관사들은 청년들의 손을 타서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 그중, 관사 16호는 원형이보존되어 관사촌의 역사와 건축을 알리는 공간으로 운영되었다가 올 5월, 한국의 차와 풍류를 즐길있는 티룸(tearoom) 소제예찬1927로 재탄생했다. 

index 1

과거를 기억하다 

조선의 학자인 우암 송시열은 〈삼매당(三昧堂)〉이라는 현판에 대전의 팔경(八景)을 주제로 한 시를 지어 썼는데, 그 팔경 중 하나로 소제호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소제호는 축구장 7개를 합친 만큼 큰 호수로, 경치로 유명한 중국 소주의 호수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호수 주변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번창했고 여름에는 호수에 연꽃이 가득 피어 장관을 이뤘다. 우암 송시열은 연꽃이 핀 여름의 소제호를 노래했다. 

 

하지만 지금 소제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27년 관사촌을 형성하기 위해 메워졌기 때문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소제호와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프로젝트 렌트와 티 컬렉티브는 ‘소제예찬1927’이라는 티룸을 기획했다. 이에 대해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는 차에 가장 어울리는 풍경으로 물을 꼽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공간에서 티룸을 할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주변에 물과 바람 소리를 들으며 차 한잔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만약 소제호가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더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겁니다.” 

 

최원석 대표는 단순히 역사적 의미를 가진 오래된 공간을 바꾸겠다는 마음보다는 관사촌 이전의 역사를 불러오고자 했다. 그래서 티룸의 이름을 소제호에서 따오고 호수가 메워진 1927년을 기억하자는 의미로서 1927이라는 숫자를 붙였다. 즉, ‘소제예찬1927’은 이름 그대로 소제호를 기리고 그때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기억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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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가진 힘 

소제예찬1927 건물은 원래 관사 16호라고 불렸다. 관사촌의 대부분의 건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낡고 무너졌지만, 관사 16호는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 건물을 티룸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긴 시간 동안 고민해야 했다. “오래된 건물은 하나씩 천천히 손보면서 채워 나가야 해요. 기본적인 것을 정리했을 때야 보이는 것들이 있거든요.” 

 

변신을 제일 많이 한 곳은 왼편에 위치한 다실이다. 마당 뷰를 위해 벽을 시원하게 뚫고 통유리창을 설치함으로써 마당의 풍경과 하늘을 보면서 차를 마실 수 있게 했다. 마당 역시 새롭게 꾸며졌다. “차와 잘 어울리는 장면(Scene) 중 하나가 물이지만, 호수는 사라졌기 때문에 대신 물가에서 항상 보이는 버드나무를 심었어요.” 우리가 산수화나 사진 속에서 본 버드나무보단 작지만, 바람에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는 잘 들린다. 

지붕의 서까래와 벽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한옥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면에서 마주하는 다실은 적산가옥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적산가옥은 일본식 건축 구조를 따르기 때문에 목조건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사촌의 건물들은 회색 콘크리트 벽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 일본 목조 건물에 콘크리트를 입혔다고 생각하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한옥 양식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건물 내부 유리벽으로 뚫어진 부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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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1927

소제예찬1927을 독특한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바로 시간이다. 서까래 천장을 가지고 있지만, 다다미방을 가진 관사16호는 있는 그대로 1920년대의 분위기를 풍겼기에 무드를 강조할 조명과 가구를 선별해서 배치했다. 특히 조명은 조도를 맞추는 동시에 1920년대에 사용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게 유리 갓으로 된 제품을 찾아서 설치했다. 실제 그 시대처럼 백열등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조도가 너무 낮아 계획을 변경했다. 

공간의 힘이 강한 곳이라 가구를 선별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층고는 높지만, 좌식 생활을 기본으로 설계된 곳이라 높이가 있는 현대식 가구와 공간감이 어울리지 않아 결국 가구를 주문 제작해야 했다. 반면, 아늑하게 차를 마시는 분위기를 위해 2인석 소파는 일본 가구 브랜드인 가리모쿠의 60K 체어로 선택했다. 타 브랜드보다 높이가 낮아 다실의 작지만 아늑한 공간감을 온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구를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적산가옥이라는 특징 덕분에 일본 브랜드의 가구를 두어도 맥락이 어긋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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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차를 마시고 기억하는

소제예찬1927의 티 메뉴는 한국차로 유명한 김세리 교수의 자문을 받아 티 소믈리에가 선별하고 블렌딩한 차로 구성했다. 일반 차 잎은 티 컬렉티브의 제품을 사용한다. 한편, 소제예찬1927는 하나의 차가 계절마다 어떻게 다른 맛을 내는지도 알려준다. “같은 차라도 다양하게 해석해서 즐길 수 있다는 게 차의 재미인 것 같아요. 다들 차를 어렵게 생각하지만, 취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다만, 경험으로 인해 쌓인 데이터베이스가 없어서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모르는 것뿐이에요.” 차 문화를 깊게 느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예약으로만 운영되는 티 플레이트와 티 클래스를 마련했다. 티 플레이트는 티 소믈리에가 내려준 차와 함께 그에 어울리는 다식과 과일을 함께 먹는 프로그램으로 차분함과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소제예찬1927은 차의 경험이 여기에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집에 돌아가서 오래 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티 컬렉티브의 홈케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집에서도 차의 경험을 즐기고,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 선물까지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컬렉티브의 차향이 그대로 담긴 홈케어 제품은 집에서도 차를 마실 때의 여유로움과 휴식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최근 다도가 주목받고 티룸도 곳곳에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커피보다는 낯다. 티룸에서의 경험을 집에서 똑같이 느끼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도구와 여유가 필요하기에 차가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론 조금 어렵다. 이런 벽을 넘어 사람들이 차를 익숙하게 여길 수 있도록 소제예찬1927는 다채로운 방법을 찾고 제안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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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 채운 잔보다 살짝 비운 잔이 아름답다

“이곳은 천천히 성장하면서 오래가는 콘텐츠가 어울리는 곳이에요. 오로지 이 건물과 그 안의 이야기가 좋아서 선택한 곳이기 때문에 큰 욕심이 없어요.” 소제예찬1927을 기획한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는 공간에 어울리는 콘텐츠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여전히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자신이 그리는 완벽한 티룸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러한 고민은 다기에도 담겨 있다. 소제예찬1927의 시그니처 다기는 이준호 작가와 협업한 것으로, 현재 들어온 상태다. 이 작가와 상의하고 샘플을 만들어서 수정한 시간이 벌써 4개월째인데 계속 조금씩 손보고 있다고. 이처럼 차 잎부터 다기까지 티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자연의 시간을 기다리고 사람의 손이 닿아야 하는 디테일의 끝이다. 

하지만 이러한 느린 미학이 티룸의 매력이기도 하다. 현대 사람들이 다도에 이끌리는 이유도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깐의 숨 돌릴 시간과 쉼이 필요하기 때문이. 도파민 과잉은 이제 스마트폰 세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주일 뒤면 없어지는 팝업, 사진에 예쁘게 찍혀야 하는 인테리어,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공간 등 공간에서도 도파민이 넘쳐난다. 이젠 모든 것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살짝 나와 비보이더라도 올 때마다 하나씩 채워지고, 달라진 공간도 경험할 가치가 있다. 비어져야 온전한 것이 있듯이, 소제예찬1927도 하나씩 채워가는 현재의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글 허영은 객원 기자

사진 강현욱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프로젝트렌트, 티 컬렉티브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100년 된 관사에서 즐기는 차 한 잔, 소제예찬1927

 ▶ : file no.1 : 풍류와 낭만이 있는 티룸

       : file no.2 : 단 하나의 신(Scene)을 위하여

       : file no.3 : 시간이 이야기가 되는 곳

프로젝트
[Post-It] 소제예찬1927
장소
소제예찬1927
주소
대전 동구 수향길 19 관사16호
시간
수 - 금 12:00 - 18:00
토 - 일 11:00 - 20:00
(매주 월, 화 휴무)
기획자/디렉터
기획 | 프로젝트렌트, 공동 기획 | 티 컬렉티브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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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된 관사에서 즐기는 차 한 잔, 소제예찬1927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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