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알크루(ORCREW)는 부산·경남 지방을 기반으로 공간 브랜딩을 하는 디자이너 그룹이다. 탁월한 공간 디자인이 먼저 눈에 띄지만, 방점은 도리어 브랜드에 찍힌다. 어쩌면 공간은 하나의 수단. 브랜드의 결에 따라 공간 전략을 세우고, 소비자의 동선을 고려하며 경험을 설계한다. 공간을 통해 브랜드와 대중을 잇는 통로를 만드는 셈이다. 카페, 호텔, 공유 미용실 등 상업 공간과 공공 디자인을 아우르던 오알크루는 이번 부산디자인페스티벌의 전시 디자인까지 총괄했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오알크루, 그들의 접근법을 듣기 위해 홍정훈 오알크루 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with 홍정훈 오알크루 이사
— 먼저 〈2024 부산디자인페스티벌〉을 무사히 개최한 것을 축하합니다. 오알크루는 이번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
부산디자인페스티벌 메인 키 비주얼 개발부터 행사장의 전체적인 레이아웃 구성, 공용 부스 디자인 등을 맡았어요. 올해는 부산디자인위크로 진행되던 행사의 이름을 부산디자인페스티벌로 변경한 첫해인 만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여행’을 메인 키워드로 잡고, 여행 중에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장면을 체험과 전시로 전개해 로컬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더욱 친숙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오알크루는 전시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팀은 아닙니다. 상업 공간과 접근 방식의 차이가 있었나요?
전시는 불특정 다수가 대중없이 찾아오는 공간이니, 동선 설계와 시설 유지·보수에 훨씬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어요. 또, 공간이 넓다 보니 일반적인 실내 공간을 디자인할 때와 달리 규모감을 조금만 잘못 조정해도 지나치게 작아 보이거나, 커 보이는 경우가 있었어요. 평소에 시뮬레이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과정을 거쳤던 것 같아요.
— 부산디자인페스티벌과는 몇 년 전에도 연이 있었죠. 2021년 부산 글로벌 디자인 포럼에서 ‘로컬 가치를 찾는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주제로 강의하셨더라고요.
지역성과 로컬 가치를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날 강의에서는 지역이 가진 특성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브랜드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이야기했어요.
— 그때 강의한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들어보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부산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대부분 비슷한 걸 떠올려요. 바다, 광안대교, 그 위로 날아다니는 갈매기. 제주라면 돌하르방이나 귤을 떠올리겠죠. 편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특정 키워드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건 브랜딩 관점에서는 엄청난 일이기도 해요. 로컬 작업을 전개할 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환상을 제대로 충족시키는 정공법을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반전 요소를 줄 수도 있어요. SK 하이닉스에서 이천의 특산물에 대해 다룬 광고가 있었는데요. 이천의 특산물을 묻는 말에 모두 쌀, 도자기 등을 답할 때 반도체를 이야기하는 광고였어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과 다른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각인될 수도 있는 거죠. 또 *패스트 팔로어 전략도 냉정하게 보면 로컬 전략 중 하나예요. 경계가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트렌드는 여전히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지역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금 가장 트렌디한 것을 로컬에 도입하는 거죠. 그러니까 로컬에서도 상황과 요건에 따라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패스트 팔로어: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출시한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빠르게 쫓아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
— 오알크루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수상 경력이 있는 팀이에요. 시작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였죠.
인테리어를 디자인이 아니라 공사의 영역으로만 생각하는 분들도 많고, 요즘은 셀프 인테리어를 훌륭하게 하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우리가 전문가로서 어떤 역량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다가 공간 경험, 서비스 디자인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서비스 디자인’ 분야에 출품한 작품이 최고의 디자인에 주어지는 루미너리(Luminary) 상의 톱3 후보로 지명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죠.
—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서비스 디자인’은 어떤 분야인가요?
저희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할 당시에 처음 신설된 영역이었어요. 요즘은 경우에 따라 ‘공간 경험’이라 부르기도 하고, ‘UX’라고 일컫기도 하는데요. 이전에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어떤 마감재를 사용했고,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인지 건축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했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지 고민하는 거예요. 찾아온 이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고심하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면 좋을지 동선 등을 고려해 공간을 설계하는 거죠.
— 오알크루는 공간 인테리어와 함께 섬세한 브랜딩을 하는 것으로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어요. 하나의 공간을 완성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과정은 무엇인가요?
공간을 조사하고 전략을 짜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에요. 전략을 완벽하게 구성하지 않고 디자인을 시작하면 기준이 모호해져요. 같은 결과물이 제 눈에는 멋지고, 클라이언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럴 때는 주관적인 미적 기준을 내려놓고 공간에 대한 전략과 목표를 기반으로 평가하고 설득하죠. 필요에 따라서는 몇 개월 단위로 리서치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어요.
— 블로그에 작업 과정을 정리한 게시물을 봤어요. 중식 매장을 준비할 때 했던 리서치가 자세히 나와 있더라고요.
‘로컬 중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저마다 인식은 다를 수 있어요. 중국 여행을 많이 다녀오신 분은 전통 중식당이나 길거리 야시장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동네 중국집을, 또 누군가는 메뉴를 종이 박스에 담아 내놓는 아메리칸 차이니즈 풍을 상상할 수도 있죠. 중화풍이 가진 다채로운 요소 안에서 클라이언트와 대중 사이를 관통하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디테일을 수집했어요.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 그린 상을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통로를 만드는 작업이 저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공간을 조사하고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오알크루가 유념하는 것들이 있다면요?
공간 디자인이 예쁘다, 예쁘지 않다는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브랜드에 필요한 작업인지를 살펴요. 만약 온라인 쇼핑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라면 투자를 줄이고, 넉넉한 적재 공간을 두는 게 잘한 디자인이겠죠. 반대로 고객과 오프라인 접점을 만드는 게 중요한 브랜드라면, 방문자들이 만족할 만한 경험적인 요소가 충족되어야 하고요. 또, 이전처럼 거리를 걷다가 뜻밖의 방문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서울 성수동처럼 경험이 밀집된 지역이 아니면, 특히 지방일수록 ‘여기에 가야지’라는 목적을 갖고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그렇다면 포털사이트나 SNS에서 검색하는 순간부터 공간 경험이 시작된다고 봐요. 이 공간을 검색하는 사람에게 어떤 기대감을 줄지, 또 그들의 기대감을 어떻게 만족시켜 줄지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는 과정도 필요할 수 있어요. 정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노년의 클라이언트에게 무작정 힙한 공간을 추천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 수 있거든요. 지속 가능한 공간일지도 고려합니다.
—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어요. 누구나 자신의 공간이 오래 유지되기를 바랄 텐데요. 오래가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 있을까요?
오래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유연하게 변화를 줄 수 있는 디자인을 요청하는 고객님도 있어요. 트렌드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하기 어렵고, 손님들의 마음을 얻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기반에 깔린 거죠.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콘셉트를 계속 바꾸는 브랜드가 오래 기억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확실한 색깔을 가져가는 게 지속 가능한 디자인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 그동안 해왔던 작업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거제 외포에서 3대째 어업을 이어온 지역 브랜드 ‘거제도외포멸치’가 기억에 남아요. 말씀드린 공간 전략부터 공간 경험, 세부적인 브랜딩과 시각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한 프로젝트였어요. 처음 의뢰가 왔을 때는 화재로 모든 건물이 소실된 나대지 상태였어요. 멸치 공장을 새로 짓고 싶은데 지역 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면서 거제를 대표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셨죠. 리서치 작업만 거의 반년 이상 진행됐어요. 실제로 거제도에 거주하면서 멸치 잡는 분들 인터뷰도 하고 어떤 것이 필요한지 조사했죠.
— 그렇게 만든 공간이 동명의 이름을 가진 카페예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지 고민 끝에 대형 카페 모델을 취했어요.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지역 특산물을 보이기 위한 결정이었죠. 공간을 보면 일반적인 공장과 달리 *스플릿 플로어 구조로 되어 있어서 2층 카페에서 공장을 내려다볼 수 있어요. 공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형태예요. 아마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굉장히 낮을 거예요. 그런데도 이렇게 설계한 이유는 멸치를 많이 가공하는 것보다, 멸치라는 콘텐츠를 보여주는 쇼룸 역할을 하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스플릿 플로어: 건물 각 층의 바닥 높이를 다르게 하여 반층차 높이로 설계하는 방식
— 마지막으로 정훈 님이 생각하는 좋은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요?
방문자의 기대감을 장소의 목적에 따라 충분히 만족시키는 공간. 소비자 관점에서는 방해되는 요소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향유했다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글 김기수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오알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