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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Walk with] 3. 화려한 행사장과 친구들의 작업실을 오가며, 패션 크리에이터 박민주를 따라 걷기

박민주가 꼽은 특히 인상적인 팝업의 특징은?
새로운 공간도 공간에 관한 이야기도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선택지가 무수하다면, 미더운 이를 동행으로 삼아 산책하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닐까요? 그를 따라 걷다가 매력적인 샛길을 발견할 수도, 혹은 과감하게 들어서고 싶은 공간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헤이팝은 워크 위드(Walk with) 시리즈로 패션과 미술, 문학과 음악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를 만나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좋은 공간’을 한층 다채롭게 정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상하이패션위크 슈슈통 FW24 현장을 찾은 박민주, 보그런웨이 계정에 그의 사진이 올라갔다. ⓒ voguerunway

워크위드(Walk with) 시리즈로 함께 걸을 세 번째 인물은 패션 인플루언서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박민주다. 각종 브랜드로부터 행사에 초대받으며 여러 공간을 누비는 박민주는 유행하는 아이템이 빠르게 등장했다 사라지는 숨 가쁜 패션계에서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취향을 담아낸 콘텐츠를 꾸준히 만든다. 사람들과 정보 공유하길 좋아하는 그가 자주 찾는 동네는 어디인지, 기록이 습관화된 그가 좋아하는 공간의 특징은 무엇인지 물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투명하게 내비친 피비 파일로 그리고 브랜드 셀린느와 관련된 일화도 함께 소개한다.

올해 3월 파리에서 ⓒ 박민주
올해 4월 상하이에서 ⓒ 박민주

Walk with 패션 인플루언서·콘텐츠 크리에이터 박민주

@mjbypp

— 안녕하세요 민주 님. 헤이팝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패션 인플루언서이자 콘텐츠를 만드는 박민주입니다. 글로 기록하는 일과 옷을 좋아합니다.  

 

— 글 쓰는 걸 좋아한다고요. 패션 인플루언서·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지금은 비주얼적으로 보여지는 옷이 주인 일을 하고 있지만 어려서부터 옷과 함께 글 쓰는 일을 무척 좋아했어요. 옷을 좋아하지만 만드는 데는 큰 흥미가 없어 또 다른 관심사인 글과 관련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졸업이 다가올 즈음, 패션과 글을 한번에 다룰 수 있는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때부터 꾸준히 저의 생각과 옷을 올리던 블로그 계정이 있었어요. 그 블로그의 연장선으로 인스타그램에도 옷을 좋아하는 제 모습을 노출시켰는데요. 3년 정도 어시스턴트로 일하다가 꾸준히 제 생각과 옷을 올리던 포스팅을 보고 한 브랜드에서 연락을 주셔서 만들게 된 게 저의 첫 콘텐츠입니다. 그 콘텐츠를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첫 콘텐츠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취미의 일부였어요. 원래 열심히 하던 인스타그램을 조금 더 열심히 하는 느낌이었는데 연락 오는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자리를 잡게 되고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돈도 받게 되면서 책임감을 느끼며 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 박민주
토요일, 여유를 즐기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 박민주

— 민주 님의 하루는 보통 어떻게 흘러가나요? 

주 5일을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이 일을 소화하기 힘들어요. 특별한 루틴은 없지만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콘텐츠 의뢰가 들어오면 촬영을 합니다. 기획이 완벽한 상태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직접 기획안을 짜서 보내기도 해요. 이게 일상입니다. 저에겐 한 주의 가장 큰 이벤트이기도 한 토요일을 잘 보내려고 평일 일정을 잘 조율해요. 나에게 주는 선물로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토요일은 꼭 쉬려고 합니다. 

1967년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건물, 현재는 아리움의 사옥으로 사용되고 있다. ⓒ 박민주
ⓒ 박민주
ⓒ 박민주

—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보면 유독 게시글이 긴 편이에요. 다녀온 공간을 사진과 함께 본인의 언어로 기록하는 게 인상적이기도 했고요. 기록이 습관이 된 계기가 있나요?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과 현재 내가 있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떠오른 하루의 생각을 그냥 지나 보내는 게 아까워서 기록을 시작했어요.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던 시절에는 단순히 정보를 나누며 짧게 글을 썼는데 첫 콘텐츠 문의가 왔을 때 되돌아보니 그 짧은 글도 저만의 포트폴리오가 되었더군요. 그걸 깨달은 이후 더 의식적으로 기록을 남기게 된 것 같아요. 과거에 썼던 글을 현재의 내가 가끔 찾아보면 힘이 나기도 하고요. 언제든 꺼내서 볼 수 있고 잊고 있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기록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무엇이라도 쓰지 않으면 단어를 잃게 되고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드니까 어떤 문장이든 써보려고 합니다. 

 

— 기록할 정도로 좋아하는 공간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의외성’이라는 특징이 있어요. 생각해 보면 어딘가를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간 곳보다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친 곳에서 큰 감정의 변화가 있었거든요. 한번은 걸어가다 ‘여기가 한국이 맞나?’ 싶은 건물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현재는 ‘아리움’이라는 곳의 사옥으로 쓰이는 곳으로, 건축가 김중업이 1967년 산부인과로 설계한 건물인데요. 길목에 서서 한참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선명해요. 차를 타고 갔다면 이 기쁨을 발견하지 못했겠죠. 걸어 다니는 것의 미학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친한 친구들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걸 자주 봤어요. 그들과 자주 가는 곳이 있나요? 그 공간으로 모이게 되는 이유도 듣고 싶어요. 

‘공주파티’라고 부르는 모임이 있어요. 그 모임에 오는 친구들을 많이 아끼는데요. 공교롭게 각자 개인 작업실 또는 매장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첫 공주파티도 멤버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진행했어요. 서울 북촌에 위치한 ‘낙타’라는 곳이죠.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시간 제약도 없고 편안해서 그들의 작업실과 매장에서 자주 만나게 돼요. 주인을 닮은 작업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고요. 실을 엮어 가방이나 옷을 만드는 브랜드 크로쉐안트를 운영 중인 친구 선지의 사무실에 가면 선지가 보여요. 본인이 꾸며놓은 공간에 가면 그 사람이 묻어나는데 이런 걸 느낄 수 있어서 친구들의 작업실이나 매장을 찾게 됩니다.

북촌에 위치한 카페 '낙타'에서 진행된 공주파티 ⓒ 박민주
ⓒ 박민주

— 취미가 일이 되었으니 일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일과 일상의 경계가 흐릿해서 생활하는 데 힘든 부분은 없지만 제가 하는 일이 전문가답게 보이지 않을까 우려되기는 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곳이면서 나의 업이 이루어지는 곳인데, 일로서 만든 콘텐츠와 저의 일상에 차별점이 안 보이다 보니 이걸 직업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웠어요. 초반에는 일상생활 중 자연스럽게 촬영해서 올렸는데 조금 더 콘텐츠답게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그때부터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하는 일이 광고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경계를 만들다 보니 저를 팔로우해 주시는 분들의 반응도 조금 더 명쾌해졌어요.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일상은 일로부터 해방되어 아끼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공간을 돌아다니는 제 모습을 응원해 주시는 것 같아요. 

LCDC와 함께했던 프로젝트 ⓒ 박민주
뉴욕 거리 ⓒ 박민주

— 브랜드 팝업도 많이 다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팝업은 무엇이었나요?

‘샤넬뷰티’ 100주년 기념 팝업과 ‘팔로마울’ 한국 첫 팝업이 기억에 남아요. 샤넬뷰티 100주년 기념 팝업이 2021년도에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되었는데 당시 샤넬로 랩핑된 색색깔 버스들이 성수동을 돌아다녔어요. 그 버스를 보면 그 팝업이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없게끔요. 저는 이 프로모션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일반적으로 팝업을 할 때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거나 팝업을 하는 공간만 신경 쓰는 경우가 많은데 샤넬뷰티 100주년 팝업은 팝업이 일어나는 동네에서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죠.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브랜드 내부적으로도 볼거리를 많이 제공했어요. 당시 판매했던 뷰티 제품은 팝업에서만 구매할 수 있어 희소성도 있었어요. 

 

팔로마울의 한국 첫 팝업도 성수동에서 진행되었는데 이 팝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팝업에서 브랜드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현장에서는 옷을 입어보고 구경할 수 있지만 주문은 온라인으로 받았어요. 매출을 목적으로 여는 팝업 현장에서 바로 구매할 수 없다는 게 획기적이었고 당시는 충격이었죠. 현장에 온 사람들에게 온라인 주문 시 할인을 받을 수 있도록 할인 코드를 붙여둔 센스까지 돋보였거든요. 의류부터 액세서리까지 실물을 제대로 볼 수 있던 브랜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팝업 공간에서는 충분히 팔로마울 옷을 입어보며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해서 좋았어요. 저는 두 팝업처럼 브랜드만의 색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기획한 행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2021년 서울 성수동에서 진행된 샤넬뷰티 100주년 기념 팝업 ⓒ 박민주
본인의 뮤즈인 어머니와 함께 ⓒ 박민주
2023년 서울 성수동에서 열린 팔로마울 한국 첫 팝업 ⓒ 박민주
ⓒ 박민주

— 여러 행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요즘 패션 팝업이나 전시의 트렌드가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면 ‘레이스’, ‘심볼 인형’, ‘과일 데코(decoration)’ 이렇게 추릴 수 있겠네요. 확실히 리본이나 레이스로 공간을 꾸민 곳이 많았고 브랜드를 상징하는 심볼 인형도 대부분 준비되어 있더라고요. 요즘 가장 많이 보이는 건 과일을 활용한 장식이었습니다. 최근에 간 곳들만 떠올려봐도 과일을 활용해 포토존을 만들거나 과일로 공간을 꾸민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패션 팝업이나 프리젠테이션 현장은 그 옷을 홍보해야 하는 목적이 있다 보니 저 같은 인플루언서나 이런 공간을 자주 찾는 이들이 갔을 때 예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폿이 필요해요. 그 스폿에서 찍어 올린 사진이 예뻐야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동하니까요. 바이럴 마케팅에도 효과적이겠죠. 이런 공간감을 잘 살리는 게 요즘 트렌드인 것 같아요.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는 곳은 거의 못 봤습니다.

브랜드 낫띵리튼 2024 여름 프리젠테이션 현장 ⓒ 박민주
브랜드 이악크래프트 Cylinderade 컬렉션을 기념한 레모네이드 바 ⓒ 박민주

— 플래그십스토어도 여러 곳을 경험했죠. 그중 인상적이었던 플래그십스토어가 있나요?

한국 브랜드가 한국에 매장을 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외국 브랜드의 매장이 한국에 들어오는 건 의미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요즘 서울 압구정 도산공원에 플래그십스토어가 많이 들어서고 있죠. 작년에 오픈한 슈프림(Supreme)의 플래그십스토어와 올해 문을 연 팔라스(Palace) 플래그십스토어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슈프림은 외국 매장과 다를 것 없이 한국에도 크게 잘 정비해서 오픈한 지점이 인상적이고 팔라스는 동양적인 요소를 공간 내부에 많이 녹여내 눈길이 갔습니다. 최근 서울 성수동에 들어선 키스(Kith) 매장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큰 규모의 편집숍이 서울에도 그 명성에 맞게 만들어져 처음 방문했을 때 공간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플래그십스토어라는 게 단순히 백화점 입점이 아니라 브랜드를 대표하는 매장 자체가 들어오는 것이다 보니 브랜드마다 자체적으로 신경을 쓴 부분들이 눈에 보여요. 한국이 외국 패션 브랜드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걸 플래그십스토어를 보면서 느끼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눈에 들어왔던 한국 브랜드의 플래그십스토어는 어디였는지도 궁금해요. 무엇 때문에 민주 님의 시선을 사로잡았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브랜드 마르디 메크르디의 ‘누아르 마르디 메르크디’ 플래그십스토어요. 서울 한남동에 마르디 메크르디 매장이 이미 많아요. 평소와 다름없이 한남동을 거닐다 LP가 예쁘게 진열된 모습을 보고 들어섰는데 마르디 메크르디에서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4층 규모 건물로 LP 숍과 함께 커피도 팔고 층별로 브랜드 제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요. 우선 시각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예쁜 공간이었어요. 직업 특성상 사진을 찍는 게 일이니 옷이 돋보이는 공간을 발견했을 때 큰 희열을 느끼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장소를 발견했다는 희열감보다 이 브랜드가 꾸준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느낌이 들어서 공간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도 더욱 높아졌어요.

밖에서 본 누아르 마르디 메크르디 외관 ⓒ 누아르 마르디 메크르디
매장 지하 1층 LP 숍 앞에서 ⓒ 박민주

— 브랜드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민주 님이 피비 파일로(Phoebe Philo)가 디렉터로 있던 시절 셀린느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와 그 시절 셀린느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2015년도에 매거진 어시스턴트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브랜드의 새로운 시즌 옷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 잡지사였어요. 원래도 인기가 상당하던 피비 파일로지만 2016년 리조트 컬렉션 이후로 패션계의 판도가 바뀌었고 피비 파일로 붐이 일어났죠. 스트라이프 패턴이 주를 이룬 컬렉션이었는데 어시스턴트를 하며 그 옷을 출시 전에 볼 수 있었어요. 그날 집에 가서 엄마에게 꼭 사야 된다며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부터 엄마와 함께 피비 파일로에 빠져 하나둘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좋아하던 시기인 2017년 청담동에 셀린느 플래그십스토어가 생겼어요. 그때는 그 매장이 저에겐 최고의 플래그십스토어였어요. 시간만 나면 매일 방문했을 정도로요. 온전한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인데 번 돈을 쪼개고 또 쪼개서 매장에서 옷을 구매한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그 시절에 애착이 생긴 것 같기도 합니다. 

 

— 좋아하는 브랜드가 많겠지만 최근 1-3년 사이 특히 ‘세실리아반센(Cecilie Bahnsen)’과 ‘시몬 로샤(Simone Rocha)’에 좋아하는 마음을 유독 자주 비췄어요. 이 두 브랜드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2021년 시몬 로샤와 H&M이 컬래버를 진행했을 때 콘텐츠를 만들었던 에피소드를 잊을 수 없어요. 당시 H&M과 컬래버하는 브랜드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이었는데 한 외국계 대행사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이번 H&M과 디자이너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싶다고요. 비밀 계약서를 작성한 끝에 브랜드명을 알게 되었는데 그게 시몬 로샤였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거죠. 제가 좋아하는 두 브랜드의 만남을 직접 소개하는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정말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었고 그만큼 반응도 좋았어요. 시몬 로샤라는 브랜드는 다소 다가가기 어려운 브랜드였는데 H&M과 함께하면서 보다 대중적으로 사랑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그 시작에 제가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그 시기부터 저도 시몬 로샤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공주풍 옷을 입기 시작했고 저만의 스타일로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옷이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 자리를 잡은 게 신기하기도 해요. 

 

세실리아 반센도 비슷한 성덕 일화인데요. 브랜드의 옷을 직접 구입해서 즐겨 입고 기록하다 보니 브랜드와 인연이 생겨 얼마 전 파리 패션 위크에서 직접 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진심을 다해서 좋아하는 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이런 이벤트가 찾아오면 그 브랜드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게 돼요. 좋아하는 브랜드가 나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사실이 이 일을 하게 만드는 큰 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시몬 로샤 FW24 Re-See ⓒ 박민주
ⓒ 박민주
직접 모은 세실리아 반센과 아식스 컬래버 ⓒ 박민주

— 행사 초청으로 해외에 방문했을 때 방문한 곳 중 또 가고 싶은 마음이 든 브랜드숍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최근 미국 뉴욕으로 출장을 다녀왔어요. 뉴욕의 브랜드 중 ‘보디(BODE)’를 좋아하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보디의 여성 단독 매장이 생겼더라고요. 진한 민트색으로 내부가 꾸며져 있는데 민트라는 색이 튀는 색상임에도 그 안에 보디 옷이 걸려있으니 조화로웠어요. 보디가 빈티지한 감성에 아이디어를 얻어 옷을 만드는 브랜드인데 매장에서 그게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도 어떤 옷을 만드는 덴지 바로 알 수 있는 숍이었어요. 그곳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즐거워 1시간 정도 옷을 입어보기까지 했습니다. 브랜드에 대한 확고함이 있으니 이런 과감한 컬러를 입힌 매장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당당함이 부러웠습니다.

민트색으로 꾸며진 뉴욕 보디 여성 매장 내부 ⓒ 박민주
보디 여성 매장에서 ⓒ 박민주

— 팔로워분들을 부르는 애칭이 있잖아요. ‘민수’, 팔로워분들이 민주 님이 착용한 옷이나 가방 등을 많이들 따라 사서 이러한 애칭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만 봐도 관계가 돈독해 보이던데 민수 님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해요?

‘민수’라는 애칭이 생기기 전부터 소통은 해왔는데 이름이 생기니 더 끈끈해진 것 같아요. 저는 인스타그램으로 소통을 하는 사람이기에 뷰 수, 팔로워 수 등으로 저의 존재감을 확인해 보기도 하는데요. 가끔 이 수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지켜봐 주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잖아요. 꾸준히 봐오신 분들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좋아해 주셨는데, 다른 사람을 팔로우하기도 쉽고 한쪽만 손을 놓으면 떠나기 쉬운 이 공간에서 저를 봐주시는 이유는 끊임없이 콘텐츠를 만드는 저의 꾸준함 때문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그 꾸준함으로 인연이 맺어져 깊은 관계를 형성한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성격이 진중한데 이 성향을 민수 님들도 분명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사적인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패션보다 삶에 관해 쓴 글에 큰 반응을 보일 때도 있거든요. 이제 민수 님들은 제게 오랜 친구 같은 존재예요. 패션도 패션이지만 제가 살아가며 깨닫는 부분도 민수 님들과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서촌 골목 ⓒ 박민주
시간이 날 때면 서촌을 자주 찾는다. ⓒ 박민주

— 민주 님에게 가장 흥미로운 동네는 어디예요?

서울 서촌에서 북촌까지 이어지는 그 동네를 참 좋아해요. 이 계절과도 잘 어울리는데요. 얼마 전 서촌에서 열리고 있는 프리츠한센의 〈폴 케홀름(Poul Kjærholm)〉 전시에 다녀왔는데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경복궁 담벼락 뷰를 전시 공간에서 만나게 되어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동네는 전시도 있고 패션도 있고 무엇보다 고즈넉해서 자주 찾게 돼요. 상업화가 되어있음에도 옛것과의 균형이 살아있는데 그게 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이 동네에 살아보는 게 꿈이기도 해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시절 ⓒ 박민주
파리에서 ⓒ 박민주
ⓒ 박민주

— 지하철로 이동하며 스크린 도어에 비친 오늘의 아웃핏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곤 했죠. 민주 님의 그 포스팅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때가 있어요. 무난한 색감의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레이스와 다양한 색감으로 룩에 포인트를 준 민주 님의 모습이 패션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고요. 차를 타고 다니는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요?

대중교통을 탈 때는 이동 시간이 온전히 제 시간이었어요. 차를 타고 다니면서 몸은 편해졌지만 이동 시간에 할 수 있던 것들을 못 하게 되어 아쉽기도 해요. 지하철에 있으면 글을 하나라도 더 쓸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은 아직도 들어요. 옷 입는 부분에서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여전히 저만의 스타일대로 입고 다녀요. 

 

—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선보이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이어갈 테죠. 앞으로 어떤 모습을 꿈꾸며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지 궁금해요.

아직 제가 입어보지 못한 브랜드들이 있어요. 앞으로도 수많은 브랜드가 탄생할 테고요. 그 브랜드를 구애 없이 입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대단한 사람을 꿈꾸진 않아요. 지금처럼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진심을 다할 수 있길 바라요. 제가 가진 정보를 나누지 않는다면 저는 아무런 특이점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점차 깨닫게 되었는데, 그 정보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예쁜 거 사서 입고 민수 님들에게 공유하며 제 기쁨을 나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노력할 것 같아요. 민수 님들이 저만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었거든요. 지금처럼 저와 함께 옷 입기를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about heyMAP Curation

패션 콘텐츠 크리에이터 박민주의
사적인 취향이 담긴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들

— 서촌과 북촌 일대에서 열리는 전시를 주로 큐레이션 했어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민수 님을 위해 전시마다 추천 코멘트도 달아주었는데요. 해당 전시와 공간을 권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전시의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어떤 공간에서 열리는지가 저에게는 조금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았던 공간에서 느낀 감정을 함께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 크리에이터 박민주가 직접 남긴 추천 코멘트를 살펴보고 계절감이 잘 느껴지는 이 공간을 누벼보세요!

박민주 큐레이션 전시와 그의 추천사를 위 카드를 눌러 확인해 보세요.

김지민 인턴 기자 

사진 제공 박민주

김지민
새로운 일에 관심이 많다. 보고 느낀 이야기로 콘텐츠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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