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6

거대한 악기가 된 클래식 공연장, 부천아트센터 ①

: file no.1 : 최고의 소리를 위해 설계된 클래식 전문 공연장

Briefing

K-클래식의 시대가 왔다

1,565만. 가늠할 수도 없는 이 숫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022년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 공연 영상의 뷰(view) 수다. 이 영상은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마저 볼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한국 클래식계는 조성진, 임윤찬과 같은 스타 연주자로 인하여 성장하는 추세가 보인다. 2024년 KOPIS 보고서에 따르면, 클래식 공연 티켓 판매 현황은 4년간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코로나 시기 유튜브로 유입된 20~30대의 관객도 늘어나 저변 확대도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해외 유명 콩쿠르에서 많은 한국 연주자가 수상하면서 ‘K-클래식’의 열풍이라는 말도 들려올 정도다.

2024년 6월,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임윤찬 리사이틀 | 사진 출처: 부천아트센터 공식 페이스북

하지만 열풍이라는 말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선도 있다. 앞서 소개한 몇몇 스타 연주자의 공연만 인기가 있고, 클래식 장르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은 부족한 상태다. 게다가 아직 근본적인 지원도 부족하다. 대표적인 상황이 바로 클래식 전문 공연장의 부족이다. 예술의전당, 롯데콘서트홀, 통영국제음악당과 같은 노력이 있지만, 오롯이 클래식 공연만 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현실과 체감하는 현실이 다를수록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년에 개관한 부천아트센터(이하 BAC)의 존재는 소중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index 1

부천아트센터의 시작,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비인기 장르인 클래식 전문 공연장이 서울이 아닌, 경기도 부천시에 건립된 이유는 명확하다. 1988년에 창단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원하고, 시민들에게 폭넓은 클래식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유명해진 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선보인 말러 시리즈 공연 덕분이다. 새로운 시도로 국내 클래식 마니아의 지지를 얻었고, 이후 국내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국내에서 손꼽는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부천시는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공간이자 더 좋은 환경에서 공연할 수 있는 아트센터 건립을 결정했고, 2023년 5월에 개관했다.

부천아트센터 내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습실 | 사진 제공 : 부천아트센터
index 2

건축음향의 정수

부천아트센터 설계는 한국의 행림건축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퐁피두센터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공간을 설계한 애럽(ARUP)이 함께 진행했다. 클래식 전문 공연장인 만큼, 건축 음향에 제일 신경을 썼으며 그 결과 부천아트센터의 콘서트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악기라고 말할 수준으로 최고의 음향을 제공한다. 세계적인 음향 설계자인 나카지마 타테오(Tateo Nakajima)가 특별히 콘서트홀의 음향설계를 담당, 작은 음 하나까지도 경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섬세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의 좌석은 풍부한 반사 음향을 구현하는 직사각형 구조의 슈박스 구조와 객석이 무대를 감싸는 형태의 빈야드 구조를 결합한 형태다. 객석에 구현된 슈박스 구조는 소리를 풍부하게 반사함으로써 공간감이 깊은 소리를 구현하고 음의 세기까지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대와 합창단석에 구현된 빈야드 구조는 관객과 연주자의 거리를 좁혀주기 때문에 더욱 생동감 있는 음을 즐길 수 있다. 이처럼 두 가지 구조를 결합한 콘서트홀은 연주자의 의도대로 음악적 강약이 전달되고, 충분한 반사음으로 음악에 둘러싸인 듯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완벽한 음향을 위한 비밀은 좌석에도 숨어있다. 여러 가지 색을 지닌 좌석은 일본의 객석 의자 전문회사인 고토부키 사(社)의 제품이다. 최적의 음향을 구현할 수 있도록 좌석 내 목재 함량까지 조절했고 흡음력을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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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음향반사판

완벽한 음향을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홀 구조 외에도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 제일 눈에 띄는 건 무대 위 천장에 매달린 수십 개의 원판이다. 이는 음향적 지원을 보조하고 청중에게 전달되는 음향을 다시 한번 매만져주는 음향반사판으로, 6개의 대형 반사판과 57개의 소형 반사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사판은 공연되는 음악의 장르에 따라 높이를 조절하여 최적의 음향을 전달한다. 콘서트홀 벽에는 음향 조절용 배너 커튼도 설치되어 있다. 배너 커튼은 소리의 울림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콘서트홀의 천장과 바닥, 벽은 이중 슬래브로 설계되어 있으며, 수 천개의 방진 마운트와 방진 매트를 설치하여 진동과 소음을 최대한으로 차단했다. 그 결과, 청중이 공연장에서 풍부한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잔향시간(평균 2.25초)을 기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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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의 왕, 파이프 오르간

부천아트센터의 시그니처는 콘서트홀 중앙에 위치한 파이프 오르간이다. 지자체 건립 공연장 중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한 곳은 부천아트센터가 최초로, 미국 케네디 센터, 캐나다 몬트리올 오케스트라 등 유명 콘서트홀의 파이프 오르간을 제작했던 캐나다의 카사방 프레스(Casavant Frères) 사가 2년 동안 제작했다.

4,576개의 파이프와 63개의 스톱, 4단 건반과 2대의 연주 콘솔로 구성된 오르간은 74개의 악기 소리를 낸다. 부천아트센터 윤보미 공연기획팀장은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는 건 콘서트홀로서 클래식 기악곡의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바로크 시기의 곡 중에선 오르간이 포함된 작품이 많은데, 국내에 오르간이 별로 없기에 상대적으로 관객이 감상할 수 있는 곡의 수가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부천아트센터는 오르간을 보유함으로써 클래식의 중요한 곡을 연주할 수 있고, 그 덕분에 관객은 더 많은 곡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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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가능성, 소공연장

부천아트센터의 소공연장은 304석의 작은 공연장이지만, 필요에 따라 객석을 움직여서 공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가변형 극장이다. 블랙박스형 구조로, 무용이나 연극처럼 움직임이 필요한 공연도 열릴 수 있다. 그래서 소공연장에서는 국악, 소규모 오페라, 대중음악 등 다채로운 예술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흡임과 반사기능을 가진 회전식 음향 패널. 이 패널을 회전시켜 공연에 맞게 음향을 조절한다 ​

음향에 진심인 부천아트센터답게 소공연장에도 가변형 반사판이 설치되어 실내악과 같은 소규모의 클래식 공연부터 소리가 확성되는 밴드 공연까지, 음향을 적절하게 구현할 수 있다. 그리고 흡음과 반사 기능을 갖춘 회전식 음향 패널이 벽에 설치되어 장르에 따른 음향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외에도 스크린과 조명 같은 장치들도 잘 갖춰져서 기술을 결합한, 실험적인 공연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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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매력을 알려주는 기획 공연 시리즈

부천아트센터의 무기 중 하나는 촘촘하게 구성되어 이곳만의 개성과 지향점을 보여주는 공연 프로그램이다. 이중 ‘프라임 클래식’은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동시대 최고 연주자의 공연을 선보이는 공연 시리즈로, 클래식 전문 공연장이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챔버뮤직 시리즈’는 대중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실내악의 매력을 전달하는 시리즈이며, 현재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신진 연주자를 초청한 ‘영프론티어 시리즈’는 젊은 연주자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공공 극장의 역할을 보여주는 시리즈다.

이밖에 토크와 음악 공연을 접목하여 시민들이 클래식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살롱 콘서트 시리즈’, 오르간의 깊은 소리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오르간 시리즈’ 등 부천아트센터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클래식 마니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 클래식의 매력을 전달한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부천아트센터

장소 부천아트센터

주소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향로 165

건축 설계 행림종합건축

음향 설계 ARUP & 나카지마 타테오

BI 디자인 fnt Studio

 허영은 객원 기자

사진 표기식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부천아트센터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격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거대한 악기가 된 클래식 공연장, 부천아트센터

▶ : file no.1 : 최고의 소리를 위해 설계된 클래식 전문 공연장

      : file no.2 : 동아시아 클래식 허브를 꿈꾸다

      : file no.3 : 부천아트센터의 눈부신 기록

프로젝트
[Post-It] 부천아트센터
장소
부천아트센터
주소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향로 165
기획자/디렉터
건축 설계 | 행림종합건축, 음향 설계 | ARUP & 나카지마 타테오
크리에이터
BI 디자인 | fnt Studio
허영은
다양성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보고, 듣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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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악기가 된 클래식 공연장, 부천아트센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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