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31

토마토의 내일, 토마로우 ①

: file no.1 : 정직한 맛을 전하는 그래도팜의 복합문화공간
그래도팜의 체험형 공간인 토마로우

Briefing

그래도팜, 토마로우

최근 몇 년간 로컬 씬의 변화는 흥미로웠다. 재능 있는 젊은 크리에이터가 지역을 기반으로 고유문화와 특성을 개발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현장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귀촌한 청년들은 도심에서 활동한 경력이나 경험이 있기에 도시인들이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빠르게 캐치했다. 이들이 있어 로컬의 잠재력을 깨닫고 더 나아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래도팜은 1983년 시작한 원농원을 전신으로 하는 유기농 토마토 농장이다. 원승현 대표 역시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부모님이 계신 영월로 귀촌했다. 그래도팜이 특별한 이유는 ‘정성’에 있다. 일찍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고, 국내에 생소했던 에어룸 토마토 재배는 물론, 서적 출판, 체험 공간 운영 등 토마토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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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를 닮은 농장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위치한 그래도팜. 비닐하우스 농장이 줄지어 선 작은 길을 따라 몇 분 달리면, 짙은 토마토색 건물이 나타난다. ‘시골에 이런 곳이?’ 싶을 정도로 눈에 띄는 공간. 이곳은 그래도팜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인 ‘토마로우(tomarrow)’다. 토마토(tomato)와 내일(tomorrow)의 합성어로 토마토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2015년 설립한 그래도팜은 2년 전, 유기농 농장 경험 서비스 브랜드인 토마로우를 론칭했다. 농장인 그래도팜과 토마로우라는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인 셈. 가오픈 기간을 거쳐 올해 2023년 정식 문을 열었다.

토마로우 가든에는 로즈마리같은 허브부터 아스파라거스, 가지, 토마토가 무럭무럭 자란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 조경이 단정한 토마로우 가든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토마토를 처음부터 먹은 건 아녜요. 독이 든 열매를 닮았다고 해서 처음에는 관상용으로 길렀다고 하죠.” 긴 화분 형태의 가든에서는 토마토, 가지, 로즈마리, 아스파라거스 등 여러 작물이 심겨 있다. 필요할 때마다 토마로우 키친의 훌륭한 요리 재료가 되는 작물들이다. 가든 한 쪽에는 모종이 쑥쑥 잎을 피워내는 씨들링(seedling) 하우스가 있다. 탱글탱글한 색색의 토마토가 놓인 곳곳마다 훌륭한 포토 스폿이 되는 이곳에서는 체험형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토마로우의 전체 공간과 조경은 자연 중심 디자인에 강한 베리띵즈와 함께 기획했다. 농장 체험, 미식 투어, 라이브러리, 전시실 등 여러 체험이 가능하도록 공간을 개발했다.

'묘목'을 뜻하는 씨들링(Seedling)하우스에서는 다양한 토마토 묘목이 자란다.
키친과 팜 스토어. 공간 곳곳마다 토마토 생장주기에 따른 컬러가 튀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게 적용되어 있다.
체험공간 내부에 꾸려진 파밍 라이브러리(farming library)

“원래 토마토색은 빨간색에 가까운 주황색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토마로우의 키 컬러이기도 하죠.” 같은 컬러의 니트티를 입고 나타난 원승현 대표의 설명이다. 본관 외관과 내부는 토마토의 생장주기에 따른 7가지 컬러를 적용했다. 분위기는 편집숍에 온 것처럼 아기자기하다. 이곳은 농사와 관련된 서적을 마련한 파밍 라이브러리, 그래도팜이 자체 제작한 굿즈와 책들을 판매하는 팜 스토어, 키친과 교육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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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농부가 토양 전시관 만든 이유

토마로우 공간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에 꼭 거쳐야 할 공간이 있다. 바로 토양 전시관이다. 유기농 토마토 농장이니 재배 환경에 예민한 것은 알겠지만 왜 이렇게 흙에 진심일까. “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우주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것이 토양 생태계라고 해요. 생명의 근원이 되는 흙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원천이거든요.” 그래도팜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40년 동안 지켜온 ‘땅을 살리는 농사’다. 농약을 치기만 하면 몸이 아팠던 어머니를 보고 아버지 원건희 농부는 땅의 힘으로 농사짓기를 선택했다.

토양 전시관에서는 흙의 가치를 담은 교육 아카이빙 전시를 살펴볼 수 있다.

암석이 풍화해 생성되는 토양에는 수많은 균과 미생물들이 산다. 고도화된 현대 기술로도 흙은 대체할 수 없는 물질이다.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토양의 비옥도는 외국에 비해 낮은 편인데 문제는 작물 수확량을 위한 비료 사용량이 많다는 사실이다. 토양 전시관에서는 전 세계 다양한 흙의 종류와 성분, 토성별 작물 생육까지 살펴볼 수 있다. 농장에 들어서기 전 기초 공부를 탄탄히 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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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토마토

토양 전시관을 지나 농장으로 들어설 차례. 입구부터 향긋한 토마토 향이 코를 간질인다. 싱그러운 열매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렸다. 그래도팜은 에어룸 토마토를 전문으로 기른다. ‘토마토’ 하면 빨갛고 동그란 모양이 떠오르지만 여기는 노랑, 주황, 초록, 보라 등 색도 다양하고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다. 농장에는 라인마다 어떤 토마토가 자라고 있는지 품종과 모습을 그려 넣은 카드가 부착되어 있어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모형 아니라니까요." 밭에서 갓 딴 다채로운 에어룸 토마토들.

에어룸 토마토란?

에어룸(heirloom) 토마토는 유전자 조작을 거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순종 품종을 말한다. 영국에서는 역사(heritage)라고 표기하는데 ‘가보’ 혹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유산’을 뜻한다. 이런 토마토의 장점은 우수한 형질이 유전되기 때문에 씨앗을 채종하여 토착 품종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에어룸 토마토는 어느 지역의 특산물이지도 하지만, 씨앗을 유지하면서 토종화 되어있는 작물이에요. 수량이 적고 균일성이 적은 대신 우리 토양에서 적응을 거쳐 차별화된 맛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100개의 농장이 있으면 각자 100개의 개성을 지닌 토마토가 나오는 거죠.”

*출처: <내일의 토마토> 중에서
싱그러운 여름의 토마토 밭. 줄기에 손을 비벼 향을 맡으면 토마토 내음이 진하게 난다.

시칠리안 토게타, 블랙 체리, 바나나 레그, 옐로우 페어… 이름만큼 모양과 맛, 향도 다른 토마토. 전 세계에는 2만 5천 여가지나 되는 품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중 그래도팜은 50여 가지의 에어룸 토마토와 대추방울토마토인 ‘기토’를 생산한다. 원승현 대표가 에어룸 토마토 알리기에 열심인 이유는 생산성과 당도만을 기준으로 획일화된 시장에 새로움을 알리고 싶어서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고 다채로운 향의 토마토지만 지금까지 재배 환경은 물론 먹는 방법까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책을 만들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노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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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기본

토마로우의 투어 코스에는 퇴비 발효장이 포함되어 있다. “저도 퇴비라고 하면 썩은 내가 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건 오해였어요. 제대로 된 퇴비는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해서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요. 좋지 않은 냄새는 퇴비가 썩었을 때 나는 거죠.” 그래도팜은 장마철마다 참나무 수피를 바닥에 깔고 빗물을 며칠간 먹인다. 여기에 미생물과 계분, 쌀겨, 골분 등을 섞어 고온에서 7개월간 발효한다. 잘 만들어진 퇴비는 미생물의 먹이가 되고 좋은 터전을 만든다. 실제로 농장에서는 퇴비를 만져보라고 권한다. 냄새도 안날 뿐더러 잘 건조된 퇴비는 까만 흙처럼 느껴졌다. 원 대표는 아버지 때부터 농사지은진 땅은 최상위 1등급, 10년이 채 안 된 땅은 3등급 정도의 땅이라고 귀띔했다. 땅의 양이온을 얼마나 머금고 있는지, 미생물의 활동을 활발히 하는지에 따라 급이 나뉜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흙을 분석한 CEC(Cation Exchange Capacity, 염기치환 용량) 지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좋은 땅은 작물이 가진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친다. 포도 농사에서 토양과 기후의 조건인 ‘떼루아(terroir)’가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듯 말이다.

그래도팜의 퇴비 발효장. 농사의 기본이 되는 보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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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지평을 넓히는 미식여행

농장에서 딴 토마토로 꾸린 토마토 플래터. 다채로운 맛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농장 체험에서 ‘맛보기’가 빠질 수 없다. 토마로우에서는 여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기본 투어에는 다양한 토마토를 맛볼 수 있는플래터 코스를 마련해 두었다. 농장에서 갓 딴 토마토 10여 종류와 수제로 만든 토마토 버터, 졸깃한 부라타 치즈, 새콤한 살사 베르데, 토마토잼과 잘 구운 바게트가 다채롭게 구성된 한상차림. 질 좋은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각자 찰기와 수분감, 씹는 질감, 산미, 향까지 가지각색이라 하나씩 맛보는 즐거움이 크다. 왜 이토록 토마토 한 알에 정성을 다했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이다.

ⓒ 그래도팜

토마로우 공간 구성

1. 토마로우 체험 공간 (본관)

2. 토양 전시관

3. 토마토 밭

4. 퇴비 발효장

5. 토마로우 가든

6. 씨들링 하우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토마토의 내일, 토마로우

▶ : file no.1 : 정직한 맛을 전하는 그래도팜의 복합문화공간

▶ : file no.2 : 디자이너 출신 로컬 크리에이터의 연구소

▶ : file no.3 : 토마토의 버라이어티한 매력 속으로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사진 표기식

프로젝트
[Post-It] 토마로우
장소
토마로우 (론칭 시기: 2023년)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주천면 서강로 159-26
기획자/디렉터
그래도팜
크리에이터
공간, 그린하우스, 조경 디자인 | 베리띵즈, 공간 시공 | 루이스웍스 561, 그린하우스 건설 시공 | 오랑주리, 그린하우스 조경 시공 | 페이스메이커 A1, 토양 전시관 전시물 디자인 | 레어바이크, 그래도팜 CI | 매뉴얼 그래픽스, 토마로우 BI | 저스트 프로젝트, 그래도팜 땅의기록 packging&Illiust | AURG , DSLSM, <내일의 토마토> 디자인 | 프론트도어
링크
홈페이지
이소진
헤이팝 콘텐츠&브랜딩팀 리드.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라이프스타일, 미술, 디자인 분야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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