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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09-14

박찬휘 자동차 디자이너의 <딴생각> ②

유럽 생활 17년 차 자동차 디자이너의 일상과 영감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유럽으로 떠나 생활한 지 어느덧 17년.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를 거쳐 현재 전기차 스타트업 니오의 유럽 디자인센터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박찬휘 디자이너의 에세이 <딴생각>이 발간되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일상 속 물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연필, 종이, 카메라, 커피, 라디오 등 평범한 물건으로부터 특별함을 발견하는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시선과 유럽이라는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하며 겪어 온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유럽에서의 자동차 디자이너로서의 일과 삶, 한국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 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오늘날 전기차 산업과 디자인의 양상까지. ‘자동차 덕후’라면 놓칠 수 없는 자동차 디자이너와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Interview with 박찬휘

니오 유럽 디자인센터 수석 디자이너

최근에는 전기차 스타트업 ‘니오’에 합류하셨습니다. 유럽에서 전기차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지난 5월 베를린 출장을 갔을 때 보니까 한국 보다 전기차가 확연히 적어 보이더라고요.

유럽에서도 전기차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는 난제입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이 나날이 확충되고 있습니다. 이미 판은 커질 대로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전기차를 살지 아니면 내연기관 차를 살지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전기차에서 다시 내연기관차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를 위해 시스템 준비를 마쳤습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일을 벌여 놨어요.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많은 문제점이 존재하고 해결되어야 하죠. 백 년 가까이 축적된 내연기관의 노하우를 버리고 전기 장치를 채택했으니 시행착오가 당연히 있을 겁니다. 많은 이들의 노력이 희생되고, 실패가 반복되겠지만 문명의 진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겠죠. 그렇지만 인간 중심 그리고 사용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 모든 자동차 회사가 지닌 최우선의 과제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박찬휘 디자이너가 스케치한 전기차 플랫폼 디자인

전기 자동차와 내연 기관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합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자동차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고 불리는 폭스바겐 그룹의 디젤 스캔들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기업이 지불해야 했던 천문학적 숫자의 벌금을 계기로 내연기관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죠. 자동차 기업들은 내연 기관에 상당한 회의를 느꼈고, 시장에서도 전기차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함께 이루어졌어요. 그런 흐름 속에서 당시에 디자이너들도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를 향한다면 디자인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을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즉, 전통적인 자동차의 ‘꼴’에 대한 고객과 시장의 기대가 달라질 것이라 예측한 것이죠.

한데 오늘날 전기 자동차를 보면 기존의 내연기관 차의 디자인과 크게 다른 점이 없잖아요.

디자이너들도 전형적인 ‘멋있다’라는 자동차의 형태가 크게 바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기차 개발 초기에도 디자인 안을 가지고 고객을 초청해 사전 반응을 점검하는 절차를 다양한 방식으로 거치곤 했었습니다. 고객들도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 색다른 전기차 모습에 관심을 가졌었죠.

 

그런데 막상 완성 단계에 이를수록 전통적인 ‘디자인’에 점수를 더 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컨대 전기차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전면 그릴이 필요 없습니다. 내연기관 차에서는 연료와 공기를 혼합하기 위해 필요한 공기 흡입구로서 기능했죠. 그릴을 통해 흡입된 공기는 디젤 혹은 가솔린과 섞여 폭발을 일으키고, 그 힘으로 차가 움직이는 게 바로 내연 기관의 원리입니다. 더 이상 디젤, 가솔린을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는 그릴이 필요 없다고 모두 믿었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그릴을 없앴는데, 구매 당사자인 고객들은 자동차 브랜드의 상징인 그릴을 중요시했던 것이죠.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 BMW의 키드니 그릴이 없는 자동차의 모습은 도저히 어색해서 차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심지어 그릴이 없으면 차를 사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기도 하더라고요.

늘 스케치를 놓치 않는 박찬휘 디자이너

그렇다면 앞으로도 전기 자동차 디자인에는 변화가 없을까요?

물론 새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죠. 이는 디자인의 난제이기도 한데요. 너무 급하게 새로움을 유도하면 세상은 따라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구태의연한 방식의 디자인에 머물러 있으면 또 욕을 먹습니다. (웃음)

전기 자동차를 디자인하며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전기 자동차 디자인의 어려움 중에서 하나는 고객의 높은 기대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가 되면 마치 스마트폰처럼 몇 달에 한 번씩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이 쏟아질 거라는 대중의 막연한 기대치가 전기차 개발 난이도를 상당히 높였습니다. 더욱이 전기차는 배터리를 실었기 때문에 무게도 무겁습니다. 무거울수록 안전으로부터 멀어지는 건 기초적인 물리 상식이죠. 하지만 자동차는 전기로 가던, 연료로 가던 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와 탑승자를 살려야 합니다. 사람의 안전에 대한 문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자 자동차의 사명이에요. 전기차라고 해도 그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가족들과 서핑을 즐긴다.

디자이너님도 전기차를 타시나요? 출퇴근이나 나들이를 떠날 때 등 평소 애용하시는 자동차도 궁금합니다.

평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합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는 서핑과 스키를 즐기는 편이라 크고, 실용적인 차를 선호하고요. 디스커버리를 타고 다니죠. 저는 차에 빠지지 않은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한 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차를 열정적으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제 삶의 일부를 자동차가 차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위 ‘자동차 덕후’가 되면 잃는 것이 너무 많아요.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말이죠. 많은 걸 내려놔야 합니다. 자동차를 향한 열정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더 깊게 들여 다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오히려 자동차 보다 저는 역사를 지닌 의자와 책상, 재즈 음반을 기막히게 들려주는 오래되고 요즘의 것보다 더 잘생긴 스피커가 저의 소유욕을 더 자극합니다.

가족과는 서핑과 스키를 즐겨 탄다. 야외 활동에 적합한 크고 실용적인 디스커버리를 타고 다닌다고.

최근 국내에서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에 대한 논의도 속도감 있게 진행 중이에요. ‘모빌리티(Mobility)’라는 개념이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확대되는 중이라고 느끼곤 하는데요. 모빌리티를 어떻게 정의하실 지도 궁금하더라고요. 더불어 앞으로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걷는 인도도, 숲길도 모두 모빌리티입니다. 꼭 움직여야만 모빌리티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통로도 모빌리티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더 빠르게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건 기술의 영역입니다. 빠르게 이동하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어질 수 있는 중추에 바로 자동차 회사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자동차 회사가 제일 잘해 온 것이 시속 100km 넘는 속도로 사람들을 옮겨 나르는 일이니, 모든 모빌리티는 아직 자동차 회사의 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한편으로 다양한 모빌리티의 개념이 등장한다고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 모든 게 너무 성급합니다.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될 것 같아서 모두가 뛰어들었다고 생각해요. 최근 유럽에서는 전기 배터리와 모터 기술이 발전하며 전동 스쿠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스쿠터를 타고 목적지에 이르면 아무 곳에나 놓아두고, 이를 수거 차량이 수거해 다시 집결지에 배치해두는 시스템이죠.

하지만 도심 곳곳에 쓰레기처럼 방치된 모습을 보면 많은 의문이 듭니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계속 투입시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건 비워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더 걸을 수 있고, 자전거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진짜 길을 만들어야 해요. 이를 생각하다 보면 가로수도 더 심어야 하고, 나무를 심으면 물길을 틔어야 하고, 그렇다면 도심에 녹음이 점차 짙어지게 되겠죠. 결국 모빌리티의 이상향은 사람을 위한 일을 지향해야 하는 거죠.

음악 듣기와 사진 찍기를 즐기는 박찬휘 디자이너

한편 평소 업무 외적으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보다 본격적으로 글도 쓰려고 합니다. 파도가 있는 시즌이면 서핑을 가고, 눈이 내리면 스노보드를 타러 알프스에 갑니다. 자연이 저에게 필요한 것을 선사할 때 자연스럽게 불려 갑니다. 그 부름을 따라가면 이미 제 시간은 가득 찹니다. (웃음)

최근 업무적으로나 혹은 개인적으로나 관심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업무적으로는 앞으로 자율주행 차량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해보지 않은 영역이라 선뜻 먼저 발을 내딛지 않아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 더욱 어렵기도 합니다. 한순간에 자율주행 차량으로 대체되지 않을 거예요. 조금씩 자율주행 차량이 길 위에 등장할 거라고 봅니다. 사람이 운전하는 차와 인공지능이 운전하는 차가 같은 도로 위에 뒤섞이는 과정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율주행은 더 이상 자동차 기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컨대 독일차가 유명해진 건 속도 무제한 속도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에서 얻은 수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기술은 독일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건 자동차의 ‘빠르기’ 영역은 그간 운전자 중심에서 바라봤다는 점이에요. 오늘날에는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을 이야기합니다. 독일 기업들도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어요. 기술은 거대한데 축적된 경험은 전무하죠. 자율주행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생각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자동차가 아니라 인문학, 철학 등 사람을 다루는 영역에 대한 지식이 필요해요.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해야 자동차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자동차 회사의 디자이너로 입사하라는 뻔한 기술적 자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입사 이후의 문제가 더 어렵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겪어야 하죠. 나아가 미래의 생존에 관한 점에서도 디자이너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자동차가 잘 팔려도 디자인 덕이고, 기대보다 안 팔리면 디자인 탓이듯 말이죠.

아울러 자동차 디자이너라면 무엇이 옳은 답이고, 현명한 미래 모빌리티인지 끝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그림도 많이 그리고, 독서도 풍부하게 해야 하며, 철학도, 과학도 익혀야 합니다. 무엇보다 무작정 미래의 기술에 휩쓸려 방향을 잃기보다 ‘덜어내야 하는 일’에 대해 끊임없는 상상해야 합니다. 또한, 사물을 위해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디자인은 너와 나, 우리를 위한 일이니까요.

박찬휘 자동차 디자이너의 <딴생각> ①

 이정훈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박찬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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