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30

우리는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든다, 쓰리소사이어티스 ①

: file no.1 : 한국, 미국, 스코틀랜드라는 세 사회가 남양주에서 만난 까닭
증류소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Briefing

쓰리소사이어티스

몇 년 새 국내에 위스키를 즐기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실제로 리서치 기관 유로모니터의 조사를 인용한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위스키 소비량은 그 전해에 비해 무려 46%나 증가했다. 유로모니터는 이 결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 속도라면서, “팬데믹을 거치며 술을 즐기는 새로운 문화가 퍼지는 동시에 ‘스몰 럭셔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늘었다”라고 분석했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생산되는 유명 위스키가 인기를 얻으며 수입사들의 매출도 덩달아 높아지는 추세다.

* 출처 Heejin Kim, Katia Dmitrieva, Bloomberg 〈The World’s Fastest-Growing Whisky Market Is South Korea〉 2023.7.14.
증류소 내부. 동으로 만든 증류기는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직접 디자인하고 스코틀랜드에서 제작을 의뢰한 것.

그렇다면 한국의 위스키 증류소 현황은 어떨까? 앞서 언급한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희석식 소주와 맥주의 인기가 굳건한 데다 현재의 주세 규정 등 녹록지 않은 조건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작이란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위스키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비로소 싹을 틔우기 시작한 한국 위스키들이 어떻게 자라나고 뻗어갈지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을 테다.

다양한 제품들

2020년 경기도 남양주에 문을 연 한국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에 다녀왔다. 최초라는 말은 오직 하나의 주체만이 거머쥘 수 있는 수식이므로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기꺼이 그 무게를 짊어지기로,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들어 보기로 작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과 진(gin) ‘정원’을 시장에 내놓은 쓰리소사이어티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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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포부

쓰리소사이어티스(Three Societies). 직역하면 세 개의 사회라는 의미다. 증류소 이름을 이렇게 지은 까닭은 명료하다. 재미교포인 도정한 대표와 스코틀랜드에서 온 마스터 디스틸러&블렌더 앤드류 샌드(Andrew Shand), 그리고 한국인 직원들까지 서로 다른 사회 세 곳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도정한 대표(좌)와 앤드류 샌드 마스터 디스틸러&블렌더(우)

도정한 대표는 2014년 수제맥주 브랜드 핸드앤몰트 브루잉 컴퍼니(The Hand and Malt Brewing Company)를 설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핸드앤몰트를 운영하면서 비즈니스차 해외 출장이 잦았던 그는 세계 각국의 주류 업계 관계자와 소비자를 만나며 ‘한국 위스키’에 대한 열망을 키워 갔다. “출장지에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대화할 땐 주로 위스키를 마셨어요. 싱글 몰트 위스키 한 병을 사서 천천히 나눠 마시곤 했죠. 그럴 때 자주 듣던 말이 ‘한국에는 왜 위스키가 없냐’라는 질문이었어요.” 도정한 대표가 회상했다. 핸드앤몰트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킨 그는 마음에 오래 남은 그 질문을 직접 풀어보려 위스키 사업에 뛰어든다.

증류기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도정한 대표는 이 일을 함께해 나갈 사람들을 찾는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위스키 업계에서 40여 년 일해 온 앤드류 샌드는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였다. 그는 긴 세월 한 업계에서 일한 동시에 결코 한자리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지닌 사람이었다. 1991년 스코틀랜드의 글렌리벳에서 위스키 커리어를 시작한 앤드류는 새로운 환경과 업무를 경험하기 위해, 자신이 성실히 쌓아 올린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 등 세계 곳곳의 위스키 증류소에서 일해 왔다. “앤드류를 만나고 싶어서 비행기표부터 사 보냈어요. 한국에 한번 와 보라고요. 처음에는 마뜩잖아 보이기도 했는데, 막상 와서는 한국을 정말 마음에 들어 하더군요. 사업을 같이 하기로 약속을 받고, 원래 머물던 곳의 일을 마무리하라고 돌려보냈죠. 앤드류가 돌아올 때까지 저는 투자자와 팀원을 모았고요.”

기원이라는 이름은 시작과 바람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지었다. 정원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여러 식물이 자라는 텃밭을 상상하며 붙인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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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양주였을까?

증류소를 짓기 전 처음 할 일은 부지 선정이었다. 증류소가 들어설 땅을 정할 때 중요하게 여긴 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물. 예로부터 물 좋은 고장에서 좋은 술이 빚어진다 했다. 좋은 물이 나는 땅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선 물맛 좋기로 유명한 생수를 모아다가 그 수원지를 낱낱이 확인했다. 그중 증류소를 세울 수 있을 만한 지역이다 싶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하나하나 살폈다. 그들 기준에 남양주 화도읍은 좋은 물이 흐르는 땅이었다. 남양주의 물이 왜 좋냐고 앤드류에게 물었다. “정말 깨끗하거든(So clear)!” 단순해서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두 번째 기준은 연교차. 이들은 연교차가 큰 지역을 찾았다. 이는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각 증류소마다 지향하는 위스키의 맛이나 개성이 있기 마련인데, 쓰리소사이어티스는 ‘한국’을 담아내는 것을 지향으로 삼는다.

맥아를 분쇄하는 과정을 들여다봤다.

한국을 표현하는 요소는 다양하겠지만 이들이 집중한 것은 ‘뚜렷한 사계절’이었다. 앤드류는 양조장 입지를 정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보낸 한국에서의 일 년을 기억한다.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증류소를 짓기 시작했다면 이 자리에 짓지 않았을 거예요. 사계절을 경험하지 못한 채 땅을 선택했을 테니까요.” 세계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심한 한국의 연교차를 겪으면서, 이들은 이런 땅이기에 만들 수 있는 위스키를 만들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한국 땅 중에서도 사계절이 유난히 뚜렷한, 연교차가 더 큰 지역을 찾아 나선다.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 온난한 편인 바닷가 근처 후보지를 먼저 제외했다. 바다 근처에서만 만들어지는 위스키의 풍미가 분명히 있지만, 쓰리소사이어티스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그와 달랐던 탓이다. 그리고 남은 곳 중에서 수천 개의 오크통을 숙성할 땅의 면적과 가격을 고려했고, 물류와 마케팅 면의 접근성을 따진 후 남양주를 선택했다.

남양주 중에서도 화도읍은 백봉산을 두른 분지 지형이다. 기온 변화가 큰 분지 지형, 게다가 북향의 터를 최종 선택해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한국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환경을 갖췄다. 증류소 투어를 이끈 김유빈 과장은 설명했다. “여름에는 30도 후반까지 올라가고 겨울엔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지는 날도 있어요. 전 세계 어느 증류소에도 찾아볼 수 없는 갭이죠.” 쓰리소사이어티스는 모든 술을 빚기에 완벽한 땅은 아닐지 몰라도, 이들이 꿈꾸는 특성을 녹인 술을 만들기엔 꼭 알맞은 땅에 자리 잡았다.

증류된 로 와인이 흘러 나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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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고스란히 녹이는 시간

그렇다면 큰 연교차는 위스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무도 사람의 피부처럼 온도와 습도에 따라 촉촉해지기도 건조해지기도 하고, 부풀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연교차가 크면 술을 숙성하는 오크통이 수축과 팽창을 빠르게 반복하므로 연중 기온이 일정한 지역에서보다 훨씬 빨리 숙성이 이뤄진다. 앤드류의 말에 따르면 한 번도 술을 숙성한 적 없는 오크통에 숙성한다는 가정하에, 한국에서의 1년 숙성은 스코틀랜드 기준 약 4년 숙성과 비슷할 것이라고.

오크통 숙성 창고

오크통의 특성을 빠르고 확실하게 머금게 하는 환경에서 술을 숙성하는 만큼, 질 좋은 오크통을 수급하는 것이 중요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미국에서 선별해 수입하는 버번 캐스크(오크통)과 영국, 스페인 등지에서 수입하는 쉐리 캐스크, 질 좋은 오크통을 생산하는 미국 업체로부터 수입한 새 오크통 등을 골고루 사용한다. 그와 동시에 고창의 복분자주나 안동의 일엽편주 등을 빚는 국내 술도가가 숙성에 사용했던 오크통을 조달해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실험 역시 이어 나가고 있다.

특히 호기심이 일었던 건 오크통이 아니라 항아리에 숙성 실험 중인 술도 있다는 얘기였다. 항아리 속에서는 어떤 풍미가 만들어지고 있느냐고 앤드류에게 묻자, 그는 숙성을 시작하고 여태 한 번도 뚜껑을 열어 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술을 담고 한 일 년간은 아예 잊어버려요. 한 달에 한 번씩 맛을 보면 그 변화를 느낄 수 없습니다. 일 년 동안 잊고 살다가 마시면 그 차이를 바로 알 수 있어요.”

오크통에 스피릿을 넣거나, 오크통을 수리할 때 쓰이는 도구들
오크통에 작은 구멍을 내 스피릿을 주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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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맛을 만드는 것

한국을 담아낸다는 지향은 이들이 추구하는 ‘맛’에 대한 실마리를 주기도 했다. 도정한 대표는 자신들의 시도가 한국에서 상징성을 띨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쓰리소사이어티스의 위스키가 추구해야 하는 맛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깊었다고. “한국적인 맛을 꼭 담아내고 싶은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뾰족하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도정한 대표와 앤드류는 함께 식사를 하다가 앞에 놓인 제육볶음을 보고 불현듯 ‘이거다!’ 하고 느낀다. 은근히 매운 듯 달콤한 풍미야말로 한국인이라면 고향을 찾듯 찾게 되는 풍미이자, 한국적 맛의 특성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테이스팅 하는 앤드류의 모습

이 풍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앤드류는 위스키 증류기를 직접 정교하게 디자인한다. 증류기의 목과 팔 부분 등을 어떤 길이로, 어느 각도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효율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풍미가 달라진다. 이 디자인은 스코틀랜드의 유명 증류기 제작 회사 포사이스(Forsyths)로 보내진 후 장인들이 손수 망치로 두드리는 과정을 거쳐 구현됐다. “증류기를 이 산속으로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았어요. 마치 작은 집을 옮겨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트럭에 싣고 오다가 트럭도 소용없어지는 지점부터는 지게차로 아주 천천히 옮겼습니다.” 도정한 대표가 웃으며 덧붙였다.

증류기를 가까이서 본 모습. 장인들이 6개월간 동을 두드려 만들었다고.

그러나 증류기 디자인보다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마스터 디스틸러, 즉 사람의 능력이다. 당화와 발효 과정을 거쳐 1차 증류까지 끝난 로 와인(Low wine)은 2차 증류 중에 커팅(cutting)해야 한다. 커팅이란 로 와인을 맛과 향으로 판별해 초류, 본류, 후류로 나누는 과정이다. 맛과 풍미에서 합격점을 받은 본류만이 숙성에 들어가기 때문에, 감각만으로 이를 분별하는 마스터 디스틸러의 역량은 증류소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류기를 가까이서 본 모습

위스키 산업은 역사 깊고 거대한 규모의 산업이기에, 지금은 이 과정 역시 일정 부분 기계화된 증류소가 많다고. 하지만 쓰리소사이어티스는 여전히 사람이 하나하나 느끼고 판단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위스키를 만든다. 아직 성장 중인 소규모 증류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현재 자신들의 경쟁력이 ‘장인정신’에 있다고 믿는다. 평생 특정한 감각을 예민하게 벼려 두어야 하는 일이 버겁지는 않냐고 앤드류에게 물었다. “사람이 만드는 위스키를 좋아해요. 사람이 틀리면서도 계속해 나갈 때 이상하고 재미있는 위스키가 나오죠.”

위스키를 오크통에 숙성하다 보면, 자연 증발하는 양이 생긴다. 이를 ‘엔젤스 셰어(천사의 몫)’이라고 부른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에는 천사를 놀라게 할 유령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글 김유영 기자

사진 표기식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우리는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든다, 쓰리소사이어티스

▶ : file no.1 : 한국, 미국, 스코틀랜드라는 세 사회가 남양주에서 만난 까닭

▶ : file no.2 : 사업 키워드는 의미, 열정, 사람

▶ : file no.3 : 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 쓰리소사이어티스 이모저모

장소
쓰리소사이어티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로 259-18
기획자/디렉터
기획·운영 | 쓰리소사이어티스
크리에이터
증류기 디자인 | 쓰리소사이어티스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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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든다, 쓰리소사이어티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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