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투라 서울은 2018년부터 리서치와 설계 과정, 작가와의 협업을 거친 끝에 6년 만에 대중에 선보이게 되었다. 기존의 리노베이션 계획에서 신축으로 방향을 틀며,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공간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한 이가 구다회 대표이다. 준비 과정에서 직접 발로 뛰며 전 세계 뮤지엄과 미술관을 탐방했고, 작가와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어떠한 제약 없이 유연하게, 다채로운 장르와 형식의 예술을 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컬렉션 중심인 미술관과 그림을 사고파는 행위에 보다 집중하는 갤러리가 아닌 ‘예술 공간’을 지향한다는 구다회 대표. 그에게 푸투라 서울의 비전과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Interview with
구다회 푸투라 서울 대표
— 가족의 영향으로 유년 시절부터 예술을 가까이하셨다고요. 푸투라 서울은 자연스레 쌓인 안목과 지식의 결과물인 셈일까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은 저에게 일상적인 존재였어요. 예술 애호가셨던 아버지 덕분에 가족 간의 대화에서도 미술, 음악, 문학이 자연스럽게 주제가 되었죠. 세계 곳곳의 뮤지엄과 갤러리를 경험하면서 제가 특히 매료된 곳들은 인터랙티브 아트나 실험적인 예술을 다루는 공간이었습니다. 언젠가 이런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왔고, 그 꿈이 현실로 이어져 푸투라 서울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3층 이하로 고도를 제한하는 등 여러 규제가 있지만, 이곳의 문화적 중요성은 계승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문화를 나누겠다는 생각으로 예술 공간을 만들게 되었고, 푸투라 서울에 참여한 모든 분들도 이러한 비전에 공감하며 함께해 주셨습니다.
— 푸투라 서울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푸투라 서울의 이름은 저희 아들이 지은 거예요. 라틴어인 ‘푸투라(Futura)’는 과거에 쓰였던 고어지만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단어죠. 북촌 가회동이라는 전통적 지역적 맥락에서 ‘옛 고을에서 미래를 생각한다’는 뜻을 부여하며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푸투라 서체 또한 탄생 배경에서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철학을 내포하고 있더라고요. 단순하지만 강렬한 이름을 통해 공간의 정체성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공간 곳곳 시선이 닿는 곳마다 다양한 소장품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이 작품들이 푸투라 서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입구에는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로네의 거대한 알루미늄 두상 조각을 두었어요. 가면이나 유령을 연상시키는 조각은 다채로운 표정을 통해 기쁨과 역경 등 인간 내면 감정을 은유하죠. 1층에는 무려 60년 전 오늘날의 첨단 기술 시대를 예견한 백남준 선생님의 1996년 작품을 배치했어요.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신 백남준 선생님의 철학에 공감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1층 입구 앞에 그의 작품을 두었습니다. 또한 관객에게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주고자 필립 파레노의 차양 작품을 독특한 위치에 놓았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3층에는 리처드 터틀의 작품을 시선보다 조금 높게 배치해 마치 작은 간판처럼 보이게도 했죠. 이 외에도 이우환, 알렉스 카츠, 김택상, 켄건민, 아니카 이 등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다수의 동시대 예술가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요.
— 전시실을 ‘백 개의 시’로, 기획전을 ‘첫 번째 시’, ‘두 번째 시’ 등으로 소개하는 점이 서정적으로 다가왔어요.
전시는 하나의 시와 같다고 생각해요. 시라는 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잖아요. 전시도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서, 백 개의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지었어요. 이 생각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에게 이야기해 보았는데, 너무 좋다고 격려해 주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도 시를 굉장히 좋아하셨기 때문에 여러모로 기분 좋은 느낌과 의미를 품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 WGNB 백종환 소장님과의 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된 요소는 무엇인가요?
공간 경험에 있어 ‘언익스펙티드(Unexpected)’를 추구했어요. 그래서 백종환 소장님께 예상 밖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해 달라고 요구했죠. 우리는 뜻밖의 요소에서 더욱 큰 인상을 받곤 하잖아요. 사람들이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의외성을 곳곳에 두어 공간이 주는 즐거움이 극대화되길 바랐죠. 연면적이 300평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전시장으로서 그리 큰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차별화된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공간 진입 시 감각을 확장하기 위해 계단의 단차로 공간을 나누는 스킵플로어 구조를 활용한 것과 ‘백 개의 시’ 전시장의 높이를 10.8m로 설정하고, 좁은 통로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오는 구조로 시퀀스를 만들어 공간감을 한층 살린 것 등을 꼽을 수 있죠. 그리고 콘크리트의 물성이 자칫 차갑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 온기를 부여하고자 나무 소재를 적극 사용했죠. 입구와 티켓부스, 1층 천창, 계단 손잡이, 화장실, 엘리베이터를 원목으로 마감했습니다.
— 미디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으로 구성했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레픽 아나돌의 작품은 맵핑이 아닌 경우 지금까지 모두 LED를 사용하여 전시되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프로젝션을 통한 전시 방식을 선택해 맞춤 제작 스크린을 설치했어요. 세계 최초로 시도한 방식이라고 하더라고요. 첫 전시 작가로 레픽 아나돌을 염두할 때부터 꼭 프로젝터와 대형 스크린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LED 영상은 미디어아트 특유의 뾰족한 인상을 주는 듯한데, 프로젝터로 연결한 영상은 좀 더 회화가 갖고 있는 서정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레픽의 작품과는 후자의 방식이 더 맞다고 본 거죠.
전문가들과 스크린 재질, 페인트, 프레임 등 여러 요소를 함께 고민하여 그에 맞는 비스포크 스크린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빛에는 물성이 없다고 하지만, LED와 프로젝터의 빛은 분명 다른 물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래픽 아나돌의 작품은 여러 대의 프로젝터를 사용하여 높고 폭이 좁은 스크린에 전시를 한 적이 없었기에 이 방식은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처음인 만큼 작가와 몇 달의 고민과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만, 완성된 후 푸투라 서울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이 도전적인 시도가 만들어 낸 작품에 대한 새로운 인상과 전시의 완성도에 높은 만족감을 표현하였습니다. 전 세계 유수의 뮤지엄과 비교했을 때 손색없는 최고 퀄리티 환경이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푸투라 서울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뒤, 「서울 바람, Winds of Seoul(2024)」과 「인공 현실: 태평양, Artificial Realities: Pacific Ocean(2024)」를 새롭게 작업해 주기도 했어요. 이 두 개의 신작을 갤러리 3에서 선보였죠.
— 개관전의 작가로 레픽 아나돌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티스트의 작품 세계가 저희 콘셉트와 철학이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현재를 통해 미래를 생각하게 만드는 예술을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AI가 세상에 퍼지기 전부터 눈여겨보고, 그걸 연구한 사람의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AI로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프로그램 하나 만드는 데도 수년이 소요됩니다. 수집한 데이터를 지우는 데도 거의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해요. 굉장히 치밀하게 연구하고 노력한 끝에 탄생한 작품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AI가 우리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이 시점에 레픽의 작품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사유하는 기회를 전하고자 했어요.
— ‘지구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기획된 행사의 콘텐츠가 매우 흥미로웠어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레픽 아나돌 작가의 대담부터 칠링 쇼, 영화 상영회 등을 전개했었죠.
‘지구가 품고 있는 끝없는 밤의 이야기’를 테마로 지구의 밤을 진행해 왔어요. 아티스트 큐레이션 그룹 ‘HOLO Sight & Sound’의 황수아 감독님과 협업해 전개하는 프로젝트인데요.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와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과 영감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했습니다. 레픽 아나돌의 작품 「Echoes of the Earth : Living Archive」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만큼, 작가의 예술 세계의 근원이 된 영화와 인물 등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왔어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레픽 아나돌, 미디어아티스트 강이연의 토크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뮤지션 제휘의 ‘Echoes’와 소리꾼 이희문의 ‘Hallucination’ 음원 및 뮤직비디오 발매, 백남준 다큐멘터리 상영회, 실링서비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예술적 담론을 확장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관점의 예술 행사를 기획해 좀 더 대중적이고 편안한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 대표님이 지향하는 예술 공간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저는 예술 공간이라면 다감각적인 경험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데요. 푸투라 서울을 통해 전시를 보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먼저 전시장에서 신발을 벗고 거닐 수 있도록 바닥에 온돌 처리를 했는데요. 혹여 불편함을 느끼는 분들을 위해 청결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마지막엔 구둣주걱도 준비해 두었어요. 내국인에게는 친밀한 정서를 전하고, 해외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한국의 따듯한 온돌 시스템을 통해 색다른 감각을 부여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전시장 내부에 앉거나 눕는 등 보다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죠. 이곳에 방문할 때마다 신선함을 줄 수 있도록 전시에 따라 관람 동선을 다르게 구성할 예정입니다. 레픽 아나돌 전시에서 마지막에 100개의 시 전시장 문을 열고 나왔다면, 언젠가는 그 문에서 시작되는 전시도 있을 겁니다. 미디어 작품을 다 관람한 후에는 옥상 정원이나 후원에서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여운을 느끼고, 환기하기를 권해요. 여러 감각을 자극하며 풍요로운 예술 경험을 하기를 바랍니다.
— ‘두 번째 시’는 다가오는 5월에 열릴 예정이라고요.
영국 작가 안소니 맥콜의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안소니 맥콜의 작품은 2019년에 아트 바젤에서 처음 만나게 됐는데요. 왠지 모르지만 끌리는 사람이 있잖아요. 안토니 맥콜이 바로 그런 분이었어요. 그는 1973년을 시작으로 빛을 입체적 형태로 구현하는 설치 작품을 선보여 왔는데요. 아방가르드하면서 진취적인 작품에 반했죠. 빛이라는 소재는 여전히 너무 흥미롭잖아요. 두 번째 전시도 많은 분께 재미와 즐거움을 안겨주기를 바라며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 앞으로 푸투라 서울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시나요?
사람들에게 ‘좋은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어요. 소위 믿고 가는 예술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시 기획에 더욱 공을 들일 예정입니다. 지구의 밤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면 자연스레 자리를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TPO
구다회 대표가 영감을 얻은 공간
‘미래의 박물관’이라는 별명을 지닌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Ars Electronica Center)를 감명 깊게 보았어요. 매년 미디어 아트 축제가 열리는데, 첨단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탐구하는 실험의 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공지능은 물론 로봇, 가상현실, 증강현실, 3D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아트를 제시하죠. 이탈리아 베니스의 푼타 델라 도가나, 프랑스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등 건축 자체로 강한 임팩트를 주는 곳들도 있죠. 푸투라 서울의 후원은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의 숍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청담동에 있는 한복집인데도 창밖으로 낮은 담장과 소담하게 가꾼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더라고요. 그때 만약 무슨 공간을 만들게 되면 저렇게 정원을 차경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푸투라 서울
장소 푸투라 서울
주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61
건축면적 581.23㎡
연면적 995.7㎡
총괄 WGNB
건축 설계 WGNB + PSPTVS 건축사사무소
공간 설계 WGNB
시공 제효(주)
구조 터구조
기계,전기,설비 하나기연
토목 다온지오이엔지
조경 연수당
*3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길보경 객원 기자
사진 강현욱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푸투라 서울, WGNB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미래를 위한 창, 푸투라 서울
: file no.2 : ‘언익스펙티드’한 공간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