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 위드(Walk with) 시리즈로 함께 걸을 일곱 번째 인물은 길현희 얼스어스 대표다. 서울 연남동과 서촌에 제로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를 운영하는 그는 더 많은 이들이 환경을 생각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본인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커피를 친환경적인 공간에서 함께 즐기고자 오프라인 매장을 만들었다. 얼스어스 이름에 담긴 의미 ‘for earth for us, 지구를 위하는 일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이다’. 제로웨이스트라는 생소한 공간을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손님들이 직접 되찾는 곳으로 만든 길현희 대표를 인터뷰했다.
Walk with 길현희 얼스어스 대표
@earth__us
— 안녕하세요, 현희 님. 헤이팝 독자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 연남동과 서촌에 제로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earthus)를 운영하고 있는 길현희입니다.
— 두 매장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현희 님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하루하루 다른 편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통 아침에 요가를 하고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공부를 짬 나는 시간에 합니다. 그리고 매장에 필요한 과일과 재료들을 직접 사서 조달해요. 시장에서 구매한 뒤 연남동과 서촌 매장에 나르고 가게 일을 잠깐 보고 집에 오면 오후가 됩니다. 그때부터 얼스어스 인스타그램으로 보내주신 메시지에 답장하고 피드에 올릴 사진을 고르고 업로드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 지금의 운영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얼스어스를 오픈한지 7년이 되었는데 초반에는 지금보다 더 모든 일을 컨트롤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제가 없이도 원활하게 굴러가야 진짜 가게를 잘 운영한다고 말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과일을 납품받기도 했어요. 제가 직접 구매해서 조달한 지는 얼마 안 됐는데 이 방식을 택한 데에는 비용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디저트 재료비가 상당히 많이 올라서 수고스럽더라도 발품을 팔아 좋은 가격에 더 질 좋은 과일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부산에서도 매장을 운영한 적이 있죠. 서울 매장만 운영하는 지금, 얼스어스가 안정기를 찾은 것처럼 보여요.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긴 한데요. (웃음) 결국은 사람들 덕분에 잘 운영되고 있죠. 매장 스태프 친구들이 책임감이 워낙 강하고 열심히 해요. 가게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해서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아요.
— 2017년 연남동을 시작으로 제로웨이스트 카페 얼스어스가 탄생했어요. 첫 매장을 열 지역으로 연남동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연남동은 친구들과 자주 놀러 가던 동네였어요. 서울 영등포에서 쭉 살았는데 만약 카페를 연다면 집과 가까운 곳이 아닌 연남동처럼 사람들이 찾아오는 동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죠. 연남동 메인 거리인 ‘연트럴 파크’와 동진시장을 중심으로 생긴 ‘미로길’, 이 두 군데가 연남동 내 상권이 발달한 곳이에요. 얼스어스 매장은 상권이 발달된 곳과는 많이 동떨어진 곳이었죠. 오픈할 때만 해도 무슨 길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지도 않았고 30년 된 마트 하나만 있었어요. 주변에 상업 공간이 없었는데 길목에 있던 구옥이 눈에 들어왔어요. 고요한 동네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죠. 임대 가격도 낮아서 바로 부동산에 전화해 계약을 했습니다. 이후 2년 뒤 대형 카페가 근처에 생기면서 ‘연남동 세모길’이라는 이름도 생겼어요. 지금은 또 다른 연남동의 메인 거리로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아요.
— 서촌 매장은요?
부산 얼스어스 운영 당시 2주는 부산에 2주는 서울에 있는 생활을 했어요. 서울에 올라온 날 친구랑 서촌을 걷다 우연히 부동산을 발견하고 들어갔어요. 무작정 들어간 부동산이었지만 사실 전부터 지점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매물이 있는지 여쭤봤습니다. 다른 브랜드와 같은 주소를 공유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하나의 건물을 다 사용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부동산에 독채를 찾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날 두 번째로 본 공간이 지금의 서촌 얼스어스 매장이에요.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와는 멀었고 건물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마음이 끌려 이곳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생각해 보니 연남동 매장도 그렇고 부산 매장도 그렇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네요. 당시 저는 그런 공간에 매력을 느꼈나 봅니다. (웃음) 이미 상업 공간으로 발달되어 있는 곳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 대학생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엄청나게 소비되는 일회용 컵을 비롯한 쓰레기를 보고 친환경적인 카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했다고요. 제로웨이스트 카페 공간을 만들고자 다짐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광고를 전공했어요. 당시 학교에 특강하러 윤호섭 교수님이 오셨어요. 윤호섭 교수님은 우리나라에서 그린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처음 갖게 된 분이자 서울88올림픽 디자인전문위원회로도 활동하신 1세대 디자이너예요. 상업 광고가 얼마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현장에서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집에 냉장고를 쓰지 않거나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등 과감한 환경 캠페인을 하면서 알려진 분이죠. 그분의 강의를 듣고 가슴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면서 환경에 눈을 뜨게 됐어요.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생활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하려고 노력했어요.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당시 기후 변화 때문에 2050년이 되면 커피가 명품처럼 사치품이 되어 소수만 즐길 수 있을 거라는 기사를 봤어요. 그때부터 얼스어스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제가 좋아하는 카페를 소개하고 일회용 컵이 아닌 다회용 잔에 마시는 사진을 찍어서 올렸어요. 사람들이 가게에서 마실 때만이라도 다회용 잔을 이용했으면 좋겠다 싶었죠. 다회용 잔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결국 사업주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광고의 본질적인 뜻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는 ‘널리 알리다’이기 때문에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해 보려고 했어요. 집에서 다회용 잔에 커피를 마시는 모습도 예쁘게 찍어서 계정에 업로드하고요. 마침 얼스어스 계정에 제가 집에서 커피를 내려 음료를 만드는 콘텐츠가 ‘홈카페’라는 표현으로 불리고 한국을 너머 외국에서도 유행하며 많은 팔로워가 유입되기 시작했어요. 늘어난 팔로워를 보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이런 의미를 나눌 공간을 만들어 봐도 좋겠다는 생각에 얼스어스 매장을 열게 됐습니다.
— 실행력이 좋은 것 같아요. 공간을 냈다면 수익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데 ‘친환경’과 ‘사업’ 두 키워드가 조금은 멀게 느껴지기도 해요. 수익을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는 건지 사업을 하고 있는 건지 확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어요. 만약 사업을 하는 것이라면 친환경 매장을 통해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텐데 지금 하는 걸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돈이 안 되는 건 사실이거든요. 오프라인 매장에 찾아와 드시는 분들에게만 수익이 나는 구조이다 보니 인건비, 재료비가 다른 카페에 비해 정말 높아요. 매출이 있더라도 이익으로 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친환경을 어떻게 상업적으로 바꿔 돈을 벌 것인가는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기 때문에 신메뉴 개발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맛있게 디저트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오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 지금은 그렇게 친환경과 사업을 연결하고 있어요.
— 디저트가 맛있어서 얼스어스를 다시 찾기도 해요. 카페를 내면서 베이커리 공부를 시작했다고요. 디저트를 직접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에는 디저트가 하나밖에 없었어요. 카페를 열기 전에는 알바하면서 알게 된 납품처에서 디저트를 받으려고 계획했는데 막상 주문하려고 보니 최소 주문 수량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납품을 받을 때마다 비닐 포장 등의 쓰레기가 발생해서 얼스어스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가게에서 소소하게 10개라도 만들어보려고 시작한 게 첫 출발이에요.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아서 제 생일에도 안 먹는 사람이지만 혼자 만들어보고 싶어서 유튜브로 레시피를 찾아보면서 습득했어요. 제가 싫어하는 맛이 날 것 같은 건 빼고 좋아하는 맛이 날 것 같은 재료는 넣으면서 메뉴를 만들었죠. 그게 지금의 크림치즈 케이크예요. 하루에 3개가 팔렸는데 다음날은 10개가 팔리고 그다음 주에는 30개가 팔리면서 케이크로 주목을 받게 됐고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메뉴를 끊임없이 개발하게 됐어요. 케이크 덕분에 가게 손님이 늘어났지만 스스로 ‘디저트 카페’라고 생각하거나 칭하지는 않아요. 정식적으로 디저트를 배우진 않았으니까요.
— 얼스어스 디저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파티쉐리’라고 하는 정교한 디저트와 얼스어스의 디저트는 지향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는 먹는 걸 좋아하는데요. 먹었을 때 만족감을 느끼려면 양이 많아야 한다는 지론이 있어요. 무조건 넉넉한 양이 동반되어야 하죠. 이런 저와 취향이 비슷한 분들이 많이 찾아주시면서 다른 디저트 가게와 소비자층이 나뉜 건 아닐지 생각해요. 조금 가격이 비싸더라도 양이 많고 맛있다는 인상이 남을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얼스어스를 방문하는 분들이 이 부분에서 큰 만족감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 가장 공들인 메뉴도 함께 소개해 주세요.
손이 많이 가는 메뉴는 ‘크램 당주’예요. 프랑스에서는 ‘크램드 앙주’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크램당주라고 보편적으로 부르고 있어요. 거즈 면에 크림을 넣고 수분을 제거하는 게 이 디저트의 포인트라 하루나 3일 정도 숙성되어야 하죠. 수분이 날아가지 않으면 동그란 모양이 잡히지 않아요. 가게마다 만드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희는 리코타 치즈의 동그란 모양처럼 만들길 지향하고 있어서 공을 많이 들입니다. 저는 그 모양에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팀원들은 제가 모양을 중요시한다고 생각해 철저하게 동그란 모양을 지키더라고요. 저보다 팀원들이 만들 때 더 좋은 퀄리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웃음)
— 공간 운영을 하면서 사소하지만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손이 많이 가거나 품이 많이 들면 포기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운영진이 더 수고하더라도 절대 포기가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화장실 휴지통에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인데요.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으면 가끔 청소하다 너무 힘든 날이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 투표를 받아 봤어요. “우리 매장도 휴지통에 비닐봉지를 사용해 볼까요?” 하고요. 요즘은 생분해 비닐도 처음 나왔을 때보다 발전했다고 생각해서 사용해 보려고 했는데 반대하는 팀원들이 많더라고요. 비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 매장이 있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상기해 봐요. 얼스어스는 다른 매장과 비교했을 때 비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원래 이런 곳이고 세상에 이런 곳도 하나쯤은 필요하다고요. 팀원들을 잘 납득시켜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규칙에도 동의하도록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내부 인테리어를 살펴보면 연남동과 서촌 둘 다 우드톤으로 통일감이 느껴져요. 내부 인테리어에 있어서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인테리어를 할 당시 새하얀 화이트 톤이나 세련된 분위기는 선호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구도 빈티지로 고르게 됐습니다. 사실 그때는 빈티지 가구를 들여오는 데 발생하는 탄소 배출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빈티지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해외에서 오는 것들을 택했는데 그것이 엄청난 탄소 배출을 한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죠. 빈티지 가구가 예쁘기도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아끼면서 오래 사용하는 모습도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아요.
— 서촌 매장에 들어가면 유독 서울이 아닌 어딘가 멀리 와있는 기분이 들어요. 어떤 모습을 상상하며 매장을 만들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1층에 중정 공간이 있어요. 그 바깥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이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기대했어요. 사람 손길이 안 닿던 공간이라 잡초가 무성했고 자연 그 자체였어요. 저는 아직도 그 공간을 좋아해요. 거기에 앉아 있으면 잠깐 제주도에 와있는 느낌이 들어 종종 앉아 있곤 해요. 실제로 그 공간을 사용하면서 깨달은 건 매우 습해서 앉아서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기간이 짧다는 것이었어요. 활용할 수 있는 계절이 길지 않아 아쉬워요.
— 얼스어스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제로웨이스트 카페 개념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죠. 덕분에 카페를 이렇게도 운영할 수 있구나 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아요. 선례로 남은 만큼 얼스어스를 만들기 전 레퍼런스로 살펴봤던 해외 공간 사례도 있었는지 궁금해요.
대학생 때만 해도 제가 검색을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카페를 차리려고 하니 두려움이 생겨서 해외 사례를 찾아보려고 했죠. 그런데 안 나오더라고요. 독일이 제로웨이스트의 성지라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독일 매장도 안 나오고 미국은 제로웨이스트 매장에 대한 바람조차 불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최초 제로웨이스트 숍인 ‘더피커’ 운영자님이 독일의 한 브랜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인터뷰 내용이 얼핏 기억나 찾아봤는데도 안 나오더라고요. 발리같이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 있을 법한 동남아시아도 찾아봤는데 저의 서칭에 한계가 있었는지 레퍼런스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불안했어요. 하루하루 두려움을 버티면서 오픈 준비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 점차 환경을 생각하는 카페가 늘어나고 있어요. 이런 공간들이 어떤 프로세스를 정립하면 좋을까요?
보여주기식으로, 혹은 브랜딩의 일환으로 친환경 정책을 펴는 기업이나 브랜드도 요즘 많죠. 그런데 그게 비록 무늬만일지라도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실내 흡연도 원래는 가능했다가 2015년부터 전면금지가 됐어요. 생각보다 금지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지금은 실내에서 담배 태우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잖아요. 기업이 조금씩이라도 환경에 대해 신경 쓴다면 조금씩 환경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고 그게 결국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친환경을 실천하는 모든 브랜드가 당장은 환경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로만이라도 그런 움직임을 보여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불필요한 걸 하나씩 없애보길 권해드려요. 이전에는 빨대를 꽂아서 음료를 내어주는 서비스가 디폴트였다면 손님에게 일회용 빨대 선택권을 준다거나 필요한 분들에게만 물티슈 제공해 드리는 것처럼요. 손님에게 선택권을 주면 저같은 사람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죠.
— 올해 3월까지 서울 성수동에서 ‘얼스케이크베이크샵’이라는 레스웨이스트 매장을 운영했어요. 제로웨이스트 매장과는 성격이 다른 공간이라 만든 배경이 궁금하더라고요.
사업을 하는 건지 장사를 하는 건지 고뇌하던 시기, 2021년 런던 베이글 뮤지엄이 생겨나면서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유행이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런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었어요. 얼스케이크베이크샵을 오픈할 때까지만 해도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가 확장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있었어요. 돈이 넘쳐서 매장을 내는 게 아니라, 대출도 받지만 매장을 늘려야 브랜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무조건 대형 카페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비닐이나 플라스틱 없이 종이로만 포장해서 레스웨이스트로 운영하면 사람들에게 환경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친환경 카페는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인식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친환경 카페 운영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도 친환경 카페를 이런 식으로도 운영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 2023년 6월에 오픈해서 2024년 3월까지, 운영 기간이 짧았어요.
지금까지 상권을 안 보고 공간이 좋으면 무조건 매장을 냈어요. 그렇게 해도 큰 실패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수동에 매장을 낼 때도 겁 없이 도전했던 것 같아요. 얼스케이크베이크샵은 주변이 고요했고 유럽이 떠오르는 곳이었어요. 내부에서도 천장으로 하늘을 볼 수 있는 특색있는 공간이었죠. 성수동 중에서도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동네였지만 예뻐서 택했어요. 현실에 부딪혀 보니 대형 카페는 목이 중요하다는 걸 오픈한 뒤에야 깨달았어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입지가 좋은 곳에서 운영되는 대형 카페를 보고 무작정 도전장을 내밀었던 제가 생각이 짧았던 거죠. 운영하며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빠르게 정리했어요.
— 매장을 제외하고 자주 찾는 현희 님만의 스팟 있나요?
집에서 집안일을 하거나 가게에 가지 않으면 동네 카페에 가요. 서울 연희동 앤트러사이트에 자주 방문하는데요. 예전에는 사장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작은 가게를 좋아했어요. 사장님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공간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카페에서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안 보이길 바라요. 취향이 바뀐 거겠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편한 공간을 요즘은 더 선호합니다.
— 전기자전거로 매장을 오가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산책하기도 즐기나요?
걷기를 좋아하는데 시간을 내서 산책을 따로 하지는 않아요. 집에서 요가원까지 걸어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데 무더운 7월 8월을 제외하고는 그 거리를 걸어다녀요. 본의 아니게 서울 신촌을 지나 마포 한강까지 이어지는 그 구간을 가장 많이 걷고 있네요. 먼 거리라 힘들지만 그때가 아니면 계속 앉아 있어서 일부러 더 걸으려고 해요.
— 현희 님이 생각하는 좋은 공간은 어떤 공간인까요?
상업 공간을 한정으로 생각해 보자면 그곳을 운영하는 대표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곳이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카페라면 바리스타가 손님에게 정말 맛있는 커피를 내어주려고 노력하고 식당이라면 하나하나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려고 노력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스어스의 시작은 홈카페였어요. 집에서 제가 먹을 때는 120%로 만들어 먹었는데 매장을 운영하면서 어떤 날은 70%의 완성도로 만들어진 것도 드리게 되더라고요. 제가 온 마음을 담아 임하지 않으면 직원들도 저를 닮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결국 전부이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다른 브랜드를 소비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옷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환경에 눈을 뜨면서 옷을 구입하는 게 환경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또 매장 운영 때문에 바쁘다 보니 몇 년 정도는 옷을 거의 안 샀어요. 그러다가 ‘에토스’라는 브랜드를 운명처럼 만났어요. 에토스 대표님이 블로그 마켓으로 옷을 판매할 때부터 그분의 열정에 반해서 에토스 옷을 많이 구매했어요. 포장에서부터 대표님이 옷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드러나요. 기존에 나온 옷들과는 확실히 차별성도 있고요. 차근차근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의 열정에 반해 옷을 많이 샀죠. 다시 소비를 줄여야할 것 같아요.(웃음) 또, 대표님이 인스타그램 운영을 너무 잘하세요. 직접 코멘트를 달아서 스토리 리그램을 하는 등 인스타그램을 운영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영향을 받았어요. 덕분에 얼스어스 인스타그램 계정도 더 열심히 운영하게 됐습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어요.
브랜드를 유지하는 게 가장 큰 계획이라면 계획이에요. 브랜드 유지는 브랜드의 확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얼스케이크베이크샵을 겪으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지금 하는 것을 잘 운영하고 지금처럼만 유지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외에는 대부분 충동적으로 일하고 있어서 구체적인 방향은 모르겠어요. 무언가를 계속 하겠지만 계획을 세워서 진행하고 싶지는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외국에 살아보고 싶어요. 저의 대학동기이자 현재는 얼스어스 총괄 매니저인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와 얼스어스를 함께하며 부탁한 게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으니 서른 전에 떠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어요. 저 없이도 친구가 매장을 잘 운영하게 됐을 때 제가 잠시 떠나야겠다는 마음이었죠. 그런 계약 조건으로 얼스어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금 매장 일에 제가 다 관여하는 방향으로 운영 중이다 보니 못 떠나고 있어요.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미련은 조금 사라졌지만 언젠가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요.
about heyMAP Curation
길현희 얼스어스 대표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 택한 전시
— 전시나 팝업을 보러 다닌 지는 꽤 되었다고요. 어떤 기준으로 큐레이션 했나요?
전시는 기록의 또 다른 형태라고 생각해요. 30대가 넘어가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쌓아온 경험을 잊고 초행자처럼 굴 때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더라고요. 기록은 조금 더 나은 삶을 향해 가는 발자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수많은 기획 의도가 있겠지만 전시를 여는 이유 중에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함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기록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부분을 짚어보며 감상한다면 보는 동안이라도 나를 조금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 가보고 싶은 공간도 추천해 주었어요.
서촌에서 얼마 전까지 〈프리츠한센 : 폴 케홀름 Poul Kjærholm〉 전시가 열렸어요. 전시가 진행되었던 유스퀘이크 공간은 이전부터 오가며 봐서 알던 곳이에요. 한 일본 작가의 옥외 작품이 꽤 오랜 기간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작품은 없어지고 작은 간판이 생겼더라고요. 이름이 저의 브랜드와 비슷해 관심이 갔어요. 다음 전시가 열린다면 꼭 보러 가고 싶어요.
▼ 길현희 얼스어스 대표가 직접 남긴 추천 코멘트를 살펴보고 그의 취향이 느껴지는 공간을 방문해 보세요!
시리즈 [Walk with]
1. 백남준아트센터부터 놀이동산까지, 일러스트레이터 김도하를 따라 걷기
2. 뉴욕의 카페와 상점 사이로, 작가 유지혜를 따라 걷기
3. 화려한 행사장과 친구들의 작업실을 오가며, 패션 크리에이터 박민주를 따라 걷기
4. 익숙한 스튜디오에서 파리의 미술관까지, 작가 박연경을 따라 걷기
5. 나무가 무성한 나만의 공간을 꿈꾸며, 크리에이터 김규린을 따라 걷기
6. 서울 서촌에 네 개의 공간을 운영하기까지, 박지수 미라벨 대표를 따라 걷기
▶ 7. 사람들이 찾아오는 제로웨이스트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 길현희 얼스어스 대표를 따라 걷기
글 김지민 인턴 기자
사진 출처 길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