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꼭 활자로 읽어야만 할까?

‘소외된 것에 관하여’ 살피는 출판사 무제(無題)가 독특한 프로젝트를 꺼냈다. 시각장애인 독자를 위한 오디오북을 먼저 발간하고, 이후 종이책을 펴내는 ‘듣는 소설’ 시리즈다. 다른 책들이 시각 장애인도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라면, ‘듣는 소설’은 비시각 장애인도 읽을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박정민 대표는 시력을 잃은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책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됐다. 완성된 오디오북은 국립 장애인 도서관에 기증해 시각 장애인들이 먼저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시작은 김금희 작가가 맡았다. 삶의 낙담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는 연대와 치유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렸다. 영화 장면처럼 세밀하게 묘사된 그의 문장은 ‘듣는 소설’이라는 형식과 특히 잘 어울린다. 언뜻 희곡처럼 느껴지는 「첫 여름, 완주」는 오디오북으로 들었을 때 그 매력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오디오북은 녹음에만 두 달, 편집에는 무려 8개월이 걸렸다. 배우 고민시, 김도훈, 염정아, 최양락, 김의성, 박준면 등이 연기했고, 구름과 윤마치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해 장면마다 운율을 더했다. 섭외부터 기획까지 맡아서 진행한 박정민 대표는 기존 오디오북과 달리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덕분에 눈이 아닌 귀로도, 소설 속 장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어둠 속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첫 여름, 완주」를 전시로도 만날 수 있다. 출판사 무제와 복합문화공간 LCDC SEOUL이 함께 준비한 전시 〈완주:기록:01〉은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첫 체험 행사다. 관람객은 빛이 차단된 암실로 들어서서 오로지 청각에만 의지한 채 오디오북 일부를 감상하게 된다. ‘듣는 소설’의 기획 의도에 따라, 시각 없이 소리로만 이야기를 체험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다. 시선이 아닌 목소리로도 문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관람객 스스로가 체감하게 된다.

〈완주:기록:01〉을 위해 준비된 특별한 작품들도 있다. 도예, 벽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 8명이 「첫 여름, 완주」를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작품을 전시 중이다. 하나의 소설에 대한 다채로운 감상을 시각 예술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말하자면 입체적인 독서 토론의 장에 가깝다. 박정민 대표는 작가 섭외부터 공간 구성 등 전시 기획을 총괄했다. 지난 23일에는 북토크 사회자로 나서 김금희 작가와 함께 관객을 만났다. 소설을 쓴 사람, 그것을 기획한 사람,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문학의 다른 형태에 대해 대화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번 전시는 6월 9일까지 이어진다.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전시로 입소문을 타며, 오픈 이후 7일 연속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시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글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제공 LCDC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