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오피스, 야놀자 팝업 스토어와 같은 다양한 공간 디자인을 해온 스튜디오 빈드(STUDIO VIIND)는 브랜딩, 그래픽, 가구 등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지난 1월 19일부터 1월 28일까지 서울 이태원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로어(R-O-R)’의 론칭 및 스튜디오 빈드의 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그라운드 제로>가 개최됐다. 메탈을 주재료로 사용한 도회적인 공간을 작업하기도 한 반면에, 온통 분홍색으로 가득한 키치하고 발랄한 공간을 작업하기도 하며 극과 극을 넘나드는 스튜디오 빈드. 이에 더해, 공간과 브랜딩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로어’를 론칭하며 새로운 도약을 알린 그들에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Interview with 김유리
스튜디오 빈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로어’의 탄생
ㅡ 공간 디자인과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 빈드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로어를 론칭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난 5년간 다양한 클라이언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공간 디자인은 물론, 브랜드의 네이밍, 굿즈까지 전체적인 부분을 총괄하는 경험을 쌓아 왔어요. 각양각색의 디자인을 시도해온 끝에 스튜디오 빈드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찾았고, 로어를 통해 저희만의 색깔을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고자 합니다.
ㅡ 로어라는 브랜드명에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나요?
로어의 어원은 만물의 기원이라 일컫는 에테르에서 시작해요. 에테르와 동음이의어인 화학 원소의 기호인 ‘ROR’에서 이름을 차용했습니다. 앞으로 선보이게 될 로어의 가구, 오브제, 조명들은 소재를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텐데요, 가공이 없는 순수한 원재료의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ㅡ 브랜드 론칭 및 스튜디오 빈드의 5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그라운드 제로>도 독특합니다. 전시장 바닥의 곳곳에 버섯이 놓여있더라고요.
사상가 애나 칭의 대표 서적인『세계 끝의 버섯』에 의하면 일본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에 의해 폐허가 됐을 때, 가장 먼저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해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 즉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서 새롭고 순수한 것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점에서 로어와 일맥상통하죠. 그래서 송이버섯을 이번 전시의 키 비주얼로 설정하고 포스터와 전시장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ㅡ 공간 디자인에서 시작한 스튜디오 빈드인 만큼 전시 공간도 남달랐습니다. 이번 전시가 열렸던 공간이 이전에 사용하던 사무실이라고요?
새로운 장소를 물색할 수도 있었겠지만, 새로 시작하는 브랜드인 로어의 탄생을 기념하는 장소로 이전 사무실을 활용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튜디오 빈드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니까요. 제한된 공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전시를 하기 위해 미디어 월을 활용했습니다. 지금까지의 프로젝트, 로어에 대한 고민, 버섯에 관한 이야기가 세 화면을 통해 송출됩니다. 안쪽 진열대에는 로어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재의 쓰임을 재해석한 제품들을 진열해 두었어요. 진열대에서 우측 공간으로 들어서면, 지난 5년 동안 저희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개발한 소재, 고민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 아이디어 월이 나타납니다.
ㅡ 소재의 재해석이라니 흥미롭네요. 유리블록이 저금통으로 재탄생한 제품도 인상적이었어요.
이외에도 가구나 소품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레진을 소개하고 싶네요. 최근 오픈한 스타필드 수원 내부의 ‘피앳유즈’라는 매장 공간 디자인에도 참여했는데요, 손잡이나 옷걸이를 레진으로 만들었어요. 전시장에서 보셨던 전시 구조물도 사실 건축물 안에 보강재로 사용되는 건축재료인 스터드입니다. 구조체로 쓰여 보이지 않던 재료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식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어요.
ㅡ 저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스튜디오 빈드의 사무실 책상도 예사롭지 않네요.
로어를 론칭하기 전에 새로 이전한 사무실의 가구들을 제작하면서 미리 실험을 해봤어요. 가구마다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요, 이 책상의 이름은 ‘케미스 테이블’입니다.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는 뜻의 ‘케미컬(chemical)’에서 차용하여 개인들이 모여 시너지를 발산하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죠.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책상인 만큼 모두 다 눈을 맞추며 일할 수 있는 형태로 사선을 이어 붙여 만들었어요.
ㅡ 출발선에 놓여있는 로어가 앞으로 어떤 제품들을 선보이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어떤 첫인상을 남기고 싶나요?
‘설명이 필요한 제품’이 되길 바라요. 보는 즉시 이해되는 직관적인 디자인보다 한 번의 설명을 통해서 다르게 보이는 재미가 있는 디자인으로 느껴진다면 좋겠어요.
| 스튜디오 빈드의 지난 5년
ㅡ 로어의 뿌리인 스튜디오 빈드의 5주년 기념 전시이기도 하죠. 지난 5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물을 안겨주었던 작업을 꼽아본다면?
초반에 작업했던 청담동의 ‘워독’ 플래그십 매장이 생각나네요. 워독은 형광색처럼 강렬한 색과 화려한 디자인이 주를 이루는 패션 브랜드입니다. 옷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런웨이를 콘셉트로 잡았어요. 메탈에 비치는 모습이 서로 다른 각도의 메탈을 통해 무한 반사되는 공간이었죠. 실제로 시공하기 전까지 작은 모형으로 실험해보긴 했지만, 사선의 틀어진 각도와 반사되는 공간의 느낌까지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려웠어요. 막상 현장에 가보니 금속과 조명으로 부각시킨 런웨이가 반사를 통해 확장되는 공간이 완성되어 만족스러웠어요.
ㅡ 결과도 중요하지만 완성하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합니다. 진행 과정이 인상깊었던 프로젝트는요?
보령에 위치한 타네베이커리 현장도 재미있었어요. 놀랍게도 타일을 저희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타일 하나하나의 모양과 색은 물론, 타일이 마치 빵에 들어가는 초코칩처럼 느껴지도록 타일에 박혀 있는 칩까지 전부 디자인했어요. 미리 도면을 그려 갔지만 현장에서의 느낌이 달라서 작업자 분들과 하나하나 의견을 조율하며 완성했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ㅡ 일을 지속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매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분야에 대한 프로젝트이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콘텐츠일 때 흥미가 생겨요. 최근에는 AR, VR같은 최신 기술을 공간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 경계를 오가는 디자인
ㅡ 동아일보의 오피스는 메탈과 비비드한 파란색을 사용하여 미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더군요. 스튜디오 빈드의 정체성이 드러나기도 하면서 동아일보의 클래식한 이미지를 격파하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오피스를 전문으로 디자인하는 회사들과 경쟁하는 비딩에서 최종 선정되어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사무 공간만을 다뤄온 경쟁사들에 비해 저희들이 돋보이려면 스튜디오 빈드의 스타일을 보여주자는 생각의 전환이 있었죠. 사무실에 잘 쓰이지 않는 색과 재료를 활용한 파격적인 디자인이 완성되었습니다.
ㅡ 반면에, 키치하기도 트렌디하기도 한 야놀자 팝업 스토어와 같은 작업도 진행하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라인 프렌즈에서 약 5년 동안 일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해요. 그 기간 동안에 스토어, 카페, 테마파크, 호텔 등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는 경험 공간을 정말 다양하게 다뤘습니다. 그 때의 경험으로 캐릭터를 활용하는 팝업 스토어나 전시에는 베테랑 수준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팝업 스토어 작업을 계속 진행하는 이유는 최근 트렌드를 가장 잘 반영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업하면서 디자인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죠.
ㅡ 공간 디자이너로서 팝업 스토어의 매력은 언제 느끼나요?
공간의 오픈 날이나 중간에 한 번씩 체크를 하러 팀원들 모두와 함께 현장에 꼭 들르는 편입니다.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방문객들이 기쁜 감정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지더라고요.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매력적이에요.
ㅡ 제주도의 카페 가시리는 돌담을 활용하기도 하고, 창으로 보이는 자연을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수목원 안에 위치한 곳이에요. 자연이 그대로 내부로 흡수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의도했습니다.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아름다운 외부에 시선이 향할 수 있게 내부는 흑과 백으로 콘셉트를 잡았어요. 간접 조명만 사용하고, 공조도 모두 숨겼죠.
ㅡ 이렇듯 다양한 공간을 디자인하는 스튜디오 빈드의 공간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힌트가 있다면?
저희가 디자인한 공간의 도면을 보시면 꼭 어디 한 군데가 어긋나 있어요. 어긋나고, 비틀어지고, 불규칙한 것에서 새로움을 느껴요. 정직한 비율과 대칭으로 디자인을 했다면, 그것은 스튜디오 빈드의 디자인이 아닌 거죠.
글 성채은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스튜디오 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