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두면 좋은 공간, 팝업, 전시 소식을 가장 쉽게 받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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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1

음악가 루시드폴은 왜 공사장에 갔을까

귀를 틀어막는 대신, 귀를 기울인 사람
차분하고 정적인 기타 선율에 깊이 있는 가사로 위로를 전해온 그는 2014년에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귤과 레몬 농사를 짓는 농부이자 음악가인 루시드폴은 물의 소리를 녹음해 2021년에 발매한 〈Dancing With Water〉에 이어 작년 12월에 두 번째 앰비언트(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단순하고 편안한 구성으로 소리의 질감을 강조해 공간감을 조성하는 음악) 음반 〈Being-with〉를 발매했다.

음악가이자 농부, 작가로도 활동하는 루시드폴은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두 번째 앰비언트 음반 〈Being-with〉와 함께 댄스 필름, 책 『모두가 듣는다』와 같은 관련 창작물을 비롯해 수어 통역사와 함께하는 북 토크, <모두가 듣는다> 전시, 누워서 듣는 음감회 ‘모두가 눕는다’처럼 기존의 틀을 깨는 행사로 리스너들을 찾아갔다.

 

공사장의 포크레인 소리, 그라인더 소리, 철근이 떨어지는 소리, 중장비 소리 등의 ‘소리 폐기물’을 녹음해 음악으로 업사이클링하고 싶었다는 루시드폴의 <Being-with>는 앨범의 제목처럼 다양한 생명들이 함께 사는 지구를 가득 담았다. LGBTQIA+와의 음악적 연대, 바닷속 생물과 풀벌레 소리, 미생물이 발효하는 소리 등 주변을 듣고 담아낸 그의 앨범은 듣기 편안한 음악들로 구성됐다. 마치 우리를 감싸고 있지만 그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공기처럼. 그에게서 이번 음반을 비롯해 창작물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루시드폴의 프로필 ⓒ안테나

Interview with 루시드폴

1998년에 밴드 ‘미선이’로 데뷔하여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악 생활을 지속해 온 루시드폴. 데뷔 앨범인 미선이의 <Drifting>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렸고, 2005년에 루시드폴의 이름으로 발매한 2집 <오, 사랑>은 2006년 제3회 한국 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노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ㅡ 음악인이자 제주에서 귤나무를 가꾸는 농부이기도 하죠. 한창 귤이 제철인데,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12월 초에 모두 수확을 마쳐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서울에 머물렀습니다. 연말부터 공연과 함께 <Being-with> 앨범, 새 책 『모두가 듣는다』와 관련된 여러 행사가 열렸거든요. 농사와 음악 작업, 글쓰기로 바삐 달려온 저에게 휴식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제주로 돌아와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2월 초까지 마음껏 쉬어 보려고 합니다. 일종의 방학인 셈이죠.

루시드폴의〈Being-with〉앨범 커버 이미지©안테나

| 두 번째 앰비언트 음반 <Being-with>

ㅡ 공사장의 소리, 바닷속 생물과 풀벌레, 미생물이 내는 소리 등을 채집하여 완성한 두 번째 앰비언트 음반 <Being-with>는 언제부터 시작된 작업인가요?

대부분의 제 음반이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처음부터 치밀한 콘셉트나 계획을 세워 만들지 않았어요. 2022년 말에 <목소리와 기타> 음반을 발매하고 난 뒤부터 매일 작업한 음악 창작물이 모여 완성한 음반이 <Being-with>이죠. ‘2023년의 루시드폴’의 결과인 셈입니다.

 

ㅡ 나무를 베어 내고 남은 밑동의 단면을 찍은 커버 사진에 대해서도 궁금하더군요. 어떤 인상을 준 사진이었기에 앨범의 커버로 사용하게 되었나요?

몇 년 전, 제주도의 사려니숲길에서 필름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곳에서 ‘벨비아100’이라는 슬라이드 필름으로 나무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LP의 커버로 쓰일 것을 염두에 두고 사진을 고르다 보니, 이 사진 속의 잘린 나무의 단면이며 나이테, 옹이까지도 마치 턴테이블에 올려놓은 레코드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무의 상처가 마치 음악으로 ‘재생’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죠.

녹음하며 거리를 거니는 루시드폴 ⓒ안테나 유튜브

ㅡ 실제로 들은 앨범은 어떤 곡이 공사장의 굉음을 사용한 것인지 설명 없이는 짐작하기에 어려웠습니다. 소리를 재편성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소리를 잘게 잘라서 재구성하는 ‘그래뉼러 신서시스(granular synthesis)’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음가가 없는 소음 혹은 굉음을 전기 및 전자 악기에서 내는 소리의 종류로 만들 수 있었어요. 세상에 만연한 음악적이지 않은 소리로 음악적인 소리를 만들어내어 세상에 환원하고 싶었습니다.

 

ㅡ 앨범의 첫 곡인 ‘Mindmirror’는 단조와 장조, 불협화음이 불규칙하게 어우러진 곡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숱한 ‘사이’에 존재하는 이들, 즉 LGBTQIA+를 위한 음악적 연대라고 했어요. 당신에게 연대는 어떤 의미인가요?

연대란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언제나’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울려 살아가는 타자의 고통이나 우리가 직면한 부조리에 함께 공감하고 저항한다는 의미이니까요.

 

ㅡ 수중 마이크로 녹음한 바닷속 소리로 시작되는 ‘Microcosmos’에는 사람의 소리, 미생물이 발효하는 소리, 풀벌레의 합창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녹아 있습니다. 음악으로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은 어땠나요?

나의 소리를 멈추고 소리를 내는 이들을 듣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죠. 다만, 바닷물 소리를 담을 때 기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조금 번거로운 일도 있었어요. 영국의 사운드 아티스트 재즈 라일리 프렌치(Jez Riley French)에게 직접 연락해 구한 수중 마이크를 녹음에 이용했어요.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에도 어김없이 바닷가에 나가 물속 소리를 담았는데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추웠습니다. 웃긴 일도 있었죠. 미생물이 발효하는 소리를 담는 과정에서 주변에 몰려든 파리 소리가 굉장히 입체적으로 녹음되어서, 헤드폰을 쓰고 듣다가 깜짝깜짝 놀라던 일도 있었어요(웃음).

 

ㅡ 앨범에 실린 모든 소리를 채집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장면을 하나 꼽아보자면?

오일장의 소리를 담을 때가 기억납니다.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를 켠 채로 사람들 틈새를 걸어 다니며 한 시간이 넘게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온갖 소리가 다가오고 멀어지는 청각적 경험 속에서 문득 이 세상은 어쩌면 완벽히 쓰인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렬하고 감동적이었죠.

| 청각을 넘어서는 음악

ㅡ ‘Mater Dolorosa’, 라틴어로 ‘고통받는 어머니’라는 뜻의 이 곡은 공사장에서 채집한 소리로 완성되었죠. 이 곡은 무용 영상과 함께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무용가 손승리, 영상 감독 전혁진과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가사가 없는 이번 앨범의 곡을 어떻게 시각적 이미지와 함께 엮어 공감각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미디어 아트를 비롯해 여러 아이디어를 떠올리다가 우연히 무용이 떠올랐습니다. 이후로 무용수를 끊임없이 물색했고, 손승리 무용가의 몸짓에 반해 협업을 청했어요. 무용가이기도 한, 전혁진 감독도 이와 비슷한 과정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ㅡ <Being-with> 앨범과 함께 첫 단독 산문집인 모두가 듣는다가 발간되었어요.

음악을 만드는 일은 저의 소명인지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글을 쓰는 일은 날이 갈수록 저에게 맞지 않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습니다. 다만, 이번 산문집은 음악인으로서 음악과 소리에 관한 글을 쓰는 의미 있는 도전이라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음악과 소리는 글로 쓰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돌베개
음감회 '누워서 듣는다' 현장 / 출처: 루시드폴 인스타그램(@institute.for.silence)

ㅡ 작년 12월 27일 저녁에 열렸던 음감회 ‘모두가 눕는다’에서는 참가자들이 모두 요가 매트 위에 누워 음악을 들었더라고요. 어떻게 기획하게 된 행사인가요?

굉장히 어둡고 조용한 공간이었는데요, 가능한 한 완벽한 어둠과 침묵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모르는 이들과 시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음악을 듣고 싶었거든요. 그날 밤은 앞으로도 오래 기억하고 싶어요.

 

ㅡ 나의 소리를 낮추고 타자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듣는다’에 중점을 두고 지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가장 열심히 듣고 있는 것은?

매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아내의 말을 유심히 귀담아들으려고 애씁니다. 반려견 보현의 말이나 나무들의 말도 귀 기울여 듣고 더 많이 알아채려 노력 중입니다. 지방, 국적, 대륙마다 다른 억양을 구사하는 포르투갈어 화자의 소리를 통해 듣기 연습을 하기도 해요. 단순한 어학 공부를 넘어서 저에게 순수한 기쁨을 주는 일이죠.

성채은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안테나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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