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4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의 놀이공원, 무비랜드 ②

: file no.2 : 디자이너에서 극장주로
영화 상영표와 구인공고, 라디오로 바로 접속 가능한 QR코드 등이 게시된 게시판

영화를 상영하는 개념을 뛰어넘어 문화 공간으로 도약하는 극장, 무비랜드. 남다른 공간의 탄생에는 남다른 출발점이 있었다. 영화 산업이 아닌 디자인과 기획에 그 발판이 존재했던 것. 극장주 모춘과 소호에게서 직접 들은 무비랜드에 숨겨진 노고와 빛나는 아이디어를 전한다.

위에서부터 극장주 모춘, 소호

Interview with 

극장주 모춘, 소호

무비랜드의 개관을 축하합니다! 첫 상영회를 마친 소감이 어떤가요?

 

소호 뿌듯한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기존의 디자인 업무에서 벗어나 공간을 운영하는 일은 처음인지라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예를 들자면, 쓰레기통에 비닐을 씌울지 말지 같은 고민이죠. 앞으로 일하게 될 직원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시스템을 하나씩 정비해 나가고 있어요.

 

모춘 저도 비슷한 심정이에요. 무엇보다도 운영이 가장 걱정됩니다. 예측했던 관객들의 동선이나 공간을 즐기는 방식이 현실과는 간극이 있어서 관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작업을 더 진행해 보고자 해요. 그래서 한동안은 모베러웍스 구성원들이 계속 상주할 예정입니다. 직접 청소도 하면서 운영을 몸에 익히는 시기를 보내려고요.

 

ㅡ 마치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는 이름이 재밌습니다. 극장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초기에는 ‘모베러웍스 픽처스’라고 이름을 지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뀐 계기가 궁금하네요.

 

모춘 과거의 저를 떠올렸습니다. 서울을 동경하던 대전 출신의 소년이었는데 막상 상경하면, 겁을 먹어서 가고 싶었던 숍에 들어가지 못했거든요. 저와 같은 지방 출신의 청소년들도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싶었어요. ‘모베러웍스 픽처스’는 그런 이유에서 과하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더 가벼운 ‘무비랜드’로 이름을 변경했어요.

무비랜드의 극장주 소호와 모춘, 반려견 부기

ㅡ 기존 영화관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면서 ‘극장’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어요. 그 이유는?

모춘 영화라는 매체로 이 공간을 제한하고 싶지 않았어요. 무비랜드에서 앞으로 벌이고 싶은 일들이 많아요. 보이는 라디오라든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확장된 개념으로의 영화관을 뜻하며 극장이라는 넓은 범주로 정의했어요.

 

소호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영화관은 멀티플렉스 극장 혹은 독립영화관이죠. 그렇지만 무비랜드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영화관이라는 단어로 저희를 설명했을 때는 설명이 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어서 저희는 극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2층 라운지의 벽장에는 행사 때 사용될 스툴이 숨겨져 있다.

ㅡ 1000명이 1번 오는 공간이 아닌 100명이 10번 오는 극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모춘 자주 방문할 수 있도록 이전 작업과는 다르게 차분한 느낌을 구현했어요. 사실 모베러웍스가 잘하는 디자인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꽹가리를 치면서 요란 법석한 잔치와 같은 디자인입니다. 단기간에 이목을 끌고 사람들을 줄 세우는 효과를 불러일으켰죠. 무비랜드에서는 방문객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끽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기존과는 다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무비랜드의 로고가 반갑게 맞이하는 1층의 유리창

ㅡ 모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무비랜드입니다. 모베러웍스의 공동 오너인 소호는 이 아이디어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소호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기발함에 무릎을 ‘탁’ 쳤어요. 항상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는데 기존 방식의 굿즈를 판매하는 숍은 표방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가 극장을 만든다면, 멋있고 재미있게 잘 완성할 것 같다는 자신이 있었죠. 영화를 다룰 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지는 점도 좋았고요.

 

ㅡ 영화 산업 관련 종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완성해 냈어요. 수많은 고비가 찾아왔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모춘 초반에는 DVD방 수준으로 생각했던 거예요(웃음).

 

소호 프로젝터에 원하는 영화를 틀듯이 ‘영화 배급사에 연락해서 전달받고, 상영하면 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었어요. 막상 시작하려고 본격적으로 알아보니 고려할 부분이 무수히 많더라고요. 영사기를 다루는 기술적인 부분이나 영화 예매 시스템처럼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에 겁 없이 뛰어든 거죠. 영화 업계에서 이미 고정된 시스템이 있었기에 이를 하나하나 공부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도 극장 프로젝트를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3층 상영관으로 이동하기 전, 2층의 라운지에서 대기할 수 있다.

ㅡ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에서 ‘도서관에서 은은한 햇빛이 들어오는 아스라한 느낌’과 ‘오키나와의 한적한 도피처’ 같은 모습을 이야기했었죠. 완성된 무비랜드가 이러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로 구현했다고 생각하나요?

모춘 디자인과 기획 일을 오래 담당해 왔다 보니, 지나치게 계획에 충실한 공간이 완성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초기에 생각했던 모습은 버나큘러 디자인(비전문가가 디자인한 디자인)에 가까운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방향이 조금 틀어졌어요. 시간이 지나면 얼룩도 생기고, 손때가 묻어나면서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방문자가 디자이너라면 이 공간에 굉장히 만족할 겁니다.

 

소호 저는 오히려 상상하던 지점에 근사하게 도달했어요. ‘근사하다’라는 표현이 ‘자기 마음에 가까이 간다’는 뜻이래요.

티켓 발권과 기념품 결제를 담당하는 카운터 공간

ㅡ 세라믹 아티스트 ‘나이트프루티’, 가구 디자이너 윤정빈, 디자인 스튜디오 ‘콩과하’처럼 다양한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으로 완성된 공간입니다. 그들과 함께하게 된 기준이 있었나요?

모춘 정체성이 뚜렷한 본인만의 작업을 하는 이들이 합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공간을 남다르게 해석해 줬으면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모든 프로젝트 과정을 유튜브로 공개하다 보니, 로컬 아티스트들을 소개하게 되어 기뻐요.

2층 라운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측 벽에 상징적인 세라믹 월이 자리한다.
디자인 스튜디오 콩과하가 디자인한 원통형 목재 책상에는 영화 서적이 꽂혀 있다.

ㅡ 스크린 업체 블룸즈베리랩 대표를 비롯해 영화 관련 산업 종사자분들과 미팅을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춘 어렵고 낯설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정말 많았습니다. 실제로 소호에게 “그만 포기하자”라고 진지하게 말한 적도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소호와 팀원들이 힘을 내서 끌고 갔기 때문에 오늘에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팀의 존재가 소중해지는 시간이었어요.

 

소호 저도 비슷했어요. 제가 그만두고 싶을 때는 모춘이나 다른 팀원들이 열심히 하고 있어서 그만하자고 말을 꺼내기에 미안한 상황이 벌어졌죠. 그렇게 서로 힘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완성한 프로젝트예요.

 

ㅡ 프로젝트의 시작점부터 완성까지의 모든 과정을 유튜브에 공개하면서 수많은 반응과 마주했을 텐데 기억에 남는 게 있었나요?

소호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분들이 흔들리는 순간에 저희 영상을 보고 큰 힘을 얻는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영상에 완벽한 모습만 담긴 것이 아닌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장주 모춘이 무비랜드에서 가장 아끼는 공간이라고 꼽은 1층의 매점
모베러웍스 팀원들이 손수 제작한 새 모양의 '정크 푸드(JUNK FOOD)' 장식

ㅡ 무비랜드에서 가장 아끼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모춘 1층의 매점이 극장이라는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가장 마음에 듭니다. 3층 상영관으로 향하기 전의 설렘이 극대화되는 공간이 아닐까요? 특히, 매점의 시계는 저희가 동경하는 디자이너 조지 넬슨의 작품인데 공간과 어우러진 모습을 보니 뿌듯하더군요.

 

소호 3층의 상영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특히, 의자가 마음에 들어요. 가격이 두 배인 프리미엄관 의자여서 한참 고민을 했지만, 한번 앉아보니까 일어설 수 없더라고요. 심지어 원래는 모두 가죽으로 된 의자를 새롭게 디자인한 오렌지색 벨벳 천으로 씌우는 작업까지 했습니다. 협소한 공간이지만 영화를 관람할 때만큼은 정말 편안할 거예요.

극장주 소호는 3층 상영관을 무비랜드에서 가장 아끼는 공간으로 선정했다.

ㅡ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디테일들이 곳곳에 정말 많더라고요.

 

모춘 본격적인 영화의 상영에 앞서 등장하는 새가 날아가는 영상도 마찬가지예요. 그 새는 2층 라운지의 세라믹 월에도 새겨져 있죠. 상영관의 띠장에도 새겨져 있는 그 새와 동일한 새예요. 연결성을 중요시했습니다.

 

소호 2층 라운지의 화장실에 가기 전에 1인을 위한 ‘슈퍼싱글’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 놓인 액자의 사진을 유심히 봐주세요. 당당한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1인을 위한 ‘슈퍼 싱글(SUPER SINGLE)’ 좌석에 놓인 당당한 포즈의 여행자 사진 ​

ㅡ 1층의 바닥 한구석에는 동전을 심었던데요?

모춘 작년 노동절(5월 1일)에 극장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100분을 초청해 사무실에서 성공기원제 행사를 했었어요. 그때, 선물로 드렸던 동전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극장을 오픈하게 되면 그 동전을 꼭 묻어 놓겠다.’라고 말했는데 약속을 지켜서 감격스럽네요.

 

ㅡ 티켓 부스 앞의 바닥에 심어진 현판에 담긴 뜻도 궁금하더군요.

소호 마치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발자국을 찍는 것과 같은 의미예요. 0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내부 인테리어만 했다면 현판을 심지는 못했을 텐데, 저희는 신축한 건물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무비랜드의 현판은 그들이 건축에서부터 새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1층 매점의 바닥 한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조'가 새겨진 동전

ㅡ 개관을 준비하면서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의 대표 ‘녹싸’, 스크린 전문 업체 ‘블룸즈베리랩’ 김요섭 대표같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습니다. 기억에 남는 그들의 한마디가 있다면?

소호 접객에 대해 많은 조언을 남겼던 녹싸의 ‘생장’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많이 남아있어요. 브랜드 운영은 성장이 아닌 생장이라고 했었는데,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느낌이었달까.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도 운영이 가능하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얻었습니다.

모춘 또, 접객하는 데에 있어서 ‘수련’이라고 말하기도 했거든요. 그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블룸즈베리의 김요섭 대표님은 몽골에서 영화관을 하신 것만으로도 존경스러워요. 그런데 그분이 영화관을 오픈하던 날 사람들이 ‘깔깔’ 웃으면서 영화를 보는 게 너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감정을 어서 느껴보고 싶어요.

모베러웍스에서 디자인한 영화 티켓은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코팅 종이로 제작되었다.

ㅡ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해 라디오 형식으로도 이야기를 확장했더라고요.

 

소호 영상은 시각 중심적인 매체이다 보니, 저희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라디오를 통해 하소연도 하고(웃음), 무비랜드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모춘 앞으로 무비랜드의 상영작을 큐레이션 하는 게스트를 초대해 라디오로 그들이 직접 말하는 영화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에요.

 

ㅡ 무비랜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모춘 ‘온갖 욕망의 집합체(웃음)’.

 

소호 ‘투 비 컨티뉴(TO BE CONTINUE)’. 영화가 끝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문구이잖아요. 이 극장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직 모르는 미완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ㅡ 앞으로 펼쳐질 무비랜드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네요. 어떤 행사를 구체적으로 진행할 예정인가요?

 

모춘 헤이팝에게 비밀스레 ‘스포’를 해볼까요? 5월 1일, 노동절에 개봉하려고 준비 중인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모베러웍스의 유튜브 채널 ‘MoTV’에서 미처 다 담지 못했던 무비랜드의 준비 과정을 담은 영화가 다큐멘터리 전문 매거진과의 협업으로 완성될 예정이에요. 또,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내밀한 이야기를 영화로 전달하면서 관객들과 효과적인 상호교류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방안도 기획 중입니다. 마치 팝업 스토어와 같지만, 조금 더 심도 있게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2층 라운지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극장주 소호와 모춘, 그리고 반려견 부기
TPO

극장주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

일본 도쿄의 블루노트를 좋아해요. 아오야마에 있는 블루노트는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하며 재즈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블루노트의 본점은 1939년에 미국 뉴욕에서 최초로 문을 열었고, 80년대 후반 도쿄에 지점을 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일본의 문화가 묘하게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입장하면 무거운 겉옷을 보관할 수 있고, 예약을 확인한 다음에 레코드판 모양의 테이블 번호표를 주죠. 술을 마시며 라이브 재즈 공연을 보는 경험만으로도 좋은데, 노래가 끝나갈 즈음 관객들이 다함께 박수를 보낼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곤 합니다. 공연을 보며 상념에 젖기도 하고 새로운 꿈을 꾸며 환기도 하는 마치 오아시스와 같은 공간입니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성채은 기자

사진 영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무비랜드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의 놀이공원, 무비랜드

      : file no.1 : 영화가 전부가 아닌 곳

▶ : file no.2 : 디자이너에서 극장주로

      : file no.3 : 0에서 시작해 3층까지

프로젝트
[Post-It] 무비랜드
장소
무비랜드
주소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5-5
시간
목~일요일 (15:00 - 22:00)
크리에이터
브랜드 기획/디자인 | 모베러웍스
건축 | 쿠움 파트너스
공간 및 가구 디자인 | 콩과하
스툴 가구 디자인 | 윤정빈
세라믹 | 나이트프루티, 마라가람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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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의 놀이공원, 무비랜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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