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0

이야기를 들려주는 쇼룸의 근사한 예, 보블릭 플랫-홈 ②

: file no.2 : 삶을 노래하는 또 다른 방법

박래원 보블릭 대표는 가구 하나하나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는 각 브랜드와 가구의 역사,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는 과정을 즐겁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또한 취향을 찾고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마치 싱어송라이터가 자신의 감정을 담아 노래를 만드는 것처럼, 그는 오늘도 가구 한 점에 얽힌 이야기를 쓰고 말하고 있다.

Interview with

박래원 보블릭 대표

ㅡ 소박했던 판교, 한 층을 널찍하게 사용했던 이전의 세곡동 쇼룸과 ‘플랫-홈’은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첫 쇼룸은 판교의 다소 고즈넉한 장소에 있었어요. 원오디너리맨션이 이사를 나가고 들어가게 된 곳인데, 다행히도 많은 분이 찾아주셨죠. 그러다 보니 규모를 늘릴 필요를 느껴 세곡동으로 이전했습니다. 그곳의 한적함도 좋았지만, 접근성이 아쉬웠어요. 서울 중심지로 이동하는 게 어떨까 고민하던 차에 이 장소를 만났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어떤 합리적인 고민이나 판단도 필요 없었어요. 큰 도로와 바로 맞닿아 있지 않은 주택가가 지닌 한적함마저도 매력적이었고, 반 층씩 오르도록 설계된 구조는 이 건물의 백미입니다. 분할된 여러 공간을 각양각색으로 꾸밀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큰 장점으로 다가왔어요.

ㅡ 수시로 전시 아이템을 바꾸고, 특정 브랜드나 콘셉트를 부각하기 위해 쇼룸 전체를 새롭게 구성하기도 하죠?

한 번 정한 전시 아이템과 레이아웃을 장시간 유지하는 대개의 가구 쇼룸들과는 다른 운영 방식입니다. 이 방식이 매출 증대에 엄청난 이바지를 하느냐,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쇼룸을 운영하는 이유는 더 많은 고객을 만나기 위함이에요. 정체된 구성으로는 고객을 끌어들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쇼룸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려면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고, 고객에게 걸음을 옮길 만한 가치를 제공해야 하죠.

저는 이케아가 정말 잘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쇼핑 과정에서 집처럼 꾸며진 다양한 공간 구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고객은 쇼핑 동선에서 끊임없이 물건을 보게 되고 그 활용 방법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되죠. 이는 방대한 수의 아이템과 넓은 공간을 바탕으로 이뤄낼 수 있었던 실질적인 솔루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어떻게 하면 그런 해답을 고객에게 제안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어요. 다만, 이렇게 계속해서 배치를 바꾸는 데 힘이 많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수시로 가구를 이고 지고 나르느라 물류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ㅡ 디자인을 전공했거나 유명한 고가의 디자인 가구를 사용하면서 자란 사람만이 이 정도 라인업을 갖춘 가구 사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의 이력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사업자를 낸 것이 2015년, 본격 사업을 시작한 게 2016년인데요. 그전엔 인디밴드 싱어송라이터로 살았어요. 10년 정도 열심히 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혔어요. 먹고 살길을 찾아 완전히 생계형으로, 단돈 50만 원으로 창업했습니다. 처음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가구와 소품 등을 구매 대행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자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물건 하나하나를 정말 죽기 살기로 팔았어요. 그 과정에서 전통 있는 브랜드 가구를 만나고,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디자인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죠. 가구의 이야기를 찾아내 들려주는 과정은 어쩌면 곡을 쓰고 노래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호응해 주는 많은 분이 있어 이 일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게 되었고요.

ㅡ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의지는 보블릭의 홈페이지나 SNS에서도 일관되게 느껴집니다.

이야기가 더해지면 제품을 구매하는 일이 그 브랜드의 철학에 공감하고 그 문화와 경험을 소유하는 의미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누가 어떤 의도로 디자인했고 그 제작 과정은 어땠는지를 자세하게 소개하려고 해요. 글로벌 브랜드의 디자인 가구는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고, 고객으로선 가격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지만 경쟁을 의식하며 저가 정책을 내세우는 건 우리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보블릭은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까, ‘이야기’가 아닐까, 의자 한 점에도 얼마나 다양한 사연과 구조적인 노력이 담겨 있는지 말하자. 이런 이야기가 쌓이면 보블릭이 소개하는 가구에 대한 신뢰로 이어질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ㅡ ‘시도’나 ‘경험’을 이끌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도 인상적입니다.

가구는 여러 번 고민하고 신중하게 구매하는 물건이잖아요. 예산이 많은 고객은 여러 점의 가구를 동시에 선택하기도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한 번에 큰 소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글로벌 브랜드나 세계 유명 디자이너 같은 단어는 심리적 허들을 높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찾아보면 엘앤씨 스텐달(L&C Stendal)의 아르노 체어(Arno Chair)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의 가치 있는 가구도 많죠. 가구나 조명 한 점을 들이고 나면 공간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게 돼요. 한 번의 시도로 쌓은 경험과 만족감이 제2, 제3의 구매로 이어지게 되고요.

제품 구매 가격을 장기 할부로 결제할 수 있는 BNPL(Buy Now, Pay Later)정책도 같은 노력의 일환입니다. 짧게는 12개월부터 최대 60개월까지 일정 금액을 나누어 결제할 수 있어 구매 고객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했어요. 한 번에 큰 금액을 지불하기 어렵거나, 처음으로 명품 가구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특히 유용하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가구를 경험할 기회가 금전적인 사정 앞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ㅡ 온라인과 플랫-홈에서의 고객 경험은 무엇이 다른가요? 보블릭은 상담을 제공한다고 들었어요

각 브랜드의 철학과 스토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가구 전문가’들이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고 있어요. 플랫-홈이 주는 다른 경험이죠. 온라인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아이템을 스스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쇼룸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고객은 특정 제품만을 고집하지 않아요. 이때 디테일한 상담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카시나(Cassina)의 LC3에 관심 있는 고객에게는 어울리는 커피 테이블, 조명, 러그 등도 함께 제안해 드려요. 당장은 구매하지 않더라도, 이는 미래의 구매 결정을 돕고, 고객이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을 더 명확히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니까요. 저희와 상담하거나 저희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고객이라면, 다른 아이템을 구매할 때 다시 찾아줄 거란 믿음이 있어요. 그만큼 제공하는 상담의 퀄리티에 자신이 있습니다.

TPO

보블릭 박래원 대표의 마음을 울린 공간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는 최근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소예요. 이곳의 대성당을 설계한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소성당에는 자신의 제자인 리카르도 블루머(Riccardo Blumer)의 ‘라 레제라(La Leggera)’ 체어를 배치하길 원했죠. 그리고 보블릭이 라 레제라 체어의 라이센스를 보유한 알리아스(Alias)를 독점으로 소개해 온 덕분에, 납품까지의 과정에서 남양성모성지를 여러 차례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VBLK

이탈리아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리카르도 블루머는 마리오 보타의 제자이기도 한데요. 그의 레제라 체어는 미적으로 세련됐을 뿐만 아니라, 단단한 단풍나무나 물푸레나무로 외부를 감싸고 내부는 발포 폴리우레탄으로 채워 손으로 있을 만큼 가벼우면서도 매우 견고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최대 20개까지 적층할 있어 보관이 쉬우니, 미사나 행사에 따라 공간을 유동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소성당에 완벽히 어울리는 가구였죠. 

소성당 내부에서 시간 정도 머물게 적이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성스러움을 넘어선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종교 건축물에서 흔히 느껴지는 엄숙함과 장엄함을 넘어, 공간에서 마치 자신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달까요. 특히, 공간과 가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있는지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3편에서 계속됩니다.

보블릭 플랫-홈 한남

 

장소 보블릭 플랫-홈 한남 

주소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26길 6, 3-5F 

운영 시간 화-토 11:00 – 19:00, 월요일 휴무  

오픈일 2023년 11월 3일 

공간 기획 보블릭 

 주리아 객원 기자

사진 강현욱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보블릭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이야기를 들려주는 쇼룸의 근사한 예, 보블릭 플랫-홈

      : file no.1 : 미적 경험을 통한 취향 발견의 공간

▶ : file no.2 : 삶을 노래하는 또 다른 방법

      : file no.3 : 보블릭 이모저모

프로젝트
[Post-It] 보블릭 플랫-홈 한남
장소
보블릭 플랫-홈 한남
주소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26길 6, 3-5F
시간
화-토 11:00 - 19:00, 월요일 휴무 
기획자/디렉터
공간 기획 | 보블릭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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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주는 쇼룸의 근사한 예, 보블릭 플랫-홈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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