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팝이 스페이스 디벨로퍼 시리즈로 만난 네 번째 인물은 서울 신당동을 소위 ‘힙당동’으로 불리게 만든 TDTD의 장지호 대표다. 동네 과일가게로 보이지만, 모던바(Bar)인 장프리고에서 시작하여 12간지 띠 문화를 신비스러운 바(Bar)로 재해석한 주신당, 우주에서 온 토끼와 신당동의 떡볶이 문화를 결합한 토보키,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듯이 주문한 커피를 받는 메일룸까지. TDTD가 기획한 공간은 지역의 특성을 독특하게 재해석한 스토리와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THE DEVIL’S ON THE DETAILS(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슬로건처럼 TDTD의 공간은 명확한 콘셉트 아래 철저하게 계산된 디테일로 방문객에게 몰입된 경험을 선사한다. 그 때문에 거짓말 같은 공간이 펼쳐져도 설득되고, 어느새 그 순간을 즐기게 된다. 이처럼 지역의 특성을 TDTD의 창의력으로 재해석하는 기획력을 인정받아 이제 TDTD는 F&B 컨설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저 신기한 공간이 아니라 또 오고 싶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공간을 기획하는 방법에 대해 장지호 TDTD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with 장지호 TDTD 대표
— TDTD의 시작은 과일가게로 위장했던 칵테일바 ‘장프리고’예요. 국내에선 흔히 볼 수 없었던 ‘스피크이지바(Speakeasy Bar)’라는 점에서 주목받았죠.
장프리고는 저를 포함한 디자이너, 건축가 친구들이 함께 구상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Bar)를 구현하기 위해 1년 넘게 적합한 공간을 찾아다녔죠. 마침내 동대문 한적한 주택가를 발견했지만, 주민의 대부분이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이었어요. 그런 동네에 갑자기 젊은이들이 바를 연다고 하면 주민들이 안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우리 존재를 숨기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과일 가게처럼 보이는 스피크이지바로 콘셉트를 정했습니다.
— 실제로 과일을 주민들에게 판매했어요. 처음 갔을 때, 과일 가게인 줄 알고 한참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장프리고는 매일 입고되는 신선한 과일로 메뉴를 제공하는 카페 겸 다이닝바였어요. 그래서 과일 가게로 콘셉트를 정하고, 주민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기 위해서 좋은 과일을 싸게 팔았습니다. 냉장고 문은 과일 가게에는 냉장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요.
— 장프리고는 과일가게, 주신당은 신당, 메일룸은 우체국 등 TDTD가 생각한 콘셉트는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공간을 기획할 때, 콘셉트는 어떻게 정하나요?
가게가 위치할 지역의 역사와 특징, 지역 주민들의 결핍 요소에서 콘셉트를 도출합니다. 콘셉트부터 공간을 이루는 아주 작은 요소까지 지역성과 연결되어야 사람들이 던지는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콘셉트와 디자인 모두 맥락이 있기 때문에 저희 공간들이 단순히 특이한 콘셉트로 승부를 보는 곳이 아님을 알아봐 주는 것 같아요.
— 그러한 TDTD의 장점이 잘 보여주는 곳이 주신당이라고 생각해요.
주신당은 신당동이라는 동네의 역사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신당동은 ‘신당을 모신 동네’라는 뜻으로, 과거에 무당집이 많았다고 해요. 사실, 지금도 쉽게 무당집을 찾아볼 수 있어요. 이러한 동네의 역사에서 콘셉트를 착안했습니다. 하지만 신당(神堂)이나 무속신앙은 호불호가 크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친숙한 12간지 키워드를 더해서 콘셉트를 도출했습니다. 그래서 외부는 무서운 신당처럼 보이지만, 작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공간이 펼쳐지도록 디자인했습니다.
— 주신당을 열었을 때는 신당동이 유명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당동으로 올 생각을 하셨나요?
장프리고를 준비하면서 저만의 관점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엔 동대문이 제 관점에 부합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변화가 어려운 곳이었어요.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을 펼칠 새로운 동네를 찾아보자고 생각했고, 그곳이 바로 신당동이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대표님이 발견한 신당동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평지 위에 오래된 좁고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건물의 기존 기능을 유지하면서 새롭게 변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거든요. TDTD를 시작으로 신구 조화가 이뤄진다면 정말 매력적인 동네가 될 것 같았습니다. 또, 기획 시 활용할 수 있는 지역의 소스도 많았습니다. 물론 더블 역세권이라는 지리적 조건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도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 좋은 동네(지역)를 발견하는 TDTD의 시각이 궁금합니다.
걷기 좋은 거리인지 살펴봅니다. 신당동 같은 경우, 황학동 도깨비시장과 주방거리, 서울중앙시장, 싸전거리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거리가 골목으로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걷기만 해도 서로 다른 분위기의 거리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 지역성을 재해석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도시 재생이나 로컬 기획을 할 때,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과 상인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분들과 잘 융합되어야 지역의 매력을 덜 훼손하면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저도 항상 고려하는 지점입니다.
— 지역 활성화를 응원하는 동시에 우려하는 시선도 많습니다. 건강한 로컬 문화가 탄생하고 유지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로컬·공간 기획자, 지자체, 건물주, 주민 그리고 소비자까지. 모든 이해관계자가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공통된 목적 아래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 로컬은 꾸준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자체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을 넘어 공동 발전을 위한 법적 체계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 신당동에 위치한 TDTD의 공간(주신당, 메일룸, 토보키)을 살펴보면 지역의 특색을 현대적으로 잘 해석한다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토보키를 예로 들자면, TDTD만의 확장 가능한 브랜드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습니다. F&B IP로서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신당동이 지닌 콘텐츠 중에서 떡볶이라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떠올랐습니다. 현재 시장에 나온 떡볶이 브랜드들은 복제가 심하고, 브랜드 고유의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 없기에 차별화된 브랜드를 선보인다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당동 떡볶이가 지닌 헤리티지를 그대로 재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신당동 떡볶이는 한국 사람만이 아는 감성이 있어서 해외 고객에겐 공감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달에서 불시착한 우주 토끼 캐릭터가 등장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서 신당동 떡볶이를 재해석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 한편, 메일룸은 신당동의 지역성과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탄생한 건가요?
어느 날, 신당동이 이렇게 유명해졌는데도 여전히 편안하게 갈 카페가 부족하다는 걸 발견했어요. 그래서 바(Bar)가 아닌 카페를 해보자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단, 동네 주민과 상인들이 편하게 와서 조용히 커피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방문할 때마다 설레는 카페이길 바랐습니다.
— 메일룸의 콘셉트는 어떻게 도출된 건가요?
‘설렘’이라는 감정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제일 설렜던 순간은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손 편지를 주고받았을 때였어요. 혹시 편지가 왔을까 우편함을 열어 볼 때의 설렘,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때의 설렘… 그때의 마음을 되살리는 카페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옛날 유럽 우체국처럼 공간을 디자인하고, 우편함에서 주문한 커피를 꺼내는 등 구체적인 디테일을 구상했습니다.
— 어떻게 해야 공간을 기획할 때, 콘셉트를 잃지 않고 끝까지 명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공간을 기획할 때, 하나의 키워드에서 시작해서 콘셉트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키워드와 콘셉트를 바탕으로 관련된 콘텐츠들이 정해지죠. 이때,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오는데 콘셉트를 벗어나 몰입을 방해하는 생각들은 차단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이 몰입하는 공간이 탄생할 수 있어요.
— 공간을 디자인할 때, TDTD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첫째, 입구를 숨기는 방식입니다. TDTD가 기획한 공간을 보면 문을 한눈에 찾을 수 없어요. 이렇게 문을 숨기는 이유는 외부와 내부를 반전시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공간에 레이어를 많이 둡니다. 전시장처럼 동선을 제약하고 유도해서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 한 편을 들은 것 같은 경험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은 작은 디테일까지 챙기되, 그 디테일에 당위성이 있도록 합니다. 그래야 방문객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TDTD가 기획한 공간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습니다. 오래 지속되는 공간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콘셉트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쉽게 소비되는 콘셉트는 유행이 끝나면 휘발돼요. TDTD의 공간은 지역성이나 그 지역에 없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또, 저희는 무엇보다 F&B라는 본질을 잊지 않고 맛과 서비스에 집중합니다. 맛의 만족도에 신경 쓰고, 고객이 방문했을 때 불편함이 없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 TDTD는 F&B 메뉴도 콘셉트에 맞춰 구성합니다. 그래서 방문객이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메뉴 개발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주신당 같은 경우, 십이지신의 이름을 딴 칵테일 메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객이 자기 띠와 연결된 칵테일을 마시면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칵테일과 안주의 맛과 재료는 12간지 동물의 특성에서 모티프를 얻었습니다. 예를 들어 쥐는 치즈를 좋아하니까 치즈 맛을 내고, 소는 우유가 연상되니까 우유를 활용하는 등 각 메뉴에 어떤 맛과 재료가 사용되는지도 보면 더 재미를 느끼실 거예요.
— 최근 성공한 로컬 문화를 보면 F&B가 중심이 된 사례가 많습니다. TDTD도 이러한 F&B의 힘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해요. 대체 F&B의 무엇이 사람을 불러 모으고, 로컬을 활성화하는 걸까요?
한국의 F&B 트렌드 변화 속도는 매우 빠른 편입니다. 계속 등장하는 새로운 맛을 경험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 내서 방문하는 소비자도 많죠.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문화를 즐긴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식문화를 결합한 팝업스토어가 많아졌고, F&B가 모든 영역에서 빠질 수 없는 대중적인 문화가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F&B에 재미있는 경험이 더해지면 인상 깊게 각인되어 재방문을 이끌어내죠.
— TDTD는 앞으로도 신당동을 중심으로 활동할 계획인가요?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신당동에서 저희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하면서 TDTD의 창의력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 더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고 있어요.
— 5월 중순, 홍대에 침니맨션이라는 베이커리를 열었습니다. 이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회사 소유의 공간을 새롭게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아 TDTD가 F&B 컨설팅을 한 곳입니다. 저희는 홍대라는 지역이 가진 일반적인 이미지를 따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간이 지닌 특징에 집중했고, 건물의 벽돌에서 시작하여 굴뚝이라는 키워드를 뽑았습니다. 여기에 체코의 ‘굴뚝빵’이라는 전통 빵을 결합해서 침니맨션의 콘셉트와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체코의 굴뚝 청소부 집안의 막내딸이 빵을 좋아해서 가족을 위한 빵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굴뚝빵’이라는 가상의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브랜딩, 공간을 디자인했는데, 홍대라는 특성상 관광객이 선물로 살 수 있게 패키지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침니맨션은 TDTD의 첫 베이커리 매장이라 기대가 큽니다.
— 앞으로 TDTD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주신당의 십이지신을 모티프로 전국에 12개의 지점을 오픈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각 지점은 십이지신의 동물을 대표하게 됩니다. 본점은 고양이, 강남은 용(龍)… 이런 식이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주신당을 열고 싶다는 제안이 있어 현재 협의 중입니다. 사실, TDTD의 최종 목표는 호텔입니다. F&B는 호텔에서도 고객을 이끄는 핵심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TDTD 호텔에는 저희가 그동안 발전시킨 F&B의 노하우가 담겨 있을 겁니다. 저희가 바에 이어 카페, 베이커리 등 영역을 확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 허영은 객원 기자
취재 및 자료 제공 TD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