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재를 잇는 큐레이션

지난봄,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더 헤리티지’가 개관했다. 옛 조선저축은행 건물을 충실히 복원했다는 점과 샤넬 부티크가 입점했다는 사실로 주목받았지만, 공예와 디자인에 관심 있는 이들은 기프트 숍과 전시장의 탁월한 큐레이션에 감탄을 표했다. 전통과 현재를 잇는 한국인의 삶을 연구하며, 공예에서 찾아낸 귀한 가치를 전하는 브랜드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가 준비한 공간들이다.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는 도자, 짚풀, 한지와 같은 전통 소재를 연구하고, 이를 작품으로 완성하는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조명하는 브랜드다. ‘보자기’의 조형적 가치와 그에 담긴 생활의 지혜를 소개한 개관전 〈담아 이르다〉를 무사히 마친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가 여름을 맞아 두 번째 전시를 열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여름’을 주제로 한다. 옛 선조들이 함께 여름을 즐기던 모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대나무, 한지 등 여름에 어울리는 소재로 만든 공예품을 전시하고 강연, 체험 등 다양한 콘텐츠를 더해 한국 여름의 다채로운 모습을 공유한다. 단순히 계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과거에 머물러있던 우리만의 문화와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가장 선비다운 피서법, 계회

〈여름이 깃든 자리〉는 자연 안에서 신의를 맺고 예술을 나누던 전통문화 ‘계회(契會)’에서 시작됐다. 조선시대 중요한 사교 모임이자 사회 활동이었던 ‘계회’는 선비들이 자연에 모여 학문을 도모하고 예술, 식음을 통해 정을 나누던 자리다. 흥미로운 건 반드시 화가가 동행했다는 점이다. 화가는 모임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참석자 이름과 만남의 취지까지 기록했다. 일종의 기념사진인 셈이다. 이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한국의 자연관까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다. 이번 전시를 위해 조선시대 대표적인 계회도 중 하나인 「독서당계회도」를 소개하고, 자연과 교감을 즐기던 선조들의 여름나기 풍경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여름을 짓는 손길, 공예가의 시간

이번 전시에는 대나무, 완초, 한지처럼 자연이 건넨 재료에 전통 기술과 현대 감각을 더한 다양한 공예품들도 만날 수 있다. 한창균 작가의 ‘우물 벤치’는 대나무 올의 촉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원형 벤치로 마을 어귀 우물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선조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한지 예술가 이종국 작가의 ‘나뭇잎 부채’는 옛집 근처에 있던 노간주나무, 대나무로 대를 만들고 직접 뜬 한지를 입체적인 형태로 구성해 바람이 모이도록 설계했다. 부채 위에는 작가의 필체와 풍경화를 더해 단순한 도구를 넘어, 하나의 회화이자 조형물로 기능한다.
전시를 확장한 워크숍도 진행된다. 계회, 탁족 등 한국 전통 여름 문화를 소개하는 최공호 교수의 강연, 이종국 작가와 한창균 작가가 진행하는 부채, 대나무 둥지 만들기 체험 등이 준비됐다. 보다 깊이 있는 여름을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