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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7

[home seoul home] 6. 고요하고 편리한 나의 섬

88년생 박상영의 성동구 집
서울의 집을 보여주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꿈처럼’ 아름다운 집보다는 생활감이 잔뜩 묻은 집, 사는 사람이 선명하게 보이는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과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눕니다. 현실과 취향이 어떻게 어긋나고 맞물리는지, 한정된 자원 안에서 무얼 취하고 단념하는지, 왜 이 브랜드가 여기 놓였는지 듣습니다. 누군가의 방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속의 삶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뮤지션 RM은 그의 곡 ‘seoul’에서 노래합니다. “빌딩과 차들만 가득해도 이젠 여기가 나의 집”이라고, “사랑과 미움이 같은 말이면 I love you Seoul”이라고요. 어쨌든 서울을 집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홈 서울 홈(home seoul home) 취재를 위해 여섯 번째로 찾은 곳은 서울 성동구, 1988년생 박상영이 사는 아파트다. 스물이 되던 해 서울에 왔다고 하니 그가 서울에 산 지는 16년쯤 된다. 박상영의 직업은 작가, 집은 그가 휴식하고 번뇌하고 일하는 공간이다. @novelistpark

ⓒ heyPOP

초대해 줘서 고맙다. 소개를 부탁한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1988년생 박상영이다. 프리랜서로 작가 일을 하고 있다.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드라마 각본도 쓴다. 여러 종류의 글을 쓰고 있다.

서울에 온 지는 얼마나 됐나.

16년쯤? 2007년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왔다. 처음엔 하숙집에서 살았다. 월에 30만 원 정도 하는 반지하 방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방에서 벌레가 너무 많이 나오고 방음도 아예 안 돼서 정말 힘들었다. 그때부터 주거 환경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같다.

그 방에서 얼마나 살았나?

한 학기 정도 살고 잠깐 미국에 갔다.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해서 미국으로 도피했다. 뉴욕에 살던 친구 집에 얹혀살았다. 친구가 하숙하던 다락방이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아늑하고 낭만적인 곳이 아니라 정말 비좁은 방이었다. 거기 그냥 끼여 살았다.

거실 겸 작업 공간. 사진 왼쪽 장식장 뒤로 책상이 있다. ⓒ hey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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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운 친구였나 보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그다음엔 쭉 학교 근처 원룸에서 자취했다. 서울에 머문 세월 치고는 이사를 자주 한 편은 아니다. 학생들이 사는 원룸 하면 딱 떠오르는 그런 방에서 오래 살았다. 이 집에 오기 전까지는 이사를 해도 계속 원룸이었기 때문에, 항상 방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스무 살 이후로 방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거다. 방이 곧 집이고, 집이 곧 방이었다. 여러 공간으로 나눠진 데 살고 싶다, 싱크대랑 옷이랑 책이랑 한눈에 좀 안 들어오는 곳에 살고 싶다, 생각했다. (웃음) 또 직업이 작가니까 책이 얼마나 많겠나. 버리고 버리고 버려도 기본적으로 몇백 권씩 쌓여 있으니까… 원룸에서 그걸 끌어안고 살려니 너무 힘들었다. 작가가 된 지 벌써 7~8년 됐으니 그 긴 세월 동안 책을 이고 지고 사느라 무척 곤란했다. 이번에 새로 집을 구하면서는 웬만하면 투룸 이상인 집으로 가자는 조건을 세웠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전나환 작가의 작품 ⓒ heyPOP

살았던 여러 원룸 중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두 번째 살았던 원룸. 건물주 나이가 나랑 비슷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그 건물을 증여받을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건물주는 7~8년 사는 동안 한 번도 전세 보증금을 올리지 않았고, 덕분에 오래 살았다. 거기서 대학 졸업도 하고 등단도 했으니 각별한 집이다. 또 이 집 직전에 살았던 당산동 오피스텔. 교통이 아주 편리했고 한강이 보이는 뷰도 맘에 들었다. 당시 나는 KBS와 MBC 방송에 고정 출연했는데, 당산은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와 상암 모두 가까워 편리했다. 출판사가 많은 합정이나 파주 가기도 좋았고.

그리고 이 집이구나. 이 집은 무엇이 맘에 들었나?

우선 방이 세 개나 된다는 점이 조건에 부합했다. 휑한 느낌도 좋았다. 처음 이 집을 본 게 리모델링 공사가 막 끝난 때여서 휑했는데, 늘 꽉 찬 방에 살아와서 그런지 그 텅 빈 느낌이 싫지 않았다. 만약 집 전체가 화이트 톤이었다면 완전히 맘에 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문이나 몰딩은 예전의 것을 그대로 둬 나무색이라는 게 괜히 좋았다. 옛날 건물이라는 흔적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는 점에 정이 갔다. 성동구라는 입지도 어디든 가기 편하고.

몰딩과 유리블록 등에서 리모델링 전 흔적이 느껴진다. ⓒ hey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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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어떻게 꾸미겠다는 포부가 있었나?

있었는데 자금 문제로 중단됐다. (웃음) 원래는 소파도 크고 멋진 걸로 사고 싶었는데, 살림을 좋은 걸로 갖추려 하니 돈이 많이 들더라. 이전 집에서 쓰던 30만 원짜리 소파를 계속 쓰기로 했다. 예산이 생각보다 많이 들 것 같아서, 이럴 바에야 집을 채우지 말고 텅 비운 채 살자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항상 집이 좁아터진 느낌으로만 지냈으니까, 이번에는 공간에 여유가 있는 상태를 즐겨 보려고 한다. 다만 책상은 일부러 거실에 뒀다. 이사를 할 때 이삿짐센터 직원분이 자연스레 책상을 방에 두셨더라. 내가 에어컨 바람 쐬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가장 넓고 밝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게 맞다 싶어 책상을 거실로 뺐다. 대신 파티션 역할을 하는 장식장을 사서 책상과 TV 사이에 뒀다. 작업 공간과 일상 공간을 분리하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작업용 책상 밑에는 발 받침대가 있다. 앉아 있는 시간이 길기에 의자는 중요하다. 허먼 밀러의 제품이다. ⓒ heyPOP

집이 무척 밝은 편이다. 이제껏 방문한 집 대부분은 조도가 높지 않았는데, 이 집은 유독 환해서 인상적이다.

밝은 조명을 좋아한다. 어두컴컴하고 침침한 게 싫다. 미국에 머물 때도 은은한 조명의 빛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형광등 조명이 없어서 힘들었지. LED 조명도 좋아한다.

이 집 조명이 거의 LED다. 너무 눈부셔서 개인적으로는 별로다. 그리고 LED 조명 아래에선 뭔가 내가 더 못생겨 보이는 듯해서 싫다. (웃음)

그 말엔 동감한다. 이 집 조명은 다 원래 있던 거고 직접 고르진 않았다. 화장실 조명도 LED인데, 그건 좀 괴롭다. 그 불빛 아래서 거울을 보면 피부가 진짜 안 좋아 보인다. 화장실 들어갈 때마다 거울 앞에서 흐린 눈 한다. (웃음)

옷과 잡동사니를 둔 방 ⓒ heyPOP
TV 시리즈 〈프렌즈〉를 좋아해서 구매한 레고 프렌즈 에디션. 아직 조립은 하지 않았다고. ⓒ heyPOP

성동구여야 했던 이유는 따로 없고, 우연히 이 동네로 흘러들어온 건가?

사실 가격에 맞췄다.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내가 생각한 전세금과 가격이 맞으면서도 주차가 가능한 집을 찾았다. 작업실에 오갈 때 주로 차를 타고 다니거든. 서울에서 주차가 자유로운 집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그 조건으로 찾으니 매물이 많지 않았다. 이 집이 딱 맞아서 들어왔는데 동네가 조용해서 더 좋다.

집과 작업실에서 하는 일의 성격이 다른가?

글을 여기서도 썼다가 저기서도 썼다가… 집중이 하도 안 되니까 온갖 노력을 한다. 한 장소에만 있다 보면 더 안 써지는 기분이다. 어떻게든 써 보려고 별 발악을 다 하고 있는 거지. (웃음)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 서서도 작업할 수 있다. ⓒ heyPOP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책들 ⓒ heyPOP

집에 꼭 둬야 하는 물건이 있다면.

TV와 소파. 원룸 살 때부터 TV와 소파는 있었다. 집이 좁은데도 그냥 질러 버렸다. TV를 자주 보지도 않는데 그냥 샀다. 소파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 때 좋을 것 같아서 샀다. 그런데 원룸에 살 때는 소파가 있어도 너무 비좁아서 누군가 초대하기 어려웠다. 이젠 소파 테이블도 있고 러그도 있으니 초대할 만하다.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걸 좋아하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한다. 이제까진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친구들을 몇 번 부르긴 했는데, 이 집은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두 번은 안 오려고 할 것 같다. (웃음) 역에서 멀어서 마을버스를 타거나 오래 걸어야 하거든.

평소대로 있어 달라고 청했다. 소파 위에서 휴대폰을 보는 모습이다. ⓒ heyPOP

방 하나를 책으로만 채운 게 인상적이다. 책이 얼마나 되나?

잘 모르겠지만 500권은 넘지 않을까? 저 책장마저 원룸에 있던 걸 그대로 들고 온 거다. 원룸을 얼마나 꽉꽉 채워 살았는지 알겠지? 책은 선물 받은 것도 있고 사놓고 안 읽은 것도 있다. 모두 읽은 건 아니다.

책으로 가득 채운 방 ⓒ heyPOP
방 안쪽에서 광각으로 촬영한 모습 ⓒ heyPOP

집에 놓인 책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애서가에게 책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물건일 수 있는데, 작가인 당신에게는 어떤 대상일지 듣고 싶다.

내게는 책이 그저 직업이고 도구다. 각별히 아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워낙 물건에 정을 두는 성향이 아니기도 한데, 책 역시 다른 물건과 비슷한 의미다. 읽을 때도 재미있게 읽기는 하지만 한 권을 끝내기가 쉽지 않다. 보다가 중단하는 경우도 많고 발췌독을 하기도 한다. 사실 요즘 책을 잘 못 읽고 있어서 할 말이 별로 없다. (웃음)

왜?

안 읽힌다. 영상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거의 모든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본다. 노트북으로도 보고 핸드폰으로도 보고 TV로도 보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 소비하는 거지.

선물받은 책(좌), 〈대도시의 사랑법〉 스웨덴어판(우) ⓒ heyPOP

그 와중에 글도 쓰잖아.

나머지 시간에 쓴다. 내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글 쓰고 영상 보고. 나는 열심히 한다고 해서 오랫동안 하는 타입은 절대 아닌 것 같다. 학창 시절에 공부도 집에서는 안 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성실하게 들었다. 잠이 워낙 없는 편인 데다 타인과 함께 있으면 잠을 못 자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도 수업 시간에 존 적이 한 번도 없다. 글 쓰는 것도 비슷하다. 하루에 짧으면 두 시간, 길면 네 시간 정도 집중해서 쓴다.

수업 시간에 한 번도 안 졸았다니!

의지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잠이 없어서 못 잔 거다. 머리만 대면 잔다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비행기를 열 시간 넘게 탄다고 하면 두 시간도 채 못 잔다. 얼마 전 유럽에 다녀왔는데, 마일리지를 써서 난생처음 비즈니스석을 이용했다. 누워서 가니 정말 좋더라. 비행기에서 잠을 아예 못 자니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정말이지 고역이거든.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을 잘 못 자고 예민한 편이라 주거 공간을 더욱 중요시하게 됐다. 당산의 집이 좋았지만 이사오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자극이 덜한 곳으로 가고 싶어서였다.

침실 ⓒ heyPOP

그 집은 대로변에 있었지?

그래서 24시간 시끄러웠다. 큰길가에 살면 어쩔 수 없다. 어디든 오가기 편한 위치니까, 언제나 사람도 차도 많이 오가고 북적거린다. 이번엔 진짜 조용한 집을 찾으려고 했다.

이제 좀 잘 자나?

너무 잔다. (웃음) 그동안 좀 지쳤던 것 같다. 유럽도 다녀왔고 이사도 하느라 기운을 빼서 그런지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자는 날도 있었다.

ⓒ heyPOP

회사에 다니던 시절, 출근하기 전 카페에 들러 소설을 썼다는 건 당신에 대해 잘 알려진 이야기다. 빠르게 몰입하는 데다 잠도 별로 없는 편이라고 하니 그 방식이 잘 맞았을 수 있겠다.

그때도 하루 두세 시간 바짝 집중하는 건 내 생활 패턴에 잘 맞았다. 목표가 생기면 부지런해지는 편이기도 하다. 회사에 다닐 때는 스트레스가 워낙 극심했기에 열두 시, 한 시에 잠들어도 새벽 네다섯 시면 깼다. 그 새벽에 할 일이 없으니 글을 썼다. 주중에는 거의 그렇게 살았다. 아침에 모든 집중력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회사에선 껍데기인 채 시간을 보냈다. 시키는 일만 했다. (웃음)

할 일이 없다고 해서 모두가 글을 쓰지는 않는다. 언제부터 글을 쓰고 싶었나.

아주 어릴 적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소설을 좋아했다. 중학생 때도 문예창작과가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반대하셔서 못 갔다. 대학에서도 문학 쪽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나온 학교를 더 먼저 붙어 버려서 그냥 입학했다. 입시를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도 계속 글을 쓰고 준비했다.

책을 둔 방에는 김찬송 작가의 작품(좌)과 전나환 작가의 작품(우)이 놓여 있다. ⓒ heyPOP

이야길 나누다 보니 원래는 집에 음악도 안 틀어 둘 것 같다. 오늘은 인터뷰 때문에 틀어 둔 거지? (유튜브가 연결된 TV에서 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맞다. 집에선 아무것도 안 듣는다. 고요한 상태로 있는다. 음악은 오며 가며 듣고 작업실에서 듣는다. 집에선 듣지 않는다.

외향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조용한 상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런 것 같다. 다 같이 해야 하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도 학교 다녀오면 맨날 만화책 보고 소설책 읽었다. 책 보고 음악 듣고, 그게 어릴 적 내가 유일하게 하는 취미였지.

이 집에서 좋아하는 물건이 있다면.

물건에 애착이 별로 없어서… 꼽자면 얼음 정수기 냉장고! (웃음) 물을 진짜 많이 마시는데 정수기가 없을 땐 페트병이 계속 생긴다는 게 너무 싫었다. 겨울에도 얼음물을 마실 만큼 찬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얼음 정수기 냉장고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얘기하다 보니 또 느끼는 게, 난 정말 멋없이 산 사람이다. 모든 게 다 실리에 의한 선택이다. 냉장고가 좋은 것도 찬물이 나오기 때문일 뿐이니까. (웃음) 많은 사람이 예술가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와 내 현실은 항상 거리가 멀다. 나는 그리 센티멘털한 사람이 아니다.

얼음 정수기 냉장고 ⓒ heyPOP

당신의 글은 언제나 섬세하게 사람의 마음이나 상황을 살핀다. 그래서 일상에서의 이런 모습이 예상 밖이고 흥미롭다.

일상에서 발생할 만한 어떤 감상적인 부분을 다 없애고 그걸 모두 직업에 투여하는 것 같다. 물건을 포함한 많은 것에 크게 애착을 가지지 않는 편이다. 애써 노력한 건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인 것 같다. 버려야 하는 물건이 있다면 미련 없이 잘 버린다. 좋아하는 브랜드도 딱히 없고, 직접 고른 게 아닌 어디서 받은 컵이나 접시 같은 것도 잘 사용한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도 엄마가 준 거다. 스무 살 때부터 별생각 없이 쭉 써 왔다.

오래된 물건들. 어머니께 받은 냄비와 자취 초반에 샀던 선풍기. ⓒ heyPOP

생활용품뿐 아니라 옷에도 마찬가지로 관심이 없나?

일단 돈을 번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취향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질 여유와 시간이 없었다. 돈이 생기면 책을 사기도 바빴기 때문에 옷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또 내가 몸무게가 크게 늘었다 줄었다 하는 편이라서 옷에도 애착을 갖지 않는다. 다만 무채색 옷들, 어디에나 어울리는 단정하고 깔끔한 옷을 좋아한다. 내 소비를 정의하는 기본 키워드는 합리성인 것 같다. 나한테 실용적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물론 이렇게 아끼다가도 크게 한 번씩 확 써버리는 스타일이다. 차 사고 냉장고 사고 TV 사고. (웃음)

그래도 하얗고 예쁜 TV로 잘 골랐다. (웃음) 전체적으로 밝은 톤의 지금 집과도 잘 어울린다. 원색 등 강렬한 색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가?

좋아하는데 그런 색을 인테리어에 반영하려면 품이 많이 들잖아. 물건을 여럿 들여야 하고 매칭도 고민해야 하고. 그러기 싫었다. 이번 집의 콘셉트는 ‘최대한 깔끔하고 널찍하게’이므로 거기 맞췄다. 물론 이렇게 살다가 지겨우면 갑자기 가구나 다른 물건을 잔뜩 들일 수도 있지만, 이사 온 지 두 달 차인 지금으로서는 이 상태가 좋다.

ⓒ heyPOP

여행 관련 에세이가 곧 나오지? (인터뷰일 기준이다. 이 여행 에세이는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6월 30일 출간됐다.)

내가 워낙 잘 못 쉬는 사람이어서 어떻게 하면 진짜 휴식을 취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가파도에 머물 때부터 썼으니 3년 정도 틈틈이 쓴 글이다.

책 출간을 앞둔 마음은 어떤가. 컴백을 앞둔 가수의 심정과 비슷하려나.

걱정이 많다. 그저 하나 끝냈다, 정도의 마음이다. 잘 되기를 너무 바라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 봐 매우 걱정된다.

ⓒ heyPOP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오래 원하던 무언가를 이뤘다는 느낌이 들었나?

방이 있는 집, 방이 여러 개인 집에 드디어 왔다! 싶었다. 근데 꿈이라는 게 그렇잖아, 이뤄 놓고 나면 부질없잖아. 이번에도 곧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돈 벌고 전세대출받아서 여기에 왔구나. 이제 또 대출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지만… 이게 나인 걸.

서울살이 중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됐다. 아파트 생활은 어떤가?

아파트는 작은 섬 같다. 분리수거 날짜가 정해져 있는 등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많은 일이 이뤄진다는 느낌이다. 뭐가 더 좋은지는 딱히 짚지 못하겠고, 편리하다 정도?

옛 흔적이 느껴지는 문 ⓒ heyPOP

다음 집을 그려 본다면.

지금 집도 나쁘지 않지만, 다음번엔 최상층?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층간소음이 없었으면 해서. 소리와 빛에 무척 예민하기 때문에 아주 고요한 집이라면 좋겠다.

여러 자극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당신에게 조직 생활은 정말 어려웠을 것 같다. 전업 작가가 되어 온전히 스스로 꾸리는 일상은 어떤가?

회사에 다닐 땐 항상 잠이 부족했고 너무 괴로웠다. 지금은 내 하루를 내 마음대로 경영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그런데 동시에 불행하다. 왜냐하면 내가 내 하루를 망칠 때가 많으니까. 귀찮아서 낮잠이라도 자면 하루가 끝나 버린다. 억지로 작업실도 나가고 운동도 하고 하면서 내 생활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신을 힘들게 만들던 삶으로부터 쟁취해 낸 삶이네.

맞다. 내 삶은 내가 쟁취해 낸 삶이다.

〈대도시의 사랑법〉 스웨덴어판이 놓여 있는 책장 ⓒ heyPOP

서울은 당신에게 어떤 도시인가.

처음 왔을 땐 외로운 도시 같았다. 대구에서 왔기 때문에 하나하나 낯설기도 했고, 사람이 많은데도 익명성이 높으니까. 서울에서는 원하면 언제든지 익명이 될 수 있다. 처음엔 외로운 도시라고 느꼈지만, 이 도시에서의 삶이 내게 잘 맞는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싶을 땐 부대끼고, 원하지 않을 땐 혼자가 될 수 있다. 또 편하고 빠르잖아. 세계 대도시 곳곳을 가 봐도 서울만큼 편한 곳은 드물다. 말까지 통하니까. (웃음) 워낙 불편한 게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편하다는 게 내겐 아주 큰 장점이다.

서울이 좋은데도 여행을 가는 이유는.

여기에서의 삶을 견디기 힘들 때 떠나는 거지.

ⓒ heyPOP

지역 서울시 성동구

글·사진 김유영 기자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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