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1편에서 이어집니다.
“
‘서울브루어리’잖아요. 서울에 반드시 양조장을 해야 한다.(는 결정은)
멋진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
서울브루어리는 서울 태생이다. 당인리 발전소 근처 작은 주택가를 개조한 합정점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고 손님에게 바로 제공하는 ‘바이브 넘치는’ 브루펍(브루어리와 펍을 합친 공간)으로 시작했다. 규모는 작았지만 대신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맥주를 만들었다. 새로운 브루어리가 궁금한 ‘맥덕’부터 트렌디한 공간을 찾아다니는 트렌드세터,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미식가, 동네 마실 나왔다 들르는 주민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서울브루어리를 찾는다. 이번 편에서는 서울의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는 서울브루어리의 브랜드 스토리와 여정을 소개한다.
Interview with
서울브루어리 이수용 대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디벨로퍼, 부동산 컨설턴트 등에서 경력을 쌓다가 평소 좋아하던 크래프트 맥주 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2018년 합정동에 서울브루어리를 오픈하면서 서울의 다채로움을 담은 브루어리를 만들어 나가려 노력 중이다.
더퍼스트펭귄(T-FP) 최재영 대표
건축, 공간, 브랜드를 다루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T-FP)의 최재영 대표. 더퍼스트펭귄은 공간 디자인은 물론 브랜딩과 건축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 중이다. 서울브루어리 성수점의 건축 설계와 공간 디자인을 진행했다.
다채로운 서울의 맛과 멋
index 1
— 서울브루어리는 서울의 다양성을 담는 브루어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이수용 (이하, 이): 처음 이름 지을 때 ‘서울우유’처럼 담백하지만 기억하기 쉽고, 힘이 느껴지는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이라는 장소는 다양한 사람, 문화, 로컬, 서브컬처 등이 공존하는 대도시예요. 서울처럼 새로운 것들이 이렇게 빠르게 유입되고 빠르게 퍼져나가는 도시가 또 있을까요. 그런 서울만의 특성을 맥주에 반영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 년 내내 상시 판매하는 ‘이어-라운드(year-round)’ 맥주 4~5가지는 제외하고는 매달 3~4가지의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요. 브루어들이 여러 가지 시도하며 여태까지 80종가량의 새로운 맥주를 출시했어요.
서울브루어리 합정점
2018
— 합정점 오픈했을 때 맥주와 음식이 맛있어서 종종 방문했습니다. 맥주와 잘 어울리는 키슈와 맥주 컬러처럼 그러데이션 한 나무 탭이 인상적인 공간이었어요.
이: 당인리 발전소 뒷골목에 처음 브루어리를 오픈했을 때만 해도 주변이 깜깜했어요. 주거지역이라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이었죠. ‘잘 못하면 정말 망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살아남았죠. 인근에도 힙한 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요. 서울브루어리가 지향하는 공간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비일상’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 직장이 많다보니 일과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누군가 일상에서 잠시나마 새로움을 경험하는 공간이요. 맥주의 맛과 음식의 퀄리티, 공간의 인테리어, 분위기 모두 그 경험과 연결되어 있어요. 바의 높이와 의자와 테이블의 높낮이까지 맥주를 마시는 태도를 좌우하죠. 합정점은 마키시 나미(Makishi Nami) 디자이너가 가구 디자인을 작업해 주셨어요. 공간은 어설프지만 제가 직영으로 공사했습니다. 성수점은 어유, 엄두도 못 냈죠.
서울브루어리 한남점
2018
— 성수점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아예 건물을 새로 짓는 프로젝트인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 학부 때 건축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경영을 공부했어요. 건설사도 잠깐 다니고, 해외 사업 개발, 부동산 컨설팅 등 해보고 싶었던 분야에서 다양하게 일을 했습니다. 그간 쌓은 경험으로 보았을 때 처음 브루어리를 만들더라도 제조업 특성상 단기로 승부를 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장기적으로 잘 이어 나가서 브랜드를 생명력 있게 유지하는데 십 년 이상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진 거예요. 합정점의 매출이 평소 20%로 뚝 떨어지더군요. 아, 이렇게 임대 매장으로 운영하다간 브랜드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몰려왔어요.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토지를 매입했어요. 건물을 짓고,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양조장이자 매장, 문화 예술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고 결심하게 되었죠.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기존 매장을 운영하느라 바빠서 이런 기획을 할 시간은 없었을 거 같아요.
서울브루어리 성수점
2023
— 말 그대로 코로나가 위기이자 기회였네요. 더퍼스트펭귄은 공간의 브랜딩부터 설계까지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작업에 특화되어 있으시잖아요. 서울브루어리 성수점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경험하길 바라며 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최재영 (이하, 최): 브랜드를 만들 때 아예 원점에서 만드는 케이스가 있고 기존에 있는 브랜드의 방향성에 맞춰 작업하는 경우가 있는데 서울브루어리는 후자에 속하죠. 원래 가지고 있던 브랜드 작업물들이 있었고, 저희는 성수점을 오픈하면서 메인 BI나 맥주 케그 디자인 같은 것들을 손봐드리는 정도로 작업했어요. 서울브루어리는 오픈 때부터 단순하고 담백한 톤앤매너를 유지해 왔어요. 술을 마실 때의 정취나 분위기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죠. 그런 여러 요소가 그래픽 디자인에도 적용되어 있고, 저희는 최대한 그 기조를 살리면서 고도화하는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우주와 달, 술의 정서를 반영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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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고 디자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이: 처음 로고를 만들 때 디자이너와 술 먹는 정서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저는 달 밝을 때 뒷마당에 나가서 조용하게 달 보며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해요. 시끌벅적하기보다는 사람과 교감하며 먹는 분위기를 선호하거든요. 로고에도 달이나 우주의 별 혹은 맥주 효모 같은 요소들이 들어가 있어요. 캔 맥주에도 달이 등장하는데요. 초승달부터 그믐달, 상현달, 하현달, 보름달까지 형태가 이어집니다. 캔맥주 라벨은 내부 디자이너가 작업하기도 하고, 컬래버레이션 맥주의 경우에는 협업 브랜드에서 진행하기도 합니다. 주류 전문 매장에 가보면 크래프트 맥주 디자인이 정말 화려해요. 그래픽도 화려하고 어떤 건 기괴하기도 하고, 이렇게 튀는 디자인 사이에서 서울브루어리는 오히려 반대 노선을 걷고 있어요. 컬러도 디자인도 정말 심플해요.
— 성수점이 메인 브루어리가 되면서 맥주 생산 역시 이곳에서 대부분 이뤄진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지점들은 어떻게 운영할 예정인가요?
이: 성수점에서는 합정점 15배 정도의 물량을 생산할 수 있어요. 납품하는 맥주들은 이제 성수점에서 거의 다 만들고 있습니다. 합정점은 와일드 맥주 특화 지점으로 리브랜딩하려고 해요. 와일드 맥주란 와일드 효모를 가지로 발효시킨 맥주를 뜻해요. 내추럴 와인은 다른 어떤 인공 요소를 넣지 않고 포도의 힘으로만 만든 와인을 말하잖아요. 재배 단계에서부터 유기농법으로 관리를 잘해서 만들면 포도 속 건강한 효모들이 살아서 포도주가 되요. 그런 힘이 없으면 프로덕트 효모를 넣는 거예요. 당과 효모 성분이 있는 포도와 달리 맥주 재료에는 효모가 없는데요. 프로덕트 효모 대신 야생 효모를 채취해 과일과 섞어가면서 독특하면서도 복잡미묘한 풍미가 있는 맥주를 만들 수 있죠. 와일드 맥주를 만들 때 내추럴 와인 배럴 안에 넣어 그 캐릭터를 더 강화한다든지 재미있는 시도를 해볼 수 있어요.
와인 그리고 스테이까지, 서울브루어리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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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듣자 하니 와인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요.
이: 와인에도 관심이 많아요. 언젠가는 와이너리를 해보고 싶어요. 취미로만 할지 직접 농사를 지을지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지만요. 준비하고 있는 3층 다이닝 공간에서는 서울브루어리가 소개하는 내추럴 와인을 준비해 둘 예정이에요.
최: 서울브루어리가 다방면으로 접근이 가능한 건 오너의 태도에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라고 해서 꼭 맥주 덕후만 타겟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이 공간이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건 그 때문이에요. 저는 이곳의 음식도 맥줏집을 넘어 파인 다이닝의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탭 테이크 오버(Tap Takeover) 행사나 재즈 공연 등 이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보면, 크래프트 맥주 씬에서 잘하는 곳들은 많지만 이런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서울브루어리만의 특징이죠.
이: 저는 스페셜리스트가 되긴 어려운 사람이다 보니까 좋은 제너럴리스트가 되려고 해요. 지금까지 해온 일만 봐도 하고 싶은 것들은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어요. 지금도 몇 가지가 남아 있지만 일단 에너지 배분을 잘해야 해요. 서울브루어리의 맥주 제조부터 출고, 배차, 매장 가이드까지 전체를 신경 쓰고 있거든요. 음식의 수준이나 맥주의 퀄리티를 위해 좋은 인력을 영입하고 있어요.
— 서울브루어리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이야기를 펼쳐갈지 더 궁금해집니다.
이: 저는 공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주거, 오피스, 상업시설 등 다양한 공간 비즈니스 모델이 있을 텐데요. 저는 그중에서 ‘호스피털리티(hospitality), 환대’ 비즈니스를 공간과 엮어서 전개해 나가고 싶어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건 ‘스테이’입니다. 어떤 방향이 될지 기획 중이지만 서울브루어리만의 경험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서 앞으로의 퍼즐들이 맞춰지겠지요.
*호스피털리티 비즈니스: 의식주를 넘어 즐기거나 경험하고 느끼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비즈니스. 스테이, 식음료, 여행, 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기사는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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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Cabinet] 서울브루어리
▶ : file no.1 : 서울 최대 규모, 성수동 DNA 담은 브루어리의 등장
▶ : file no.2 : 서울 한복판, 일상에서 경험하는 비일상
헤이팝과 서울브루어리가 헤이팝 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이벤트!
기사에 소개된 서울브루어리 성수점을 직접 경험해 보세요. ▼