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꽤 오랜 시간 직업인으로 삶을 영위하다 보면 업무 그 자체에 매몰되거나 같은 루틴을 반복하다 일에 부여할 가치를 잃기 쉽다. 오-피스(O-Peace)는 이처럼 정해진 틀이나 경계 또는 주어진 압박감을 밀어내고 무엇을 어떻게 행할지 개척해 나가는 이들을 ‘뉴워커스(New Workers)’라 명명했다. 새롭게 일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일이 지닌 가능성을 스스로 정의하는 것. 이번 편에서는 뉴워커로서 오-피스가 펼쳐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interview with 오-피스 박성은, 박현주 공동대표
*공동 답변 진행
건축을 전공한 뒤 수많은 인테리어 시공 작업을 통해 공간 활용 디테일을 익힌 박성은 대표와 방송국 PD, IT 계열 기획자를 거치며 콘텐츠를 생산해온 박현주 대표는 어느덧 제주살이 7년 차를 맞은 부부다. 2019년 워케이션 전문 스타트업 ‘오-피스’를 설립해 그간의 경험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워케이션 공간 오-피스제주 조천점, 사계점 그리고 캄보디아 시엠 리프 점을 포함해 동아시아 10개 점 오픈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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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의 경계를 허물다
ㅡ 제주 조천읍에 첫 워케이션 공간을 마련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여러 후보지를 두고 비교하며 입지를 선정한 건 아니에요. 현실적인 예산 안에서 몇 가지 조건들에 부합하는 건물을 찾았죠. 바다와 인접해 있어 해안가를 거닐 수 있고, 주변이 평화롭고 한적한 분위기이길 바랐어요. 첫 공간을 구상할 당시는 애월읍이 제주 대표 관광지로 막 떠올라 인기인 때였어요. 자연스레 임대료가 오른 탓에 제외하게 되었고, 중문이나 성산처럼 이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도 피하고 싶었죠.
하나둘씩 지워가는 과정 끝에 조천읍을 택했습니다. 저희가 서울을 떠나 제주로 오면서 거처를 마련한 곳이기도 한데요. 공항이나 시내와 가까우면서도 시골의 풍광을 가지고 있어서 매력적인 마을이에요. 드문드문 들어선 건물 사이로 선명히 보이는 하늘과 귀를 스치는 자연의 소리 등 심신이 편안해지는 조건을 두루 갖춰 오피스의 입지로 적합하겠더라고요. 조천점은 해안가 산책로까지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데다 차를 이용하면 함덕까지도 금세 도착해요. 일을 마친 뒤 여가 시간을 활용해 이곳저곳을 둘러보기에도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ㅡ 공유 오피스와 공유 스테이를 단일 건물에 조성한 사계점과 달리 조천점은 마을 안에 스테이가 점점이 흩어져 있어요. 두 지점이 달리 가지는 특장점은 무엇인가요?
조천점의 스테이는 공유 오피스와 함께 배치한 일반 객실 4개와 그 근처 그리고 함덕에 위치한 독채 숙소 4채로 구성되어 있어요. 기존에는 독채 숙소 없이 일반 객실만 운영했는데요. 코로나19 발발 후 재택 근무 기간이 길어지자 피로함을 느낀 워커들이 워케이션 차 조천점을 많이 찾으면서 객실 수요가 증가했어요. 객실을 추가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조천읍 내의 건물 4채를 독채 숙소로 꾸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조천점 이용자는 숙소 주위의 길을 따라 로컬 식당과 숍 등을 직접 경험하며 마을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돼요. 조천읍이 지닌 특징을 깊숙이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계점은 조천점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한 공간이에요. 흩어진 기능을 한곳에 모으고자 한 거죠. 이용자가 조금 더 워케이션에 몰입할 수 있도록 단일 건물에 공유 오피스와 공유 스테이를 결합해 일과 휴식 그리고 여러 네트워킹 활동들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ㅡ 조천점과 사계점에 이어 캄보디아 시엠 리프에 3호점을 오픈했습니다. 캄보디아는 휴가지로 손꼽히는 국가와는 거리가 있어 의외의 행보였어요.
물론, 태국이나 베트남처럼 해외여행지로 인기인 국가도 고려했어요. 시장 조사 차 베트남을 찾았는데 이미 잘 만들어진 공유 오피스가 많아 기가 죽더군요.(웃음) 그러던 중 우연히 시엠 리프(Siem Reap)의 사라이 리조트(Sarai Resort)와 연이 닿아 캄보디아에 방문하게 되었어요. 아는 바가 거의 없는 도시였는데 도착하니 전 세계에서 온 배낭 여행객들로 북적이더라고요. 특히, 카페마다 구석에 위치한 좌석에서 랩탑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어요. 근처 공유 오피스들을 둘러봤는데 일과 휴식을 함께 취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오-피스가 시엠리프에 제대로 된 워케이션 공간을 만들어 보자 싶었죠. 공유 오피스에 꼭 필요한 기본 세팅을 저희가 맡고 운영과 관련한 부분은 사라이 리조트 측에서 담당하고 있어요. 시엠 리프점은 공유 오피스뿐만 아니라 공항 픽업, 조식, 마사지, 수영장 등 모든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 매력적인 워케이션 패키지라고 생각해요.
ㅡ 오픈 후 반응은 어떤가요?
7월 초에 문을 열어 막 운영 2개월 차에 접어들었는데요. 시엠 리프 현지 리모트 워커와 리조트 투숙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브랜드에서는 아예 공유 오피스에 들어와 일부 좌석을 빌려 일하고 있고요. 조천점이나 사계점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지금과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동아시아 시장에서 조금 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ㅡ 동아시아에 제주 포함 10개 점을 열겠다는 다짐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어요.
일단 말하고 보는 선언이에요. 막연한 꿈같아도 꾸준히 이야기하면 좋은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실제로 시장 조사를 진행하며 리모트 워크가 활발한 유럽권 워커 다수가 동아시아 국가에 머무르며 일하는 모습을 확인한 만큼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거라고 봐요. 시엠 리프점이 오피스 글로벌 확장 계획의 마중물이 되어줬고, 아직 논의 단계이지만 태국과 라오스에도 오피스 지점을 둘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10호점을 오픈하게 되지 않을까요?
ㅡ 아직 워케이션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워케이션을 접할 수 있는 첫걸음으로 무엇을 권하고 싶나요?
근무처에 워케이션 제도 도입을 건의해 주세요.(웃음) 사실 국내는 워케이션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는 단계에 있어요. 기업 차원에서 지원이 어려운 경우 본인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가벼운 워케이션을 경험해 보길 권해요. 예로 강남 소재 직장에서 근무하는 분이라면 부암동이나 한강변 카페에서 하루 정도 일하는 경험이 워케이션이 될 수 있어요. 정해진 루틴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뛰어드는 것이 포인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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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이 브랜드를 전하는 일
ㅡ 사계점 이용자는 건물 로비에서 가장 먼저 오-피스의 굿즈를 만나게 됩니다. 브랜딩 측면에서 주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저희는 브랜딩이란 브랜드만의 색을 나타내기 위한 작업, 즉 오-피스가 지닌 오리지널리티를 콘텐츠화 하는 일이라고 정의해요. 따라서 공간부터 공간에 놓이는 물품 그리고 이용자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직접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브랜딩에 대한 책이나 영상을 보면 ‘브랜드 컬러를 지정해야 한다’ ‘페르소나를 설정하고 모든 요소를 정렬해야 한다’ 등 여러 의견을 접하게 되는데요. 그런 측면에서는 현재 오-피스의 브랜딩이 훌륭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어요. 브랜드를 이루는 요소들을 한 지점으로 모아가면서도 경계를 두지 않고 유연하게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 과정을 영상과 글, 사진 등 다양한 매체로 기록하고 있으니 함께 지켜봐 주세요.
ㅡ 책 〈New Workers〉를 발간했습니다. ‘뉴워커스(New Workers)’가 가지는 의미와 1호의 구성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오-피스가 정의하는 ‘뉴워커스’란 ‘직군이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경계를 확장하며 일하는 사람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두려움이 없고 어떤 어려움도 돌파할 힘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오-피스 이용자 중에 남다르게 일을 잘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내면 많은 워커들에게 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1호인 만큼 오-피스의 브랜드 스토리를 담을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저희의 존재 목적인 ‘일’에 집중했어요. 최혜진, 손현, 조퇴계, 김가은 에디터와 김혜민, 박혜민, 이혜민 기획자 총 7인과의 인터뷰 그리고 대담으로 책을 구성했습니다. 각 인물이 축적해온 삶의 지혜와 일을 대하는 자세를 살필 수 있어요.
ㅡ 오-피스 SNS를 기반으로 한 권의 책을 카드 형식으로 소개하는 콘텐츠 ‘5분 컷, 책 요약’ 콘텐츠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둘 다 독서를 즐겨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미가 콘텐츠 기획에도 반영된 것 같아요. ‘5분 컷, 책 요약’은 10회 남짓 제작하고 잠시 중단한 상태인데요. 대신 오-피스 내부적으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참여 인원이 돌아가며 추천한 책을 읽다 보니 여러 카테고리의 책들을 접하게 되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오-피스에서 책을 집필하는 분도 있어요.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를 집필한 정흥수 작가님이 책 출간 이후 사계점을 다시 찾아주셨는데요. 인연이 되어 이후 같은 곳에서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죠. 책을 통해 또 다른 연결 지점이 생기고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된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에요.
ㅡ 오-피스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로컬에서 시작해 글로벌로 나아가는 브랜드를 꿈꿉니다. 집의 경우 더 좋은 환경을 목표로 이사를 계획하거나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는 등 개선에 대한 욕구를 가지기 쉬운 반면 근무지는 개인의 공간이 아니다 보니 환경에 스스로를 맞추게 돼요. 오-피스는 사람들이 더 좋은 공간에서 일할 수 있으면 합니다. 뮤직을 테마로 한 유명 카페인 ‘하드 록 카페(Hard Rock Café)’가 세계 주요 도시에 지점을 두는 것처럼 저희 역시 세계 곳곳의 휴가지에 오-피스 이름으로 환기와 몰입의 경험을 제공하는 워케이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TPO
오-피스 박성은, 박현주 공동대표에게 환기와 몰입을 선사하는 공간
박성은 대표 공간이라고 하기엔 넓은 범위이지만 ‘서울’을 꼽고 싶어요. 제주에 와 7년을 살면서 가끔 서울 출장길에 오르면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인 것을 실감합니다. 마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 기분이에요. 곳곳에 멋진 공간과 기획, 사업들이 넘쳐나 많은 영감을 얻으니 제주에 사는 저에게는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이 곧 워케이션이죠. 머물던 곳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몰입이 더욱 깊어짐을 체감하면서 오-피스를 통해 세상의 워커들이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늘 고민합니다.
박현주 대표 10 년 전 약 3주간 머무른 뉴질랜드의 한 도시 ‘넬슨(Nelson)’이 아직도 생각나요.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나 오클랜드(Auckland)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라이프스타일의 도시’ ‘예술인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곳인데요. 한적한 분위기에 온화한 미소를 띤 노인들이 지나가며 따스한 인사를 건네는 작은 도시예요. 저는 제주에서 자라 자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대한 감흥이 크지 않았는데, 자연이 주는 감상도 다양하고 특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넬슨에서의 공기, 우연히 들른 아트숍의 바이브,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 모두가 이전에 경험한 것과 달랐거든요. 당시 많이 지쳐 있었는데, 저를 옭아매던 것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기억이 있어요. 조천점과 사계점을 준비할 때 그 순간의 감상을 반영해 또 다른 한적함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여행하듯 일하는 워케이션, 오-피스제주 사계
: file no.2 : 경계를 확장하며 일하는 사람들
글 김가인 기자
사진 박성욱 (파시트 스튜디오)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O-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