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8

샌드위치에 진심입니다, ‘샌드위치 프레스’ ②

사회에서 기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포착하다
현시대에 가장 뜨겁게 회자되고 있는 용어가 있다. ‘부캐’ 그리고 ‘N잡러’다. 그야말로 이것저것 다하는 사람이 다수의 인정을 받는 시대가 왔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의 우물만을 파야 성공한다는 과거의 통념과 제약에서 벗어나 자아가 지닌 가능성과 유동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고 있다. 샌드위치 프레스를 운영하는 주혜린 대표도 이러한 흐름 사이에 있다.
샌드위치에 진심입니다, ‘샌드위치 프레스’ ①
▼ 1편에서 이어집니다.
내지 ©샌드위치 프레스
내지 ©샌드위치 프레스

— 샌드위치 프레스에서 두 번째로 발간한 책 <대충 그린 이모티콘에 대하여>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어요. 이 책은 어떤 계기로 제작하게 됐는지.

대충 그려진 이모티콘, 즉 낙서 형태의 이모티콘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제가 <세컨드>라는 영화 잡지 작업을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요. 지금은 발행이 중단된 상태이지만, <세컨드>는 영화가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페미니즘 잡지예요. 그때 팀원 중 한 명이 저희 단체 채팅방에 낙서 형태의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거예요. 저는 동작이 명확한 이모티콘을 주로 사용을 하는데, 지인들은 형태가 모호한 이모티콘을 많이 쓰더라고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모티콘을 둘러보게 됐어요. 이모티콘 숍에 들어가 보니까 인기 있는 이모티콘 랭킹이 있더라고요. 상위에 있는 이모티콘 대부분이 낙서 형태의 이모티콘이더라고요. ‘가격은 동일한데 완성도가 떨어지는 이모티콘을 왜 구입할까?’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대충 그린 이모티콘을 구입하는 이유에 대해 글을 써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례들을 봐야 했기 때문에 낙서 형태 이모티콘의 다양한 형태와 사용자 사례들을 수집을 했고, 그것들을 펼쳐 놓고 보기 시작했죠.

내지 ©샌드위치 프레스
표지 ©샌드위치 프레스

— <대충 그린 이모티콘에 대하여>의 표지는 키치 하면서도 가벼워 보이는데, 담고 있는 내용의 층위는 다르더라고요. 

대충 그린 이모티콘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일단 선적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삐뚤삐뚤하고, 해상도로 봤을 때 픽셀이 보이고, 서체로 봤을 때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서체, 손글씨도 많이 쓰여요.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대충 그린 이모티콘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현시대의 사회문화를 들여다보게 됐던 것 같아요. 이 시대를 돌아보면서, 저는 틀에 갇혀 있는 삶에 주목했어요. 여전히 사회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 그리고 그다음에는 연애, 결혼, 출산 같은 일련의 과정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잖아요. ‘짜인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하나의 기호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 어떤 특징을 잡아 표지를 디자인했는지.

글을 쓰면서 이후 이모티콘들이 어떤 형태로 변모하게 될지 추측해 봤어요. 흐릿해지고 점점 불명확해지는데, 그럼에도 이모티콘이 잃지 않았던 건 이목구비였거든요. 그게 어쩌면 표정을 보여줄 수 있는 최후의 고비인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게 다 흐려지고 눈과 입만 남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표지를 디자인했어요. 자세히 보시면 입마저도 삐뚤어져 있어요. 모든 게 다 뒤집히지는 않을까 추측을 해봤어요. 그래서 표지를 뿌옇게 처리하고 눈알 스티커랑 입모양만을 남기게 됐습니다.

내지 ©샌드위치 프레스

—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외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주로 독자들에게 어떤 피드백을 듣는지 궁금해요. 

많은 분들이 책을 보고 “이게 뭐야?”라는 말씀을 하세요. (웃음) 그중 일부의 독자는 영화에 등장하는 샌드위치만 보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흥미로워하시더라고요. 또한 책을 통해 감독이 샌드위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새롭게 발견하는 분도 있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샌드위치에는 어떤 의미가 내재돼 있는 경우도 있고,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거든요. <대충 그린 이모티콘에 대하여> 독자의 경우, 평소 이모티콘을 많이 사용하는 분이었는데 자신의 기호를 생각해 봤다는 분도 계셨어요. 제 책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발견의 지점이 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코로나19 때문에 2년 동안에 혼자 벽만 보고 작업을 해서 답답했는데 피드백을 들으니까 힘이 나더라고요.

표지 ©샌드위치 프레스

— 28일부터 30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가해 새로운 책을 선보인다고.

<푸딩의 세계>라는 책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푸딩의 역사, 발전 과정, 일러스트레이션까지 같이 살펴볼 수 있어요. 이 책 역시 제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출발한 책이에요. 저는 평소에도 푸딩에 관심은 많았어요. 그런데 사랑이를 뽑고 나서 유독 푸딩이 눈에 더 들어오더라고요. 그때 마침 집 앞에 일본식 디저트 전문점이 생겼어요. 크림 브륄레랑 푸딩, 밀크티 등 다양한 메뉴를 파는 곳이에요. 거기에서 푸딩이랑 크램브릴레를 사 먹기 시작했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무엇보다 푸딩이라는 오브제 형태에 감탄했어요. 기포도 하나 없는 촉촉한 푸딩을 그릇에 쏟았을 때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푸딩의 형태에 반해서 처음에는 푸딩 형태의 문진을 찾기 시작했어요. 푸딩 모양의 문진, 키링, 레진 제품을 하나하나 모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푸딩이 언제 나왔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푸딩의 역사, 발전 과정을 찾아봤는데 푸딩의 시작이 소시지였더라고요. 영국에서는 특정 소시지를 블랙 푸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순대랑 똑같은 방식으로 제작이 돼요. 창자에다가 피, 지방 등 고기를 넣고, 오트밀을 넣으면 블랙 푸딩이 됩니다. 푸딩의 시작이 너무 흥미로워서 푸딩의 종류뿐만 아니라 나라별로 어떻게 푸딩을 만들어 먹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됐어요. 그렇게 푸딩에 대한 정보들이 모여 하나의 책으로 엮이게 된 것이죠.

샌드위치 프레스 굿즈 스티커 ©샌드위치 프레스
굿즈 폐기 안내문 '한 발짝 프로젝트' ©샌드위치 프레스

— 샌드위치 프레스 자체 제작 굿즈도 흥미로워요. 굿즈를 페기하는 방법이 담긴 ‘한 발짝 프로젝트’ 안내문도 함께 동봉한다고요.

샌드위치 프레스 스마트스토어에 제 자체 작업물만 있으면 허전하더라고요.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희 홈페이지에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에 샌드위치 관련 굿즈를 판매하게 됐어요. 자체 제작 굿즈의 경우 배송 시 항상 폐기 정보 안내문을 함께 보냅니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버려질 거고 쓰임이 다하는 순간이 오죠. 그럴 때 어떻게 버리면 좋을지 안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를테면, 굿즈를 봉투에 넣어 발송하는데, 봉투는 코팅이 안 되어 있으니 종이로 폐기를 해도 되며, 작은 스티커의 경우는 접착제 때문에 일반 쓰레기로 폐기하면 된다 등을 안내하고 있어요.

 

 

— 대표님의 일상에 대해 들려주세요. 

현재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강아지가 굉장히 보채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제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같이 참여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하지만 모든 일을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밤 11시가 되면, 강아지를 재우고 저도 일찍 자요. 그리고 저는 보통 새벽 4시에 일찍 일어나서 강아지가 자는 시간 동안 일과를 먼저 시작해요. 아침에 일어나서는 가장 먼저 하기 싫은 일을 해요.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아침을 먹으면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후에는 개인적인 일, 즉 메일을 확인하거나 외주 업무를 해요. 북 페어 같은 행사를 앞두고 있을 때는 발주를 넣어야 하는 목록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강의가 있는 날이면 강의를 다녀오기도 해요.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기 때문에 보통 6-7시 정도면 업무는 끝나는 것 같아요. 그때부터 강아지랑 산책도 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제 23회 전주국제영화제 100 Films 100 Posters 참여작 ©샌드위치 프레스

— 샌드위치 프레스의 계획은?

샌드위치 프레스로 출판사 상호명을 변경하니 샌드위치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빵과 빵 사이에 다양한 재료가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샌드위치의 매력이더라고요. 종잡을 수 없는 재료들을 쌓아 다채로운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책들을 내고 있을 것 같아요. 출판물은 제 연구 주제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저는 사회에서 기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포착하고 있을 것 같아요.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샌드위치 프레스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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