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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울트라백화점 서울 Vol2, 국내창작 IP 서브컬처로 흥행을 만들다

취향을 디깅하는 백화점, 어반플레이의 실험

쉬운 길을 가지 않고, 없는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울트라백화점 전시가 그렇다. 언뜻 쉽고 유쾌해 보이는 이 전시는 만만치 않은 난관을 뚫고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먼저, 주제인 ‘서브컬처’부터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 메가트렌드의 시대는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은 각자 취향에 맞는 것을 찾아 깊게 파고드는 니치 취향의 시대다. 쏟아지는 독립출판물, 무수한 OTT 작품, 사운드클라우드로 대표되는 음악 취향의 세분화가 그 증거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서브컬쳐 스트릿' 섹션.

울트라백화점은 아예 그 서브컬처를 전면에 내세웠다. 음악, 출판, 영화, 패션 등 자기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온 70여 팀의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DDP에 선보였다.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마주하는 서브컬처 스트리트 존의 카피는 관객을 압도한다. “내가 왜 백수저를 응원하고 있지?” “커트 코베인은 왜 여성 옷을 입었나?” 장뤽 고다르와 워너브러더스가 함께 언급된 문장들까지. ‘만드는 사람의 서사를 선보이고, 관객은 자신의 취향을 디깅한다’는 경험을 설계했다.

 

연이은 투자 거절, 높은 대관료를 감당해야 하는 DDP라는 공간, 낯설다는 평가를 받은 서브컬처라는 주제까지.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 울트라백화점은 열렸고, 분위기는 반전됐다. 개막 2주 차부터 바이럴이 시작되더니 인터파크 예매 순위 상위권(2~5위)을 지켰다. 시간이 지나도 수치는 꺾이지 않았고, N차 관람이 줄을 이었다. 4월 13일 기준 누적 관람객은 5만 명이 넘었다. 계획에 없던 전시 연장을 결정하게 된 이유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울트라백화점을 선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순수 국내 창작자의 IP로 DDP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고 싶었다는 홍주석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건이 아니라 영감을 팝니다

이제 사람들은 물건보다 콘텐츠와 경험을 위해 오프라인을 찾는다. 기존의 오프라인이 리테일, 즉 상품을 구매하기 위한 유통 기반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무게중심이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어반플레이가 떠올린 건 백화점이었다. 그런데 백화점이 물건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영감을 받고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는 장이라면? 울트라백화점은 그 상상을 구현한 결과다.

현재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질문을 비롯해, 음반과 독립출판 독립영화 등 다양한 분야 서브컬처를 전시로 선보였다.© 어반플레이

―  기획 단계에서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요. 

난해하다는 반응이 많았죠. 저희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어반플레이가 13년 동안 도시 문화 콘텐츠를 해오면서 늘 느낀 게 있었거든요. 창작자들이 자기 작업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판,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전시도 이제는 그냥 보고 끝나는 형식이 아니라, 관객이 더 깊게 빠져들고 새로운 관점을 얻어가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걸 가장 상징적으로 풀 수 있는 형식이 뭘까 생각했을 때 백화점이 떠올랐어요. 기존의 오프라인 공간은 대체로 무언가를 사고파는 기능에 집중했고,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형식이 백화점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오프라인은 조금 달라졌다고 봤어요.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영감을 받고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고요.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을 마주하며, 입체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 헤이팝

DDP도 마찬가지예요. 워낙 상징적인 공간인데, 정작 한국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느꼈어요. 해외 작가나 해외 브랜드 전시는 많은데, 국내 창작자의 IP로 이 공간에서 제대로 된 성공 사례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이 계속 있었죠.

 

― 국내 창작 IP 전시가 없나요?

대부분 해외 작가 전시거나, 작품 판매를 위한 갤러리형 전시가 많죠. 국내 창작 IP를 바탕으로 선보이는 상업 전시는 드문 편이에요. 있더라도 무료 전시이거나 공공 지원으로 이뤄지거나, 결국 작품 판매를 중심에 둔 경우가 많고요.

 

물론 웹툰이나 캐릭터 IP 기반 전시는 있어요. 그런데 새로운 한국 콘텐츠를 바탕으로 전시를 만들고, 그걸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해서 시장 안에서 반응을 얻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봤어요.

‘숏폼’ 시대, 휘발되지 않는 경험의 가치

― 초반 우려와 달리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번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이 정도로 반응이 올 줄 몰랐어요. 전시의 유효기간이 길어야 두 달 정도라고 봤거든요. 그런데 바이럴이 시작되고, 그 흐름이 이어졌어요. N차 관람하시는 분들이 꽤 있고요. 그걸 보면서 이 전시가 생각보다 더 확장성이 있겠구나 싶었어요. 연장 결정을 하게 됐죠.

 

티켓 판매 흐름도 일반적인 전시와 달랐어요. 보통 얼리버드에서 많이 팔리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반대였어요. 얼리버드 때는 “이게 무슨 전시지?” 하는 반응이 더 많았고, 오히려 공개 후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오픈 후 예매 순위 상위권을 계속 유지했어요. 관객층도 예상과 달랐어요. 처음에는 시대상이나 문화적 맥락을 잘 알고 있는 30, 40대가 주로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오히려 20대 관객이 많이 들어왔어요. 

 

― 이유가 뭘까요.

생각해 보면 지금 콘텐츠를 소비 방식이랑 맞닿아 있었던 것 같아요. 온라인에서 늘 무언가 저장하고 캡처하잖아요.

그런데 금방 휘발되죠. 울트라백화점은 그 스크랩하는 행위를 오프라인으로 가져온 전시였다고 생각해요. 그냥 보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걸 골라 담고, 소장하고, 기억하게 만든 거죠. 그런 디테일이 통했던 것 같아요.

콘텐츠를 장바구니에 담는 느낌으로 제작한 엽서와 키트. © 헤이팝

그리고 요즘은 AI가 생각도 대신해 주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 더 반응하는 것 같아요. 낯설 수 있는 서브컬처도 더 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고요.

오프라인 콘텐츠의 주기도 변했다

울트라백화점이 흥미로운 또 하나의 지점은 ‘상설일 필요가 없다’라는 발상이다. 어반플레이는 지금의 오프라인이 더 짧은 주기로, 더 자주 콘텐츠를 바꿔야 하는 시대로 들어섰다고 본다. 로드숍도, 백화점도, 한 번 세팅한 뒤 오래 유지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트라백화점은 애초에 이동 가능한 프로젝트형 콘텐츠로 구상됐다. 시즌이 바뀌면 내용도 바뀐다. 좋은 공간 경험은 하드웨어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콘텐츠와 운영 모델, 이는 어반플레이의 오랜 고민이었다. 

처음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둔 기획인가요.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걸 어떤 흐름으로 풀어낼까, 거기서 출발했어요. 지금은 크리에이터의 시대잖아요. 알고리즘이 모든 걸 좌우하는 것 같아도, 사람들은 결국 자기 취향과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죠. 시즌 1 ‘하이퍼 알고리즘’은 그런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한 이야기였어요.

시즌1 하이퍼 알고리즘. 장소는 같지만, 전시의 콘텐츠는 모두 변했다. © 어반플레이

시즌 2는 거기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요. 그런 개인의 취향이나 태도가 결국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문화가 된다고 봤어요. 저희가 말하는 서브컬처도 메이저의 반대말이라기보다, 뭔가에 열중하고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태도에 가까웠고요. 시즌 1이 개인을 조명했다면, 시즌2는 개인의 이야기가 문화적 현상으로 번지는 과정을 본 거죠.

 

시즌 3의 키워드는 로컬 헤리티지예요. 그런 문화가 도시나 지역과 만나면 어떻게 하나의 로컬 문화가 되는지 보고 싶었거든요. 예를 들어 대전은 예전부터 물자 수송 과정에서 밀가루가 많이 모였고, 그 지역적 특수성에 개인의 정체성이 융합되면서 좋은 베이커라와 칼국수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었죠. 결국 어떤 지역의 산업과 역사, 생활 방식이 개인의 크리에이티브와 만나고 그게 콘텐츠로 쌓이면서 하나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은 거죠.

 

울트라백화점은 계속 움직이고 바뀌는 프로젝트군요. 

이제는 백화점도 상설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봤어요. 오히려 전시나 팝업처럼, 이동하면서 다른 도시로 가고 또 다른 콘텐츠를 담아낼 수 있는 프로젝트형 포맷에 가깝다고 생각했죠. 울트라백화점도 계속 움직이면서 확장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했어요. 서울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부산으로도 가고, 나중에는 해외 도시의 콘텐츠를 서울로 가져오거나 반대로 서울의 콘텐츠를 해외로 가져가는 식으로요.

 

결국 저희가 만들고 싶은 건 물건을 파는 장소라기보다, 어떤 도시와 브랜드, 취향을 발견하는 경험에 가까워요. 여행 갔을 때 우연히 들어간 커피숍이나 편집숍에서 느끼는 기분 있잖아요. 물건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런 브랜드가 이 도시에 있네 하고 알게 되는 것 자체가 좋잖아요. 울트라백화점은 그런 감각을 더 유연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한 포맷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경험의 시대 지속가능성

— 과거 콘텐츠를 기획할 때 ‘어떤 경험을 주느냐, 얼마나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순환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콘텐츠의 생명력을 의미하는 건가요.

꼭 콘텐츠가 얼마나 오래 가느냐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플리마켓처럼 짧게 강하게 작동하는 콘텐츠가 있고, 한 달에 한 번 공연처럼 리듬을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있고, 1~2년 상설로 가져갈 수 있는 콘텐츠도 있잖아요. 중요한 건 그걸 어떤 비율과 주기로 조합하느냐예요. 제가 말한 ‘콘텐츠 순환’은 결국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적절한 콘텐츠를, 맞는 타이밍에 계속 운영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더 가까워요.

 

― 어반플레이를 시작한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크게 체감하는 변화가 있나요.

라이프스타일이 점점 다양해지면,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더 희소한 경험을 찾게 될 거라고 봤어요. 지금은 아예 새로운 공간 경험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보고요.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더 밀도 있는 경험을 찾는 쪽으로요. 작년쯤부터는 그 흐름이 조금 더 본격화했다고 느끼고요. 지금은 일반 관객들도 국제도서전이나 언리미티드 에디션, 아트페어 같은 오프라인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찾는 시대가 됐잖아요. 

 

트래픽을 모으려면 점점 더 콘텐츠가 중요해질 거라고 보는 거예요. 앞으로 더욱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데 돈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팝업도 유료화가 될 수 있겠죠. 넷플릭스도 처음 생길 때 구독제에 대한 저항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요.  저희가* 해온 일은 결국 공간이나 도시를 경험하게 하는 일이거든요. 13년 전 처음 로컬 이야기를 했을 때는 반응이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로컬 콘텐츠에 반응하는 시대가 왔잖아요. 이번에도 비슷해요.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섹션에서도 윤가은 감독, 원의독백 등 크리에이터의 관점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구성했다.
  • 어반플레이는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바탕으로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해 온 팀이다. 공간 설계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와 운영 방식까지 함께 고민해 왔고, 『아는동네』 매거진, 연남장, 연희파크, 〈나의 도시, 나의 성심당〉 같은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연간 1,000팀 이상의 크리에이터와 협업하고 25개의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해 왔으며, 울트라백화점은 다음 단계를 고민하며 내놓은 실험에 가깝다.

 

—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중요하게 보는 건 결국 크리에이터와 지속 가능성이에요. 그 안에는 당연히 수익성도 포함돼 있죠. 사업이 계속 가야 다음 프로젝트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와 별개로, 프로젝트를 볼 때 이게 크리에이터들한테도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인가예요.

 

저희는 공간이 하나도 없을 때부터 ‘아는 동네’ 같은 미디어를 통해 전국의 로컬 플레이어를 만나왔고, 그 네트워크가 지금 프로젝트의 기반이 됐어요. 그래서 미디어나 아카이빙도 일종의 R&D처럼 생각해요. 당장 큰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창작자와 브랜드,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축적하는 일이 결국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지니까요.

로컬을 조명하는 프로젝트로 발행한 '아는 동네' 매거진. © 어반플레이

그래서 외부 프로젝트를 할 때는 이게 크리에이터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는지, 의미 있게 남는 일인지 더 따져보는 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크레딧도 중요해요. 저희는 13년 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한 크리에이터를 공개해왔고, B2B 프로젝트를 할 때도 저희 이름이 빠지더라도 크리에이터 이름은 꼭 남기자고 계속 제안해요. 

김지오 기자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어반플레이

프로젝트
포스트 서브컬쳐 울트라백화점 Vol.2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 2관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 281
일자
2026.02.06 - 2026.05.10
시간
화-목 11:00-19:00
금-일 11:00-20:00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주최
어반플레이
주관
어반플레이, 머니투데이
링크
홈페이지
김지오
자기만의 길을 걷는 브랜드와 사람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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