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유니클로의 글로벌 이벤트 시리즈 ‘로저 페더러와 함께하는 세계 여행(Around the World with Roger Federer)’이 뉴욕, 상하이, 파리에 이어 서울에서 열렸다. 본 행사는 유니클로의 미래 세대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18년부터 글로벌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로저 페더러가 세계 각국을 돌며 어린이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테니스와 예술, 문화를 공유하는 캠페인이다.
											‘레디, 셋, 서울(READY, SET, SEOUL)’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번 행사는 테니스를 향한 애정을 바탕으로 폭넓은 예술·문화 영감을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로저 페더러는 국내 유소년 선수들을 직접 지도하며 진심어린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장을 특별하게 만든 건 세계적인 아티스트 카우스(KAWS)와 한국 디자이너 용세라의 협업이었다. 두 아티스트가 창작한 서로 다른 곡선과 컬러가 코트 위에서 겹치며 마치 하나의 움직이는 회화 같은 장면을 완성했다. 현장에 참석한 유니클로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 존 제이(John C. Jay)는 이번 프로젝트를 “유니클로의 가장 역동적인 브랜드 경험”이라 정의하며, 브랜드가 추구하는 비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카우스와 존 제이는 유니클로의 오랜 협력자이자, 브랜드의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온 핵심 인물이다. 카우스는 지난 9월 유니클로 최초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e)’로 임명되며,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프로젝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2016년부터 UT 컬렉션을 통해 브랜드와 꾸준히 협업하며, 대중에게 예술을 확장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 왔다. 한편 존 제이는 유니클로의 모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Fast Retailing Co., Ltd.)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총괄로서, ‘라이프웨어(LifeWear)’ 철학을 바탕으로 브랜드가 지향하는 문화적 방향을 설계해 왔다. 두 사람은 유니클로를 옷을 넘어 문화로 확장하는 브랜드로 정의하며,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서울에서 열린 유니클로 글로벌 이벤트 참석을 위해 방한한 두 인물, 카우스와 존 제이에게 물었다. 패션 브랜드와 예술가의 협업이 잦아진 지금,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성공적인 협업’을 정의하고 있을까.
Interview with 카우스, 존 제이
유니클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총괄
											ㅡ 두 분 모두 유니클로와 오랫동안 함께해왔습니다. 특히 카우스는 브랜드 최초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로 임명됐는데요. 이전의 협업과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KAWS 유니클로와 함께한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네요. 그동안 존과 저는 이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을지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그런 대화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기보다, 서로의 신뢰를 한 단계 더 깊게 만드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제 작품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열어가고 싶습니다.
ㅡ 카우스는 이전에도 UT, 아트북, 전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니클로와 협업해왔습니다. 이번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밀접한 형태의 협업으로 보입니다.
KAWS 이번 역할은 단순히 협업이라기보다,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정에 가깝습니다. 제가 직접 작업하는 것을 넘어 다른 아티스트들을 브랜드로 초대해 더 큰 무대에서 자신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도록 돕는 일이죠. 
유니클로는 세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만큼 보편적인 브랜드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과거 UT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제 작업이 담긴 티셔츠를 입은 학부모들을 본 적도 있어요. 그만큼 유니클로는 일상에서 예술을 전하는 힘을 가진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이 브랜드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과 울림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John Jay 많은 분들이 카우스를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알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훌륭한 컬렉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죠. 특히,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주류 아티스트들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카우스가 유니클로의 큐레이터로서 완벽한 파트너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예술가를 브랜드로 이끌고, 그들을 통해 우리 역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가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은 젊은 세대와 나누는 진정성 있는 공감대입니다. 카우스는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유니클로 뉴욕 5번가 매장에서 아이와 가족을 위한 세미나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점이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 추구하는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번 협업을 통해 우리는 젊은 세대와 접점을 넓히고, 세상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더 깊이 발전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ㅡ 말씀하신대로 카우스는 아티스트이자 컬렉터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SNS를 통해 소장 작품을 공개하거나, 지난해에는 뉴욕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기도 했는데요. 단순히 작품을 소장하는 것을 넘어, 대중과 적극적으로 나누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KAWS 드로잉 센터(The Drawing Center)에서 열었던 전시를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저는 평소 종이에 작업하는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드로잉 작품을 수집해 왔어요. 지난 20여 년간 모은 작품을 한 공간에 모아 전시 형태로 선보이는 건 저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그 모든 작품을 한 번에 볼 기회가 없으니 ‘이걸 다 함께 모아두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이 들기도 했죠. 실제로 그 과정을 통해 저 자신도 많은 걸 발견했고, 그 경험을 대중과 나눌 수 있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ㅡ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의 첫 공식 활동이 오늘 서울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번에 함께 작업한 한국 디자이너 용세라도 카우스의 선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KAWS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 빠르게 진행됐어요. 불과 2주 전쯤 존과 이야기를 나누다 ‘한국 아티스트와 함께 코트를 디자인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바로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유니클로 측에서 여러 아티스트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세라의 작품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픽적인 정교함과 회화적인 감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죠. 시각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제 작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John Jay 이번 프로젝트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로서 선보이는 첫 공식 활동이에요.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라이프웨어 데이(LifeWear Day)’ 행사에서부터 구체화하기 시작했죠. 기획부터 실행까지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이뤄졌습니다. 기자 님이 지금 입고 계신 스웨터만 봐도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얼마나 빠르고, 또 열정적으로 구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같은 존재죠.
											서울은 창의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입니다. 카우스 역시 이전부터 여러 프로젝트를 서울에서 진행한 바 있었고요. 상호간의 신뢰가 있었기에 짧은 준비 기간에도 높은 완성도의 결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ㅡ 이번에 테니스 코트를 만든 것처럼 유니클로와 함께 또 다른 공간을 디자인하게 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런 제한이 없다면, 한 번쯤 시도하고 싶은 공간이 있으신가요?
KAWS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유니클로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도쿄(Tokyo)가 생각납니다. 저와 존이 처음 만난 도시이자,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장소이기도 하죠. 그래서 언젠가 일본, 특히 도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유니클로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곳을 직접 탐색하며, 제 관점으로 해석해 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ㅡ 요즘 브랜드와 아티스트의 협업이 매우 활발합니다. 굳이 성공적인 협업과 그렇지 못한 협업을 나눈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티스트와 디렉터의 입장에서 각각 듣고 싶습니다.
John Jay 우리는 협업 파트너를 선택할 때 매우 신중합니다. 디자이너의 유명세보다 중요한 건 ‘핵심 가치관의 일치’예요. 유니클로가 추구하는 라이프웨어 철학과 품질에 대한 태도, 타협하지 않는 자세와 같은 가치가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내부에서도 늘 세 가지 단어를 이야기합니다. Value(가치를 공유하는가), Beauty(미학적인가), Truth(진실한가). 이것이 협업을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이자 필터입니다. 
우리는 유행에 휩쓸리는 협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카우스도 역시 예술계의 규칙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길을 만들며 틀을 깨는 아티스트죠. 그런 면이 유니클로와 닮았습니다. 저는 종종 유니클로를 ‘급진적인 브랜드(radical brand)’라고 표현합니다. 다소 의외처럼 들리겠지만, 유니클로는 언제나 기존의 룰을 깨고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결국 핵심은 ‘공유하는 가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KAWS 파트너를 선택할 때 언제나 ‘직관’을 믿는 편입니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이죠. 유니클로와는 오랜 시간 함께하며 그 신뢰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프로젝트를 거듭할수록, 유니클로가 단순히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파트너라는 걸 느낍니다. 저에게 유니클로와의 협업은 제 예술을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하는 통로이자, 새로운 영감을 얻는 소중한 여정입니다.
글 김기수 기자
자료 제공 및 취재 협조 유니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