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개발은 오랫동안 보안이 철저한 연구실에서 제한된 사용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강남대로에 문을 연 현대자동차 UX 스튜디오는 그 관습을 뒤집는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들어와 VR 기기를 쓰고, 일상의 다양한 상황 속 자동차 사용 경험을 재현하며 의견을 남길 수 있다. 연구원들은 사무실에서 내려와 방문객과 대화를 나누거나 UX 경험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다루는 주제는 거창한 엔진 성능이 아니다. 생활 속 작은 장면에서 출발한다. 좁은 주차장에서 아이를 태울 때의 불편함이나 비 오는 날 반복하는 조작 같은 순간을 어떻게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한다. 이렇게 쌓인 인터뷰 자료와 데이터는 미래 자동차 경험을 설계하는 밑그림이 된다. UX 전략팀을 만났다.
반복하는 습관을 자동화하다
Interview with 이지인 책임연구원

― ‘루틴’이라는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고요. 어떤 개념인가요.
간단히 말하면 자동화 기능이에요. 차에 타면 누구나 반복하는 행동이 있잖아요. 시동 켜고, 에어컨 맞추고, 내비게이션 켜고. 이런 걸 하나로 묶어서 버튼 한 번에 실행되도록 만드는 거죠. 저희는 이 루틴을 단순히 ‘자주 쓰는 기능’에 그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 왜 필요한지까지 맥락을 짚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차에 타면 반복하는 행동이 있어요. 목적지를 설정하고, 원하는 온도를 설정하고, 자주 듣는 미디어 앱을 켜고, 시트를 조정하는 등의 기능이죠. 이런 패턴을 자동화하면 훨씬 편해지잖아요. 결국 그 순간을 어떻게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에요.
― 핸드폰에서 위치를 인식해서 자동으로 세팅되는 모드와 유사하네요.
맞아요. 처음에는 아이폰 단축어나 갤럭시 루틴 같은 걸 차에 옮겨온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차라는 건 환경이 다르잖아요. 워크숍을 해보니 중점을 둬야 하는 부분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루틴을 떠올리면 많은 분이 가장 먼저 비 오는 날을 얘기해요. 와이퍼를 켜는 건 기본이고, 빗줄기에 맞춰 속도를 자동으로 조절하거나 앞 유리에 낀 성에를 바로 없애는 기능 같은 거요. 젖은 신발을 말리려고 바람 방향을 발 쪽으로 바꾸기도 하고요. 또 차 안이 눅눅해지는 게 싫다면서 에어컨이나 환기 같은 공기 조절 기능(공조 시스템)까지 루틴에 묶기도 합니다.
이걸 자동으로 세팅하지 않으면 8 ~ 9단계쯤 손으로 조작해야 해요. 그런데 루틴 기능으로 설정하면, 버튼 한 번에 끝나니까 다들 편하다고 하시죠. 그런데 그 마음을 더 들여다보면 원하는 건 안전이더라고요. 편리하고 쾌적한 것도 중요하지만, 날씨가 어떻든 평소처럼 안전하게 차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본질인 거죠. 그게 IT 기기와는 다른 점이라 생각해요.
― ‘루틴’이 커버하는 범위가 넓네요. 연구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요.
초반에는 ‘루틴’을 사람들이 정말 쓸까, 어떤 상황에서 필요할까 확인하는 데 집중했어요. 얘기를 해보니 필요성은 분명히 높은데 막상 조작하려면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죠. 무엇보다 자동차는 20·30대만 쓰는 게 아니잖아요. 설정이 복잡하면 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또 사용자와 소통할 때 처음에는 원하는 루틴을 ‘흰 도화지’처럼 아무 제약 없이 직접 그려보게 했는데요. 대부분 스스로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지, 어디서 불편을 느끼는지 잘 떠올리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출근길 루틴’, ‘아이 탑승 루틴’처럼 구체적인 레퍼런스를 먼저 제시해요. 그 안에서 디테일을 여쭤보면 훨씬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고요.
― 이전에 진행한 연구가 실제 기능으로 적용된 사례도 있나요.
‘무드 큐레이터’가 그런 사례예요. 상황에 맞게 차 안의 조명이나 음악 향기 등을 세팅해 감정을 케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능이죠.
전기차를 사용하면서 차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다 보니 니즈도 달라졌어요. 내연기관차는 공회전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전기차는 그런 제약이 없잖아요. 앞으로 자율주행이 본격화하면 이 흐름은 더 강해지겠죠. 그러다 보니 ‘차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됐어요.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면, 많은 분들이 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자기만의 공간으로 여겨요. 그냥 음악 틀어놓고 쉬거나, 아예 작은 영화관처럼 쓰기도 하고요. 그럴 때 꼭 나오는 얘기가 있어요. 조명을 낮추고 커튼을 치면 좋겠다, 무드램프로 분위기를 바꾸고 음악이나 콘텐츠를 즐기고 싶다와 같은 거죠. 그래서 저희가 그런 의견을 반영해, 한 번만 누르면 다양한 기능이 동시에 작동하는 ‘모드(Mode)’를 만들었어요.
― 차를 살 때는 아무래도 성능이나 디자인을 더 먼저 보지 않나요? 이렇게까지 UX 경험을 연구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객분들께 물어보면 UX가 ‘필요하다’라는 인식은 높지만, 차를 고를 때는 아무래도 크기나 디자인, 연비 같은 스펙이 먼저죠. 그렇다고 저희가 이 영역을 소홀히 할 순 없어요. 지금 자동차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로 바뀌고 있어요. 예전처럼 한 번 사면 끝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계속 새로운 기능과 경험을 얹는 플랫폼이 된 거죠. 그러려면 결국 디테일한 데이터가 필요하고요.
시뮬레이션 룸, 자율주행을 시험하는 공간
Interview with 김재원 연구원

UX 스튜디오 2층에 들어서면 실제 도로를 옮겨놓은 듯한 ‘시뮬레이션 룸’이 있다. 참가자는 시뮬레이터에 앉아 직접 주행을 경험하고, 연구원들은 옆에서 그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센터페시아의 주행 화면의 정보가 얼마나 직관적인지, 경고음이나 알림이 제 역할을 하는지 세밀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또 아이트래커로 시선의 흐름을 추적하고, 버튼 반응 속도까지 기록하면서 새로운 기능의 안전성과 직관성을 검증한다. 참가자가 “이 방식이 더 편하다”라고 말하더라도, 실제 시선 이동 속도나 반응 데이터는 다른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A 안이 더 편리하다고 응답했지만, 실제로는 B 안을 사용할 때 반응 시간이 훨씬 짧게 나오는 식이다. 이런 차이까지 데이터로 기록해 더 안전하고 직관적인 UX 설계의 근거로 삼는다.
― 시뮬레이션 룸에서는 주로 어떤 연구가 이뤄지나요.
새로운 기능을 테스트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해요. 기능이 추가됐을 때 어떻게 보여야 직관적이고 안전한지 확인하죠. 고객이 직접 시뮬레이터를 주행하면, 특정 기능을 언제 어떻게 쓰는지가 그대로 드러나요. 저희는 그 과정을 보면서 정보 위치나 화면 표시 방식을 점검하는 거죠.
아이트래킹 장비로 시선 흐름을 추적하거나, 버튼을 누른 횟수와 반응 속도를 측정하기도 하고요. 어떤 기능은 고객이 ‘좋다’고 말해도 실제로는 거의 쓰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차이를 분석해 더 안전하고 편리한 UX를 찾아요.

― 최근에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었나요.
자율주행 환경에서 ‘핸들을 빨리 잡으라’는 경고가 있었는데, 처음엔 경고음만 넣었어요. 여기에 음성 안내를 추가했더니 훨씬 직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어요. 또 자율 주차 기능은 생각보다 사용률이 낮았는데, 주차장에 들어가면 빈 공간을 화면에 바로 표시하는 방식을 시험했더니 반응이 달라졌죠. 작은 인터페이스 차이가 실제 사용성과 직결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예요.
사실 이런 건 실제 도로에서 시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자율주행이라도 실제 도로에서 휴대전화를 쓰는 걸 테스트할 순 없잖아요. 하지만 시뮬레이터에서는 안전하게 할 수 있어요. 참가자한테 ‘자율주행 중에 문자를 보내라’고 과제를 주면, 반응 시간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림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다 측정할 수 있거든요. 위험한 상황을 미리 구현해 보고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고, 실제 개발 과정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작은 습관에서 미래 모빌리티까지
Interview with 남승연·설유림 연구원

차량 전시 존은 단순히 차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사용자가 차량과 처음 마주하는 순간, 즉 ‘차와 만나는 경험’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곳이다. 카드키를 어디에 태그해야 직관적인지, ‘스마트키’와 ‘디지털 키’ 같은 이름이 이해하기 쉬운지 연구한다. 언뜻 단순해 보여도, 모두 UX의 일부다. 연구원들은 방문객이 실제로 키를 들고 문을 열어보는 순간을 관찰하고, 왜 그 위치를 골랐는지 물어본다. 어떤 행동을 ‘차를 쓰려는 신호’로 볼지, 언제 ‘사용이 끝났다’라고 정의할지 모두 여기서 관찰한다.
― 차량 전시 존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체험이 이뤄지나요.
제가 맡은 건 자동차 키 사용성 연구예요. 요즘은 스마트키, 카드키, 휴대전화 키까지 종류가 다양하잖아요. 특히 카드키는 ‘어디에 태그해야 문이 열릴까’가 핵심인데, 실제로 고객에게 드려보면 반응이 다 달라요. 손잡이 근처를 찍는 분도 있고, 센터패널 같은 전혀 예상 못 한 자리를 찍는 분도 있죠.
저희는 키를 어느 손에 쥐었는지, 처음 찍은 위치가 어딘지, 왜 그렇게 했는지까지 세세하게 기록합니다. 기존 경험 때문인지, 직관적으로 고른 건지도 확인하고요.

― 행동 패턴이 꽤 다양할 것 같아요.
맞습니다. 예상대로 몰리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다른 곳을 찍는 경우도 있어요. 운전을 거의 안 해본 분들의 직관적인 선택에서 새로운 인사이트가 나오기도 합니다. 저희는 이런 행동을 토대로 ‘차를 쓰려는 신호’가 어디서 드러나는지를 정의해요. 예컨대 도어를 열면 전원이 자동으로 켜지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죠.
문제는 일부 사용자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저희는 그걸 ‘엣지 케이스’라고 부르는데요. 예를 들어, 운전석에서 문을 닫으면 시스템 전원을 꺼야 한다고 설계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쓰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동승자가 남아 있으면 전원을 유지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결국 현장에서만 발견되는 예외가 있고, 그걸 찾아내는 게 저희 역할입니다.
― UX 연구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는데,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희가 보는 UX는 단순히 운전하는 순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탑승 전부터 목적지에 도착하고, 도착 후 주변 정보를 활용하는 것까지 전 과정을 다루죠. 내부적으로는 ‘홀리스틱 UX’라고 부르는데, 최근에는 스마트홈과도 연결해 차량을 둘러싼 생활 전체가 연구 영역이 됐어요.

결국 자동차는 이제 하나의 생활 공간입니다. 그래서 실제 생활 속에서 차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기 위해 홈비짓(집을 직접 방문해 관찰)이나 섀도잉(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기록) 같은 방식도 활용해요. 예를 들어 배송 기사분들이 좁은 주차장에서 겪는 불편, 차 안에서 장시간 머물며 생기는 패턴 같은 것들이 다 UX 연구의 출발점이죠. 물론 한계도 있어요. 자동차는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법규와 기술 제약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이해하고, 미래 모빌리티에 필요한 경험을 예측하는 게 목표입니다. 단순한 편의 기능을 넘어, 앞으로 어떤 ‘넥스트’를 제시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UX 스튜디오 서울
장소 UX 스튜디오
주소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50
건축면적 1,900㎡
건축 설계 사무소 SoA
건축/인테리어 시공 현대엔지니어링
건축/인테리어 PM HMG 브랜드마케팅본부 (스페이스디자인1팀)
컨텐츠 기획/개발/운영 HMG AVP본부 (UX전략팀) & 이노션 CX본부
인테리어 HMG 브랜드마케팅본부
운영시간 11:00~20:00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은 정기 휴관일
*3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김지오 기자
사진 김시진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현대자동차 UX전략팀
김재원 연구원 · 남신 팀장 · 박지희 연구원 · 서세열 연구원 · 설유림 연구원 · 남승연 연구원 · 양주리 책임 · 이지인 책임 · 조민영 연구원 · 한지원 책임 · 함성윤 책임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Project Cabinet] UX 스튜디오 서울, 자동차 UX의 현재와 미래를 여는 곳
:file no.1 : 차 안의 불편을 데이터로 바꾸다
: file no.2 : 현대자동차 UX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 file no.3 : 서울부터 상하이까지, 현대차 글로벌 UX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