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서 한 여성이 옥수수를 들고 먹고 있다.
이윽고 이곳이 어디고 저 여성은 누구이며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잠깐, 그 의문이 생기기 이전부터 당신의 마음을 두드렸던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솔트 스튜디오(Salt.Studio)의 대표이자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철 사진작가는 구글, 버버리, 보그, LG, 신세계,소니,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이름 난 브랜드와 협업하고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SWPA)에서 상을 거머쥔 다능한 크리에이터다. 그런 그가 필드에서 활발히 활동해 온 것도 어느덧 9년. 그 시간을 돌아보며 그동안의 작업들을 정리한 사진집 ‘FEELING BEFORE SEEING’을 출간했다. 2월 6일까지 진행된 전시는 출간을 기념한 연장선으로, 그의 내면을 담아낸 공간에서 보다 그의 사적이고 은밀하게 움트는 다채로운 감정들과 만난다.
Interview with 김영철
Salt.Studio Director & Photographer
새해에 ‘Feeling Before Seeing’라는 이름의 전시를 열었어요. ‘보기 전에 느껴보라’는 의미처럼, 작품의 제목이나 설명을 생략한 전시였어요.
원래 제목이 없는 사진들은 아니예요. 이미 진행했던 각기 다른 프로젝트의 사진들로 사진집을 엮어 전시한 것이거든요. 이번 사진집과 전시는 저의 개인적이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나열한 작업이었기에, 관객들에게 그 감정을 강요하는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조금은 무모한 시도였을지 모르지만, 관객들의 일관된 반응이 사진이 유발하는 어떤 감정을 증명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요. 우리는 때로 언어적인 표현의 한계에 갇혀서 비언어적인 풍성한 표현들을 놓칠 때가 종종 있잖아요. 이번 전시에는 비언어적인 표현과 감상이 풍성하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사진에 주로 이국의 풍경과 현지인의 일상이 담겨 있어요. 9년간 많은 나라들을 오가며 포착한 장면들이죠.
처음에는 피사체나 이미지 자체에만 신경 썼는데, 나중에는 저의 복잡한 상황과 감정에 집중하고 그것을 해소하는 도구로써 사진을 다루었어요. 파리, 뉴욕, 예루살렘, 카파도키아, 부다페스트, 바르셀로나, 로마 등 많은 지역을 다녀왔네요.
그 긴 여정 속에서 사진을 찍으며 주로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복합적인’ 감정이요. 기본적으로 불안하고 우울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확신하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주로 런던에서 작업 활동을 하셨어요. 작가님이 바라보는 런던은 어떤 도시인가요? 또 런던 외에도 작가님을 매료시켰던 도시가 있다면요?
처음 런던에 간 계절이 겨울이라 그런지 저에게는 차갑고 축축하고 어두운 도시처럼 느껴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머물고 싶고 마음이 편했죠. 런던에는 제가 지냈던 집과 친구들이 있었어요. 아무리 차갑고 거칠어도 내게 익숙하고 쉴 공간이 있다는 것에 안도했어요. 항상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있어 그 도시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요. 런던 외에는 예루살렘과 뉴욕이 생각나네요. 예루살렘은 종교적인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에요. 사진 촬영도 쉽지 않았는데요. 제가 묵었던 작은 호텔의 분위기와 향기가 생각나요. 이른 아침, 조식을 먹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시고 저는 옆에서 허니콤에 꿀을 담아 먹고 있었죠. 뉴욕은 제가 떠났던 로드트립의 마지막 종착지였어요. 특히 브루클린 브릿지 근처의 거친 느낌이 인상적이었어요. 나중에는 하루에 두 번씩 방문하여 사진 작업을 하기도 했죠.
작가님의 여행을 함께하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의 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에요.
들어오자마자 처음 펼쳐지는 공간에서는 관객들이 원하는 사진 앞에서 가볍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 다음 이어지는 방은 저의 마음 또는 생각 속이라고 생각하고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관객들이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찬장 안에 사진들을 가득 채우고, 그 아래는 제가 런던에서 지낼 때 빈티지 숍에서 샀던 1940년도 성경 책을 펼쳐 놓았어요. 옆 거울은 공간 뒷쪽 걸린 사진 속 소녀의 얼굴이 비춰지도록 설치했고요.
전시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 어떤 곡이 있을까요?
The Cinematic Orchestra의 곡을 계속 들었어요.
‘Feeling Before Seeing’은 지난 9년 간의 작업을 돌아보고, 미래의 새로운 작업을 위한 정리라고 들었어요.
사진과 기억을 ‘정리’ 한다는 건 작가님께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정리한다는 것은 그것들을 ‘정의’한다는 것 같아요. 단순히 말하면, 좋았는지 그렇지 않았지요. 정리하고 정의한 후에 새로운 것을 시작할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의구심을 가지고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의한 후 시작하는 미래의 새로운 작업,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나요?
전시회가 끝나고, 전시를 진행한 그 동네와 공간에 대한 사진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또 ‘나에게 의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Parts of Bodies(가제)> 작업도 진행 중이에요.
“Classic YOUNG.” 김영철 작가만의 스타일을 두고 외국 친구들은 이런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사진에 담기는 그만의 클래식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뚝심 있는 사진 외길을 걸어왔을 법한 그의 과거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어릴 적 만화가를 꿈꾸다 학생 때는 격투기 선수로 청춘을 보냈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그런 그의 인생에 남아 있는 첫 사진 촬영의 기억은 학창시절 수련회에서 친구로부터 잠깐 사진기 좀 들고 있어달라고 부탁 받은 순간이다. 사소한 옛 기억부터 그가 찍어 온 인생의 점들은 사진작가로서 달려온 9년 동안 멋스러운 실선이 되어 고유한 자취를 남겼다. 이제 그는 그 Classic YOUNG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저의 클래식이라고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계속 창작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아닐까요?”
어릴 적 꿈이 만화가였고, 격투기 선수의 경험도 있다고요. 그림을 그리고 육체를 썼던 경험이 사진 작업에도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꿈을 가지고 있다가 입시를 하면서 운동을 해야 될 것 같다는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사진은 두 영역의 즐거움을 다 가지고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운동을 할 때는 한바탕 움직이고 땀을 내는 것과 몸의 변화가 눈에 띄게 보이는 게 좋았어요. 그림을 그릴 때는 아무것도 없던 백지에 새로운 것이 채워져 완전히 다른 장면이 펼쳐지는 게 흥미로웠고요. 사진을 찍는 건 ‘운동감’과 ‘창작을 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업이에요. 그게 사진에 대한 첫 인상이었는데, 사진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는 자가 해석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2020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에서 대한민국 1위를 수상한 작품, 은 어떻게 탄생한 작품인가요?
상업 사진 촬영 중 나온 이미지인데요. 주제가 있었지만 겉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쉬웠어요. 표면적인 것에만 치중한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 본인에게 의미가 점차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마음, 그리고 피사체의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촬영 당시 어떤 따뜻한 빛이 모델들을 감싸고 있다고 느꼈고, 그것을 안아주는 행위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모델에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얘기해 주었죠. 연인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는 관계로, 어쨌든 서로 위로를 건네고 안식을 얻어 보자는 의미였어요. 수상 이후 현재는 시리즈 작업으로도 진행하고 있어요.
2015년 캐논과의 인터뷰에서 성경의 말을 인용해 사진을 정의했어요. ‘너가 이름을 붙이면 그대로 이름이 된다.’ 발견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작가님에게 있어 ‘사진’이라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FEELING BEFORE SEEING’에서는 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죠.
어떤 것을 알아봐 주고 정의하는 것이 창작하는 사람의 특권인 것 같다는 생각은 여전한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비언어적인 것들로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런 정보가 없다면, 관객들의 반응이 뒤죽박죽일까 아니면 일관된 어떤 것이 도출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죠. 놀랍게도 모두 일관된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것이 앞으로의 제 작업과 방향에도 큰 힘을 준 것 같아요.
작가님의 취향이 궁금해요. 좋아하는 사진 작가가 있나요?
알렉 소스(Alec Soth), 제이미 혹스워스(Jamie Hawkesworth), 어윈 올라프(Erwin Olaf).
꾸준히 새로운 영감을 발휘하려면 변함없이 실천하는 루틴 또한 중요할 것 같아요. 나만의 습관이 있나요?
상상을 많이 하려고 해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마음이 굳게 서 있는가’인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죠.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팀원들에게 솔직히 이야기 하고 같이 기도하기도 해요. 종교적이지만 창작을 할 때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heyPOP Question
사진작가 김영철의 PICK!
최근 구매한 가장 Classic Young한 물건 3
1
Fredric Malle 향수
“최근 향수를 바꿨어요. 개성 있는 향이 많아 마음에 드는 브랜드예요.”
2
etudes 코트
“전시회에 있던 난로에 옷을 태우는 바람에 새로운 아우터를 구매해야 했어요. 다른 옷을 사려다가 이 브랜드의 숏 필름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죠. 브랜드의 무드를 보여주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3
바이닐 + 턴테이블
“최근 초보자용 턴테이블을 들여서 바이닐을 한 장씩 모으고 있어요. 예전에 DJ 친구와 같이 살았던 적이 있어서 스튜디오에 친구의 장비를 두었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그 프로 장비들로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틀어요.”
글 소원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김영철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