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박찬휘
니오 유럽 디자인센터 수석 디자이너
무엇보다 저는 디자이너의 에세이라는 점이 흥미롭더라고요.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아이템 등 보다 가벼운 이야기를 다루셨는데, 책을 만들어 가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디자인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책에서 풀어낼 생각입니다. 첫 책은 일종의 몸풀기 혹은 심호흡 같은 것이라 쉽고 너그러운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디자인을 잘한다고 해서 디자인에 대한 책을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는 일과 뛰어난 발상으로 좋은 책을 만드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죠. 분명 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최근 <딴생각>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발간하셨습니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에세이라. 자동차와 디자인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쉽게 지나치기 힘들 것 같은데요. 이번 책을 출간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올해로 유럽 생활 17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즈음이면 그간의 생각과 경험을 차분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싱긋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늘 한쪽에 묶어 두었던 일상의 편린을 정리할 기회가 생겼고, 에세이 <딴 생각>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종이 위에 생각을 문자로 기술하는 건 또 다른 사유의 방식입니다. 같은 종이지만 그림을 그려 생각을 표현하는 일과는 분명 다른 영역이라는 점을 이번 책을 준비하며 절실히 실감했습니다. 책을 만든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디자이너로서 뜻밖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생각을 돌이켜보면서 제 생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은인들과도 다시 만날 수 있었고, 한 번 더 겸손해지고 배움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것도 깨닫기도 했죠.
<딴생각>의 챕터가 아이템 별로 구분되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디자이너 주변에 수많은 아이템이 가득하겠지만 이번 책의 챕터로 꼽은 아이템의 기준이 있는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일상’과 ‘지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날 때, 이곳에서 지내보면 이들의 디자인 노하우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비법서를 손에 넣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비법은 없었어요. 오히려 이들의 일상에서 유럽의 문화가 출발했고, 역사가 되었고, 거대한 발자취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됐죠. 얼마든지 검색할 수 있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일상에서 경험하지 않고 서는 알 수 없는 ‘지혜’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달았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생활에 바짝 다가와 앉아 있는 일상의 시선과 주변에 가까이 존재하는 것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일상 속 사물을 바라보며 떠오른 생각이 이렇게 많을 수가 있구나 싶었어요. 생각이라는 게 금방 떠오르다가 금방 잊어버리기 쉽잖아요. 추측건대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신 것이지 아닐까 싶더라고요.
메모에는 언제나 충실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도, 출장을 갈 때도 몰스킨(Moleskin)과 라미(Lamy) 만년필을 늘 챙겨 다니죠. 어떤 생각이라도 종이에 기록하면 생각의 촉매제가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고백의 말을 손 편지로 종이에 적을 때 그 내용이 더 진실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요?
유럽에서 지내신 지 벌써 17년 차세요. 한국에서 졸업하신 뒤 영국 왕립예술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유럽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배경이 궁금합니다. 현대자동차 디자인연구소 부사장을 역임하시고, 현재는 포마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을 운영하시는 아버지 박종서 관장님도 같은 학교를 졸업하셨잖아요.
물론 아버지를 보고 자란 영향이 영국 유학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끼쳤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아버지로부터 ‘그리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체득했습니다. 잘 그리는 일보다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자유로움을 배웠죠. 아버지께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디자인을 하던 시절의 한국은 솔직히 ‘디자인’을 내세울 수 있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격변의 시기였고, 산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꿈틀대던 때였어요. 우아하게 디자인을 자랑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죠.
그럼에도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우며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하셨어요. 그 계기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명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답’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죠. 공식을 외우고, 숫자를 대입해 소수점까지 도출하는 정답 찾기와 다른 것이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선생님이 채점을 하고, 옳고 그름을 가린 후에 일렬로 순위를 매기는 일의 반복이었습니다. 정렬된 순위에는 사람은 없고, 일련번호만 있었어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정답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순위를 매기는 일도, 옳고 그림을 가르는 일도 없었죠.
한편으로는 모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또 다른 가능성을 파생시킵니다. 넓게 본다면 바로 예술의 힘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겠죠. 어릴 적부터 저는 저에게 가장 관대했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좋았습니다. 생각을 그리고, 만드는 일은 자연스럽게 디자인이라는 영역으로 이어졌습니다. 건축과 자동차처럼 보다 큰 스케일을 가진 분야가 특히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한데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보다 안정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자동차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부자(父子)가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졌으니 그만큼 공감하고, 공유하는 내용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버지와의 기억도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디자인이라는 것 외에도 사진, 음악 등 정서적인 부분에서 저에게 앞선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릴 적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고요. 하지만 오히려 아버지와 자동차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면 의견 충돌을 종종 경험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세대 차이일 수도 있겠고, 그게 아니라면 경험하고 성장한 배경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을 중요시하는 독일에서 디자인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아버지가 말하는 디자인은 제 관점에서는 여전히 감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느껴지죠. 예컨대 저는 디자인에 있어서 아름다움의 영역은 부차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버지는 디자인을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려고 하시죠. 저는 사람을 위한 쓰임새를 쫓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이 아름다움에 귀속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미적 영역을 미리부터 생각하시는 점에서 다르죠.
개성이 강한 다른 두 디자이너의 경합과도 같아서 매번 어떤 주제를 두고서 공방을 벌여도 합의가 발생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또 누군가 수긍하고, 입장을 철회하면 그것도 재미가 없어요. 저는 다양한 의견이 세상에 존재할 때 새로운 생각이 기하급수적으로 뻗어 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설득해서 제 의견으로 무조건 끌어당길 필요도 없고, 제가 누군가의 논리에 동조해서 넘어가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상대방의 신념을 포용할 때, 나의 생각이 다른 이의 앞에서 당당할 때, 모든 토론이 각자의 ‘지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자동차 디자인이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디자이너님께서 생각하시는 자동차 디자인의 매력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카메라도, 내비게이션도, 음악도 모두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기술이 스마트폰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 혹은 기차처럼 사람이 이동하는 수단, 즉 운송 기기는 언제나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사람이 케이블을 통해 이동이 과연 가능할까요?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물리의 모든 이론이 뒤바뀌어야 해요. 인간은 물리적 이동을 위해선 반드시 교통수단에 몸을 실어야 합니다. 이처럼 자동차는 사람의 존재감을 진짜로 만들어 주죠. 어떤 시절이 등장한다고 한들, 자동차는 존재할 거예요. 자동차는 영원불멸의 것이고, 자동차 디자이너 또한 영원히 자동차 디자이너로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 공부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문화적 차이로 빚어진 해프닝이 있었다면요?
한국에서는 물을 공짜로 주지만, 유럽에서는 물을 따로 주문합니다. 그게 얼마나 돈이 아깝던지. 그래서 물을 주문하지 않았어요. 식당에서 아무것도 마시지 않는 모습을 본 동료들은 신기했겠죠? 아마 이상하게 보였을 겁니다. 이처럼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도 다른데 생각하는 방식은 하늘과 땅 차이였죠. 아무리 세상이 서로 소통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문화 차이는 살아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습니다.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이탈리아를 택하셨어요. 페라리를 디자인하는 피닌파리나에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로 입사하셨죠. 책 내용 중에서도 ‘연필’에 관한 일화에 회사 이야기가 등장하는데요. 무엇보다 입사 확정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어떠셨을지 궁금하더라고요.
페라리를 디자인하는 피닌파리나는 제 꿈의 직장이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학기 중에 인턴십을 할 수 있었는데요. 좋은 인상을 남겼던지 졸업과 동시에 입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가 전 세계적으로 서브 프라임 금융위기를 맞이했을 때라 자동차 메이커들이 통폐합되는 등 모든 자동차 업계가 사상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거든요. 다들 몸을 사리느라 채용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였어요. 그때 내가 원하던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특별한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넘어오셨어요. 두 국가의 문화적 성향이 꽤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자동차 디자인에서도 이탈리아와 독일의 차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넘어오게 된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이탈리아에서 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는 백방으로 도움을 주었지만, 행정적인 일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막상 일은 신나고 좋은데 회사 밖의 일이 저를 적잖게 괴롭혔습니다. 자동차 번호판을 얻는 일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몇 달이 걸리고, 인터넷을 신청해서 설치하는 것도 수개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독일로 갈 수 있던 좋은 기회가 생겼고, 독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자동차 디자인 영역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은 분명 다릅니다. 양산차의 시장 규모와 제품의 완성도는 이탈리아가 독일에 훨씬 못 미칩니다. 하지만 최고급 차의 경우는 여전히 이탈리아의 차가 뛰어나죠. 영원불멸합니다. 사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자동차 제조는 애초에 그 결부터 다릅니다. 각자의 제조 역사가 있고, 서로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죠. 재료와 디자인부터 차에 대한 인식까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브랜드 별로 아이덴티티가 너무 확고해서 비싼 모델부터 그보다 저렴한 모델까지 그 모습에 지독스러운 유사성이 있습니다. 포르쉐 911을 보면 이전 모델이나 최근 모델이나 상당 부분이 비슷하죠. 아우디 A4와 A6는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한 얼굴을 지녔어요.
반면 이탈리아의 자동차는 각자의 개성을 강조합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달라야 하죠. 그러다 보니 한 브랜드 안에서 유난히 튀는 것들도 많은 편이에요. 국민성도 비슷합니다. 독일인은 어느 자리에 있건 특별히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요란스럽지 않고 꾸준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요란하죠. 손 짓 발 짓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 하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표현합니다. 이들의 국민성과 자동차는 많은 부분이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보면 그들이 보일 정도이죠. 이 또한 자동차 디자인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글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박찬휘 디자이너, 교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