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3

제주의 멋과 맛을 품은 블루보틀

제주의 자연을 가득 끌어안다.
제주도의 어느 한적한 마을, 스페셜티 커피의 흐름을 주도하는 글로벌 브랜드 블루보틀Bluebottle이 들어섰다. 구좌읍 송당리에 자리한 블루보틀 제주카페는 국내 아홉 번째로 문을 연 매장이자, 서울이 아닌 지역에 들어선 첫 번째 사례다. 한라산 동쪽에 위치한 송당리는 중산간 지역의 특색이 드러나는 곳이다. 마을 주변에는 아부오름, 안돌오름, 백약이오름 등 수십여 개의 오름이 분포되어 있어서 능선의 아름다움이 배가되고 천미천을 낀 외딴 숲길이 신비로움을 더한다. 2019년, 국내 첫 블루보틀 매장인 성수점 오픈 이후 도심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브랜드가 어떤 연유로 고요한 마을에 터를 잡게 됐을까?
©Bluebottlecoffee

 

블루보틀은 ‘다소 느리더라도 공들여 최상의 커피를 제공한다’라는 뜻의 ‘슬로우 커피Slow coffee‘를 추구한다. 오름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동네는 주변의 정취와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커피 한 잔을 누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미니멀리즘을 바탕으로 입지에 따라 유연하게 변주되는 블루보틀의 DNA는 제주의 풍부한 자연과 문화적 인프라를 만나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었다. 로컬커뮤니티에 스며들어 지역과 공생하고자 하는 블루보틀의 브랜드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Bluebottlecoffee

 

지역과의 상생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은 블루보틀의 오랜 화두였다. 제주카페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하기 위해 로컬 아티스트와 로컬 브랜드와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바리스타들 또한 대부분 제주 사람이다. 블루보틀커피코리아 서혜욱 대표는 “제주카페의 팀원 대부분이 제주도민이에요. 많은 바리스타가 자신만의 카페 창업을 꿈꾸기에 언젠가 이들이 독립하더라도 제주도를 기반으로, 맛있는 커피를 통해 세상을 잇는 역할을 하기를 바랐습니다”라고 전했다.

공간 기획은 제주도 출신의 팀 바이럴스Team Virals 문승지 작가와 협업했다. 카페 곳곳에서 제주의 문화적 특색이 담긴 디자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을 해치지 않고 제주의 문화를 담아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자연과 관계 맺는 건축물

삼나무 군락을 배경 삼은 블루보틀 제주카페

 

©Bluebottlecoffee

 

제주카페 건축 설계 당시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 오직 삼나무 군락이 열주列柱와 같이 존재할 뿐이었다. 하나의 방향성을 띠고 있는 삼나무는 공간 전체의 축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단서였다.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만들어내고, 블루보틀 단지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조화롭도록 디자인하는 것. 이번 제주카페의 건축을 맡은 코사이어티의 이민수 대표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다. “삼나무의 높이는 보통 20m에서 40m라서, 수직적으로 쭉 뻗은 나무거든요. 블루보틀 실내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풍경을 바라볼지에 관해 깊게 고민했습니다. 조경과 삼나무, 건축물의 관계성을 고려한 것이죠.” 나지막한 돌담과 정원의 털수염풀은 공간에 대한 미학적인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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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박공지붕과 군더더기 없는 외관 디자인은 블루보틀의 미니멀한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이는 제주도의 기후를 반영한 선택이었다. 강한 바람을 견디기 위해 처마의 길이가 육지보다 짧은 형태였다는 특징을 제주카페에도 반영했다는 것이 건축가의 설명. “제주도는 바람이 너무 세기 때문에 처마가 길면 지붕이 벗겨지는 상황을 초래해요. 박공지붕의 처마 부분이나 전반적인 구조, 재료, 비율 등은 기후에서 비롯된 선택이지 디자인적인 오마주는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2층 규모의 제주카페에서 가장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하는 테라스는 아직 오픈하기 전이다. 블루보틀은 성불오름을 마주하고 있는데, 테라스를 통해 1층에서 보이지 않는 새로운 풍경과 경험을 선사한다.

 

 

블루보틀이 지역 커뮤니티와 공존하는 법

커피와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

 

폐페트병을 활용한 재생 원사로 만든 '제주카페 유니폼 Jeju Uniform' ©Bluebottlecoffee

 

블루보틀 제주카페는 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반영한 공간이다. 이번 공간의 주제는 제주도의 전통 대문인 ‘정낭’과 마을 사람들의 교류의 장이자 휴식 장소를 뜻하는 ‘퐁낭’이다. 정낭의 형태에서 착안한 대문으로 ‘환영’의 의미를 더했고, 제주카페가 제주도 내에서 퐁낭의 기능을 하여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쉼터가 되기를 바랐다. 상업 공간이기 이전에 지역 주민은 물론, 제주를 찾는 관광객까지 환대하겠다는 의미다.

 

블루보틀의 페이스트리 파트너인 메종 엠오(Masion M.O)의 '제주녹차땅콩호떡 Jeju Green Tea & Peanut Hotteok' ©Bluebottlecoffee
블루보틀커피코리아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블렌드 커피로, 파랗고 드높게 펼쳐진 제주의 하늘을 패키지 디자인에 담았다ㅣ제주 블렌드 Jeju Blend ©bluebottlecoffee
로컬 수제푸딩 브랜드 우무UMU와 론칭한 '커피푸딩 Coffee Pudding' ©bluebottlecoffee
제주의 해양 쓰레기를 수거해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 보홀리카와 함께 개발한 '제주 코스터 Jeju Coaster' ©bluebottlecoffee

 

또한, 브랜드 철학을 공유하는 지역 크리에이터들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한다. 서울 카페들처럼 제주카페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제주도 기반의 플라워 아뜰리에 로만티카플라워Romantica Flower와 카페를 장식했다. 제주의 해양 쓰레기를 수거해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 보홀리카Boholica와 특화 상품을 개발했고, 플리츠마마Pleats Mama와 함께 폐페트병을 활용한 재생 원사로 카페 유니폼과 판매용 티셔츠를 제작했다. 제주도의 유명한 로컬 수제푸딩 브랜드 우무UMU와 함께 커피 푸딩을 론칭하기도 했다. 8월에는 맥주업계의 ‘제 3의 물결’을 선도하는 제주맥주와의 협업 공간도 오픈할 예정이다.

 

Interview 팀바이럴스

문승지 작가

 

©bluebottlecoffee

 

이번 프로젝트 역시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반영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낭’과 ‘퐁낭’이라는 제주도의 풍습을 공간에 연결해서 풀어냈어요. 기획 의도와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라고 볼 수 있어요. 제주도 골목길의 담벼락 사이로 걷다 보면 항상 누군가의 집 입구를 알리는 정낭이 있는데요. 정낭은 대문에 세운 큰 돌이나 나무에 걸쳐 놓은 기둥을 말해요. 그게 제주도의 중요한 콘텐츠에요. 제주도에는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는 ‘3무(無)’ 정신이 있는데, 정낭이 그걸 상징하는 조형물이죠. 육지에서는 대문이 사람보다 높고 크지만, 제주도에서는 세 개의 나무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했거든요. 몇 개의 기둥이 가로로 걸쳐져 있는지에 따라 집주인의 소재를 알 수 있었죠. 우리가 잘 아는 “혼저옵서예”라는 말처럼 누구나 환영한다는, 의심 없이 이웃과 가깝게 소통하는 지점이 블루보틀의 브랜드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죠. 그래서 손님을 맞이하는 출입구부터 작은 의자 디자인이나 벽채 마감까지 정낭의 구조를 활용해 통일감을 줬어요.

정낭의 구조와 친환경 레진을 활용한 설치물 ©bluebottlecoffee

 

또 제주도의 문화적 특징인 ‘퐁낭’은 ‘팽나무’의 방언인데, 제주도의 골목길 한가운데 있는 쉼터를 의미하기도 해요. 옛날에는 퐁낭이 마을의 골목길 중심에 위치해서 중요한 커뮤니티 역할을 했는데요. 퐁낭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던 모습, 그리고 관광객들이 잠시 머물다 가던 상황이 떠올랐어요. 혈연관계를 넘어 가깝게 지내는 지역 공동체를 의미하는 ‘괸당’ 문화를 나타내기도 하죠. 마침 블루보틀의 위치 또한 제주도의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산간 도로가 모이는 곳이었어요. 지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제주 블루보틀 자체가 제주도 내에서 퐁낭과 같은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한 퐁낭과 정낭에 담긴 스토리가 공간에 적용되면 많은 사람이 제주의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블루보틀 측에 제안했을 때도 크게 공감해 주셔서 다행이었죠.

 

벽면을 비롯한 공간 곳곳에서 정낭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bluebottlecoffee

 

내부 인테리어에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희 팀바이럴스는 ‘사람들은 왜 제주에 가는가?’에 대한 연구를 가장 먼저 했어요. 우리가 제주도를 생각했을 때 ‘힐링 명소’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편안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기대하고요. 그런데 막상 제주도에 도착해서 바닷가의 쓰레기와 많은 사람으로 인한 트래픽을 마주하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이런 상황이 아쉽고 안타깝더라고요. 물론 카페 오픈 직후에 사람이 몰리는 부분은 저희도 통제할 수 없어요. 다만 방문한 손님들이 적어도 공간 안에서만큼은 쾌적하게 즐기다 가시길 바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카페 내부의 동선이 중요했고요. 입구에 들어서서 커피를 받는 과정까지의 경험을 최대한 막힘 없이 구성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저희가 아는 제주도의 골목 또한 좋은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거든요. 퐁낭을 중심으로 한 방향이 아니라 갈래길이 있기 때문이에요. 카페에도 퐁낭의 기능을 하는 조형물을 곳곳에 배치해서 그 축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분산될 수 있도록 했어요. 이 작은 요소 하나가 전체 동선의 흐름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테이블 높이가 통창을 가리지 않도록 했다. 창 밖의 풍경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 ©bluebottlecoffee
©bluebottlecoffee

 

팀바이럴스는 그동안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해 왔어요. 이번 제주 블루보틀 공간에도 바닥재 마감과 가구에 친환경적인 소재를 활용했죠.

그동안 ‘친환경’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걸고 작업했다면 이번에는 특별히 어필하지 않았어요. 친환경이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바닥재와 가구를 이루는 ‘테록시Terroxy(레진 베이스의 테라조)’라는 소재에 가장 큰 공을 들였는데요. 이미 COS나 애플 스토어, 현대자동차에서 바닥재로 많이 썼던 친환경 재료에요. 다양한 골재를 결합해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고, 색상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저희는 제주도에 버려진 유리를 직접 수거해서 잘게 부순 뒤, 돌멩이나 자갈, 그리고 버려진 소라 껍데기를 섞어서 사용했어요. 직접 조색한 제주의 화산송이 색상도 활용했고요.

테록시는 외국에서 이미 상용화됐고 한국 디자이너 분들도 많이 사용하는 재료지만, 바닥재 외에 가구에 쓰인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저희는 이 소재를 바닥과 가구에 적용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구현하고 싶었죠. 시공하시는 분들도 재료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저희가 조색 방법과 마감 방법을 직접 익혔던 터라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울컥하네요(웃음).

 

 

가구 얘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이번 컬렉션은 오직 제주 블루보틀 카페를 위해 새롭게 준비했다고 들었습니다.

재료부터 디자인까지 전부 새롭게 시도했어요. 팀바이럴스는 큰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주로 정창기 매니저님과 정석병 디렉터님과 함께 셋이서 기획을 해요. 저는 가구를 연구하기 때문에 공간의 작은 요소에 집중하고 차츰 방향을 넓혀간다면, 정석병 디렉터님은 주로 공간 파트를 맡으니 먼저 넓은 시야로 공간을 본 뒤 점점 디테일하게 파고들어요. 그렇게 중간 지점에서 딱 만나는데,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결과물이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제주 블루보틀 프로젝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이번에 정낭을 키워드로 한 새 가구 컬렉션을 선보였는데요. 저희는 정낭의 가장 큰 조형적 특징인 원기둥을 디자인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벽면의 가구부터 의자를 지탱하는 부분, 작은 집기까지 전부 원기둥의 구조를 활용했죠. 공간과 가구가 일관성을 띠길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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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이번 작업 덕분에 제가 오랜 기간 머물며 살았던 고향인 제주도를 한 번 더 연구하게 됐어요. 팀원들과 제주도에서 함께 오랜 기간 작업하다 보니 더욱더 끈끈해졌고요. 저희한테 굉장히 뜻깊었던 프로젝트였어요. 오래전부터 디자이너로서 블루보틀의 공간을 디자인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실현돼서 감격스럽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디자인에서도 체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블루보틀이라는 글로벌 브랜드에서 구축한 매장 시스템을 엿보며 배운 게 많았어요. 모든 시스템이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제주도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상업 공간을 떠올리면 이렇게까지 고민하며 작업하는 브랜드가 몇이나 될까,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였죠. 저희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도 현지인과의 조화와 협업을 중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작가님의 추후 작업 방향이 궁금해요. 앞으로도 제주도에서 많은 활동을 전개할 계획인가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에서 거주한 적도 있고 외국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여러 지역을 오가며 느꼈던 영감을 언젠가 제주도에 적용해 보고 싶어요. 제주도가 그저 여행가는 곳이나 소비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큰 가능성을 지닌 도시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거든요. 그래서 현재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답니다. 제주 사람들이 쌓아온 다양한 문화를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아요. 어쩌면 로컬스러운 게 세계적인 무대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동기획 블루보틀커피코리아, 코사이어티, 팀바이럴스
운영 블루보틀커피코리아
건축 설계 코사이어티
인테리어 & 시공 팀바이럴스
사진 정승훈

 

 

김세음

자료 협조 블루보틀커피코리아, 팀바이럴스, 코사이어티

장소
블루보틀 제주 (제주시 구좌읍 번영로 21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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