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4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의 놀이공원, 무비랜드 ①

: file no.1 : 영화가 전부가 아닌 곳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가 어우러진 무비랜드의 입구 전경
주물로 직접 제작한 무비랜드의 간판

Briefing

무비랜드

대한민국에서 지금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동네, 성수동의 한 골목에 과거로 회귀한 듯한 극장이 생겼다. 지난 2월 29일에 정식 오픈을 마친 무비랜드가 그 주인공. 언뜻 삭막해 보이는 회색 외관을 비집고 안을 들여다보면, 온기 가득한 목재로 뒤덮인 실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다른 정겨움, 예술 영화관과는 다른 관대함으로 극장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한 무비랜드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 모베러웍스가 일궈낸 또 하나의 혁신이다. “영화는 하나의 종합 예술”이라고 말하는 극장주 모춘의 말에서 무비랜드의 모든 것이 시작됐다. 이전에 팝업 스토어 디자인 및 굿즈를 제작해 온 그들이 돌연 극장이라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자 의아해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렇지만 그들을 오래 관찰해 온 이들이라면 금세 수긍할 것. 모베러웍스의 일관된 관심사는 ‘이야기’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팝업 스토어와 굿즈,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왔다면, 이제는 극장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극장주 모춘은 설명한다.

'아메리칸 빈티지'를 구현한 무비랜드의 측면 간판
광고 게시판 속 스케줄표와 상영작 포스터, 스툴 등 눈길이 가는 모든 곳이 디자인된 무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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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라는 종합 예술

마치 ‘도서관에 아스라이 비치는 햇빛’이나 ‘오키나와의 한적한 피난처’와 같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을 꿈꿨던 극장주는 ‘아메리칸 빈티지’로 그 무드를 완성해 냈다. 극장주 모춘은 초기에 구상했던 버나큘러 디자인(비전문가들이 한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디자인 공간 속에서 머무는 즐거움은 무비랜드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다.

 

무비랜드를 겉에서 살짝 둘러보기만 해도 남다른 곳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1층의 보이드(void, 기둥이나 벽으로 둘러싸이지 않은 트인 공간)에서부터 디자인적 감각이 돋보인다. 비정형적인 모양으로 깎인 주물 간판과 조합이 좋은 노출 콘크리트의 외관은 도회적인 분위기로 맞이하나, 보이드 안쪽의 건물 입구는 목재로 마감하여 정겨운 분위기가 한껏 느껴진다. 외부에 놓인 다섯 개의 스툴은 가구 디자이너 윤정빈의 손에서 완성된 ‘까눌레와 변형 시리즈’이다.

윤정빈 디자이너의 '까눌레와 변형 시리즈'
(왼)펩시콜라의 과거 로고를 재현한 빈티지한 디자인 (오)무비랜드 방문객의 페르소나를 그린 스티커 ​

모베러웍스를 대표하는 새 모양의 캐릭터 ‘모조’를 극장에 맞춰 새롭게 디자인한 ‘필름모조’ 형태의 목 손잡이를 힘차게 밀어 안으로 들어선다. 1층 내부로 들어서면 공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허기를 채워줄 매점과 추억을 간직할 기념품숍, 계산대로 구성됐다. 특히, 레트로한 실내 디자인의 매점에 자연스레 자리 잡도록 펩시콜라의 1세대 로고를 부착한 음료 디스펜서에 주목해 보자. 하단에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90년대 스타일의 펩시콜라 로고가 자리한다. 기념품숍에서는 실크 스크린을 사용해 스태프가 즉석에서 가방이나 티셔츠에 선택한 디자인 문구를 찍어주는 점도 독특하다.

'실크맨'의 손길로 완성되는 프린팅 서비스

무비랜드의 2층에 마련된 라운지에서는 세라믹 스튜디오 나이트프루티와 마라가람에서 제작한 독창적인 오브제들이 목 선반을 차분하게 빛낸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흑백의 다각형 세트장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마라가람의 선물, 나이트프루티에서 모춘이 손수 만든 무비랜드의 대표 상영작의 로고를 새긴 거대한 항아리 오브제처럼 소품 하나하나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출입구 우측 벽의 세라믹 월에는 ‘마음껏 떠들라’라는 의미로 말하는 새 형상이 숨겨져 있으니 유심히 살펴보자.

(왼)나이트프루티에서 제작한 필름모조 세라믹 오브제 (오)극장주 모춘이 직접 손으로 빚은 무비랜드 대표 상영작 오브제
2층 라운지에서는 ‘마음껏 떠들라’는 의미가 담긴 세라믹 월과 편안한 가구가 자리한다.
주황빛으로 가득 찬 3층 상영관은 30석의 좌석 모두 프리미엄 상영관 의자로 완성됐다.

마침내, 3층의 상영관으로 들어선다. 보드랍게 밟히는 카펫에서부터 다이아몬드 문양의 목재로 마감한 천장, 벽과 천장을 잇는 띠장, 심지어는 좌석에 수놓아진 자수까지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아 완성도 높은 미감을 자랑한다. ‘무비랜드’의 영문 알파벳을 조합해 새로이 만들어낸 패턴으로 카펫을 제작해 카펫을 깔았으며, 무비랜드를 대표하는 ‘필름모조’가 날아가는 모습과 ‘TO BE CONTINUE’, ‘DUSTY GEMS’가 함께 새겨진 띠장이 상징적이다. 프리미엄 상영관 의자에는 직접 디자인한 서체를 자수로 새긴 좌석표가 새겨져 있으며, 가죽 대신 오렌지색 벨벳 천을 덧씌워 아늑함을 더했다.

무비랜드의 상징적인 새가 날아가는 모습이 연속적으로 띠장에 새겨져 있다.
로고가 새겨진 카펫부터 좌석 안내표의 서체까지 모베러웍스가 직접 디자인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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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하게 공개한 프로젝트 과정

4년 전, 브랜드 모베러웍스를 설립하는 과정부터 인터뷰 시리즈, 출판 프로젝트 등을 유튜브 채널 ‘MoTV(이하 ‘모티비’)’를 통해 공개해 온 것처럼 무비랜드를 오픈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공개했다. 이를 시청하며 극장 프로젝트를 응원해 온 ‘모쨍이(모티비의 구독자 애칭)’들을 위한 작은 이벤트가 지난 노동절에 모베러웍스 사무실에서 열리기도 했다. 극장에 관한 지식이 없었던 그들이 극장을 세우기까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마치 친한 친구처럼 옆에서 지켜본 모쨍이들은 무비랜드의 오픈 소식에 감회가 남다를 것.

 

모티비 채널에서는 소호와 모춘이 극장을 구상하게 되는 초기의 모습을 비롯해 극장 관련 산업 종사자와의 미팅, 건축과 인테리어 과정까지 전부 확인할 수 있다. 각 10~20분 정도 길이의 영상이 현재까지 총 33편 업로드 되어있으니, 무비랜드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시청해 보길.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이라면 좌절 앞에서도 시도를 멈추지 않는 모춘과 모베러웍스 팀원들의 모습에서 용기와 영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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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상영작

무비랜드를 빛내는 것 중 하나는 큐레이션 상영작이다. 이달에는 오픈을 기념하여 극장주 모춘이 고심 끝에 고른 네 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가 특정 시기마다 반복해서 시청했다는 스릴러부터 SF, 무협, 애니메이션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예술 영화관에서는 간혹 시기에 맞는 주제로 큐레이션을 하거나 감독전이 행사처럼 열리기는 하지만, 특정인이 추천하는 영화를 큐레이션 하여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극장은 생소하다.

모춘의 디자인으로 완성된 2024년 3월의 큐레이션 상영작 포스터

모춘이 추천하는 영화 4편 중 하나는 무려 1966년의 영화이다. OTT 서비스로 인해 안방에서도 쉽게 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과거의 대작을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함께 감상하는 일은 오감을 자극하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상영작에 관한 큐레이터의 보다 자세한 설명이 모티비와 팟캐스트에 라디오 형식으로 공개되어 있으니 참고해 보자. 평소에는 전혀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영화 장르에 어느새 빠져들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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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 되는 극장

무비랜드는 시네필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모베러웍스가 설정한 관객들의 페르소나는 다양하다. 적어도 무비랜드 안에서는 영화관에서 통용되는 금기를 깨고, 예의라고 알려진 규칙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기념품과 같은 남들이 보기에는 ‘쓸모없는 물건’을 수집하는 ‘트래쉬 콜렉터(TRASH COLLECTOR)’가 그 첫 번째 주인공. 그들을 위해 1층의 기념품숍에서는 핀 배지, 라이터 등 무비랜드 방문을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세 가지 페르소나를 설명하는 무비랜드의 기념품 중 하나인 씰 패치 ​

영화관에 먹으러 가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 무비랜드는 두 번째 페르소나인 ‘스낵 킬러(SNACK KILLER)’를 환영한다. 대다수의 예술 영화관은 영화 관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취식이 불가해 스낵 킬러에게는 아쉬운 곳이었다. 팝콘은 물론, 핫도그, 츄러스를 비롯한 스낵류와 맥주, 와인, 커피 등의 음료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특히, 커피는 프릳츠커피의 대표가 직접 방문해 세팅한 설정값으로 추출하며, 프릳츠커피에서 제공하는 ‘서울 시네마’ 원두를 사용한다고 하니 그 맛이 더욱 궁금하다.

팝콘과 음료 패키지에도 모베러웍스의 디자인이 담겨 있다.
콜라와 커피 이외에도 맥주, 와인처럼 주류가 준비되어 있는 매점

마음껏 영화에 관해 떠들고 싶은 ‘헤비 스포일러(HEAVY SPOILLER)’가 그들이 설정한 마지막 페르소나이다. 예약한 영화를 이전에 본 적이 있는 친구와 동행한다면, 그들에게 미리 ‘스포’당할 각오를 하자. 무비랜드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이야기해도 좋다.

상영관에 팝콘을 흘려도 되고, 자도 된다는 무비랜드의 규칙 설명

영화를 본격적으로 상영하기 전, 모베러웍스에서 직접 제작한 트레일러 영상이 이 특별한 극장의 규칙을 설명한다. 가장 눈에 띈 점은 영화를 보다가 졸음이 몰려온다면, 편하게 자도 좋다는 것. 아늑하게 감싸는 프리미엄관 의자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시간을 즐겨보자.

*2편에서 계속됩니다. 

 성채은 기자

사진 영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무비랜드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의 놀이공원, 무비랜드

▶ : file no.1 : 영화가 전부가 아닌 곳

      : file no.2 : 디자이너에서 극장주로

      : file no.3 : 0에서 시작해 3층까지

프로젝트
[Post-It] 무비랜드
장소
무비랜드
주소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5-5
시간
목~일요일 15:00 - 22:00
크리에이터
브랜드 기획/디자인 | 모베러웍스
건축 | 쿠움 파트너스
공간 및 가구 디자인 | 콩과하
스툴 가구 디자인 | 윤정빈
세라믹 | 나이트프루티, 마라가람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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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의 놀이공원, 무비랜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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