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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목욕탕 해부학: BUSAN〉목욕탕으로 부산을 읽다

매끈연구소가 사라지는 목욕탕을 기록하는 이유

목욕탕에 담긴 생활사를 알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학동역 인근 갤러리로얄에서 열리고 있는 〈목욕탕 해부학: BUSAN 〉이다. 부산 목욕탕을 꾸준히 아카이빙해 온 매끈연구소와 욕실 전문 기업 로앨앤코가 부산의 목욕탕을 집중 조명한다.

목욕의 해부학 전시장 전경. 목욕탕 의자와 거울 세신대 등이 놓여있다. © 매끈연구소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부산이 한국 목욕 문화의 중요한 발신지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다. 1876년 개항 이후 일본 목욕 문화가 들어왔고,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형성된 도시 구조는 부산의 목욕탕 문화를 만들었다. 매월 이용료를 내고 목욕탕을 사용하는 ‘달목욕’ 문화도 이런 생활 조건에서 생겨났다. 신발 공장을 비롯한 제조업 기반 일터가 많았던 부산에는 욕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주거지가 많았고, 동네 목욕탕은 집 밖 욕실 역할을 했다.

높은 굴뚝도 부산만의 특징이었다. 고지대가 많아 굴뚝이 낮으면 옆집으로 연기가 흘러갔다. © 매끈연구소

실제 목욕탕을 옮겨온 듯한 목욕탕 의자와 거울, 부산에서 등장한 이태리타월과 등밀이 기계 등 아이템을 통해 부산 목욕 문화를 보여준다. 또 건축 3D 스캔 기업 테크캡슐이 기록한 부산 구덕탕 스캔 데이터 등 공간 기록을 통해 입체적으로 공간을 상상할 수 있다. 고준호 작가의 작품도 함께 소개한다.  

실제로 부산에는 2004년 1,380개의 목욕탕이 있었지만, 2025년 12월 기준 목욕탕은 650개로 줄었다. 매끈연구소가 사라져가는 목욕탕을 아카이빙하기 시작한 이유다. 이들은 목욕탕을 단순히 ‘사라져가는 옛 공간’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목욕탕을 통해 부산이라는 도시를 보여준다.

‘목욕탕’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

매끈연구소*를 만든 목지수 대표는 현재 도시 브랜딩 회사 싸이트브랜딩을 운영하고 있다. 방송국, 광고 회사, NGO를 거쳐 도시 브랜딩 회사를 창업했다. 부산의 목욕탕을 기록해 온 〈집앞목욕탕〉 역시 싸이트브랜딩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도시 브랜딩에 관심을 두게 된 건 도시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맡으면서였다. 특히 스페인 빌바오의 사례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때 조선 산업으로 성장했던 빌바오는 산업의 쇠락을 겪으며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새로운 모멘텀을 만든 것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포함한 도시 재생 전략이었다. 중요한 건 미술관 하나를 유치한 게 아니었다. 미술관을 유치하며, 낡은 강변과 항만에 문화와 관광 교통 인프라를 엮어 도시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그 경험은 그가 도시 브랜딩을 바라보는 시작점이 됐다.

2023년 창간해 현재 9권이 발행됐다. 부산의 목욕탕과 로컬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 ©매끈연구소

*매끈연구소는 안지현 목지수 공동 대표가 이끌고 있으며, 싸이트브랜딩의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그렇다면 왜 부산 목욕탕이었을까. 시작은 개인적인 아쉬움이었다. 부산이 고향인 목 대표는 어린 시절 동네마다 있던 목욕탕 굴뚝이 하나둘 사라지는 장면을 봤다. 한때 10개 가까이 있던 목욕탕은 두어 개만 남았고, 몇 년 뒤에는 그마저 사라졌다. 공간이 사라지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기억과 생활 방식도 함께 사라진다. 더 늦기 전에 부산의 목욕탕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록을 할수록 목욕탕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부산을 설명할 수 있는 생활 문화 자산으로 보였다. 산업화 시기 주거 환경, 달목욕 문화, 온천 등 부산의 이야기가 그 안에 녹아있었다. 그 기록은 〈집앞목욕탕〉창간으로 이어졌다. 매끈연구소는 부산탕, 구덕탕, 봉래탕, 녹수탕 등 부산의 목욕탕을 자세히 다루면서 부산 로컬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봉래탕과 영도다리를, 녹수탕과 국제시장을 함께 소개하는 식이었다. 목욕탕을 렌즈 삼아 부산을 들여다본 셈이다. 

거북탕과 구덕탕 취재사진 ©매끈연구소

도시 브랜딩은 도시 안의 자산을 발견하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을 배출한 모모스 커피와 함께 부산을 ‘커피 도시’로 브랜딩한 것처럼, 목 대표는 목욕탕도 부산을 소개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잡지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팝업, 세미나, 전시, 투어까지 넓어졌다. 특히 실제 운영 중인 봉래탕에서 열린 팝업은 목욕탕을 접한 적 없던 20-30세대가 목욕탕을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

사라지는 목욕탕을 기록하는 일에서 시작해 ‘목욕탕’으로 부산을 소개하고 있는 매끈연구소 목지수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with 목지수 대표

ㅡ 이번 전시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먼저 제안이 왔어요. 로얄앤코에서 최근 목욕 관련 커뮤니티 행사를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괜찮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만든 잡지 〈집앞목욕탕〉을 보시고, 부산 목욕탕으로 전시해도 좋겠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사실 서울에서 부산 목욕탕을 주제로 전시한다는 게 낯설 수 있잖아요. 다행히 전시를 보고, 왜 부산에 목욕탕이 많았는지, 또 이런 문화가 생겨났는지 이해하게 됐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로얄앤코와 협업하면서, 저희가 가진 콘텐츠를 공간 안에서 대중적으로 잘 풀어주신 덕분인 것 같아요. 실제 목욕탕처럼 의자와 거울을 놓고 재현한 방식도 그렇고요. 처음에 저희는 진지하게 텍스트를 담아내는 방식을 생각했는데, 오히려 관람객분들은 재밌는 요소 속에서도 내용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더라고요.

ㅡ ‘좋은 목욕탕’에 대한 기준도 전시에 담아냈어요.

취재를 하다보니 그 기준이 더 선명해졌어요. 좋은 목욕탕은 사람들이 여전히 찾거든요. 오래되고 낡았다고 안 가는 게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건 씻는 곳이니까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있느냐예요. 두 번째는 청소고요. 세 번째가 환대입니다. 부산 목욕탕 사장님들은 말투가 투박한 편이에요. 보통 서비스업처럼 아주 살갑게 응대하지는 않죠. 그런데 말투와 별개로 공간이 보여주는 환대가 있어요. 붙여둔 메시지, 수건, 비누에도 마음이 보입니다. 그런 공간은 사람들이 다시 가요.

ㅡ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 목욕탕도 그렇죠?

맞아요. 녹수탕이 그런 기준을 잘 보여주는 곳이에요. 사장님이 아침마다 은행에 가서 신권을 찾아오세요. 목욕탕 요금이 8천 원이면, 2천 원을 잔돈으로 거슬러드려야 하잖아요. 목욕탕 손님에게 새 돈을 드리고 싶은 마음인 거죠.  

 

 

친절한 말이 아니어도, 공간에서 환대를 느낄 수 있다. 항상 신권을 준비해 거스름돈으로 주시는 녹수탕 사장님. ©매끈연구소

그런 게 공간에 다 녹아 있어요. 수건도 얇은 수건이 아니라 호텔에서 사용하는 두꺼운 수건을 두고, 비누도 보급형이 아니라 브랜드 비누를 씁니다. 탈의실은 다 흰색으로 칠해두셨어요.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티가 나니까 더 열심히 청소하게 되잖아요. 사장님이 굳이 살갑게 말을 걸지 않아도, 이미 공간에서 환대가 느껴지는 거예요.

 

사실 녹수탕은 이미 손님이 많은 곳이라 인터뷰 설득이 쉽지 않았어요. 몇 번을 찾아가도 안 해주시더라고요. 결국 PPT까지 만들어서 설득했어요. 이게 녹수탕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산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고 목욕탕 업계가 잘 되기 위해 중요하다고요. 녹수탕이 있는 동네도 예전에는 목욕탕이 13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거든요.

ㅡ 생각보다 인터뷰 설득이 쉽지 않았네요. 

맞아요. 목욕탕 기록은 처음부터 쉬웠던 일이 아니에요. 한번은 어떤 구에 있는 목욕탕 50곳에 섭외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40곳 넘게 거절당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로컬 콘텐츠나 공간 아카이빙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만, 그때만 해도 목욕탕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정말 낯선 일이었던 거예요.

 

 

처음 성사된 구덕탕. 8년간 취재하며 단골과 동네의 이야기까지 풍부하게 들을 수 있었다. ©매끈연구소

처음 성사된 사례가 구덕탕인데요.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부산의 생활사가 그 안에 다 담겨 있더라고요. 당시는 잡지를 창간하기 전이었어서, 처음 뵙고 해마다 찾아갔어요. 직원들도 데려가고, 사진작가님도 모시고요. 그렇게 8년 동안 찾아갔는데 늘 반겨주셨죠. 새벽에 첫 물 뜨는 모습이나 보일러실도 보여주시고, 이웃 주민의 이야기도 들려주셨어요. 

 

또 구덕탕은 1981년에 지어졌는데, 지금까지도 타일 한 장 떨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거든요. 1980년대 목욕탕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공간이죠. 다큐멘터리도 찍고, 건축 3D 스캔도 했어요. 

ㅡ 사라져가는 부산 목욕탕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도쿄의 목욕탕도 소개했어요. 계기가 있나요.

도쿄도 사정이 비슷했거든요. 한때 목욕탕이 2,500개 정도 있다가 지금은 400개 정도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목욕탕이 폐업하고, 젊은 사람들은 예전만큼 찾지 않는 문제가 있었죠. 일본은 가업을 잇는 문화가 있잖아요. 우동집이나 초밥집처럼 목욕탕도 3대, 4대가 이어가는 곳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지역 주민들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입욕료(약 5,800원)가 낮다 보니, 운영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예요. 그런데 살아남은 목욕탕들은 정말 잘하고 있었어요.

 

일본 목욕탕을 취재중인 매끈연구소. ©매끈연구소

목욕 후에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도 있고, 팝업 이벤트를 열거나 만화책 7천 권을 갖춘 곳도 있어요. 어떤 곳은 손님이 직접 LP를 들고 와 틀기도 하고요. 목욕탕 안에서 올드팝이나 시티팝이 나오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또 고스기유라는 100년 된 목욕탕은 주변 부동산과 협업해 원룸 입주자에게 목욕탕 월 쿠폰을 제공했어요. 청년들이 아침저녁으로 목욕탕을 찾고, 라운지에서 공연이나 독서 모임도 하면서 지역 자체가 활기를 찾고 젊은 사람이 늘었죠. 최근에는 하라주쿠 백화점 지하에 2호점도 냈어요. 

 

이 차이가 라운지 문화에서 나오더라고요. 한국은 목욕탕이 바로 씻고 나오는 공간이라면, 일본에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머물 수 있는 라운지가 있어요. 목욕 외에도 와서 즐길 콘텐츠가 있는 거죠.

ㅡ 현재 운영 중인 라운지나, 팝업도 그런 실험의 하나일까요.

처음에 “도시 브랜딩 관점에서 부산 목욕탕을 다뤄보자”라고 했을 때 팀원들이 선뜻 반기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워크숍을 도쿄에서 했어요. 같이 목욕탕을 다녀보니까 “재밌다”, “부산 목욕탕도 이렇게 하면 안 되나요?”라는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폐업한 목욕탕에서 팝업을 해볼까 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온기가 없더라고요. 사람들이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실제 운영 중인 목욕탕의 휴무일에 해보자고 했고, 그게 봉래탕이었습니다. 봉래탕 사장님은 게임 마케팅을 공부하신 분이라 이런 문화에 열려 있었거든요. 카페처럼 쿠폰도 찍어주시고, 목욕탕에 음악을 틀고, 입욕제 이벤트도 하셨죠. 

목욕탕 휴일에 연 '몰래탕' 팝업. © 매끈연구소

그때는 지금처럼 팝업이 일상화되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왔고, 재미있어했죠. 가장 큰 수확은 목욕탕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20~30대가 이 공간을 경험했다는 점이에요. 당시에는 수익이 될까 안 될까보다, 도시를 브랜딩하고 키워야 한다는 고민이 컸습니다. 우리만 알고 있으면 소용없잖아요. 부산 전체가 목욕탕으로 들썩이고,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찾아오게 하려면 먼저 목욕탕이 가진 매력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ㅡ 앞으로 매끈연구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힘도 궁금합니다. 

저희도 브랜딩하고 마케팅하는 회사니까 전략이나 효율을 많이 따져요. 그런데 목욕탕을 취재하다 보면 그런 질문이 잘 안 통할 때가 있어요. 한번은 할머니 한 분이 목욕탕을 정말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을 봤어요. 땀을 흘리면서 하나하나 닦아내는 모습을 보는데, 공간 뒤에 숨은 노력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공간에는 마음이 다 드러나요. 찾는 분들도 그런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 일을 완전히 비즈니스로만 접근하면 늘 고민이 생깁니다. 경계가 계속 들락날락해요. 회사 일 같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 일 같기도 해요. 

 

부산은 해안선이 구불구불하잖아요. 경계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까요. 그런 걸 보면서, 모든 일을 꼭 반듯하게 경계 지어야 하나 생각할 때가 있어요. 목욕탕을 취재하려면 영업 전에 가야 하니까 새벽에 나가야 하는 날도 많고 고생스럽죠. 그래도 세미나를 열고, 투어를 만들고, 저희가 가진 이야기를 전달할 접점이 생기는 걸 보면 기쁜 마음이 들어요. 

포럼과 세미나 등 '목욕탕'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매끈연구소. ©매끈연구소

요즘은 서울에서도 부산 목욕탕을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관광도 점점 골목 안으로 들어가잖아요. 목욕탕이라는 공간이 궁금해지고, 이색적인 경험이 되는 거죠. 그 흐름 안에서 아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지오 기자
자료제공 및 취재협조 매끈연구소 

김지오
자기만의 길을 걷는 브랜드와 사람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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