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

[the Makers] 1. 기억에 남는 팝업을 만들다, 최장순 LMNT 대표

흥미로운 미션을 거쳐 메시지에 도달하는 팝업
헤이팝은 더 메이커스(the Makers) 시리즈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고 마음을 사로잡은 팝업 기획자들을 소개한다. ‘팝업 포화 시대’라 불릴 정도로 무수한 팝업이 열리고 저무는 현재, 수많은 팝업 사이에서도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긴 팝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최장순 엘레멘트컴퍼니 대표·디렉터

더 메이커스(the Makers) 시리즈의 첫 번째 인터뷰이는 엘레멘트컴퍼니(LMNT)의 최장순 대표·디렉터다. 그는 2023년 4월 나무증권 〈나무증권공항〉, 7월 마카오정부관광청 〈2023 마카오 위크〉, 9월 동원 F&B 〈무릉동원〉 팝업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짧게 열리고 사라지더라도, 사람들의 기억에는 오래도록 남는 팝업을 만들고자 했다”라고 말하는 최장순 대표를 만났다.

1. 운영이 7할

엘레멘트컴퍼니(이하 LMNT)는 하는 일에 대해 ‘브랜드 경험을 총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총체적’이란 말은 어떤 의미인가?

브랜딩은 캐피탈(자본)의 니즈 때문에 시작된다. 캐피탈의 이익 창출에 도움이 되는 콘셉트와 아이디어가 있을 텐데, 그것을 어떤 시그널, 이를테면 명칭이나 디자인 등에 연결하는 일이 브랜딩이다. 비즈니스 전략을 세우고 크리에이티브 요소나 고객 접점 등을 개발하는 전 과정을 모두 진행한다는 의미다.

 

— 〈나무증권공항〉, 〈2023 마카오 위크〉, 〈무릉동원〉까지 다양한 팝업을 기획하고 진행한 바 있다. 증권사부터 F&B까지 분야가 다양하다. 함께하는 프로젝트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주 까다롭지는 않지만, 그 브랜드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지 확인한다. 내가 말하는 진정성이란 고객에게 약속하는 일을 실질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가에 관한 얘기다. 지향하는 핵심 가치나 역사, 이야기 등이 어느 정도 수긍이 되어야 우리도 자신 있게 브랜딩을 전개해 나갈 수 있다.

〈무릉동원〉 팝업스토어 외관. 콘셉트를 고려해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서 열렸다.
팝업스토어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가 있었다.

팝업은 근 몇 년간 큰 관심을 받은 브랜드 활동 중 하나다. 팝업을 무엇이라 정의하나.

말 그대로 팝(Pop), 무언가를 띄워서 보이게 하는 일이다. 주목도 있는 액션을 단기간에 진행하는 활동이자,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주의를 확 끌어서 브랜드 존재감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브랜드 존재감을 알리는 동시에 ‘팝업’을 진행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마케팅 목표도 달성해야 한다. 팝업 기획에 다양한 경험 디자인이 포함되는 이유는 그래서다.

브랜딩과 관련해 다양한 일을 진행해 왔다. 여러 업무 중, 팝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에서 두드러지는 특성은 무엇인가?

팝업 기획과 운영은 곧 고객이 와서 경험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기획도 중요하지만 운영이 더 중요하다. 보통 운칠기삼이라고 표현한다.

운이 7, 노력이 3이라는 뜻인가?

여기에서 ‘운’은 ‘운영’의 운이다. (웃음) 운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다. 팝업을 오픈하기 전에 시뮬레이션과 리허설 과정을 거친다. 운영 동선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방문객을 응대하는 멘트와 톤도 미리 설계한다.

〈2023 마카오 위크〉 현장.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렸다. 여행의 설렘이 느껴지는 친근한 분위기다.

멘트와 톤까지 미리 설계하는 줄은 몰랐다. 브랜드나 팝업의 성격에 따라 구성하는 건가?

만일 편안하고 캐주얼한 성격을 지향하는 브랜드라면, 고객과 주먹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거다. 그런 경우엔 스태프들의 개인기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편 증권회사처럼 신뢰도가 중요한 브랜드의 경우엔 차분한 톤으로 조율한다. 운영만 전담하는 인력을 3주 전부터 교육한다.

멘트와 톤 외에 어떤 것을 교육하나?

팝업 현장의 스태프들이 브랜드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브랜드의 성격부터 팝업의 취지, USP(Unique Selling Point) 등을 확실히 인지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팝업에 방문한 손님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사람은 결국 이들이기 때문이다.

2. 빌미를 제공하기

잘 만들어진 팝업은 좋은 책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앞과 뒤가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고, 다 읽은 후에는 소재가 다르게 보인다는 점에서.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어떠한 흐름을 이루는 팝업을 만드는 방식이 궁금하다.

관념적으로는 브랜드 콘셉트나 공간 경험 콘셉트를 만들고, 그 콘셉트를 구체화하는 하위 존(Zone)들의 콘셉트를 나눈다. 테마가 나오면 테마를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비즈니스적인 속성을 테마 안에 어떻게 녹여야 KPI 달성에 도움이 될지를 논의한다. 또 팝업은 공간을 한시적으로 임대해서 진행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하는 일도 필요하다. 지역과 공간에 따라 사람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생기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무릉동원〉 팝업 현장. 존(Zone)에 따라 콘셉트가 다르다.

공간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흐름이 다르다는 사실이 팝업 기획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는 팝업을 준비하면서 살펴보니, 팝업이 열릴 장소까지 흘러들어오는 고객이 별로 없었다. 그 방향으로 걸어오다가도 다른 곳으로 빠지거나 뒤돌아가는 흐름이 많더라. 이쪽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각적으로 확실하게 각인되는 컬러를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붙들기 위해서 스태프들을 길목에 배치해 호객도 했다. ‘여기에 이런 것이 있으니 와서 봐 달라’고.

장소가 정해지면 그 공간을 관찰해 흐름을 파악하는 것인가?

임대할 공간이 확정되면 마치 건물 임장 나가듯이 미리 가서 살펴본다. 평일엔 어떤지, 주말에는 어떤지. 여러 업장이 몰려 있는 백화점 같은 공간의 경우, 매력적인 업장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방문자 동선이 달라진다. 서울 성수동처럼 여기저기서 팝업이 열리는 지역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저절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런 지역에서는 이리저리 움직이던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시각적인 첫인상을 만드는 일이 관건이다.

서울 여의도의 백화점 더현대 서울에서 열린 〈나무증권공항〉 외관 ​

좋은 팝업에서는 언제나 브랜드와 방문자 간 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듯하다. 양방향 교류를 일으키는 방법이 궁금하다.

‘빌미’를 제공하면 된다. 스태프에게 말을 한마디 걸게 하는 빌미 말이다. 무언가를 설명 없이 놔두면, 궁금해서 물어보게 되지 않겠나. 호기심을 유도하는 장치를 만드는 거다. 방문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무릉동원〉은 동원 F&B의 제로 칼로리 아이스티 출시를 기념하는 팝업스토어였다. ‘제로’라는 키워드가 중요했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제로로 만들고 싶은 것은?’하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적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쪽지와 테이블 외 큰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으니 비용이 크게 들지는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스탬프를 찍으면 어떤 자격을 주고, 그 자격으로는 또 다른 공간에 들어갈 수 있게 하고… 결국 행위에 따른 보상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거다. 인류학에서는 행위를 수행하고 나면 행위에 약속되어 있던 보상 체계가 반드시 따라온다는 시스템을 말한다. 생션 시스템(Sanction system), 우리말로는 상벌 체계, 보상 체계라고 한다.

‘당신은 무언가를 했다’라는 증거를 쥐여주는 행위인가?

증거라기보다는 증여에 가깝다. 내가 무언가를 하면 거기에 따라서 계약된 것을 주는 거다. 팝업에 적용하자면 어떤 행위를 하고 도장을 받으면 2층에 올라가는 입장권을 준다든가, 옥상에 올라갈 기회를 준다든가 하는 식이다. 여러 단계의 미션을 만들되, 미션을 통과할 때마다 더 높은 보상을 주면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미션을 수행한다.

〈나무증권공항〉 현장

그 미션 역시 브랜드의 철학이나 정체성에 맞닿아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해볼 만한 미션을 어떻게 만드나?

그런 면에서 나무증권과 함께한 〈나무증권공항〉 팝업이 굉장히 어려웠다. 증권이나 주식은 그 자체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나. 게다가 팝업에 방문한 이들에게 주식 애플리케이션 가입을 유도해야 했다. 우선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들었다. 클라이언트는 마케팅 비용을 허공에 날리지 말고 고객에게 주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팝업의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자에게 투자 지원금을 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투자 지원금 프로그램에 응모하기만 하면 적어도 4달러는 획득할 수 있도록 꽝을 만들지 않았다. 전체 금액을 4달러부터 100달러, 1천 달러로 나눠 적절히 분배했다. 단, 지원금 응모 단계까지 가려면 몇 가지 미션을 통과하도록 설계했다.

어떤 미션이었나?

자판기를 떠올렸다. 자판기에 들어 있는 캔 하나하나를 미국 채권, 브라질 채권 등 증권 상품으로 삼았다.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상품 이름이 쓰인 맥주 캔이 나왔다. 벚꽃 축제 기간이라는 시기적 특성에 맞춘 것으로, 이 맥주 들고 축제를 즐기라는 뜻이었다. 또 맥주 캔에는 난수 코드가 쓰여 있어서, 돈을 획득하려면 그 난수 코드를 애플리케이션에 입력해야만 했다. 주식∙증권 애플리케이션은 가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데, 사람들이 그자리에서 전부 가입을 했다. 팝업이 열린 기간에 가입한 회원만 9,423명 정도였다.

〈나무증권공항〉 현장에 설치된 자판기
〈나무증권공항〉 현장. 주식과 여행을 연결해 공항 콘셉트로 공간을 디자인했다.

언급한 나무증권 팝업만 해도, 그 기획 안에 투자 지원금 응모나 자판기 아이디어, 벚꽃 축제 기간이라는 시기적 특성 등 여러 요소가 들어 있다. 다양한 생각이 한 팝업 안에서 어우러지면서도, 어느 하나가 튀지 않고 전체 콘셉트를 뒷받침하도록 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직관적인 판단으로 이뤄지는 걸까?

TF 팀 동료들과 거의 매일 만나면서 이게 좋을지, 저게 좋을지 이야기한다. 팝업 준비는 보통 급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여유롭게 작업할 시간이 없다. 매일 현장에서 실무진이 논의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 무척 많다. 팝업에는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 때문에 오픈한 후에도 무수한 변수가 생긴다. 뭔가 망가지거나 동선이 꼬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상치 못한 문제를 빠르게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 필요하다.

팝업의 성격에 맞춰 다양한 구성품을 디자인한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나무증권공항〉, 〈2023 마카오 위크〉, 〈무릉동원〉에 쓰인 디자인

3. 몰입하도록 만들 것

팝업이 단발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지속해서 브랜드에 좋은 영향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렬한 팝업으로 주목을 받았다면, 곧바로 그 흐름을 계속 끌고 가야 한다. 후속적인 마케팅 활동이 빠르게 이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제품 자체에 타사 제품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고객과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만일 마케팅 활동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서 팝업의 영향력이 반짝하고 그친다면, 기업의 결정권자들은 ‘팝업의 효과’ 자체를 의심하게 될 수 있다. 그 경우에는 더 이상 팝업을 기획하거나 진행하지 않는 쪽으로 기업의 방향성을 수립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해까지는 팝업이 확실히 주목받았지만, 올해부터 어떻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2023 마카오 위크〉에 방문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하루에도 수십 개의 팝업이 열리는 때다. 앞으로는 어떤 팝업이 방문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보는지 듣고 싶다.

‘몰입’은 전 세계적인 키워드다. 반 고흐 작품에 등장하는 빈방을 현실에 재현해 사진을 찍게 한다거나 오감으로 몰입하게 하는 방식의 전시는 이미 수없이 열리고 있다. 다른 수준의 몰입감을 줄 수 있는 기획이 선택받으리라 본다. 쇼츠, 릴스 등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매체가 너무 많은 시대인 만큼, 오프라인 경험 기획에서도 더욱 몰입하도록 설계하는 일이 중요할 듯하다. 몰입감을 높이면서도 좋은 메시지까지 담아낼 수 있다면,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한편 팝업 방문자가 대부분 2030 세대이다 보니 그들의 취향에 맞춘 팝업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비즈니스 관점으로 바라보면 이해는 되지만, 이것이 소비 시장을 단일화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시니어 소비자를 위한 팝업이나 기존 고객에게 감사를 전하는 팝업도 열리면 좋겠다. 실제로 신규 고객 한 명을 유치하는 비용보다 단골 고객을 충성 고객으로 만드는 비용이 훨씬 낮다. 또 단골 고객 한 명을 만족시키면 그는 주변의 열 명에게 입소문을 낸다.

엘레멘트컴퍼니의 동료들과 함께

지난 4월 LMNT가 카시나(KASINA)의 자회사로 편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듣고 싶다.

카시나 이은혁 대표는 우리나라 스트릿 씬의 대부다. 그가 걸어온 길은 정말 근사하다. 나는 카시나를 ‘파워드 바이 프렌드십(Powered by friendship)’, 즉 우정으로 움직이는 회사라고 정의한다. 카시나에게 제안을 받았다. 함께 한국의 여러 크리에이터들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역할을 하자는 비전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메시지를 뿌리기 위해서 브랜딩 일을 하는 사람이다. 카시나와 함께라면 지금껏 LMNT가 해온 일이나 집필, 강연에서 나아가 패션이나 음악 등 더욱 다채로운 영역과 결합하며 메시지를 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일하는 문화’에 대한 무언가를 기획하고 있다. 하반기 안으로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엘레멘트컴퍼니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the Makers] 1. 기억에 남는 팝업을 만들다, 최장순 LMNT 대표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